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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로 음악 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주공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1:04
최근연재일 :
2023.06.04 01:09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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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55,590

작성
23.05.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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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버스킹으로 주작

DUMMY

“크어! 이게 인생이지!”


얼마만의 샤워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술마시는 것보다 샤워의 쾌감이 훨씬 좋은건 당연한건데. 노숙에 익숙해지니 이렇게 평범한 것들을 지킬 생각조차 안했다.


진동의 제안을 수용하며 DMZ기획사와의 계약이 성사됐다. 몇 가지 세부적인 조정이 있었다. 우선 진동은 직원이 아니라 이사이기 때문에 월급은 없다. 회사의 수익이 나면 배분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무작정 지분을 주는 게 아니라 성과에 비례해 지분의 공유비중을 확대해주기로 했다.


단 수익이 나기 전까지 진동이 거지임을 감안해서 숙소를 제공한다. 진동은 현재 이 숙소에서 샤워를 했던 거다. 숙소라고 해봐야 작은 원룸방이 전부지만.


그리고 또 하나. 구태연을 밴드의 로드매니져로 쓰기로 했다.


‘이거라도 어디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을 수건으로 대충 털고 나온다. 보일러 뜨끈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니 만사가 행복하다.


“한국의 레이더 니나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캬. 병x같지만 멋있어. 협상했던 그날의 일을 돌이켜보며 그때 했던 말을 따라하는 진동.


그때 하연은 고민하는 것처럼 팔짱을 꼈지만 진동은 알 수 있었다. 합격이라는 걸. 눈과 입가에 대만족의 미소가 지어졌으니까.


“왜 하필 레이더 니나에요? 하고많은 팝 가수 중에.”


“당신이 카디비처럼 성드립을 할 순 없잖아요.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전남편 팔 수도 없고.”


“풋!”


진짠데 웃네. 그 와중에 웃으니까 눈가가 선녀처럼 변한다.


“제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분이니, 대중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이겠죠. 믿어볼게요.”


[깨똑!]


달콤한 그날의 기억을 깨뜨린 범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했다. 천하연. 양반은 못되는 사람이군.


[사무실로 오세요. 회의할 겁니다.]


※ ※ ※


DMZ 사무실은 신생 기획사답게, 그리고 1인회사 답게 조촐했다. 교대역 근처의 이름 모를 빌딩의 2층. 한 개 층을 다 쓴다고 넓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개 층이 전부 해봐야 7명이나 들어갈까. 사장실이 따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회의실은 따로 없기에 사장실로 직행했다. 천하연과 천상수가 함께 있었다. 계약했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저절로 좋아지는 건 아니니, 상수의 표정은 아직도 띠껍다.


‘무섭다고. 저게 조폭이여 실장이여.’


차라리 구태연이라도 동행하고 있다면 조금 안심이 되겠지만 태연은 이쪽 일을 하기 전 정리할 게 있다며 휴가를 달라고 했다. 부럽다. 입사와 동시에 휴가를 쓰는 신입의 패기라니.


“자 이제는 제가 들을 차례가 된 것 같군요. 배이사님.”


이사님! 내가 살면서 언제 이런 소리를 들어보겠나. 그것도 천하연을 마주하면서. 하나님부처님... 아니 이타지 형님. 감사합니다.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은 당장 급한게 아니니까. 직면한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뭐든 좋아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죠?”


“예상하시겠지만. 디벨롭 영상을 찍어야 해요. 우리는 짤츠로 어그로를 끌겁니다. 우리의 성장과정을 담을거에요. 밴드의 멤버를 점점 늘려나가는 스토리를 짤츠로 완성시키고, 우리의 너튜브 홍보 공식계정으로 할거에요.”


“그럼 가장 먼저 찍을 디벨롭 영상의 내용은요?”


“유감스럽지만 바로 천하연씨가 나오진 않을 겁니다. 짤츠에서 아직 저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거든요. 밴드 창시자의 이야기가 끝나고서야 멤버들의 출연에 개연성을 가질 겁니다.”


“그럼 배이사님은 어떤 영상을 할거에요?”


“저번 영상에서는 나태와 자유를 표현했으니까 이제 화합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릴 거에요.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는 마을로 진출하는거죠.”


“좋네요.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거죠?”


“길거리에서 태어난 제가 화합할만한 건 딱 하나죠. 버스킹하는 공연팀에 낄 거에요.”


“난입해서 맘대로 도와줘 버린다?”


“그리고 미련없이 도망칠 겁니다. 음악계의 뱅크시가 되는거죠.”


“정말 사전 협의 하나도 없이 아무 곡에나 스며들 수 있어요?”


“제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제대로 모르시나보네요.”


재수없어.


“도대체 어느 정돈데요?”


“베이스로 하는 것 중에 불가능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자신감을 보여주는 건 좋은데 지금은 성과에 집중해야 할 때 아닌가요?”


“제 자랑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밴드의 성장을 위한 결정을 할 때 참고하라는 거에요.”


그건 진동이 한 말이 옳다. 멤버들의 능력치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어야 그에 따른 기획이나 오더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럼 그동안 우리가 준비해줄 게 있을까요?”


“장비가 필요해요. 앰프와 리드선. 그리고 그걸 신속하게 세팅해줄 인원.”


※ ※ ※


베이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벙거지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홍대 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크립토나잇 밴드가 처음 시작한 곳도 바로 여기다. 신생밴드라면 신고식처럼 거쳐가는 홍대 밴드들. 이곳에서 우정과 사랑, 배신과 질투가 피어난다.


‘미안하지만 헛되이 사라질거다. 그러니까 사라지기 전에 내가 너희들 좀 빌려쓰자.’


매년 천 개의 그룹이 생기지만, 살아남는건 단 한 개. 이럴 땐 ‘카지노 구경꾼’ 전략을 쓴다. 카지노 테이블에 앉아 직접 게임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테이블에서 한걸음 떨어져서는, 될만한 사람의 판에 베팅을 하는 거다.


‘어디 보자. 이중에 그나마 곡이 뛰어나고 머리 좀 써본 애들.’


주위를 둘러보면 안쓰럽게도, 웃기기도 하다. 다들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컨셉들을 잡고 나왔다. 힙스럽거나, 댄디하거나, 그루비한건 봐주겠는데 각설이 컨셉, 국악 컨셉, 게으른 컨셉, 신선 컨셉은 너무 갔다. 본인들이 지린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지리는 건 다르다.


그와중에 그의 발걸음을 이끄는 곳이 있다.


[비밀을 알아버렸어]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됐다. 힙합과 재즈가 묘하게 뒤섞인 오묘한 보이스. 단 한 소절만 불러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고 약하고 느린 드럼 소리가 연결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왜 손을 감~추니. 나는 이미 알고 있는데에헤. 가까~이 다가와줘. 제발 날. 선~택.해줘.]


기타와 베이스의 합주가 동시에 들어가자 노래는 탄력을 받고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나는 재빨리 건너편에 있는 구태연과 천상수에게 신호했다. 구태연은 카메라를 켜서 촬영을 시작했고 천상수는 앰프를 끌고와 세팅한다. 서둘러야 했다. 잠깐만 지체해도 기회는 날아가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손가락들. 내가 한 선택 후.회.는.없.어 Mi~das. oh my Mi~das.]


나는 뛰쳐나가 셋팅된 앰프에 베이스를 연결하고 반주에 자연스럽게 진입한다.


[둥.둥.두두둥.둥디~디두두둥]


“우오오오오오!”


구경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는 순식간에 호응해준다. 홍대에서 이런 이벤트. 오랜만이지?


버스킹 멤버들 이 관객들의 호응에 잠깐 얼타다가 나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들이 연주를 중단하거나 항의하는 것이 가장 우려하는 변수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둥둥탁. 둥둥탁. 챙챙 둥둥탁.]


드럼쪽은 오히려 나를 성대하게 환영해주는 것 같다. 보컬이 진입하려다 당황했지만 드럼이 리드해서 자연스럽게 한 템포를 끊어준다. 또 갑자기 난입해서 형성된 더블 베이스체제를 맞추기 위해 BPM을 끌어올렸다.


[황금을 숭배하겠어 왜 손을 감~추니. 나는 이미 각오 했는데에헤. 가까~이 날만져줘. 제발 날. 탐~닉.해줘.]


절대로 튀지 않게. 버스킹 공연을 중심으로 만들되, 내 베이스 실력을 최대한 뽐낼 수 있도록 어레인지 한다. 예전같으면 그런 순발력은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이타지형 대단하다. 듣기만 해도 곡이 저절로 변환되서 상상돼. 게다가 생각한 음을 그대로 연주할 수 있어.’


곡의 어그로 능력은 좋았지만 결국 아마추어 신생밴드일 뿐이다. 반드시 어설픈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배진동의 합세로 마치 프로처럼 질이 달라진다. 관객들 함성도 함께 따라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손가락들. 내가 한 선택 후.회.는.없.어 Mi~das. oh my Mi~das.]


사비 파트에서 잠깐 생기는 기타 근음의 불안정함을 베이스 6현 C스트링이 메꿔준다. 말은 쉽지만 그 순간도 베이스의 저음 진동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곡이 무사히 끝난다.


“앵콜! 앵콜! 앵콜!”


“숙.자.형! 숙.자.형!”


숙자형은 노숙자밈을 만든 배진동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홍대에서 버스킹을 즐길 정도의 관객들은 다들 알고 있었다.


붙잡히기 전에 쿨하게 베이스를 들고 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실패한 것 같다. 벌써 밴드 멤버들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난리가 났다.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숙자형님.”


“저희 밴드는 ~~~입니다.”


밝게 웃고 인사하고 격려해준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담아 듣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그들을 소비하러 온 거니까. 이름을 알아둔 밴드가 먼 훗날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면 마음만 더 아프다.


적당히 둘러대고 신속히 빠져나오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봤다. 아까 호응해줬던 드러머였다. 그곳에 있긴 아까운 실력이었지.


“오늘 형님을 만나다니 밴드 하길 잘한 것 같아요. 다음에 마주치면 술 한잔 사주세요!”


해맑게 웃는 모습에 기분이 묘해진다. 마케팅 일을 한 뒤로 감정같은 건 느낀 적이 없는데.


“이름이 뭐야?”


“이하입니다! 신이하.”


“핸드폰 줘봐. 번호 찍어줄게.”


※ ※ ※


집에 돌아오자 마자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무리 이타지의 재능을 가져도 역시 남의 곡에 끼어드는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평소에 연습했던 곡도 아니고.


태연 아저씨가 올려준 영상 반응을 확인해본다. 그런데 이게 뭐야?


“이제 한 시간지났는데... 조회수가 3만?”


-나 베이스 모르는데 오늘부터 배워볼까.

-마이다스가 숙자형이었네.

-주작임. 딱보면 모름? 어떻게 처음 보고 저렇게까지 호흡을 맞춤

-마춤x. 맞춤o.

-딱딱닦ㄸ다따ㄸ딱

-현직 베이시스트입니다. 주작은 아닐겁니다. 호흡 맞추는 밴드쪽에 실수가 잦은 거 보면 그냥 숙자형 실력이 미친겁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이 너무 많아서 읽다가 눈이 스르르 감긴다.


‘내일부턴 진짜 바빠지겠네.’


그대로 잠드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들린다. 천하연이다.


「오늘 같은 날 한잔 해야죠. 그냥 퇴근할 생각은 아니었죠?」


“어...어디신데요?”


「집 앞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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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버스킹으로 주작 23.05.14 33 1 11쪽
4 #4. 운명 천하연 2 23.05.13 35 1 11쪽
3 #3. 운명 천하연 23.05.12 39 1 11쪽
2 #2. 은인 구태연 23.05.11 44 1 11쪽
1 #1. 자와다 이타지 +1 23.05.10 8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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