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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투렌
작품등록일 :
2021.08.07 23:55
최근연재일 :
2021.08.16 23:5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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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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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75,449

작성
21.08.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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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10. 1장. 3일. 10

DUMMY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하면서 은근히 닦달하는 마담을 애써 무시하다가, 난 환희의 손가락을 튕기며 본부장님에게 받은 종이를 얼른 꺼내 넘겼다.

이게 정답이었다. 마담은 꼬고 있던 다리를 바꾸고 이름밖에 없는 종이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저렇게 오래 볼만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마담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종이를 돌려주며 말했다.


“환락가로 가.”

“그건 너무 광범위한데요.”

“······고기로 만들어진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은 한 곳밖에 없지.”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마담은 검지와 중지를 펼쳐 자신의 양쪽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러면 좀 감이 오려나?”




참으로 간결한 얼굴 모자이크. 난 그 행위가 이 도시에서 무엇을 유추하는지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내 삶과 나의 직업이 환락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오히려 발상의 흐름을 막는 방해 요인이 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제일 큰 걸림돌이 되었던 건 집처럼 지내는 장소라는 키워드였다.

환락가와 집. 상생하기 힘든 두 단어. 마침내 수수께끼의 답을 떠올리고 급히 운전대를 돌렸을 땐, 이 힌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대화도 멋대로 끝내고 홀랑 가버렸으면서, 헷갈리는 보기만 주다니. 대체 세상 어느 누가 그런 장소를 집처럼 여기겠는가.


얼굴을 가리는 환락가. 가면무도회가 떠오르는 밤거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가 낭자 하는 육욕을 풀고 싶어 드나드는 동네. 본능이 이끄는 자유로움 만큼이나 꺼려지는 공간. 손이 부드러우면 맞잡고, 목소리가 마음에 들면 대화하는 곳.

고기로 된 꽃이 피는 장소라니, 몸을 섞는 것을 참 기이하게도 표현했군.

난 한쪽 눈을 일그러뜨리며 오묘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선 본격적으로 그 동네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 모양의 무도회 가면을 나눠주는 일종의 검문소 근처에다가 차를 멈춰 세웠다.


내가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검은 면사포를 뒤집어써서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일종의 이 구역 경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허둥지둥 다가와 까만 가면을 건네 왔다. 난 이 깃털까지 달린 이물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곧바로 거절했다.


“됐습니다. 즐기러 온 거 아니에요.”


내 반응에 상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없이 보닛 위에 가면을 내려놓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뭐지, 이 찝찝함은. 사용할 일이 있을 거란 의미일까. 가면을 앞뒤로 살펴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이런 걸 하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상상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요원이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부끄러운 일도 마다하면 안 된다. 난 만일을 대비해 벨트 백에 가면을 챙겼고, 성큼성큼 러버콘이 줄지어있는 굴다리를 통과해 환락가에 입성했다.


아주 다행히도, 밤 문화의 거리답게 대낮이라는 시간대의 길거리는 별로 붐비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그 열기가 달아오르기 전이라 비교적 건전한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행인들이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과 유독 이곳저곳에 가림막이 많다는 것만 빼면, 일반 주점과 카페가 늘어선 번화가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이 흡사 놀이공원 퍼레이드 같은 군상이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됐지만.

좀 더 면밀히 관찰해보면, 옷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하나의 특징이었다. 그 대신 들어차 있는 건 다름 아닌 숙박업소였다.


좀 걷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수많은 이목을 사로잡고 말았다. 비단 가면을 쓰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의식 과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본다면 내 외모는 이 욕망의 1차선 도로에서 화려한 슈퍼카처럼 단연 돋보이고 있었다. 가는 길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추파를 던져왔고 업소에서도 명함을 건네 왔다. 이런 까닭에 가면을 쓰지 않고 온 걸 후회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가면을 쓸까. 아니다, 어차피 요원 슈트가 은근히 눈에 띄기에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사람 찾는 일을 강행했다. 이목을 끄는 편이 더 났다고도 판단했다.


이 환락가는 꽤 넓은 편이다. 이런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하물며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동네에서 단신으로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란 이런 상황을 빗대는 말이겠지.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내 손에 쥐어지고 있는 게 무엇인가. 이 동네 정보라면 심심찮게 꿰차고 있을 업소 사장들의 명함이다. 그들이라면 이곳을 집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겠지.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는 지독한 단골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 요원 복장을 보고도 명함을 준건가. 이건 거의 자살 행위인데. 아마 단순 코스프레라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그럼 진짜 요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뭐 대화해보기도 전에 학을 떼고 도망갈 테니, 난 일단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고깃집 뒤쪽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있었네. 대낮부터 진도를 빼던 둘은 내가 나타나자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헐레벌떡 자리를 비켜줬다. 난 그들의 양보에 감사를 표하고는, 개인 핸드폰을 사용해서 명함에 쓰인 모든 번호에 연락을 취했다. 그 중엔 다짜고짜 계약 얘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어서, 난 제안을 단칼에 자르고 질문하는 걸 반복했다.


“혹시 최이현이라는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알 리가 있나. 여기가 어떤 동네인데.’

“모르시면 됐습니다.”


아쉽게도 이런 식의 통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다른 회답이 돌아온 건, 명함 뭉치를 절반쯤 갈아치웠을 때였다.


‘알아. 걔 우리 가게 단골이거든.’


난 묘하게 교성이 섞여 있는 목소리에 심히 당황했다. 설마 통화 중에?!


“저, 저기, 일단 통화에 좀 집중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우리 그런 곳 아니야. 우린 급이 있는 프로라고 프로.’

“아, 예······. 그, 그럼 최이현 씨가 주로 언제 방문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여기 있어.”


정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와 화들짝 놀라버렸다. 뒤늦게 여기 온 또 다른 커플도 날 보고 화들짝 놀라서 도망갔다.


“대낮부터요?! 아니 잠깐, 제 말은 그······, 거기가 어디죠?”


간단한 약도를 받아 그릴 수 있게끔,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이런 수고를 들이는 건, 이 동네 주소가 뭉뚱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난 다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십 여분 정도를 걸어, 약도의 안내에 따라 1층에 편의점을 두고 있는 상가 건물에 도착했다. 보기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건물. 도로에서 치워낸 눈이 건물 출입구 앞에 높직이 쌓여있는 게 눈에 띄었다.


통행에 방해가 되는 눈은 사뿐히 뛰어넘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5층으로 가기 위해 곧장 승강기에 올라타려 했는데, 노숙자 같은 사람이 통로 한가운데에 쭈그려 앉아서 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빈 강장제 병을 재떨이로 사용하며 날 쳐다보는 그를 뛰어넘을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길 기다렸고, 내 어깨를 일부러 툭 부딪치고 가는 행동에 불쾌함만 늘어났다.


터덜터덜 멀어지는 노숙자를 끝까지 관찰하다가 승강기에 올라탔다. 버튼이 1층과 2층을 제외하곤 청테이프가 붙어있어서 멈칫, 불도 들어오지 않는 2층 버튼을 누르자 승강기는 느릿느릿 5층까지 상승했다.

상당히 구식 승강기인지 쇠 마찰음이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그런데 목적지에서 문이 열리자 이 건물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 바닥에 붉은색 타일의 벽, 의미를 모를 그림이 걸린 고급스러운 액자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가로막은 카운터에서, 로봇 같은 인상의 직원은 내가 한 걸음 내딛자마자 허리를 깊게 숙였다.


“어서 오세요.”

“저, 한 10분 전에 여기 사장님이랑 통화했는데-”

“최이현 씨를 만나러 오신 분이군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카운터 아래로 손을 내려 무언가 조작하자, 모퉁이 쪽이 덜커덩 열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난 앞장서서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직원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객실 문이 하나도 없는 호텔의 복도 같은 곳. 깊숙이 들어갈수록 지독할 정도의 향기가 흘러나와서 거부감이 심해질 찰나, 벌컥 경고음이 울려 퍼지는 바람에 멈춰야 했다.


“손님, 무기는 갖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카운터 쪽에 물품 보관함이 있으니, 그쪽을 이용해주세요.”

“······요원에겐, 그런 규정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안내해주세요.”


직원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려는 날 여전히 감정 없는 눈빛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아무래도 배지만으론 못 믿는 눈치 같아서 신분증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직원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리모컨으로 경고음을 꺼버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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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5. 1장. 3일. 15 21.08.15 14 0 10쪽
14 014. 1장. 3일. 14 21.08.15 8 0 10쪽
13 013. 1장. 3일. 13 21.08.14 8 0 10쪽
12 012. 1장. 3일. 12 21.08.14 6 0 10쪽
11 011. 1장. 3일. 11 21.08.13 7 0 10쪽
» 010. 1장. 3일. 10 21.08.13 12 0 10쪽
9 009. 1장. 3일. 9 21.08.12 7 0 10쪽
8 008. 1장. 3일. 8 21.08.12 7 0 10쪽
7 007. 1장. 3일. 7 21.08.11 8 0 10쪽
6 006. 1장. 3일. 6 21.08.11 11 0 10쪽
5 005. 1장. 3일. 5 21.08.10 14 0 10쪽
4 004. 1장. 3일. 4 21.08.10 15 0 10쪽
3 003. 1장. 3일. 3 21.08.09 20 0 10쪽
2 002. 1장. 3일. 2 21.08.09 27 0 11쪽
1 001. 1장. 3일. 1 21.08.09 6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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