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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투렌
작품등록일 :
2021.08.07 23:55
최근연재일 :
2021.08.16 23:5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75
추천수 :
2
글자수 :
75,449

작성
21.08.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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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004. 1장. 3일. 4

DUMMY

“겨, 경감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긴박한 목소리에 다들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는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던 서류 뭉치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기도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입구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부하에게 서둘러 물었다.


“큰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죠?”

“네, 네 번째 사건의 피의자가 자살했습니다!”

“자살?”


모두가 똑같은 단어로 동시에 되물었다. 익숙한 단어였는데도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잘못 알아들은 것도 아니고 문장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하게 뇌리에 박혔는데도 고개가 갸우뚱했다. 자욱한 안갯속에 빠져버린 듯이, 의문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부하는 이런 분위기가 답답했는지 세세한 설명을 빠르게 덧붙였다.


“약 한 시간 전에 저흰 네 번째 사건의 피의자 신원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늑장 부릴 것도 없이 곧바로 녀석을 붙잡기 위해 출동했죠. 그런데-”

“자살했다고요?”


난 퍼즐을 차례대로 맞추기 위해 말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한 마디씩 대화하면서 수첩에 새겨 넣었다. 부하는 받아 적을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말을 천천히 했다.


“아, 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목이라도 매고 있었습니까? 그러면 타살로도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가 도착할 때까진 살아있었습니다. 살아있었는데······. 그, 피의자 집에 찾아갔더니 인기척이 있어서 문을 좀 열어달라고 하니까 막 꺼지라면서 고함만 치고 도통 문을 안 열어 주더군요. 그래서 강제로 따고 들어갔더니, 과도로 본인 목을 찌른 채 죽어있었습니다.”


부하가 어떤 형태로 과도가 박혀있었는지 흉내 냈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피의자가 취한 행동은 너무나 극단적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집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까?”

“예, 아직 정확한 감식은 진행 중입니다만, 현재까진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피의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겁니까?”

“숨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습니다. 급히 구급차를 부르긴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죠.”

“이거 과잉진압이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르겠군요.”

“과잉진압이라니요?! 협박이라든가 그런 건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녀석은 피의자였고, 저흰 최대한 인도적으로 체포하려고 영장도 갖고 갔습니다. 아! 저희가 바디캠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부하는 손뼉을 짝 치더니, 어깻죽지에 달고 있던 바디캠을 서둘러 내게 넘겨줬다. 그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에 억울함이 잔뜩 배어있었다. 이런 모습이 날 안심시켰다. 분명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정리해보자. 폭력 같은 여타 다른 작용이 없었다. 그저 체포된다는 사실에 피의자는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의식이라도 생긴 걸까? 뭐가 되었든 간에 이건 이제까지와는 정말 다른 반응이었다. 적어도 기억이 있었단 얘기니까.

그리고 까먹고 있었던 거지만, 지금은 새벽 시간. 피의자는 왜 이런 시간에 깨어 있었던 걸까.


이게 수사에 큰 도움을 주는 증거가 될지 혼전을 주는 함정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 처음으로 다져진 땅을 발견한 기쁨에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바디캠을 쥔 손을 두근거리는 가슴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혹시, 피의자에게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셨습니까?”

“아뇨. 저흰 그냥, 조사할 게 있어서 왔다고만 했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이제부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전부 책임질 테니까.”




1




유독 창백했던 겨울의 달빛으로 얼룩진 기운이, 아직 채 씻겨 사라지지 않은 텅 빈 복도. 이 길고 허전한 장소에서 혼자 창밖 도시풍경을 내려다보며 캔 커피 한 모금. 근래 내가 맞이한 아침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오늘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라 더 서글픈.

갖고 싶지 않았던 지나친 여유. 잃기 싫었던 일상. 우수한 취급을 받으며 숨 돌릴 틈 없이 열심히 달려왔는데, 지금은 이 크나큰 국가안보국이란 이름의 소용돌이에 섞이지 못하고 혼자 튕겨 나온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내 몸뚱이. 미안하다, 내 팀원들아. 내가 더 잘했으면 이런 꼴이 안 됐을 텐데.

푸념은 늘어놓으면 끝이 없다. 캔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 불평하고 끝내야지. 캔이 비워진 만큼 그곳에 불만을 채우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오늘 하루 움직일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벽에 기대서 남은 한 모금을 처리하려 했는데, 누군가 벽을 똑똑 두드려 날 불렀다. 공허한 복도에서 선명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내 이목을 끌어당겼다.


“제희 씨.”


대나무가 그려진 배지를 한 낯익은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두꺼운 우편을 흔들어 보였다. 올 게 왔군. 난 긴장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하곤 느슨하게 풀어뒀던 넥타이를 조였다.

근데 남자는 내 이런 무뚝뚝한 반응에 무슨 착각을 한 건지 얼굴이 경직돼서 행동을 조심했다.


“이거, 아 지금 바쁘시면 책상에 놔둘까요?”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얼떨결에 그러라고 했다. 지금 당장은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편이기도 해서, 굳이 따지자면 되도록 늦게 받고 싶은 게 본심이었다.


대답을 들은 남자는 모퉁이 너머로 휙 사라졌다. 난 안 봐도 예상되는 우편 내용에 아랫입술을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갑갑한 마음에 커피를 마무리하려다 포기했다. 슬슬 사무실로 돌아가야지.

캔을 쓰레기통에 넣을 때 떠오른 가설인데, 그 남자 요원은 이 까만 캔을 핸드폰으로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거리가 은근 떨어져 있었으니까 내가 통화 중인 줄 알았을지도.


별 시답잖은 상상을 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복도를 걷고 또 걸어 무채색의 국화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유리문에 목에 걸고 있던 카드키를 가져다 대면, 불투명한 벽이 사라지고 사무실 전경이 드러났다. 참 세련되고 근사한 장소인데, 오늘은 차갑게 식은 시장처럼 보였다.

입구에서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오른쪽 구석에 보이는 게 내 자리. 근래에 계속 주어지는 일이 없어서 종이 대신 허브 종류의 식물만 쌓여가는 나의 공간. 지금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겨우 둘. 그래도 혼자가 아니란 걸 위안으로 삼으면서 자리에 주저앉으니, 마침내 대망의 우편이 눈에 밟혔다.


깔끔한 흰색. 보낸 이는 인사과. 언제 봐도 숨이 턱 막히는 세 글자다.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없는 나로선 더욱이 두려운 세 글자. 솔직히 본부장님도 인사과에서 우편이 오면 두려워하지 않을까.

또 잡생각. 실소가 새어 나온다. 나도 참 어지간히 읽기 싫었나 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인생 모토가 포기하지 않는 거지만 이젠 진짜 받아들여야지.


심호흡하고 연필꽂이에 있는 커터 칼로 우편 윗면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우편 안에는 내용물이 꽤 많았는데, 핵심만 요약하자면 내가 예상했던 대로 부서이동 조치에 관한 서류 뭉치였다.

언제 어디로 옮기게 되는지. 왜 이런 조치가 내려지게 된 건지. 반박 불가능하게 아주 친절하고 세심하게 이유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건강검진표가 문제였다.


적격이란 초록색 도장이 찍혀있던 자리를 부적격이란 빨간색 도장이 덮어버렸다. 역시 요원을 속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친한 동생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받아낸 적격 도장이었는데, 결국 3년 차가 되지 못하고 꼬리를 밟혀버렸다.

아니, 내가 잘했다면, 유능했다면 꼬리를 알아도 붙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요원이니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 착잡한 마음에 서류가 구겨버렸다.


계속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 갈 거 같아서 서류 뭉치를 억지로 우편 봉투 안에 쑤셔 넣었다. 이때 서류 뒤편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하나가 팔랑팔랑 의자 밑으로 떨어졌는데, 허리를 숙여 주워보니 익숙한 글씨체가 나에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불만 있으면 본부장실로 와.’


이거 참, 친히 기회를 주시는군. 이렇게 말하면 알현하러 안 갈 수가 없지.

어깨 앞으로 쏟아져 내려온 머리카락을 손목에 차고 있던 머리끈으로 묶어 뒤로 넘겼다. 따로 준비할 것도,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본부장님과 얼른 결판을 맺지 않으면 난 내년에 꼼짝없이 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본부장실은 바로 3층 위. 포스트잇만 주머니에 챙겨 넣고 승강기는 무시한 채 계단을 통해 단숨에 올라갔다. 근데 몸은 기세 좋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신은 다른 층과 다르게 융단이 깔린 복도의 무거운 공기와 분위기에 바로 압도당해 기가 죽어버렸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여긴 일반 요원이라면 평생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층. 귀빈실과 본부장실, 그리고 실장 이상급만 참여하는 회의가 이루어지는 층.

내 걸음은 꽤 느려졌지만 멈추진 않았다. 차근차근 어떤 말로 본부장님을 설득할지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명안은 없었다. 그저, 내 간절함을 보일 수 있다면 1점 정도 따낼 수 있겠지.


본부장실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아마 발소리로 내가 온 걸 알아챘을 테니, 늦게 들어갈수록 감점 요인. 난 최대한의 성의를 담아 노크를 했고, 문 안쪽에선 곧장 “들어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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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3. 1장. 3일. 13 21.08.14 8 0 10쪽
12 012. 1장. 3일. 12 21.08.14 6 0 10쪽
11 011. 1장. 3일. 11 21.08.13 7 0 10쪽
10 010. 1장. 3일. 10 21.08.13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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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08. 1장. 3일. 8 21.08.12 7 0 10쪽
7 007. 1장. 3일. 7 21.08.11 8 0 10쪽
6 006. 1장. 3일. 6 21.08.11 11 0 10쪽
5 005. 1장. 3일. 5 21.08.10 14 0 10쪽
» 004. 1장. 3일. 4 21.08.10 16 0 10쪽
3 003. 1장. 3일. 3 21.08.09 20 0 10쪽
2 002. 1장. 3일. 2 21.08.09 27 0 11쪽
1 001. 1장. 3일. 1 21.08.09 6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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