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캐치위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세투렌
작품등록일 :
2021.08.07 23:55
최근연재일 :
2021.08.16 23:5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73
추천수 :
2
글자수 :
75,449

작성
21.08.10 23:55
조회
13
추천
0
글자
10쪽

005. 1장. 3일. 5

DUMMY

묵직한 문을 열고 내가 보게 된 장소는 본부장님이 가진 지위나 위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요원의 본부장급이나 되는 사람이 근무하는 장소라 하면 보통 드높은 천장과 세련된 장식,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널찍한 사장실 같은 풍경을 상상하곤 하는데. 이곳은 그런 요소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추억에 잠길 것만 같은 푸근함이 있는 방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옛 학교의 교장실과 느낌이 비슷했다. 초록색 부직포가 유리 밑에 깔린 테이블 하며, 역대 본부장들의 사진이 걸린 액자들, 의미를 알 수 없는 두꺼운 책들과 상장까지.

만약 본부장님의 직급과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없었다면, 그는 책상 위에 발까지 올리고 신문을 읽고 있는 팔자 좋은 교장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문지 뒤에 가려져 있던 그의 기골을 마주하는 순간 이 모든 감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안경테에 살짝 가려져 있는 그 눈빛은 흡사 짐승의 것과도 비슷하여, 주변을 둘러볼 여력조차 주지 않았다. 왼쪽 눈썹부터 뺨을 타고 목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화상 자국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 그 위압감으로 주변 모든 사물을 한입에 집어삼키고 있었다.

일반 요원 사이엔 이런 소문이 있었다. 본부장님의 방을 찾는 방문자는 하루에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고. 심지어 직접 대면하는 게 무서워서 전화로만 대화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데 아주 대담하게도, 나는 지금 그런 본부장님과 결판을 내기 위해 그의 앞에 선 것이다.


본부장님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한숨과 함께 신문을 세 번 접어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내려놨다. 안경도 벗어서 그 위에 올려놨다. 그는 콧잔등을 문지르며 내가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열중쉬어 자세로 내가 자리를 잡았을 때, 본부장님은 책상에서 발을 내리고 물었다.


“무슨 일로 왔지?”

“불만이 있어서 왔습니다.”


청명한 음성으로 당돌하게 대답했다. 그제야 본부장님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봤다. 그의 뒤에 있는 찬장 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을 확인해보니, 약간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서 급히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네가 불만 가질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포악하다. 그 반면에 난 그저 장난기 많아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 참으로 상극이었다.

난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핥으며 주머니에 있는 포스트잇을 꺼내 본부장님 책상에 올려놨다.


“이거 때문에 왔습니다.”

“고작 이거로 여기에?”

“저한텐 고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본부장님이 친히 절 불러주신 거니까.”

“이건 내가 쓴 게 아니야.”

“이 글씨체는 본부장님 겁니다.”

“확신하나?”

“네, 본부장님 글씨체는 특이한 편이니까요.”

“특이한 편이라······. 눈썰미는 좋군.”

“이거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본부장님은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게 좋은 신호 같아서, 이를 기회 삼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 부서이동 건은.”

“상부의 명령에 불복종하겠다는 대답으로 들으면 되겠나?”

“아닙니다! 전, 기회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다가 부서를 이동 당하는 건 부당한 처사-”


본부장의 검지 손톱이 매섭게 책상을 내려쳤다. 이 냉정한 반응에 난 곧바로 말을 멈췄다.


“부당? 그건 내가 아니라 너를 가리키는 단어겠지. 부당한 속임수로 우릴 속이고 있었으니까.”

“악의는 없었습니다.”

“알아. 그래서 많이 봐준 결과가 사무팀으로 이동하는 거야. 원래라면 걸린 순간 퇴출이었어. 내가 신경을 좀 써 준 덕에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위액이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조심스레 본부장님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고, 속에서 응어리진 얘기를 꺼냈다.


“사무팀으로 가는 건, 저한테 퇴직과 다를 게 없어요.”

“월급이 줄어드는 게 아닌데도?”

“당연하죠.”

“너도 참 괴짜야. 똑같은 돈을 받는데 왜 사무직을 거부하는 거지? 훨씬 안전한 일인데.”

“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고 요원이 된 게 아니니까요.”


본부장님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안경을 닦으면서 담아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린 말이야. 특별한 재능이 있는 요원을 사지로 몰고 싶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그 재능으로 생기는 혜택을 얻고 싶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현장은 제 사지가 아닙니다.”

“앞으로 사지가 될 수도 있는 장소지.”

“저를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널 무시하진 않아. 하지만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너의 몸은 무시하고 있지.”

“여태 문제 없-”

“설마 내가, 네 몸 상태 때문에 작전이 몇 번 틀어진 걸 모를 줄 아나?”

“그래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했-”

“운이 좋았던 거다. 그리고 우린 운에 의지하는 요원에겐 절대 작전을 맡기지 않아.”

“그, 몸은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사이에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린 팀의 ‘눈’ 역할을 했던 너를 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잃고 싶지 않아. 만약 너 말마따나 금방 괜찮아지는 거라면, 완쾌할 때까지 간단한 사무 일만 보면서 쉬어라. 다 널 위해서 결정한 거니까.”


단 한순간도 밀리는 기색이 없는 본부장님. 실랑이는 그다지 길어지지 못하고 내 일방적인 패배로 끝맺음 되었다. 몹시 분했지만, 본부장님의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난 누구보다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계속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분을 삭이며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넥타이가 자리 잡은 가슴께를 쥐어짰다. 옷매무새가 헝클어지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어쩌지. 이대로 이 방을 나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건데, 그 외에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 본부장님이 그만 가보라고 눈치를 주고 있으니까 그냥 자리로 돌아가서 또 멍청히 앉아 하루를 낭비해야 하나.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이 바닥을 떠나야 하나.

아니다. 내 간절함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난 도시 밖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내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작전을 쓰자. 2차전은 내가 주도해보자. 본부장과 사원의 관계가 아닌, 스승과 제자로서 얘기를 나눠보자.

넘지 않기로 약속했던 선을 내가 막 넘으려 하자, 때마침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굉장히 급한 볼일인지 노크 소리는 쉴 틈 없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본부장님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떤 녀석이 이리도 무례하단 말인가. 아니, 녀석들이라고 해야 하나.


“들어와.”


내가 나서려 하자, 본부장님은 본인이 직접 조지겠단 표정으로 노크에 응답했다. 그러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쾅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고, 방에 쳐들어온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눈에 보일 정도로 일그러졌던 본부장님의 얼굴은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변했다.

본인을 만류하는 경비를 두 명이나 달고 온 녀석의 정체는 경찰이었다.


“경찰이 왜 여기 온 거지?”


경찰은 경비가 계속 밖으로 끌고 나가려고 해서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뭐 이대로 쫓겨나겠지 싶었는데, 본부장님은 팔을 잡아끌리면서도 자신을 계속 주시하는 경찰을 보고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손을 살짝 드는 거로 이 어수선한 공간을 정리해버렸다.

어렵사리 해방된 경찰은 자기 옷을 툭툭 성의 없게 털어주는 경비의 손을 시큰둥하게 지켜보다가, 경비고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꺼냈다. 문 바로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거로 보아 그 이상은 다가올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았다.


“지원을 요청하고자 왔습니다.”

“지원 요청? 그거라면 1층-”

“1층 안내데스크 옆 커다란 도자기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 그 복도 끝 접수실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당차고 빠른 말 속도에 본부장님의 눈빛이 험상궂게 돌변했다. 이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는 듯 경찰은 본인이 챙겨온 너저분한 서류 뭉치를 허벅지로 정돈하며 말을 이었다.


“많이 들어본 대답이라 잘 압니다. 또 그게 소용이 없단 것도 잘 알고 있죠.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몇 번이나 경험했는지 궁금해지는군.”

“12월 2일부터 오늘까지, 총 네 번입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아챘다. 마침 본부장님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신문도 그 연장선인 사건을 다루고 있었는데, 신문 기사는 이쪽에서 내린 결론대로 각자 독자적인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었지만 경찰들이 이에 순응하고 있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날 직접 찾아온 건가?” 본부장님이 다시 안경을 쓰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좀 무례하겠지만 용서해주십시오.”

“······무례고 용서고 다 필요 없으니까, 공인이면 공인답게 원칙과 규율을 지켜가며 행동해. 1층 접수실로 가서 손에든 그 서류를 얌전히 전달하고 떠나는 게 경찰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알아?”

“다른 날은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대답을 듣기 전까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3일밖에 없거든요.”

“있지도 않은 범인을 만들어 잡고 싶을 정도로 출세가 고픈가?”

“전혀 아닙니다. 출세가 아니라······. 공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원한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캐치위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017. 1장. 3일. 17 21.08.16 10 0 10쪽
16 016. 1장. 3일. 16 21.08.16 7 0 10쪽
15 015. 1장. 3일. 15 21.08.15 14 0 10쪽
14 014. 1장. 3일. 14 21.08.15 8 0 10쪽
13 013. 1장. 3일. 13 21.08.14 8 0 10쪽
12 012. 1장. 3일. 12 21.08.14 6 0 10쪽
11 011. 1장. 3일. 11 21.08.13 7 0 10쪽
10 010. 1장. 3일. 10 21.08.13 11 0 10쪽
9 009. 1장. 3일. 9 21.08.12 7 0 10쪽
8 008. 1장. 3일. 8 21.08.12 7 0 10쪽
7 007. 1장. 3일. 7 21.08.11 8 0 10쪽
6 006. 1장. 3일. 6 21.08.11 11 0 10쪽
» 005. 1장. 3일. 5 21.08.10 14 0 10쪽
4 004. 1장. 3일. 4 21.08.10 15 0 10쪽
3 003. 1장. 3일. 3 21.08.09 20 0 10쪽
2 002. 1장. 3일. 2 21.08.09 27 0 11쪽
1 001. 1장. 3일. 1 21.08.09 62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