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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분노조절장애 광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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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1.26 14:44
최근연재일 :
20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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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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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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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경비병(3)

DUMMY

시신은 모욕을 당했다.

범인은 마늘 스프집 사장을 때려죽인 뒤 시신을 도시 외곽의 시궁창에 버렸다. 시궁창은 더럽다. 오물과 음식물 쓰레기가 둥둥 떠다닌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주민들은 시궁창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청소부가 시신을 발견했다.

마늘 스프집 사장은 코와 입에 오물이 잔뜩 끼어 있었다.


한우석은 시궁창 가장자리에 누운 피해자의 시신을 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끔찍하군.’


고약한 냄새.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보리스와 함께 사건 현장으로 달려왔다. 시궁창 청소부가 시신을 물로 씻으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사건 현장을 보존해야 범행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청소부가 항의했다.


“시체를 그냥 둬요? 이렇게 더러운데?”


한우석이 설명했다.


“조사부터 끝내고 시신을 수습하겠습니다. 뒷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아유, 어떡해. 주인 아저씨 불쌍해서···”


청소부가 눈물을 훔쳤다. 그는 마늘 스프집 사장에게 밥을 몇 번 얻어먹었다.


한우석은 구경꾼을 최대한 쫓아낸 뒤 현장 주위에 줄을 쳤다. 출입금지 표시였다. 그가 전문적인 수사 기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초동 수사에서 현장 보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영화와 인터넷에서 보고 들었다.


보리스가 신입 경비병의 그런 행동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범인을 찾아낼 작정이야?”


한우석이 끄덕였다.


“예.”

“불안하구만.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릴 것 같아서.”


보리스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영주의 아들이 친위대를 이끌고 도시에 온 다음날 살인사건이 터졌다. 캄스크 시는 코딱지만 한 동네라 강력범죄가 드물다.

하지만 그는 속내를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말실수만으로 처벌당할 수 있다.

이곳은 군주제 사회다.


한우석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형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저도 압니다. 일개 경비병이 영주의 아들을 살인죄로 처벌하기는 어렵죠.”

“그런데 왜?”

“화가 납니다.”


한우석이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지금 화가 나 있다. 아는 사람이 살해당했다. 마늘 스프집 주인은 그에게 식사를 여러 차례 제공했다. 덕분에 한우석은 맛있는 요리를 배불리 먹었다.

은혜.

도움.

상부상조.


사실 마늘 스프집 사장이 성인군자는 아니다. 장사가 안되어서 다급한 나머지 대박집 조리법을 베꼈다.

그렇다고 그가 이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만큼 못된 인물도 아니다. 그는 평범했다.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소시민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약삭빠르고 때로는 관대하며 자그마한 이득에 울고 웃는다.


한우석이 머리속으로 질문했다.

평범한 사람은 죽어도 되는가?

입술이 터지고 손가락이 부러진 채로 시궁창에서 발견되어도 되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마늘 스프집 주인은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다.

한우석은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난 것이라고 짐작했다.


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화가 난다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 그러다 다쳐.”


한우석은 선배의 조언을 흘렸다. 그는 지금 분노를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범인이 시체를 숨기려 했을까요?”


보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청소부가 매일 아침에 시궁창을 청소해. 범인이 시체를 숨기고 싶었으면 다른 데 버렸어야지.”

“그 놈이 우리 도시의 사정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글쎄. 어느 도시나 시궁창 청소부가 있다는 건 상식인데.”


한우석이 가설 하나를 지웠다.


“그렇다면 범인은 시체를 일부러 이곳에 버렸군요. 청소부가 아침에 시궁창을 청소하는 줄 알면서도요. 오히려 시체가 사람들 눈에 일찍 발견되기를 바란 겁니다.”


보리스가 동의했다.


“협박이지. 우리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고 다른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거야.”


시신의 상태는 좋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도 상처가 많고 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범인은 시신을 시궁창에 처박아 더럽혔다.

마늘 스프집 사장은 살아있을 때 고통받고 죽어서도 능욕당했다.

끔찍한 죽음.

아마도 청소부가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공포가 전달될 것이다.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 것이다.

공포는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다.


한우석이 물었다.


“스프집 사장님이 구체적으로 무슨 요구를 안 들었습니까?”


보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지. 나도 자네처럼 어제 저녁에 막사에만 박혀 있었거든.”

“목격자를 찾아야겠네요.”


그들이 먹자골목으로 이동했다.


-


신분제는 불평등하다.

높으신 분은 잘못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밑바닥 사람은 조금만 잘못해도 큰 벌을 받는다.

미하일 남작은 영주의 아들이다.

죽은 사람은 평민이다.

남작의 목숨과 장사꾼의 목숨은 같지 않다.


한우석이 마늘 스프집에 도착했다.

음식점은 문을 닫아 놓았다. 이미 소문이 돌았는지 행인들이 가게 앞을 지나가며 수군거렸다. 사장이 죽은 가게에서 밥을 먹고 싶은 손님은 없다.


원조 소고기 스튜집은 열었다.

불행한 사건 때문에 오늘은 소고기 스튜집도 파리만 날렸다.


한우석이 음식점으로 들어가 사장을 찾았다.


“계십니까?”


주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주방에 앉아 있다가 힘겹게 일어섰다.


“네··· 어?”


가게 주인이 경비병을 알아보았다. 그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아니요. 안 죽였어.”


한우석이 상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저희도 압니다.”

“저··· 정말?”

“사건 관련해서 알아볼 것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소고기 스튜집 사장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가게 문을 닫고 영업종료 팻말을 내걸었다. 창문도 내렸다. 소음이 대부분 차단되었다. 그런데도 사장은 주변 정황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엇이 궁금한데?”

“어제 마늘 스프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게···”


그가 뜸을 들였다.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한우석이 재촉했다.


“사장님.”

“알았어. 대신 나랑 약속 하나만 해주쇼.”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내가 했다고 밝히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신께 맹세하시오.”


그가 벽에 걸린 성물을 가리켰다. 성물은 십자가 모양이었고, 다리 각각에 삼각형 발이 달려 있었다.

한우석이 수락했다. 그는 종교가 없다.


“맹세합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지옥에 갈 것이오.”

“네.”


그제서야 소고기 스튜집 사장이 목격담을 말했다.


“어제 오후에 행정관이 깡패 무리를 데리고 시장을 돌며 상인들을 협박했소. 세금을 더 내라고. 그러다가 마늘 스프집이 장사가 잘 되는 걸 보고 그 집으로 들어갔소.”

“그랬군요.”

“조금 있다가 깡패들이 손님을 내쫓더니 가게 문을 잠갔소. 그리고 소리가 들렸지. 욕설, 비명, 물건 깨지는 소리.”


목격자가 몸서리를 쳤다. 두려움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미하일 남작은 의도를 달성했다. 시장 상인들에게 공포감을 심었다.

한우석이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습니까?”

“몰라. 나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어. 손님이 전부 도망친 마당에 장사를 더 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옆집에서 폭행 사태가 벌어졌는데 사장님께서는 아무런 조치도 안 취하셨습니까?”

“내가 뭐 어쩌겠어? 영주의 아들한테 덤비기라도 할까?”


사장이 울컥하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고 탄식했다. 그는 무력했다.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마늘 스프집 주인은 돈에 쪼들리고 있었어. 장사가 한참 안 됐거든. 그래서 세금을 더 내라는 소리에 기분 나쁜 티를 냈나 봐. 어리석은 사람. 목숨 귀한 줄 알면 대들지 말았어야지. 행정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한우석은 소고기 스튜집 사장의 입장을 이해했다. 사람은 자기 목숨이 남의 목숨보다 중요하다. 위험이 닥치면 대부분 도망부터 친다. 한우석 같은 분노조절장애 환자나 앞뒤 안 가리고 불 속에 뛰어든다.


“알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었소?”

“예.”

“비밀은 꼭 지켜주시오. 나는 가족이 있어.”


가게 주인이 재차 당부했다.


-


한우석이 고기 스튜집에서 나왔다.

심증이 더욱 굳었다. 스프집 사장은 행정관에게 살해당했다. 혹은 행장관이 부하에게 폭행을 지시했다. 어찌되었든 미하일 남작은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남작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곳은 신분제 사회다. 귀족이 평민을 죽였다고 그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한우석이 선배 경비병에게 물었다.


“살인자는 어떻게 처벌합니까?”


보리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법정에 세워. 행정관이 재판장이야.”


행정관은 미하일 남작이다.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 범죄자가 스스로를 심판하는 꼴이다. 당연히 무죄가 나올 것이다.

한우석이 다시 물었다.


“행정관이 범죄를 저지르면 누가 심판합니까?”

“영주.”


과연 그러했다. 미하일 남작은 영주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 재판을 받는다.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죄 가능성 100퍼센트다.

미하일 남작이 폭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는 사실상 법 위에 있다. 민심은 중요하지 않다. 하찮은 평민이 감히 귀족에게 대들 수 없다. 권력은 도덕을 압도한다.


보리스는 이러한 결말을 예상했다.


“진실을 밝혀도 소용없어. 행정관은 영주의 아들이야. 아무도 그를 처벌하지 못해.”


한우석은 아직 결말에 다다르지 않았다.


“행정관을 만나야겠습니다.”


보리스가 화들짝 놀랐다.


“만나서 어쩌려고?”

“아직 모르겠습니다.”

“자네 미쳤어?”

“예.”

“정신차려. 귀족은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한우석이 주장했다.


“제가 남작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그가 저를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할 겁니다.”

“친위대가 남작의 거처를 지키고 있어.”

“상관없습니다.”

“놈들이 너를 때려눕힐 거야.”

“저도 놈들을 때리겠습니다.”


보리스가 감성에 호소했다.


“우서크, 제발 그만해. 자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조용히 흘려보내는 게 상책이라고. 마늘 스프집 사장은 운이 없었던 거야. 그냥 그렇게 생각해. 자네가 괜히 벌집을 들쑤시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져.”


한우석이 핏발 선 눈으로 보리스를 보았다.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화를 너무 오래 참았다. 스트레스 부작용이다. 앞뒤를 가리기 힘들다.

환자가 요구했다.


“형님, 말씀해주세요. 행정관은 어디서 지냅니까?”


-


행정관의 숙소는 캄스크 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

회색 담벼락이 저택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정원에 꽃과 나무를 가꾸었고, 뒷마당에 연못을 만들어 놓았으며, 3층 발코니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한우석이 저택 대문을 지키는 미하일 남작의 친위대를 힘으로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친위대는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하며 팔뚝에 문신을 잔뜩 새겼다. 말이 친위대지 사실상 건달이었다.

놈이 소리쳤다.


“야, 어딜 들어가? 야! 멈춰···”


한우석이 상대의 두툼한 배에 주먹을 꽂았다.

말단 건달이 무릎을 꿇었다.


“꾸에엑···”


한우석은 정원을 지나 저택 현관문을 열었다.


미하일 남작을 따라다니던 졸개들이 거실에 모여 카드를 치고 있었다. 술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허공에 연기가 자욱했다.

그들이 한우석을 보았다.

그리고 한우석이 입고 있는 경비병 복장을 인식했다.


“너 뭐야?”


한우석이 대답했다.


“나는 경비병이다.”

“그런데?”

“행정관을 만나러 왔다.”

“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행정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친위대 조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꾸했다.


“남작님은 떠나셨다. 이런 냄새나는 동네에 더는 못 있겠다고 하시더라고.”

“어디로 떠났지?”

“몰라.”

“말해.”

“모른다고, 새끼야.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


친위대 조장이 손을 휘휘 내젓고 테이블 위의 카드에 집중했다.

한우석이 장식장에 놓인 꽃병을 집어던졌다. 꽃병이 테이블에 맞아 부서졌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건달 무리가 벌떡 일어섰다.


“미친 새끼가?”


한우석이 말했다.


“나를 화나게 만들지 마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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