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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분노조절장애 광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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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1.26 14:44
최근연재일 :
2024.01.31 09:0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92
추천수 :
30
글자수 :
38,508

작성
24.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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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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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4)

DUMMY

한우석은 농부가 알려준 방향으로 나아가 큰 길에 도달했다.

갈림길에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세 갈래다. 남쪽이 캄스크 시, 동쪽은 거인 산맥, 북쪽이 벨리츠 마을이다.

그가 표지판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렸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배가 고팠다. 한우석은 농부가 챙겨준 호밀빵을 먹었다. 빵은 거칠고 텁텁했다. 그는 음식을 물과 함께 삼켰다.


시간을 보냈다.

그림자가 점차 길어졌다.

상단은 지나가지 않았다. 행인도 마주치지 못했다.


늙은 농부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상황이 바뀌었나?


집주인 말대로 이 지역은 변방이다. 인구가 적고 농사는 어렵다. 문명은 산맥 아래에서 끝난다. 거인 산맥은 오로지 거인만 넘어갈 수 있다. 산맥 너머는 미지의 세상이다.

장사꾼은 사람이 많은 곳을 찾는다.

상단이 시골 오지까지 올 이유는 없다.

예전에는 왔더라도 이제는 수익성이 낮아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우석이 판단했다.


‘계속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어.’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캄스크 시까지 이틀 정도 걸린다. 물은 충분하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다. 어둠과 추위, 도적과 맹수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다.


‘하지만···’


그는 이 세계를 모른다. 밤에 맹수가 아니라 몬스터를 만날 수도 있다. 미국식 롤플레잉 게임은 자유도가 높은 대신 불친절하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낮다고 봐주지 않는다. 시작 지점 근처에 강력한 적을 배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

양키 센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한우석은 지금 평온하다. 분노는 전혀 없다. 그러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상단을 찾자.’


그는 길을 거슬러 올라가 늙은 농부가 말한 상단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차의 바퀴가 부서졌거나 마부가 급똥을 누는 바람에 상단이 아직 여기까지 도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우석이 산맥을 바라보며 걸었다.

하늘에 노을이 깔렸다.

이윽고 그는 상단을 만났다.


부서진 마차.

널브러진 짐.

시체.


한우석이 무릎을 꿇고 시체의 상태를 살폈다. 상인이었다. 오른손이 불규칙적으로 잘려나갔다. 검지는 한 마디, 중지는 두 마디,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손바닥 일부와 함께 분리되었다.

살인.

명백하다.

상인은 상대의 칼을 손으로 막으려다 손가락이 잘렸다. 방어흔이다. 그리고 목을 베여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땅바닥에 몸부림친 흔적이 남아있다.

희생자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누가 이런 짓을?’


마부의 가슴에는 화살이 박혀 있다. 기습을 당한 것이다. 마차에 실려 있던 짐이 땅바닥에 전부 쏟아졌다. 포장은 벗겨져 있고 상자는 파괴되었다.

상자 속 내용물이 모조리 사라졌다.

한우석이 결론을 내렸다.


‘도적이군.’


도적이 상단을 습격해 물건을 털어갔다. 마부는 즉사했고 상인은 반항하다가 살해되었다. 도적은 상품과 돈을 모조리 빼앗고 시체 위에 메모지만 남겨 두었다.


[장사를 하고 싶으면 세금을 내라.]


협박문.

메모지가 쭈글쭈글하다. 물기에 젖었다가 마른 듯하다. 날은 지금껏 맑았으니 협박문의 물기는 비가 아니라 이슬이 분명하다. 상인이 살해된 지 적어도 하룻밤 이상 지났다는 뜻이다.

한우석은 메모의 필체를 알아보았다.


‘어제 밤에 헛간을 불태운 놈들도 비슷한 글자로 협박문을 남겼지.’


글자는 어색하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남의 글자를 따라서 베낀 듯하다. 선이 비뚤고 자신이 없으며 필기구를 이상한 지점에서 뗀다.

덕분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상단을 습격한 놈들은 어제 농부의 헛간에 불을 지른 놈들과 동일하다.


한우석이 메모지를 품에 챙긴 뒤 일어섰다.


‘빡치네.’


불량배가 그를 두 번이나 방해했다. 어제는 잠을 깨우더니 오늘은 일정을 망가뜨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우석은 지금쯤 상단의 마차를 얻어 타고 캄스크 시에 도착했어야 한다.


[분노 발생]

[분노게이지 1/10]


그는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꽤나 걸어왔다. 원래 위치로 돌아가면 해가 질 것이고, 오늘을 포함해 최소 3일을 길바닥에서 지내야 한다. 캄스크 시에 도착하기 전에는 물만 마셔야 한다.

불량배 때문에.

3일을 굶어야 한다.


[분노 상승]

[분노게이지 2/10]


물론 배고픔은 참을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은 물만 마셔도 한 달은 버틴다.

하지만 분노는 참을 수 없다.

그는 분노조절 기능에 장애가 있다.


‘화를 풀어야겠어.’


해결책은 간단하다.

분노의 원천을 제거하면 된다.


한우석이 발걸음을 돌려 늙은 농부의 집으로 향했다.


-


날이 어두워졌다.

한우석은 횃불을 보았다. 농가 뒷마당이다. 그가 쓰러진 통나무에 몸을 숨기고 정황을 살폈다.


불량배 여섯이 늙은 농부를 둘러쌌다.

농부는 아들의 무덤에 엎드려 마누라의 비석을 끌어안고 있다. 이미 흠씬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었다. 발목 한 쪽이 뒤틀렸고 가슴은 힘겹게 오르내린다.

집단폭행.

늙은 육체로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도 노인은 반항한다.


“나는 못 가. 차라리 나를 죽여.”


불량배 우두머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키가 부하들보다 한 뼘은 더 크고 골격 또한 우람하다. 손에는 단검을 들었는데 얼마 전에 사람을 베었는지 칼날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


“이보쇼, 나도 이러기 싫어. 당신이 진작에 집을 비웠으면 우리가 이런 짓까지는 안 해도 되잖아.”

“여기는 내 집이야. 내 고향이라고. 내가 왜 떠나야 하는데?”

“세상이 바뀌었소. 고향 따위는 이제 없어. 한 마을에서 대대로 농사짓고 살던 시대는 끝났단 말이오. 땅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지. 그게 요즘 법이오.”


노인이 반박했다.


“주인? 누가 주인이야?”

“당연히 영주지.”

“웃기는 소리. 우리 마을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놈이 주인이라고? 영주가 땅 주인이면 길도 닦고 울타리도 세우고 너희 같은 불량배가 못 설치게 순찰도 해야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주인이야? 그런 놈은 주인 자격이 없어.”

“그건 당신 생각이고. 영주님 생각은 다르다니까.”

“나는 안 나가. 내 집에서 죽을 거다.”


늙은 농부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는 결심했다. 아내와 아들의 곁에서 삶을 끝낼 것이다.

두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쩔 수 없군. 소원대로 해줘야지 별 수 있나.”


그가 부하 건달에게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렸다.


“몸통 위주로 패라. 대가리 깨지면 피 튄다. 나 신발 새로 신었다.”

“걱정 마십쇼, 형님.”


건달 무리가 몽둥이를 치켜올렸다.

뒤쪽에서 돌멩이가 날아왔다.


- 퍽


건달 하나가 엎어졌다.

나머지 건달이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았다. 동료의 뒤통수에 주먹만 한 돌덩이가 박혀 있었다. 돌덩이는 두개골을 부수고 뇌를 헤집었다.

엄청난 힘.

누군가 돌을 던져 사람을 죽였다.

그들이 경악했다.


“이런 미친···”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한우석이 농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도끼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도끼날이 가장 가까운 불량배의 정수리를 파고들었다. 머리통이 세로로 갈라졌다.

도끼날은 불량배의 목젖 부근에서 멈추었다.

피분수.


불량배들이 서로 외쳤다.


“적이다.”

“싸워!”


한우석이 도끼를 뒤틀어 시체에서 날을 빼낸 뒤 이번에는 나란히 서있는 건달 두 명을 공격했다. 도끼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오른쪽 건달은 목이 잘렸다.

왼쪽 건달은 아래턱을 잃었다.

아래턱을 잘린 건달이 불분명한 신음을 냈다.


“아으아···”


아직 살아있는 건달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아래턱을 주워들었다. 어금니 네 개가 전부 썩어 있었다. 혀는 날아갔다. 그가 턱을 원래 자리에 붙이려 시도했다. 피가 너무 세게 뿜어나와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한우석이 남아있는 불량배를 둘러보았다.


‘꼬붕이 두 놈, 대장이 하나.’


부하들은 몽둥이로 무장했다. 두목은 단검을 들었다. 불량배 안에도 위계가 있었다.

두목이 부하들의 등을 떠밀었다.


“얼른 나가서 싸워.”


부하들이 망설였다. 그들은 방금 피분수를 보았다.


“하지만 저희는 몽둥이고 저 놈은 도끼···”

“나무꾼 도끼잖아. 제대로 된 무기도 아니구만.”

“으으···”


건달 부하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지금껏 힘없는 농부를 두드려 패고 여자와 아이를 윽박질렀으며 무방비 상태의 상인을 기습했다. 쉬운 상대였다. 약자는 폭력에 금방 굴복한다.

우월감.


하지만 방금 나타난 남자는 뭔가 달랐다. 눈빛에 광기가 아른거린다. 저 놈은 사람 머리를 쪼개고 피를 뒤집어썼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잔인한 놈.

살인마.

대체 저런 놈이 왜 시골 구석에 나타난 걸까?


두 부하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도망칠 곳은 없다. 싸워야 한다. 뒤는 두목이 막고 있다.

둘이 동시에 한우석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압!”


한 사람이 오른쪽, 다른 사람은 왼쪽에서 공격했다. 몽둥이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다.

한우석은 왼쪽 공격을 도끼로 막고 오른쪽 공격은 몸통으로 받았다.


- 딱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불량배가 쾌재를 불렀다.


‘됐다!’


하지만 한우석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 듯 평온했다. 오히려 몽둥이를 옆구리에 단단히 끼웠다.

불량배가 기겁했다.


‘어째서?’


한우석이 도끼를 휘둘렀다.

불량배의 손이 각목을 쥔 채로 절단되었다.


“아악!”


그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피를 쏟았다.

전투 불능.


한우석이 남은 한 명에게 다가갔다. 마지막 부하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뒷걸음질쳤다. 몽둥이가 한우석의 머리와 어깨를 때렸다.


“오··· 오지 마.”


공포.


한우석은 멈추지 않았다. 타이밍을 재서 상대의 몽둥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놈에게 맞은 부위를 역으로 타격했다.

머리.

어깨.

옆구리.


- 으적


각목이 부러졌다. 갈비뼈도 부러졌다. 부하 건달이 피를 토했다. 뼛조각이 폐를 찌른 것이다.


“쿨럭.”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거품.

한우석은 선 채로 피거품을 물고 있는 건달을 옆으로 치웠다.


- 풀썩


그가 전방을 보았다.


불량배 두목이 늙은 집주인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 단검은 노인의 목에 댔다.

두목이 말했다.


“멈춰라. 가까이 오면 이 사람을 죽이겠다.”


협박.

그러나 협박은 희망이 남아있는 자에게 통한다.

노인이 두목의 손을 깨물었다.


- 콱


두목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단검을 옆으로 그었다. 노인이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빈틈이 생겼다.

한우석이 도끼를 던졌다. 도끼날 윗면이 건달 두목의 인중을 때렸다.


- 퍽


두목은 코가 함몰되고 앞니가 빠지고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멀리 날아가 거름통에 처박혔다.

즉사.


한우석이 집주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목의 상처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주름진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쏟아졌다.


“자네··· 힘이 정말 세구만. 어제 밭일은 부실하더니.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를 피운 건가?”

“아닙니다. 저는 화가 날 때만 세집니다.”

“허허, 내가 얻어맞는 꼴을 보고 화가 난 모양이군. 자네를 도와주길 잘 했어.”


노인이 기침했다. 피가 더욱 많이 흘렀다. 그가 숨을 힘겹게 들이쉰 뒤 말했다.


“나를 마누라 곁으로 데려다 주게.”


한우석이 노인을 부축했다. 분노가 풀려 힘이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가 노인을 무덤 곁에 눕혔다.

늙은 농부가 쓰게 웃었다.


“아까 그 놈 말이 맞아. 시대가 변했어.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더 이상 쓸모가 없지. 그러니 나는 사라지는 게 옳아.”

“어르신.”

“자네는 나처럼 살지 마. 앞으로 나아가. 강물이 흐르는데 노를 젓지 않으면 폭포까지 밀려가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농부가 눈을 감았다.


한우석은 노인을 가족 옆에 묻었다. 도적들의 시체는 한데 모아 태웠다. 은인의 무덤을 더러운 놈들의 피로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날이 다시 밝았다.

그는 작업용 도끼를 허리에 걸치고 무너진 마을을 떠났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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