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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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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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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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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사냥이야기 75 - 더러운 짓 3

DUMMY

중경으로 돌아온 철장패는 마수가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리면 몇 달 동안 자청해서 출동했다. 제국을 열 곳으로 나누어 각각의 사령부에서 관할했지만 조금 힘들다는 소리가 들리면 혼자 해결할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뭔가 집중하지 않으면 한없이 우울해졌다.


남방사령부가 관할하는 남부지역 목동백장령에 왔다. 계절 상으로 한겨울임에도 풀이 무성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 땅이 남부 목동백작령이었다. 이웃 영지인 천마후작령과 백양공작령까지 목축이 직업이자 생활이었다. 목동백작령은 수많은 소몰이꾼이, 천마후작령은 말을 몰고 다니는 말몰이꾼이 주로 살았다. 백양공작령은 초원을 하얗게 뒤덮은 양들을 방목하며 유랑민처럼 생활했다. 어린 새끼를 데리고 남부지역에서 출발해 잠령지역의 남경까지 도착하면 소는 다 자라서 포동포동하게 살이 쪄 팔릴 무렵이었다. 말은 서방사령부 관할에 속하는 남서부 을지세가로 향했다. 몰이꾼은 쉬운 직업이 아니었다. 성 안에서 말과 소를 키우는 게 아니라 성 밖에서 키웠다. 몬스터가 끝도 없이 가축을 노렸다. 몬스터의 위협을 물리치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짭짤한 수입이 기다렸다. 이 근처에 마수 세 마리가 어슬렁거려 잡아달라는 소식을 접했다.


드넓은 초원을 거니는 철장패는 마수가 있음직한 곳을 살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겠지만 정말 막막했었다. 그때처럼 머리를 후려갈기는 충격이 가해진다면 웃으면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몇 번 가신들에게 자문을 구한 탓에 여자와의 사랑에서 서투르다는 잔소리를 종종 들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보았을지 몰라도 사랑은 너무 경험이 없었다. 기사학교를 다닐 때에도 여자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다. 학비를 내느라 정신없이 벌어야 했다. 여자친구가 없다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몇몇 부유한 자제와 귀족 자제들의 문란한 삶을 곁에서 자세히 본 탓에 싫증 났었다. 지금도 귀족 연회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이다. 사람이 아니라 귀족이라는 상품으로 팔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귀족 영애와 자제들이 유명한 살롱에 참가하기를 꿈을 꾸듯 소원하는 모습에 자신은 이방인처럼 느껴졌었다. 거짓으로 웃으며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이 인간일까 상품일까 스스로 되묻게 되어 몇 번 참여하고는 발길을 끊었다.


``전하, 작전참모님의 연락입니다."


총사령부에 소속된 통신마법사 한소몽 참로였다. 참로는 정령의 위이고 부로의 아래인 직책이었다. 참로부터 원로까지 한데 묶어 장로라고 부르기도 했다. 통신구를 통해 조맹서의 얼굴이 보였다. 인사하는 얼굴 낯이 딱딱했다.


``샤미르왕국이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왕국의 수도까지 휘청일 상황입니다. 쿠타망가왕국에서도 마계이단자들의 고의적인 소환이 대규모로 이어져 대공령과 인접한 바디르 부족이 완파당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철장패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씁쓰름하고 달콤한 추억이 스치다 사라졌다. 끝내 어물거리며 결단을 내렸다.


``보내."


무슨 뜻인지 뻔히 알면서 조맹서가 발뺌하는 게 보였다. 일부러 눈썹이 올라가며 모른 척했다. 그리고 통신구에 느물거리는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무슨 말씀입니까? 정확하게 명령을 주십시오."


밉살스러운 조맹서를 노려보다가 또박또박 으르릉거렸다.


``타.격.대를 보내라고 했다!"


``암, 사랑하는 여인을 내버려두면 안 되죠! 샤미르왕국에 보내겠습니다. 어느 분의 명령인데 거부하겠습니까. 쿠타망가왕국에도 보낼까요?"


어딘가 모르게 비꼬는 말투였다. 확실하게 알면서 되묻는 심보가 분명했다.


``드워프가 어떻게 되든 알게 뭐야! 병력 파견은 6개월 뒤이다. 그것도 군사도로가 준공되지 않았다면 갈 필요가 없다."


``역시,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올바른 판단이십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주군의 생각과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며 근래에 자주 타박했다. 말은 비꼬고 있었지만 조맹서의 도움으로 펠리시아의 위기를 몇 번 넘겼었다. 시녀 리라와 짜고 펠리시아를 암암리에 보호하고 있었다.


``쿠타망가왕국은 지리적으로도 중요하고 자체적인 기술력으로도 중요한 나라입니다. 드워프처럼 손재주가 뛰어난 종족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내버려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두 가지 대책을 세웠습니다. 제국의 입장으로는 실행하기 어렵고 대공의 이름으로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결과가 변화막측합니다만 관철시켜도 되겠습니까?"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계획의 목적만 말하는 조맹서였다. 때로 세세하고 정확한 계획을 세워도 예측 불가능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목적만을 정확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서를 작성해서 내놓으라는 말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긴박하고 변화가 심할 때였다. 예상하지 못한 적과 마주친 야전사령관의 대응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바뀌는 경우였다. 그 상황에서 계획서를 내놓고 행동하라는 건 그야말로 적의 칼은 목전에 있는데 계획서를 쓰는 행위 자체로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차선책으로 전투 규범과 같은 절차가 있었지만 명장이나 그에 준하는 책사에게는 그것도 발목을 잡기는 마찬가지였다.


조맹서의 기상이 엄숙한 것으로 보아 가볍지 않은 모의를 꿈꾸고 있었다. 눈동자 속에 책사로서의 열망이 숨겨져 있었다.


``알겠다! 허락한다."


때로 수많은 미사여구와 장담하는 확답보다, 침묵하며 드러내는 그 사람의 기상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명,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명, 뭔가 크게 터트린다는 느낌이었다. 관공서에 근무한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가신과 영주는 의기투합하는 것만으로도 종종 일을 추진했다. 의기투합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의 질문이나 의문을 드러내지 않았다. 굳이, 의기투합했다고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영주의 판단력과 가신의 추진력이 뭉쳐 돌아가는 일상사였다.


긴장했던 조맹서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리고 철장패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말이 나왔다.


``통신을 마치기 전에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 여왕께서 몸이 아프시다고 합니다."


``많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신전에서 나온 사제가 여왕님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치료술사의 손에서 쉽게 낫지 않는 경우에 신성사제를 초빙했다. 몸을 신성력으로 치유한다는 건 난감한 병이거나 일반적인 병이 아닐 때 불렀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대로 죽기라도 한다면 미칠지도 몰랐다. 철장패는 더 이상은 머뭇거릴 수 없었다.


``광목산에 와이번을 준비시켜라. 당장, 가야겠다!"


마수 세 마리를 잡는 건 호위대에게 맡겼다. 하늘로 날린 서프보드를 타고 가까운 목동백작령으로 부리나케 날았다. 남부지역 워프마법진을 타고 중경에 왔다. 다음 워프마법진을 이용하기 위해 24시간을 기다리는 게 지옥의 불길 속에 있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자 철방사령부가 관할하는 쿠타하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와이번의 등에 올라타고 샤미르왕국으로 향했다. 6개월 동안 가슴을 조이며 살았었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고, 즐겁게 친구들이 웃어도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이제서야 펠리시아에게 가고 있었다.


샤미르왕국으로 날아가는 지금 후회가 되었다. 진작에 만날 걸 이제야 움직이는 자신이 미워졌다. 사랑이 서투르다며 타박하는 가신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그러면서 볼 수 있다는 두근거림이 차디찬 심장을 울렸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가야한다는 게 답답하면서 겁이 났다.


``그동안 주군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했습니다. 주군의 얼굴이 이제야 사람같이 보입니다."


콜트썬더 백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내 떠오르는 과거에, 지난 6개월이 나무토막처럼 삭막했다는 걸 인정했다.


``사랑처럼 남녀의 가슴을 울리는 건 없을 겁니다.... 사랑이란, 두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협주곡과 같습니다. 어느 한쪽이 너무 앞서가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납니다. 너무 자신만의 소리를 고집해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은 두 개의 악기로 서로 대화하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는 겁니다. 상대가 연주하는 동안에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더불어 호응해서 박자를 맞추어야 듣기 좋은 소리가 나옵니다. 너무 자신만의 주장으로 홀로 연주하면 두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협주곡은 깨어집니다."


길게 자란 콧수염을 매만지며 콜트썬더 백작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짧고 동그란 곰방대를 꺼내 연초를 재였다.


``여왕께서 주군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옆에서 보는 저의 눈에 확실히 보입니다. 돌발적인 실수를 하셨지만 주군께서 너무 크게 반응하셨습니다. 소리를 엄청 크게 낸 셈이죠. 그리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습니다. 자신만의 악기에 심취해 여왕의 연주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감정이 격앙되면 되는 대로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래도 여왕께서 악기로 연주하지 않으신다면 그때 조용히 물러나도 늦지 않습니다."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웠다. 남은 한 손으로는 하늘을 나는 와이번의 등을 어루만졌다.


``주군과 여왕은 좋은 단짝입니다. 보는 시선을 즐겁게 합니다. 그만큼 서로의 감정을 깊숙한 곳까지 본능적으로 느끼시고 계십니다. 악기로 치면 명품이 될 재목입니다. 명품을 탄생시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돈 주면 살 수 있는 사랑처럼 가볍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소리가 나오기까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인의 혼과 정성이 한순간이라도 실수하면 악기는 평범해집니다. 연주를 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서 한 번의 삑 소리가 났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명품으로 탄생하기 전까지 여왕께 너무 많은 걸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왕도 사람이라 실수를 하십니다. 주군께서도 사람이었기에 실수를 하셨지요. 실수를 자주 반복하면 협주곡은 깨어집니다. 상대의 소리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너무 높은 소리로 자신만의 연주를 하지 마십시오. 감정이 격앙되어 자신의 연주를 높게 하시더라도 간간이 틈을 여서야 합니다. 그 사이로 합주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항상 귀는 열어 합주하는 대목을 잡으십시오. 여왕께서 연주하도록 몇 번 정도는 유도해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면 어쩔 수 없죠.... 주제넘지만 사랑에서는 제가 선배라 말을 꺼냈습니다."


철장패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펠리시아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의심과 좌절감에서 반쯤은 허덕였다. 불안하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었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 얽히고설키는 세상이었다. 천생연분을 만나더라도 사랑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마법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는 건 자신이었다. 그리고 펠리시아였다. 사랑은 이미 주어진 운명이 아니었다. 완제품으로 나온 케익과 같은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인생이란, 원하면 나오는 완제품 케익이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재료를 맛있는 완제품 케익으로 만들어, 남과 여가 사이 좋게 나누어 먹는 세상이었다.


``고맙다. 말이 없었다면 죽기 전까지... 내 여자만큼은 무의식 속에서 완성된 천사라는 얼토당토않는 환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내 여자의 실체를 보았다. 덤벙거리면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숙녀였다. 어리석은 남자로 죽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고마움을 담아 철장패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너무 과한 인사에 콜트썬더 백작은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말렸다.


``인사는 되었습니다. 아셨다면 잘살아 주십시오. 주군께서 살벌하게 얼굴을 찌푸려 요새 죽을 맛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샤미르왕국의 수도를 응시했다. 그곳에 펠리시아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같은 상황에 같은 말을 듣게 되면 찢어지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천사가 아직 아니었다. 위대한 명곡을 완주하는 명인처럼 매순간을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했다. 그녀의 실체는 덤벙거리며 완벽한 천사를 뒤쫓는 숙녀였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싸늘하게 반쯤 얼음 속에 갇혔던 가슴이 다시 뜨거워졌다. 사랑의 향기를 맡자 쿵쿵 심장이 뛰었다.


왕국의 수도 홀리아에 도착한 건 늦은 저녁이었다. 궁전으로 들어가 시종의 안내를 받았다. 막상, 도착하자 겁이 났다. 그녀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녀가 문만 열면 있었다. 문을 지키는 근위기사의 근심에 싸인 얼굴을 보자 억장이 무너졌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뛰어서 올 것 같은데 현실은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시녀가 여는 문 사이로 들어섰다. 잠에 취했는데도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시녀 세라가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철장패를 본 시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위.험.한 상태인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렸다.


``위기를 넘겼다고 사제님이 말했지만 아직도 열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어야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가만히 손을 올려 펠리시아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자신으로 인해 아픈 것처럼 느껴져 슬퍼졌다. 이제야 제대로 얼굴을 볼 자신이 생겼는데, 사랑하는 그녀는 병으로 허덕였다. 이제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할 수 있는데 대답이 없었다.


괴로움이 점점 가슴을 메우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감촉이 자극했다. 철장패의 시선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펠리시아의 손이 꼭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괜히 눈물이 눈동자에 맺혔다. 바보같이 이런 그녀를 내버려두었다고 생각하니 남자답지 못한 자신이 싫어졌다.


``펠.리.시.아... 나 왔어."


펠리시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흐르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늦게 와서... 미안."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뽀르르 작은 정령이 데굴데굴 굴러 다가왔다. 도깨비불 새끼였다. 펠리시아에게 맡겼던 정령이 주인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펠리시아를 잘 돌봐야 한다."


주근깨를 드러낸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가늘고 긴 눈썹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를 이제서야 보다니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추운 겨울 날씨에 감기라도 들까봐 제친 이불을 다시 올렸다. 가만히 그녀의 곁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밖은 아침이었다. 날씨가 추워 벽난로에 나무 몇 개를 집어넣었다. 커튼을 열자 유리창에 성에가 꼈다. 조심스레 그녀의 얼굴을 만지자 다행히 불처럼 뜨거웠던 열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다. 힘없이 몸을 일으키다가 철장패를 보자 눈물부터 글썽였다. 그리고 나온 말에 철장패의 발걸음을 멈추어 세웠다.


``나쁜 새끼야... 왜 왔어."


철장패는 말없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었다.


``가지 마~~ 나쁜 놈아!"


그녀에게서 비명이 터지자 담담한 얼굴로 철장패는 뒤돌아섰다.


``벽난로에 나무가 부족해서 갔다 오려고 했지."


``됐어. 그건 안 해도 돼. 이리 와서 앉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펠리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철장패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야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걸 느꼈다.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가만히 안았다. 땀으로 범벅인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며 푸른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미안해...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내가 미쳤었나봐."


``큭, 너는 너무 듬직해서 탈이야."


펠리시아의 입을 더 이상 열지 못하게 입으로 막았다. 그녀의 입술과 달콤한 혀가 느껴졌다. 체온과 체온이 닿았다. 서로를 탐하며 길고 진한 키스가 끝나자 한동안 포옹한 채 묵묵히 침묵했다.


``우리 너무 바보같지 않아...요. 그때는 네가 너무 무서웠어. 잘못 말이 튀어나왔다고 말할 수 없었어. 다른 사람처럼 보였어. 내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으로 힘들었는 줄 알아...요."


여왕으로서 하대만 하다가 국왕에 준하는 대공에게 말하려 하자 말이 어색했다. 그렇다고 친구처럼 느껴지는 남자에게 말을 올리는 것도 난처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귀여웠다. 그녀에게서 신선한 향기가 났다. 숲에 온 것처럼 숨을 쉴 수 있는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다른 여자와 함께 있으면 숨이 콱콱 막혔다. 몸에서 생명의 리듬(rhythm)이 흐르지 않았다.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그 향기가 새삼스럽게 소중했다.


``그때는 내가 미쳤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어."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쓰리고 쓰린 아픔이 진하게 흘렀다. 펠리시아는 그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6개월 가까이 되는 데도 그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다가왔다. 광기와 분노가 몸 구석구석에서 흘러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게 아픔으로 인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자 미안해졌다. 손을 천천히 뻗어 남자의 얼굴을 매만졌다.


``몰랐어... 진짜 그렇게 아파할 줄 몰랐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모든 걸 잃어도 사랑하는 사람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있어 행복했다. 혼자만의 세상이라면 너무 막막하고 외로웠다.


아직, 몸이 불편한 펠리시아를 침대에 눕혔다.


``건강부터 챙겨야겠다. 침대가 답답하더라도 나을 때까지 참아... 도망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피이, 도망가더라도 걱정하지 않아, 쫓아갈 거야!"


이틀 동안 조심하자 걸을 정도로 체력을 회복했다. 아직 열이 남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전에는 여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늦은 오후에는 둘이 함께 했다. 종종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그동안 철장패는 마법통신으로 보고를 받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었지만 철장패는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호흡하며 낄낄거린다는 자체로 좋았다. 그 행복을 하늘이 시샘하는가 보았다. 마수로 인한 피난민이 마지막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임에도 쿠타하타관문을 넘어 물밀듯이 들어온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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