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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투렌
작품등록일 :
2021.08.07 23:55
최근연재일 :
2021.08.16 23:5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72
추천수 :
2
글자수 :
75,449

작성
21.08.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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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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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2. 1장. 3일. 2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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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보존을 위해 자판기 주위로 순식간에 노란 끈이 둘러쳐졌다. 근처 주민들은 무슨 난리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길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액체의 정체를 코끝으로 먼저 깨닫고 얼른 창문을 닫아버렸다.

피였으니까. 누구든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만한 양의 피가 급격히 추워진 날씨 때문에 길바닥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으니까.


고작 호기심이라는 하찮은 이유로 구경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극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가까운 벽에 몸을 기대는 것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무런 일이 아니길. 별일 아니길. 왜 하필 재수 없게 우리 집 앞에 이런 일이.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괜스레 일에 휘말릴까 두려웠던 창문들은 속속들이 커튼으로 봉쇄되었다. 이제 막 가슴 한쪽에 경찰 배지를 달고 현장에 투입된 신입들은 이런 주변 반응에 씁쓸한 실소를 머금었지만, 나와 같은 베테랑들은 이미 이런 일을 수차례 겪어왔던 탓에 별다른 내색도 하지 않고 차례대로 일을 진행했다.

아니, 오히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괜한 관심에서 벗어나 안심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일사불란하게 번쩍였다. 이 과정 때문에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잔혹한 참상이 악몽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피 위에 점차 서리가 끼고 있다. 강렬하고 따스한 조명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막을 수가 없었다.


기록과 분석 시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현장과 조금 동떨어진 곳에 주차되어있는 경찰차로 다가갔다.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현장의 풍경을 머릿속에 욱여넣느라 고생이었다. 이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여태껏 날 기다리고 있었던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거울처럼 내 못마땅한 표정을 비추던 유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메운 건 태생부터 짜증과 심술을 팔자주름에 잔뜩 새긴 듯한 형사과 과장의 늙은 얼굴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증거는 차고 넘치나 보네.”


과장은 잠시 말을 아끼다가, 허탈한 웃음과 함께 비아냥대며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증기는 이에 아주 정직하게 응답했다.


“네, 아마 동이 트기 전까지 범인을 색출할 수 있을 겁-”

“그다음은?”


내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과장은 바로 본론으로 칼같이 넘어갔다. 날 몰아붙이는 그의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주름이 더욱더 깊어졌다. 반쯤 감긴 눈이 내 입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난 슬쩍 현장을 곁눈질로 바라본 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이번에 잡힐 녀석도 이전과 똑같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긴 쉽지 않겠죠.”

“······이번이 몇 번째인 줄 알지?”

“네 번째입니다.”

“그래 네 번째. 그리고 사망자 수는 이걸로 여덟 명이 됐지.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너희의 무능력함이 이제 도를 넘기 직전이란 거야. 이도 저도 못 하고 3주째 제자리걸음. 혹시 얼른 피해자 수가 두 자릿수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


이 얼토당토않은 말에 난 나도 모르게 반걸음 더 다가갔다.


“아뇨. 저흰 한시라도 빨리 능력자 놈을 붙잡고 싶어서 잠까지 반납한 채 수사에 총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왜?”


왜? 말문이 막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과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분명 다가갔을 텐데 더 멀어진 듯한 착각이 들어 눈만 끔벅거렸다.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서 있기만 하자, 과장은 새로 산 명품을 자랑하듯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연신 만지작거렸다. 깜깜한 경찰차 내부에서도 유독 반짝이던 그것은, 대나무가 그려진 ‘요원’의 배지였다.


“난 도통 이해를 못 하겠어. 왜 너희가 능력자를 잡으려고 하는 건지 말이야.”

“경찰관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능력자를 잡는 건 너희 일이 아니야. 너흰 어디까지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예방을 하는 역할이지. 한데 봐,”


이제 곧 과장이라고 할 수 없게 될 그가 차 밖으로 손을 쭉 뻗어 자판기를 가리켰다.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길래 이런 과감한 기행을 막지 못하는 거지? 외진 곳도 아닌, 이 도시 한복판에서 저 작은 자판기에 사람 둘을 욱여넣는 동안 너흰 대체 뭘 한 거야?”

“하지만-”

“변명하려 하지 마. 이 작은 도시에서 여덟 명이나 납치돼서 죽는 동안 너희는 아무것도 못 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거니까.”


강압적으로 내질러지는 과장의 검지 때문에 난 눈을 내리깐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성이 커져서 이쪽 눈치를 보는 팀원들이 생겨났기에 더욱이.

근데 얌전히 야단맞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니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이쯤 되니 내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당연히 요원이었다. 괜스레 내 분노가 자신의 뻗어진 검지로 향할까 봐 겁이 났던 과장은 얼른 차 안으로 팔을 도로 집어넣었다. 이제 곧 있으면 자신이 상사가 아니게 되니까, 이를 빌미로 내가 허튼 짓거리를 할 수도 있단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듯했다.


난 과장의 팔이 있었던 창틀을 내려치듯이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면, 저희가 허탕 치는 동안 요원들은 뭐라도 해냈습니까?”

“도시보안법에 의거해서 그 부분에 관해선 어떠한 얘기도 해줄 수 없어.”

“······그런 게 변명입니다.”


내 작은 중얼거림에 과장은 뭐? 라고 짜증 내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서 난 이 기회에 그간 쌓인 화를 토해내듯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오늘까지 정확히 23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세 명의 피의자를 체포했고 몇 시간 뒤면 한 명을 더 붙잡게 되겠죠. 근데 요원은 한 게 뭐죠? 저희가 증거란 증거는 밤잠을 설쳐가며 모조리 확보해서 갖다 바치고 있고, 순찰도 눈에 불을 켜고 매시간 매분 돌고 있는데. 저희가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요원은 대체 뭘 했냐는 말입니다. 그쪽이야말로 23일이라는 시간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중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빌어먹을 도시보안법 때문이겠지. 그래도 눈가에 힘을 꽉 주고 입술이 시옷을 그리는 거로 보아 아주 성공적으로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으면서 열심히 현장을 뛰고 있는 저희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범인의 능력에 대한 일말의 단서도 없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죠. 도시 전체에 외출 금지 명령을 내리는 방법을 사용하면 예방이 가능할 겁니다.”

“넌 이 도시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건가?”

“완벽히 통제하는 건 힘들겠지만, 적어도 추가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아쉽게도, 우리 일은 시민을 겁먹게 하는 게 아니야.”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그의 시선은 떠나버렸다. 그의 눈은 이제 날 바라보지 않았다. 이대로 떠나버릴 속셈이었다.

난 창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창문이 닫히는 걸 막진 못하겠지만,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서 울분을 토해내야 했기에.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저희 말단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왜 요원들이 계속 저희 탓만 하면서 일을 질질 끌고 있겠습니까. 저희 갈구면서 증거 부족 핑계 대다가 대충 수사 종료해버리려는 거 아닙니까. 대강 봐도 해결하기는 까다롭고, 괜히 실적에 스크래치가 갈까 봐 무고한 피의자를 살인자로 퉁치고 넘어가려는 거 아니냐고요.”

“어쨌든 사람을 죽인 건 그 피의자 놈들이잖아, 안 그래?”

“범인이 아니라, 놈이 사용한 살인 도구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끝내고 싶으신 거군요. 추가 피해를 막을 생각은 단 일도 없이.”


과장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뗄 때까지, 그 떨림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이 엿 같은 사건을 능력자의 연쇄 살인으로 보고 있는 건 지금 네가 있는 수사본부뿐이야.”

“저희가 포기하면 끝이란 말이군요.”

“포기하고 자시고를 떠나서, 내가 이 정도까지 어울려줬으면 이젠 슬슬 그 망상을 끝낼 때가 됐잖아.”

“이건 망상이 아닙니다.”

“고집 좀 그만 부려. 이런 짓은 네 커리어에 좋지 않아. 그냥 좋게 마무리하면 넌 살인범을 네 명이나 잡은 성과를 올리게 되는 거고, 난 요원 쪽으로 완전히 이직해서 여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너도 내 얼굴 계속 보고 싶지 않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적당히 해.”

“꼭 저희가 마무리해야만 이직할 수 있는 겁니까? 어차피 이미 마음 떠난 거 그냥 몸도 바로 가시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아랫것들이던 녀석들이 사건 하나 붙잡고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데, 이직이 가능할 것 같아? 임원 쪽에서 이미 얘기가 내려왔어. 깔끔하게 처리하고 오라고. 근데 지금 너희는 본인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일을 벌이면서 날 방해하고 있는 거야. 존재하지도 않는 능력자 하나 잡겠다고 인력을 대거 낭비하면서 말이지. 이젠 그냥 좀 포기해. 어울려주는 것도 끝났어.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점심까지 수사본부 해산에 도장 찍어서 제출하는 거뿐이야, 알았어?”


어깨가 허망함에 가라앉았다. 차라리 무능하다며 잔소리 들을 때가 나았다. 은연중에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과장의 입을 통해 직접 포기하란 소리를 들으니까 납덩이를 삼킨 듯한 느낌이었다.

창틀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풀렸고 이 틈에 창문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문에 실망이 서린 내 낯짝이 점점 가득 채워져 갔다. 경광등의 색에 따라 감정도 들쑥날쑥 변해갔다.


“요원들은, 언제부터 이 사건에 배후가 없다고 여겼습니까.”

“처음부터.”


창문이 콧등까지 차올랐다. 이제 밖에서 보이는 건 과장의 눈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난 순간 이미 사건에서 고개를 돌린 과장과 내 모습이 겹쳐 보였고,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불쾌한 느낌에 튕겨 나가듯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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