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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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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연재수 :
296 회
조회수 :
2,95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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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66,673

작성
10.02.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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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사냥이야기 72 - 바로 지금 4

DUMMY

일주일 동안 기사들은 광란에 휩싸였다가 갇히고 다시 수련하기 위해 개인숙소와 연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공기 중에 있을 때는 달걀처럼 컸는데 몸으로 들어오자 깨알만 한 크기로 변한 지옥겁화력을 갖고 씨름했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는 과정에서 별별 사건이 터졌다. 인원이 많은 탓에 터지는 사건도 가지각색이었다.


하루 종일 물구나무 서서 죽겠다며 소리치는 기사부터 연무실 한편에서 방방 뛰며 멈추질 않는 기사는 애교였다. 너무 위험한 행동에 개인연무실에 가둔 숫자가 오십 명이나 되었다. 연무실 안에서 마구 발광하며 부수는 소리가 밖에서 쌩쌩하게 들렸다. 이런 짓까지 예상했지만 자살하려는 기사는 대처하기가 무척 난감했다. 상처를 입어 치료술사가 나섰다. 방법이 없었다. 팔과 다리를 묶고 발광하도록 유도했다. 병사 하나는 꼭 옆에 붙여 놓고 감시하도록 명령했다.


부하들이 바쁘다고 철장패마저 부지런히 뛰어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게을러서 탈이었다. 그런 총사령관의 모습마저 존경하는 시선은 늘어갔다. 중요한 시점에서는 누구보다 나서서 챙기는 걸 알기에 취하는 행동일지 몰랐다. 어떤 지휘관은 철장패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내심 반겼다. 아직은 큰 사건이 터지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다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대처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기라도 철장패에게서 이상한 행동이 관측되면 바짝 긴장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작전사령실을 책임진 조맹서였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집무실을 두드렸다.


``뭐라고? 펠리시아가 직접 연합성채로 달려가다니? 위급하다는 건 알겠는데 나머지는 모르겠어. 자세하게 설명해봐."


조맹서는 달려오느라 숨이 가빴던 호흡을 진정시켰다.


``샤미르의 중요성이 주군 덕택에 높아진 탓에 통신 연락이 가능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통신이 가능한 게 어제였는데 마법통신이 되자마자 여왕을 모시는 리라 시녀가 엽마군 총사령관의 가신이라고 하니깐 여왕님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울며 불며 고함부터 치더군요. 하도 횡설수설해서 다른 분에게 내용을 들었습니다."


리라는 펠리시아가 데리고 다녔던 시녀였다. 조맹서의 입에서 삼국(三國)이 힘을 합쳐 세운 연합성채가 산산조각나는 과정이 차근차근 나왔다. 어제까지 성채가 견뎠는데 조금 전에 산산조각으로 갈라져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소식에 달려와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이었다.


내용을 들은 철장패는 벌떡 일어났다.


``펠리시아가 성채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틀 정도입니다. 와이번을 타고 쿠타하타에서 연합성채까지 가는데 이틀하고 반나절이 예상됩니다. 물론, 길잡이가 제대로 갈 경우입니다."


옷걸이에서 망토를 챙겨 흉갑에 걸었다. 은청색 삼각모자마저 쓰고 보폭을 빠르게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갔다 올 테니, 집이나 잘 보고 있어!"


조노야를 부른 다음 본관 뒤에 위치한 별채에 들러 호위대와 타격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마굿간에서 항시 대기하는 나팔수 한 명을 대동하고 마탑까지 줄달음쳤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도로에 나오자 나팔수의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부리나케 피하는 백성들을 뚫고 마탑에 도착해 워프마법진을 탔다. 뒤에 남은 나팔수가 말을 챙기고 돌아가는 사이, 철장패는 쿠타하타에 도착했다.


이미 소식을 받은 와이번나이트가 광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마흔세 명이 올라탄 순간, 와이번은 허공을 솟구쳤다. 긴 날개를 펼치며 파충류의 시끄러운 소리를 귀가 아프게 발했다. 특수하게 제작된 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뜨거운 태양에 하늘을 날기 싫어 꾸물거릴 시간이었다. 날씨가 뜨거워 목이 마른 모양이었다. 긴 목을 돌려 물 달라며 칭얼거렸다. 와이번나이트는 비치된 물통을 꺼내 와이번에게 물을 먹였다.


``주군께서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습니다. 다행히 육십오 명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명령에 따라 날겠지만 샤미르왕국의 지리를 몰라 걱정입니다."


콜트썬더 백작이 직접 와이번을 어루만지며 걱정했다.


조노야를 앞 자리에 앉히고 와이번의 등에 누운 철장패는 쓰고 있는 삼각모자를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콜트썬더에게 내밀었다.


``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날아가면 된다."


빠르게 광목산의 정상까지 날아간 와이번이 산의 경사면에서 치솟는 상승기류에 몸을 실었다. 거대한 와이번의 동체가 우아하게 허공으로 솟구쳤다. 대장 와이번의 뒤를 쫓아 마흔한 마리가 같은 속도로 뒤를 쫓았다. 상승기류에서 벗어나 높은 상공에서 샤미르왕국으로 활공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콜트썬더는 주군의 뜻을 몰라 삼각모자만 들고 어리둥절했다.


``모자를 앞에 놓아봐. 그럼 정령 두 마리가 나타나서 열심히 방향을 가리킬 거야. 나는 잘 테니 문제가 생기면 깨워."


콜트썬더는 믿기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은청색 삼각모자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계란처럼 생긴 주먹만 한 까맣고 파란 정령이 뽀르르 허공에서 기어나왔다. 물방울처럼 구르는 파란 정령이 방향을 가리키면 까만 정령이 모자를 잡고 방향을 돌렸다. 도깨비불과 겁화령이었다. 둘이서 아기자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라고 떠들며 열심히 와이번 위에서 통통 튀었다.


잠시 눈을 뜬 철장패는 도깨비불을 보았다. 정령 이야기를 나누다가 펠리시아에게 도깨비불 새끼를 보였었다. 정령사인 펠리시아는 처음으로 보는 정령을 손에 쥐더니 좋아서 팔짝팔짝 뛰다가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달라며 생떼를 쓰기에 어쩔 수 없이 맡겼었다. 도깨비불 새끼라도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본체가 죽으면 도깨비불 새끼는 사라졌다. 언제라도 본체 도깨비불이 원한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속되어 사라졌다.


신기한 현상에 콜트썬더는 콧수염을 매만졌다. 삼각모자가 방향을 틀면 와이번이 날아가는 곳을 바꾸었다. 신기한 것도 반나절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자 시시해졌다. 그것보다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눈이 자꾸 감겼다. 잘려고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까만정령이 다가와 깨웠다. 그리고 모자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통통 튀었다. 체구는 엄청 작은 데 인간보다 체력이 좋았다.


``그만 자도록 해라. 내가 조정하겠다."


콜트썬더를 위한답시고 나선 철장패였다.


``그것보다 잠시 쉬었으면 합니다. 쫓아오는 기사들도 피곤해서 정신이 가물가물할 겁니다. 아는 곳이라면 와이번이 스스로 날아가겠지만 낯선 지리라서 위험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무조건 빠르게 달리는 건 때로 위험했다. 펠리시아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이 성급했었다. 잘못된 점은 고쳐야 했다.


``알겠다. 세 시간을 휴식하자. 그 정도면 괜찮겠지?"


``넵, 가능합니다! 다섯 시간이면 더욱 좋겠지만 세 시간만 주어져도 남은 하루 정도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콜트썬더 백작은 공중으로 솟구치며 8자비행을 선보였다. 뒤를 따르는 와이번나이트들이 환호하며 휴식처로 내정한 초원 위에 안착했다.


``지금 어디로 갑니까?"


타격대의 무관기사단에 속한 송충이 수염의 양국벌이었다. 무관기사단에 오른 기사들은 대체로 천랑부에서 차출했다. 대부분의 기사단은 소속이 뚜렷하거나 함부로 굴리기 어려운 무사들이었다. 타격대에 소속된 기사와 무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과감하게 뛰어드는 용장을 위주로 선별하고 있었다.


``삼국 연합성채에 가고 있다. 삼국연합성채는 엘프연합, 무오왕국, 샤미르왕국이 힘을 합쳐 드래곤군단을 막기 위해 만든 성이다. 그곳이 지금 붕괴되었다. 마수 열두 마리가 횡패를 부리기에 잡으러 가는 중이다."


``대단한 일이라도 터진 줄 알았습니다. 마족이 떼로 나타났나 싶어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듣고 나니 안심이 됩니다. 아직은 지옥겁화력을 소화하지도 못했습니다. 하하하!"


시원하게 웃으며 편안하게 휴식하는 타격대였다. 갑자기 출동이다라는 고함이 터지면서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출발한 상황이었다. 겁부터 났지만 내용을 듣고 나니 후련했다. 타격대에 있는 열아홉 명은 모두 지옥겁화력을 받았다. 호위대는 특별히 참여해 받았었다. 별장에 있는 호위 세 명까지 데리고 와 한편에 세웠었다.


``대공 전하를 따르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통신마법사로서 따라온 조노야가 뜬금없이 말했다. 마법통신이 되려면 샤미르왕국의 수도에 가야 제국과 통신이 가능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동행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조노야의 얼굴만 보았다. 의문어린 시선에 조노야는 하얀 수염을 매만졌다.


``평생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한 광경을 근래에 자주 경험합니다. 그것도 대공 전하를 따르면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광경이 나올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조노야의 실없는 소리에 철장패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쩌다가 생긴 일입니다."


와이번은 휴식을 마치자 다시 부지런히 날갯짓했다. 처음부터 고공비행은 어려워 초원 가깝게 배를 깔고 날았다. 속도에 탄력이 붙자 점점 상공으로 솟구쳤다. 조노야는 가슴이 설렜다. 이번에는 어떤 여행이 될지 몸이 달아올랐다. 마수를 쫓아다니는 경험은 생경하면서 벅찬 광경이었다. 그것도 마령산맥과 가까운 동백군에서 만난 몬스터와 마수의 위력적인 공격은 아직까지도 악몽처럼 떠올랐다. 온 평야에 들어찬 몬스터들이 마수의 울부짖음에 맞추어 공격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었다. 요새 연구하는 분야는 마수 포섭이었다. 마수를 잡으면 소환수로서 어떻게 사육할까 고민했다. 너무 많이 먹는 통에 먹이 문제도 난감했고, 명령을 어떤 식으로 내려야 따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흑마법사처럼 정신금제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백마법은 정신금제가 약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졌던 조노야는 푸르른 하늘과 구름 사이로 지나가며 대공을 따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다니 부유마법이나 플라이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두 마법은 근거리 이동이나 낮은 고도에서 쓰였다. 지금처럼 하늘을 마음껏 날지도 못했고,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지도 못했다. 마법으로 지금의 높이까지 올라와 속도를 낸다면 마력은 금방 사라져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겁화령은 열심히 삼각모자를 들고 방향을 틀었다. 너무 빨리 틀면 피곤하다며 십 분 간격으로 방향을 가리키라고 철장패의 의념이 도착한 후의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와이번나이트의 체력이 걱정되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피곤해서 눈이 자꾸 감기고 있었다. 한낮에 소나기까지 내려 몸이 젖은 후로는 피로감이 더욱 커졌다. 지금은 산 가까이 근접해 기류를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산이나 계곡을 벗어나 갑자기 역풍이라도 불면 와이번나이트의 눈부신 조정력이 필요해졌다.


``멋쟁이... 거의 다 왔다. 이 속도라면 십 분 뒤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애칭으로 부르는 주군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콜트썬더는 피곤한 몸을 뒤로 하고 와이번이 고개를 들어 소리치게 만들었다. 뒤를 따르는 와이번이 잇달아 고개를 들고 합창했다.


와이번의 합창은 붉은 노을이 지는 태양을 배경으로 산야를 타고 흘렀다. 그렇지만 연합성채는 소리가 닿기에는 너무 멀었다. 와이번의 날개가 힘차게 연합성채를 날아갔다. 그곳에 펠리시아가 있었다.


어깨에 머문 도깨비불 새끼의 반가움이 넘치는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펠리시아는 잠깐 어리둥절한 기색을 드러냈다. 피곤에 찌든 채 근위대장과 라키시 사령관이 애걸복걸했다. 여왕님은 피신하라는 청원을 쉬지 않고 했지만 듣지도 않았다.


``죽어도 사수해야 한다. 성벽이 뚫리면 끝이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마수를 저지할 곳이 없다. 라키시에서 죽어도 사수하라!"


교대한 후 쉬고 있었지만 후퇴하자는 말을 꺼내는 세 대영주를 독려하기 바빴다. 단호한 태도로 후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막아야 할 성벽은 쥬다와 가트도 있었지만 라키시의 성벽이 가장 위태로웠다. 라키시의 성벽이 무너지면 샤미르의 수도 홀리아까지 이렇다 할 방어선이 없었다. 다음 대영지인 마치가 지난 번의 마수 난동으로 무너진 탓이었다. 누가 악의를 품었는지 몰라도 고의적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사령관실로 피범벅의 전령이 들어왔다.


``전하! 조나스 후작과 소울 후작이 방어하는 지역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지원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커 백작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합니다."


``주커 백작은 근위대장의 병력을 대신해 막고 있는데 어쩌란 말이냐. 내가 직접 가겠다. 준비하라!"


펠리시아는 첫 실전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겁이 나서 미칠 것 같았지만 뒤로 물러서면 라키시 성벽을 강타하는 다섯 마리의 마수는 샤미르를 침범했다. 두 마리를 막는 것만 해도 벅차서 어머니가 다쳤었는데 다섯 마리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물러서는 순간 죽음이었다. 패제국에서는 혼자 마수를 잡고 있었다. 너무 믿기지 않는 통신 연락에 직접 확인하러 갔었다. 그리고 패제국이 부러워졌다. 비슷한 능력의 강인한 기사들이 곳곳에 숨어 산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었다. 갑자기 그리운 사람이 떠올랐지만 1년 뒤에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기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빠르게 눈물을 훔치고 얼굴에 묻은 눈물 자국을 없앴다. 고고하게 고개를 쳐들고 잘못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죽을 결심을 굳혔다. 보고 싶은 그를 생각할수록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걷는 발걸음을 당당하게 걸으며 소환한 마갑기에 올라탔다. 그 뒤를 여왕의 안전을 책임진 홀리아기사단이 쫓았다.


전선으로 나오자 홀리아기사단이 여왕의 앞으로 반 정도 나섰다. 오우거, 타이거맨, 사이클롭스, 나가, 드래곤뉴트 다섯 종족이 마수와 함께 성벽을 넘으려고 했다. 하필이면 드래곤산맥에서 나와서 마수의 위협이 더욱 커졌다. 마수만 상대하는 것도 벅찬 데 부하까지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드래곤군단 다섯 무리를 상대하는 게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삼두인룡'의 공격은 무서울 정도였다. 다른 마수와 비교가 어려웠다. 그 부하인 드래곤뉴트 종족마저 벽을 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성벽을 향해 삼두인룡이 공격했다. `삼두룡'으로 불리는 히드라와 나가족이 결합되어 모습마저 무서웠다. 굉렬한 소리와 함께 벽을 파괴하며 꿈틀거리는 꼬리, 유난히 긴 목의 히드라 두 마리가 성벽을 향해 독가스를 뿜는 숨 막히는 순간, 서서히 녹는 성벽을 밟고 사람처럼 고함치는 나가족의 얼굴, 삼두인룡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웠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여왕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근래에 들어 자주 마수가 나오는 것도 이상했지만 정령의 힘도 강해졌다. 그래서 힘들지 않게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었다.


``물을 지배하는 그대의 이름은 사모아퀴리누스, 약속에 따라 그대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계약자로서 희망합니다."


마수의 강한 힘에 터지는 나무토막에도 맨몸으로 정령을 소환하거나 부리는 순간 목숨이 위험했다. 마갑기는 정령의 소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력한 공격을 어느 정도 방어했다.


과거와 달리 빠르게 소환마법진이 허공에 새겨지자 거대한 문이 생겼다. 그곳에서 물로 이루어진 거인이 나타났다.


``발크의 후손이여... 정령왕의 한 명으로서 그대의 소환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눈앞에 보이는 마수의 죽음입니다. 대가는 그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마수에게서 받으세요."


최상급 이상의 정령부터는 소환자의 정령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대가를 요구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대체로 강한 힘이 담긴 물체를 반겼다. 이상하게 마수의 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설명으로는 육체의 허물어짐을 마수의 피로 막을 수 있다고 했었다.


천계에서 소환된 정령왕은 중간계에서 온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간을 차지하는 정령의 힘이 천계의 절반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간계에서 사용하는 힘은 그보다 작았다. 본체는 천계에 있고 분체로 싸우는 탓에 1/4의 힘을 발휘하면 다행이었다. 난색이 된 얼굴로 살피던 정령왕은 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도 마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 년 뒤에 사라질 몸이었다. 하나의 혈정만 얻어도 몸을 좀 더 유지할 수 있었다. 얼음창을 생성해 손에 쥐고 삼두인룡을 향해 날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펠리시아는 위엄차게 명령했다.


``홀리아기사단은 전원 공격하라!"


성벽이 무너지려는 찰나에 다가온 지원군에 샤미르왕국 기사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에 반해 삼두인룡은 강력한 방해자의 등장으로 가까스로 오른 성벽에서 가슴에 얼음창을 꽂고 밑으로 떨어졌다.


삼십 미터의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삼두인룡은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정령왕의 얼음창이 연속으로 날아와 몸에 박혔다. 천계의 힘이 깃들어 있기에 몸의 재생이 무척 더뎠다. 악마의 얼굴이 드러나며 허공을 향해 고함쳤다.


``여왕을 죽여라!"


삼두인룡은 모르지 않았다. 소환자가 죽는다면 소환수는 사라졌다. 소환자의 죽음으로 정신금제가 깨지거나 실체 유지가 불가능했다. 부서진 성벽으로 꾸역꾸역 기어오르던 드래곤뉴트는 네 다리를 쿵쿵 울리며 손에 쥔 몽둥이와 조잡한 무기로 여왕에게 쏟아졌다.


마갑기사에게 드래곤뉴트는 힘든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열 마리가 모이게 되면 실버나이트를 상대했다. 인간보다 반이나 큰 키와 커다란 몸집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어수룩한 레드나이트는 혼자서라도 제압했다.


여왕을 지키기 위해 기사들은 온몸을 바쳤다.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체력과 잠이 쏟아져서 견딜 수 없는 수마는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오직, 여왕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부서진 성벽으로 뛰어드는 드래곤뉴트를 막아섰다.


펠리시아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정령왕을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1년 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다가오는 몬스터를 막지 않는다면 자신도 어머니처럼 부상을 당하거나 죽었다. 정령왕을 꺼내면 마수의 시선은 온통 소환자에게 향했다. 그 위험부담을 각오할 만큼 성벽은 지켜야 했다. 물의 정령왕 중에 한 명을 꺼낸 마당에 다른 계열의 정령은 꺼낼 수 없었다. 나온 것은 물의 상급정령 네레이드였다. 인어의 형상으로 나타난 상급정령은 성벽 위에 나타나자 울상이 되었다. 물이 아닌 바위에 서게 되자 싫었다.


``불편한 것은 알겠지만 몬스터가 성벽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줘. 잘못하면 내가 죽게 생겼어."


그제야 주변을 살핀 상급정령은 야무지게 말했다.


``요새 마수가 많이 나오지? 그것의 힘을 손에 넣으면 나에게 조금만 떼어 줘. 그러면 힘이 나서 열심히 싸울 수 있어."


``알았어! 약속할게."


기쁨에 젖은 상급정령은 인어의 형상에서 바위에서 움직이기 편한 인간 여성으로 변했다. 그리고 성벽 밑에 방어용으로 파놓은 웅덩이에서 물을 뽑아 날렸다. 거세게 몰아치는 물줄기에 드래곤뉴트의 거구가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져 성벽 밑으로 굴렀다. 물에 의해 미끄럽게 변한 곳에서 불행히 한 명의 기사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앞에 있는 드래곤뉴트를 잡는 게 급했다. 여왕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마당이었다.


성벽 위에서 드래곤뉴트를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갈 무렵, 동쪽에서 황소마수가 부서진 성벽을 타고 뛰어왔다. 그 뒤를 삼두인룡이 정령왕은 본 척도 않고 피를 줄줄 흘리며 악착같이 다가왔다. 황소마수가 뚫고 지난 뒤라 삼두인룡을 막아설 병력마저 사라졌다. 한순간에 살았다는 희망에서 천장절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때 허공에서 몬스터의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십 마리의 와이번이 인간의 목숨을 노리고 하늘에서 성벽으로 내리꽂혔다.


``펠리시아~~~~ 나 왔어!"


뜻밖의 목소리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하늘을 올려본 펠리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높은 허공 위에서 은청색의 마갑기가 곧장 자신에게로 떨어졌다. 놀라서 외마디 비명이 저절로 터졌다.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며 쪼그려 앉았다. 그 위로 무언가를 강력하게 가격하는 쿵 소리가 울리며 들이닥쳤던 황소마수가 수십 미터는 빙글빙글 돌아 성벽 너머로 날아갔다.


``나야 나... 철. 장. 패라고."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한 이름마저 들리자 펠리시아는 쪼그린 상태에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곳에 마갑기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드는 철장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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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사냥이야기 73 - 더러운 짓 +18 10.02.06 7,216 63 16쪽
» 사냥이야기 72 - 바로 지금 4 +5 10.02.06 7,100 58 21쪽
193 사냥이야기 71 - 바로 지금 3 +6 10.02.06 7,228 66 18쪽
192 사냥이야기 70 - 바로 지금 2 +17 10.02.03 7,727 66 21쪽
191 사냥이야기 69 - 바로 지금 +19 10.02.02 8,173 69 15쪽
190 사냥이야기 68 - 데몬 드라이버 6 +13 10.01.30 7,725 61 15쪽
189 사냥이야기 67 - 데몬 드라이버 5 +13 10.01.29 7,634 67 23쪽
188 사냥이야기 66 - 데몬 드라이버4 +17 10.01.28 7,710 64 14쪽
187 사냥이야기 65 - 데몬 드라이버 3 +6 10.01.28 7,780 56 22쪽
186 사냥이야기 64 - 데몬 드라이버2 +12 10.01.25 8,106 61 23쪽
185 사냥이야기 63 - 데몬 드라이버 +10 10.01.23 8,070 64 15쪽
184 사냥이야기 62 - 충돌 그리고 폭발 c +11 10.01.22 7,721 65 28쪽
183 사냥이야기 61 - 충돌 그리고 폭발 b +14 10.01.20 7,648 66 18쪽
182 사냥이야기 60 - 충돌 그리고 폭발 a +12 10.01.18 7,747 66 20쪽
181 사냥이야기 59 - 충돌 그리고 폭발 4 +9 10.01.16 7,637 62 11쪽
180 사냥이야기 58 - 충돌 그리고 폭발 3 +11 10.01.15 7,652 65 13쪽
179 사냥이야기 57 - 충돌 그리고 폭발 2 +5 10.01.15 7,465 64 17쪽
178 사냥이야기 56 - 충돌 그리고 폭발 +13 10.01.13 8,026 6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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