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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백 님의 서재입니다.

내 귀농이 너무 행복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장진백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0
최근연재일 :
2024.05.13 15:3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035
추천수 :
130
글자수 :
82,221

작성
24.05.08 18:00
조회
232
추천
16
글자
17쪽

제5화.

DUMMY

제5화.


머리에 촉촉함이 느껴졌다.

두런두런 목소리도 들려왔다.


“으······”


마루는 옅게 신음을 흘리며 천근만근 가라앉은 눈꺼풀을 힘겹게 떠봤다.

흐릿한 시야로 뭔가 보였다.

주르륵.

머리를 젖이고 흘러내리는 물이 흐릿한 눈의 초점을 더욱 흐리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어렴풋, 형태는 보였다.

한복 입은 고양이였다.


“냐오옹!”


눈을 떠 바라보자, 한복 입은 고양이가 예쁘게 울었다.

새끼 고양이 같은 얇고 고운 울음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나저나······ 고양이 손에 들고 있는 저게 뭐지?’


눈을 좁혀 자세히 보았다.

툭 나온 주둥이에 ‘ㄷ’자 모양 손잡이.

촌스러운 초록빛.

저게 뭐더라?

아, 기억났다.


‘물뿌리개!’


한복입은 삼색 고양이 손에 들린 채, 기울려지고 있는 저건 확실히 마루의 기억속에 있는 그 촌스런 물뿌리개가 맞았다.


“그걸······ 왜······ 푸루우부후훕!”


죽다 살아난 것 처럼.

마취 후에 깨어난 것처럼.

힘겹게 열린 입으로, 왜 내머리 위로 물뿌리개를 기울이냐는 말이 나오다 만다.

물뿌리개에서 흘려내린 물이 입을 틀어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흐릿하게 보이던 것이, 이젠 완전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모자이크가 잔뜩 꼈다.


‘그만! 그만해, 이 고양아!’


소리 없는 아우성이 마음속에서 퍼져 나왔다.

그사이, 모자이크 물 장막 너머로 고양이 외의 다른 동물 하나가 언뜻 비추었다.

이번에는 한복 입은 귀여운 여우 같았다.


“이런. 아직 발아하시기 전이구나. 물을 더 뿌리고, 일단은 콧등까지 더 흙을 묻어 보자꾸나.”

“냐아옹.”

“멍멍!”


뭐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네 사람들! 여기 동물들이 사람 매장하려고 합니다!

살려주세요!

보이지 않는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뒤이어 들렸던 것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정신 차리면서 살고 싶어 몸을 버둥거렸고, 입을 달그락거렸다.

그러나 마루의 살고자 하는 몸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조금 더 주무십시오.”


어느덧.

물 모자이크 가까이 다가온 여우가, 앞발을 들더니만 순간적으로 머리통 냅다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퍽!

띠이잉!


골이 우리고, 눈이 핑.

시야가 다시 암전될 쯤.

마루는 왠지 모르게 물장막 너머 흐릿한 현상을 유지한 여우가 요요하게 웃는 것 같았다.


‘여우는 요물이라더니만······.’


요물 맞네.

사람 잡는 요물.

꼴까닥.


[몸의 정화률이 50%입니다.]

[완전 정화 하기 위해선 끝날 때까지 땅에 묻혀 있어야 합니다]

[영양을 듬뿍 주세요. 상한 새싹 세계수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몸이 정화되어 발아하기까지 12시간 남았습니다.]

[정화률이 60%입니다.]

[정화률이 70%입니다.]

[정화률이 80%···90%······100%입니다.]

[몸의 오염이 정화되었습니다.]

[씨앗이 잘 발아하였습니다.]

[죽어가던 씨앗이 오염을 정화하고, 본질을 깨달음에 숨겨진 힘, ‘완전정화’을 얻었습니다.]

[아직은 미숙하고 매우 약한 새싹이라 완전 정화를 사용시 생기를 잃습니다.]

[일부 땅이 적당히 정화되었습니다.]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


“으······ 머리야”


마루는 머리가 아픈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깊게 잠들었던 눈은, 껌벅껌벅하기만 할 뿐, 당장 열리지 않았다.

눈꺼풀 사이로 비추는 빛에 천천히 적응하려던 모양이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니까 서서히 열렸다.

당장은 흐릿한 시야가 보였지만, 그래도 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는 없었다.

촉촉함이야 있지만, 이정도야 뭐.

몇 십 초가 지나서야, 렌즈가 똑바로 끼워진 안경처럼, 눈은 또렷이 초점을 맞추어 졌다.


“······어,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정신 차리고, 초점 돌아온 눈으로 본 세상에 처음 나오는 말이 ‘헉!’, ‘살았다!’, ‘만세!’, ‘신이시여!’이런 감탄사일 줄 알았는데.

예시에도 없던 의문사를 토해 내 줄은 마루도 예상치 못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겠지.

눈앞에 꽃 자수 예쁘게 새겨진 하얀 저고리에 개나리꽃처럼 예쁜 노란 치마 입은 작은 여우와,

회색 한복 바지 입은 눈처럼 하얀 강아지와,

홍색 저고리 입은 삼색 작은 고양이가,

넙죽, 큰절한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이 땅에 강림하시옵시고, 이 땅의 정기와 세상의 자연을 돌리고자 오신 위대한 분을 뫼시옵니다!”

“멍멍!”

“냥냥!”

“본디, 저 우주 끝까지 뻗칠 위대한 자연의 힘으로서 건강하고, 깨끗한 작물과 토지와 물과 영양을 주시옵시오서, 위대하신 분이오!”

“멍멍!”

“냥냥!”


넙죽, 넙죽.

여우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그렇게 여우와 강아지와 고양이는 크게 절을 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심금을 울리고, 마음에 크게 와닿는다.

진심이 절실하게 느껴지며, 무조건 따를 것이라는 충성심도 다분히 느껴졌다.

마루는 그 진실 된 여우의 말과 행동에 감복하여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하게 여우와 강아지, 고양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장! 땅에서 파내 이것들아!!!!”


여전히 마루는 얼굴만 뽈롱 나온 채 땅에 파묻혀 있었다.


***


회색 바지 입은 진 눈처럼 하얀 강아지가 땅을 파줬다.

낑낑 되며 기어 나온 마루는 곧장, 동물들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말을 하는 것이 신기 한걸 떠나서, 잘못한건 가르쳐야 겠다.

팔짱을 껴, 눈을 부릅떠, ‘나, 매우 화났어요!’라고 몸소 동물들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누가 파묻으라고 했어요?”

“아무도 없사옵니다.”

“그래요. 아무도 파묻지 말라고 했는데, 파묻으면 돼요, 안 돼요?”

“안되옵니다.”

“좋아요. 살아 있는 사람을 산채로 파묻는 것은 아주, 아아주 나쁜 행동이니, 절대 하면 안 돼요.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겠사옵니다.”

“냥냥.”

“멍!”


동물들은 마루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친절한 잔소리는 통했다!


“허나, 본디 위대하신 분은 파묻혀야 하옵니다.”

“냥!”

“멍!”


아니었다.

동물들은 여전히 마루를 생매장할 속셈을 감추지 않았다.

허허.

이런, 배은망덕한 동물들이 다 봤나.

내 그간 길러준 은혜를―


‘생각해보니, 기른 적 없구나?’


그럼, 그간 챙겨준 은혜를―


‘생각해보니, 챙겨준 적도 없구나?’


생각해보니, 오늘 처음 봤다.


‘그럼, 나 오늘 처음 본 동물들에게 생매장당할 뻔했다는 거잖아?’


그 사실이 더욱 기가 막혀, 입이 쩍.

뭐, 이리 나쁜 동물들이 다 있담?


“그리고, 본디 위대하신 분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시니, 파묻혀야 하옵니다.”


와.

이 귀여운 여우의 인성, 아니, 여우성 보소?


“살다 살다, 곧 죽을 날이 다가오니, 말하는 동물에게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다 듣는 날이 오네······”

“그야.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옵시니, 이리 말하는 것이옵니다.”

“거, 여우님. 사람보고 사람 아니라고 말하는 언어 폭행은 안됩니다.”


언어 폭행, 안되!

멈춰!

마루는 손바닥 들어, 몇십 년 전에 유행했던 밈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헥, 헥, 헥!”


가만히 지켜보며 해맑게 웃고 있던 눈처럼 하얀 강아지가 도도도 다가와, 짧고 몽퉁한 앞발 들어 마루의 손바닥에 마주쳤다.

여전히 씨알도 안 먹혔다.


“······그럴 줄 알았다. 손 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잘했어, 멍멍아.”


마루는 동물에게 올바른 교육법을 전수하는 것을 잠깐 체념하고선, 제 손바닥 마주친 강아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헥, 헥! 왈왈!”


멍멍이가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 좋은지, 그리 예쁘게 웃었다.


“어휴, 예뻐라.”


보들보들한 털 느낌과 멍멍이의 행복한 미소는 생매장당해서 우울했던 기분을 날려주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삼색 고양이도 다가와 다리를 비비고, 그릉그릉 거렸다.


“너도 예뻐 해달라고? 강아지만 예뻐해 주니까 질투 난 모양이구나. 짜식. 그래, 기분이다.”


슥슥.

머리 쓰담 어진 삼색 고양이가 더욱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릉그릉 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어느새 여우도 다가와 머리를 내밀었다.

무심코 만져주었다가,


“후후. 기분이 참으로 좋사옵니다.”

“에그머니나, 깜짝이야.”


넌지시 흘러나오는 여우의 말에 마루는 깜짝.

손을 떼었다가, 앞발로 제 머리 더 만져달라는 여우의 애교에 배시시 웃음 흘리며 다시 그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정함이 가득한 손길에 제 머리 맡긴 여우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위대하신 분이여.”

“응?”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야. 하나하나가 너무 꿈 같은 일들이지만, 현실이잖아.”

“담담하시옵시군요. 알고 계시기에 가지신 담담함이옵니까?”


여우는, 조금 전 마루가 정신 잃기 전에 보여주었던 요요한 웃음을 보이었다.

마루는 그런 여우를 보며 가졌던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입 밖으로 흘렸다.


“요물이네.”


짙어지는 여우의 요요한 웃음.

마루는 머리를 긁고선, 한숨을 푹.

그리고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하고 있어. 내가 세계수 뭐시기라는 거.”


씨앗은 발아해서, 작은 싹을 틔운다.

발아되어 땅을 비집고 나온 싹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이, 그렇게 싹은 스스로 깨닫고 힘차게 무럭무럭 자라난다.

싹이었던 ‘마루’는 죽기 직전에 땅에 묻힘으로 인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고, 단절된 세상으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글러 먹은 직업명이 사실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묻힘으로 인하여 땅에 제힘이 깃들어 살아난다는 것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치 미리 알고 있던, 전에도 알고 있던 것처럼 그리 깨우쳤다.

아, 이래서.

원장님이 땅에 묻히라고 하셨구나.

선경지면이 대단하셨다.

헌터였나?


“하지만, 거기까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의 법칙에 따라 마루는 지금 겪은 일을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애초에 지금 가진 이해 영역조차도, 가시나무가 있는 광안리를 보고 ‘아, 여기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그 인지 능력처럼 받아 들었을 뿐.

누군가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면, ‘국영수 위주로 공부했어요’라고 말할 수능 만점자 같은 말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인지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상태창이 변하고, 상태 메시지가 주르르 나왔는데 몰라볼 수가 없겠지."


개인의 상태창은 남과 공유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수능 만점자의 말은 여전히 이해 불능으로 남는다.

아니, 알려줘도 비슷하겠네.

상태창 메시지도, 수능 만점자 말과 십분 다르지 않았으니까.


“상태창이라는 것은 현대 인간들에게 생긴 기능력을 말하는 것이 옵겠군요.”

“응. 맞아. 자, 그래서. 너희들은 무엇이고, 여긴 대체 어디야?”


인지 능력은 변화된 능력과 자신을 깨닫게 했을 뿐이지, 눈앞의 여우와 동물들을 알게 해주진 않았다.

땅에 털썩 주저앉아, 팔짱을 낀 채, 마루는 진지하게 물어보았고, 그의 물음에 상태창에 질문 했던 여우는 넙죽 엎드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희는 위대하신 분을 뫼시기 위해 태어난 정령이옵니다.”

“어? 정령?”

“그렇사옵니다."

"그······ 판타지 세계에 나오는 물, 불, 바람, 땅, 4가지 속성 가진 그런 정령?"

"예. 헌데, 판타지 세계가 어디이옵니까?"

"음, 어······ 저 다른 세상으로 가는 던전 속 세상?"

"이 땅을 침범한 이계를 말하시옵군요. 그렇다면, 정령에 관한 내용은 정답이옵고, 출신을 물어보신 것이라면 오답이옵니다. 소녀와 여기 이 멍돌이, 삼순이는 원래 이 땅에서부터 있던 존재였고, 위대하신 분이 강림하심을 알게 된 뒤에 기다리던 정령들이옵니다.”

“······아하."


애도 수능 만점자 같은 말을 하는구나.

그나마 정령이라는 것을 알아들었기에 마루는 대충 이해했다.

이어, 자신이 이해한 여우의 말 중, 저와 관련된 것이 어렴풋 기억이나 넌지시 묻는다.


”예언이라는 말도 있고, 기다렸다고 하면, 꽤 오랜 시간 있었다는 거야?”

“맞사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 선대의 그 선대로부터 이어져 기다려온 정령이라 볼 수 있사옵니다.”

“가문 같네. 그렇다면 여기는 대체 어디야?”

“세상과 단절된 탑의 안이자, 광안이라 불리던 곳이옵니다.”

“어? 광안이라고?”


세상의 땅은 50% 이상 이계화, 자세히 말하자면 이계의 숲과 들 같은 대자연의 환경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이전처럼 회색 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숲이 아닌, 초록빛의 우거진 숲과 갈색빛 가득한 들판이 즐비하게 되었다.

광안 또한 그리 변형되었고, 마루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보았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숲과 들판이 ‘광안’이라는 그 말에 어색할 일 없었다.

헌데, 광안은 지금 단절된 지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들어갈 수가 없기에 나올 수도 없는 그런 곳.

가시나무가 자리 잡은 곳.


“면을 만지고 나서 빨려 들어간 기억은 있는데, 정말, 광안이라고?”

“본디, 이 단절된 곳은 위대하신 분만이 들어 올 수 있게 되어 있사옵고, 또한 위대하신 분께서 셋방살이에서, 머나먼 제 보금자리로 온다는 예언으로 인해 서면이라는 곳에서 광안으로 위치를 옮겼사옵니다.”

“아하.”


이해했다.

그리고 더불어 자신이 세운 첫 번째 계획을 다시 실천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셋방살이에서, 머나먼 제 보금자리로 온다는 예언’이라는 여우의 말 때문이다.


‘이거 풀이하면 설마, 부모님이 마련해둔 집과 농지로 갈 수 있다는 거 아냐?’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작은 여우는 세 번째, 요요한 웃음을 보이었다.


“맞사옵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다시 한번 저희를 소개해드리옵지요.”


여우가 엎드렸다.

마루의 품에서 놀던 강아지도, 고양이도, 슬쩍 그 품에서 나와 넙죽 엎드렸다.


“저희는 오랜 시간, 이 땅 위에 살고, 이 땅의 정기를 회복에 힘써왔던 정령. 그러나, 세상이 오염되어 감에 스스로의 모습을 갖추었다가, 오염을 물리치고 세상의 정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나타날 위대한 분을 뫼시기로 결정된 정령. 소녀는 여우이자, 불의 정령으로서 ‘여울’이라 하옵고.”

“멍멍!”

“멍돌이는 땅의 정령, 멍돌이라 하오며.”

“냐아옹.”

“삼순이는 물의 정령, 삼순이라 하옵니다.”


여울이, 멍돌이, 삼순이는 넙죽 엎드린 몸을 일으켜 각각 자기소개를 끝마치고선, 다시 엎드렸다.


“본디, 저희와 함께 이 땅의 정기, 우주의 정기를 다시 바로 잡아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고선, 처음 했던 말을 그대로.

마루에게 간곡함과 절실함을 담아 전했다.

묵묵히, 여울의 그 진실 되고 간절한 음성을 듣던 마루는 눈을 감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눈을 떠, 정광이 서린 눈빛으로 따스히 여울을 바라보았다.

사뭇.

무거우면서, 따스한 침묵이 마루와 여울 사이에 내려앉는다.


“그래. 뭐부터 할까? 먼저 밭 갈고 씨앗 심기부터 할까?”


굳게 다문 입이 열리어, 여울을 향하는 마루의 음성으로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귀농하기로 했으니, 밭을 갈아 정기를 회복하는 것이 맞겠지.

봄날 따스한 햇볕 같은 그 음성이 여울의 귀에 슬며시 머금는다.

여우의 귀가 쫑긋, 움직이고.

여우의 얼굴에 따뜻하고, 매혹적인 요요한 웃음이 그려지면서 봄날의 햇살 같은 사내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일단, 땅에 조금 더 묻히셔야 합니다.”


응?


“아직 밭을 만들기 위해선 정화될 땅이 부족하옵니다. 그러니, 묻혀주십시오.”


······어?


“본디, 위대하신 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땅에 묻힌 뒤, 땅을 정화 시켜야 할 일이지요. 그래야, 위대하신 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날 작물이 더욱 싱그러워지는 법.”

“······.”

“자, 묻힙시다. 할 일이 많사옵니다, 위대하신 분이여. 멍돌이가 아주 땅을 잘 파오니, 혹여나 옅게 묻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처음, 위대하신 분을 묻힌 곳도 우리 멍돌이의 작품이옵니다.”

“멍! 헥헥헥!”

“······.”


동네 사람들! 여기 동물들이 사람 매장하려고 합니다!

살려주세요!


[발아되었지만, 아직은 미약하고 약한 세계수가 심어졌습니다.]

[완전 정화의 힘을 사용합니다.]

[소속된 일부 정화된 땅이 완전한 정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다시 하루 뒤.


[일부 땅이 작물을 키우기에 적합할 정도로 완전히 정화되었습니다.]

[정화된 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완전 정화의 힘을 사용하여, 생기를 잃어 갑니다.]

[남은 생명 : 336]

[생기 회복을 위해, 정화된 땅을 이용하세요.]


“사람을! 어! 땅에 막 묻고! 머리통까지 후려쳐서 기절시키면 된다고 했어요, 안된다고 했어욧!”


땅에서 낑낑대며 나온 마루는 다시 동물들을 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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