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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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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8.05.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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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92)

DUMMY

빌랜드인 선원은 등잔을 들고 천천히 선창으로 내려오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쩝쩝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 서로를 빠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신음소리 비슷한 것도 희미하게 들리나 싶었다. 잠시 후, 그는 그 소리가 어떤 것인지 알아차리고서는 부라냐케 성호를 긋고서는 허겁지겁 선창 밑으로 내려갔다.


빌랜드인 선원이 긴장한 얼굴로 철창을 바라보았다. 히스파니아 총사와 여 기병대원이 서로를 껴안으며 짙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신교도적인 관점으로 볼때, 저것은 분명 죄악이었다. 신성한 배에서 감히 포로 주제에 이런 더럽고 추악한 장소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다니.

두 남녀는 빌랜드인들이 히스파니아인들에게 지닌 선입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잘생긴 히스파니아 남자가 금발머리 여인을 선창의 벽으로 밀치고서는 농도짙은 입맞춤을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는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 건지, 아니면 포로로 잡힌 공포감을 해소하려는 건지, 갈색머리 총사의 손길을 저항하지 않았다.

그 갈색머리 총사가 그녀의 기병대 재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는, 엄격한 신교도로서는 절대 봐서는 안 될 곳을 드러내며 재미를 보기 시작했다.

빌랜드인 선원은 이 일이 자기 뜻 대로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갑판으로 뛰어올라가서는 선임 선원에게 보고했고, 선임 선원은 조타수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덩치 큰 갑판장에게 이 일을 보고 했다. 독실한 신교도였던 풍체좋은 갑판장은 저 타락한 히스파니아 남녀가 포로 신분으로 서로의 몸을 섞는 '그짓'을 하고 있다는 데 몹시 분노했다.

"당장 가자!"

그가 잔뜩 화난 얼굴로 커틀라스와 권총으로 무장하고서는 선창으로 내려갔다. 갑판장이 당도하는 순간, 히스파니아 총사는 금발머리 여인의 상의를 벗겨 알몸으로 만들어서는 그녀를 벽으로 밀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채우려던 참이었다.

갑판장이 명령했다.

"당장 그만 둬! 이 추악한 것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갈색머리 총사가 뒤를 슬쩍 쳐다보며 대꾸했다.

"싫은데?"

갑판장에게 그 히스파니아 청년의 차가운 목소리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다시금 행위를 시작하려고 하며 덧붙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 마지막으로 즐겨보겠다는데 무슨 참견이지?"

갑판장이 버럭 소리쳤다.

"우리가 너희처럼 타락한 스페냐드들인 줄 알아?! 감히 우리의 신성한 배안에서..."

"그럴 거면 애당초 굶주린 남녀를 같은 방에 가둬두지 말았어야지."

젊은 총사가 그렇게 대꾸하며 다시금 키스에 열중했다. 금발머리 여인은 신음을 흘리며 두 팔을 그의 목에 휘감은 채 어떤 저항도 없이 쾌락에 빠져들겠다고 행동으로 보인지 오래였다.

두 히스파니아 남녀가 벌이는 짓은 이미 빌랜드 선원들을 상기시키는데 충분했다. 그 사실을 처음 보고한 선원은 종교 속에 숨겨놨던 욕망이 살아나는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갑판장은 히스파니아인들이 보인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가 버럭 고함치면서 철창의 자물쇠를 열라고 명령했다. 선원이 덜덜 떨면서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자 갑판장이 커틀라스를 빼어들고서는 등만 보이고 있는 히스파니아 사내를 내리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갈색 머리 총사가 몸을 옆으로 비켰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금발머리 처녀가 갑판장의 사타구니를 힘껏 걷어 찼다. 갑판장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겨워 날뛰었다. 벨린 데 란테가 그에게 달려들어 단번에 허리춤에 찬 권총을 빼앗았다. 금발머리 여인은 커틀라스를 빼앗아 갑판장의 목에 찔러넣었다. 정사가 일어나는 줄 알았던 장소에서 순식간에 피가 튀고 빌랜드인의 목숨 하나가 날아갔다.

깜짝 놀란 선원은 뒤를 돌아 갑판 위로 도망치려 했다. 그가 계단을 반쯤 오르는 찰나에, 갈색머리 총사가 빼앗은 권총을 쏘았다. 등뼈에 총탄을 맞은 선원은 갑판으로 올라가는 문을 채 열기도 전에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숨졌다.

총성은 선창에서 들려오는 거친파도소리에 숨겨졌을 게 분명했다.


"좋아."

벨린 데 란테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서둘러 기병대 재킷을 입었다.

철창을 열고 자물쇠 열쇠를 줍는 벨린에게 까트린이 말했다.

"네 동료들을 선두 쪽 선창에 가두는 걸 봤어."

"우리 무기가 필요해."

벨린이 단호한 어조로 대꾸하며 천천히 계단으로 걸어갔다. 까트린이 피묻은 커틀라스를 들고 따라나섰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설명했다.

"내가 그 빌랜드 마법사라면 선장실에 무기를 두었을 거야. 마법사라면 내 탄약가방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알 테니까."

"그곳에 내 기병도도 있을까?"

하루에 가보를 두번이나 빼앗기 까트린이 이번에도 무기를 되찾길 바라는 심정으로 말했다. 벨린이 갑판장의 품안에서 여분의 탄약을 노획하며 설명했다.

"선장실로 가려면 갑판을 지나 다른 출입구로 가야해. 갑판 위 선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

"저, 그런데 잠깐..."

까트린이 계단을 올라가려는 벨린에게 말했다.

"저, 저기...나중에 이곳을 벗어나면..."

두 볼이 달아오른 그녀는 아쉬운 얼굴이었다.

"... 아까 했던 거 다시 해 줄 수 있나 해서."

이 말에 벨린은 사악하게 씨익 웃으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뒤에 있던 까트린이 그의 표정을 볼 턱이 없었다.


갑판으로 빠져나온 두 남녀는 조심스레 배 후미에 자리잡은 선장실로 향했다. 누각이 없는 평저선의 특성상 선장실은 배의 맨 후미에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들은 갑판의 어두운 곳을 골라서 상체를 숙이고 선장실과 연결된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까트린도 이미 이런 방식에 익숙해졌는지 아무런 불만도 하지 않았다.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바람에 조용히 걷기가 불편했지만, 그들은 갑판을 걸어다니는 선원들을 피해 선장실 앞 원통에 몸을 낮춰 숨었다. 창과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선원 둘이 선장실을 지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흘러나오나 싶었다.

"조용히."

벨린이 작게 속삭였다. 두 남녀가 선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윌리엄의 큰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사이프러스 마녀의 아들을 생포했습니다."

벨린이 원통 사이로 천천히 접근하여 불빛이 세어나오는 선장실의 창문으로 붙었다. 선장실 안이 보였다. 검은 코트에 삼각모를 쓴 입은 윌리엄이 뒷짐을 진 채 자신이 하는 말을 누군가에게 받아적게 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구술했다.

"히스파니아의 혁명세력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대하며, 그들은 성전기사단의 복수를 위해 암암리에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이프러스 마녀의 아들은 그 과정에서 생포했습니다. 혁명세력들의 요청으로 그를 데려가는 것은 쉬웠습니다. 접선 장소에서 자세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당신의 충실한 제자 윌리엄이."

정장에 삼각모를 쓴 빌랜드인이 작은 우리에서 강아지 한마리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개의 몸에 단검으로 상처를 내어 개의 피를 탁자 위에 흥건하게 쏟아놨다. 또 다른 빌랜드인이 굳은 얼굴로 피가 고인 탁자 위에 철핀을 이용하여 글을 썼다. 윌리엄이 구술한 내용들을 모두 쓰자, 그 피웅덩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더니 쓰여있던 내용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깨깽거리는 개의 몸뚱아리를 붙들고 윌리엄을 보필하는 빌랜드인 둘이 상처에 붕대를 감고 도로 철창에 집어넣었다. 윌리엄이 말했다.

"그간 고생했다. 제군들. 드디어 일이 끝났군"

그가 선장실의 데스크 위에서 책 한권을 들어올렸다. 그들이 히스파니아에서 흩뿌렸던 불온서적이었다.

"우린 그저 이용해먹기만 했지만, 이 책에 쓰여 있는 성전기사단의 저주라는 것. 참 재미난 것임에 틀림없어."

조수가 질문했다.

"그 책의 내용을 누가 썼다고 하셨습니까, 스승님? 아주 유명한 란툰반도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그 이름을 말했다.

"자코모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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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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