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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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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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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8.05.0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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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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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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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베나레스의 총사(91)

DUMMY

“황녀마마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건데, 이 배는 아스티아노만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검은 옷 사내가 보인 반응은 이 히스파니아 총사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 빌랜드인이 소리내어 웃었다.

"잡혔는데도 배짱 한번 두둑하군."

그가 살롱 데 이스타나에서 보였던 그 모습대로 비아냥거리며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어디 이 배가 히스파니아를 벗어날 수 없나 두고보지. 미스터 데 란테. 아무튼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면서 약간의 배려를 해주도록 하겠네. 자네의 연인과 함께 있다면 바다여행이 지루하진 않겠지."

윌리엄이 선원들에게 '저 자를 후미쪽 선창에 가둬'하고 명령했다.

선원들이 돛대에 묶인 줄을 풀어서는 벨린의 등에 검을 겨누고 걷도록 강요했다. '움직여'하고 빌랜드어로 말하는 꼬락서니를 볼 때 이 배에 홀란드인 선원은 없었다. 그 말인 즉슨 이 배가 빌랜드의 완벽한 위장공작선이란 뜻이었다.

벨린은 선창으로 내려가며 밤 풍경을 마지막으로 흘겨봤다. 저 멀리 빛을 내고 있는 동방회사군 기지 앞 등대와, 그곳과 약간 멀리 떨어진 아스티아노 항구, 배의 진행방향 오른쪽에 유난히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는 해안가 전경들이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을 흘겨보며 벨린 데 란테는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 빌랜드 마법사는 그를 이 배에 태운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되리라.

벨린은 악취가 가득한 선창으로 끌려들어갔다. 배 후미에 자리잡은 수화물 저장소인 모양이었다. 식량과 잡동사니들이 드럼통에 담겨 굴러다니고 있었다. 맨 끝쪽에 철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벨린은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

벨린이 나직이 말했다. 철창을 잡고 있던 금발머리 여 기병대원이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온몸이 적의 피로 더러워진 모습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이 나쁜 자식들!"

빌랜드 선원들이 자물쇠가 달린 철창을 열고 벨린을 밀어넣었다. 이 무뚝뚝한 선원들은 벨린을 부축한 히스파니아 처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욕을 내뱉는대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다사 긴장하고 결연에 찬 눈빛으로 선창을 훑어보더니만 갑판 위로 올라가서는 선창과 연결되는 문을 쾅 닫았다.

이제 선창 안의 불빛이라고는 등잔 두 세 개 깜빡이는 게 전부였다.

까트린이 벨린을 살피며 황급히 말했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벨린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대답했다. 까트린은 온 몸이 피로 물들긴 했지만, 총상 외에는 부상을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린이 까트린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나를 놀라게 만들다니, 데 세비아노. 넌 정말 내가 지금껏 본 기병 중에서 가장 용감해."

"누가 그딴 말 듣고 싶대? 이 멍청아!"

까트린이 소리쳤다. 그녀가 넋이 나간 듯 벽에 기대 중얼거렸다.

"그 벽만 뚫었으면 그 빌어먹을 빌랜드인의 목을 쳐버렸을 텐데. 그자가 고작 10미터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구... 미안해... 데 란테, 결국 그 자를 잡기는 커녕 잡히고 말았어."

그때 벨린 데 란테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약간은 광적이지만 장난기 가득 서린 웃음소리였다. 까트린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이 냉소적인 총사대 대위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꿈에도 몰랐다.

"아냐, 까트린."

그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난 네가 그 빌랜드인의 목을 치기는 바라지 않았어. 네가 그 자의 발목을 잡길 원했지. 녀석이 네 돌격을 목도하고 그 자리에 멈춰선 것만 해도 너는 충분히 제 몫을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멈춰서길 바라다니?"

"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우리가 위협적으로 다가섰으면 했지, 그래야 우리가 이 배에 탈 수 있을 테니까."

까트린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데 란테. 왜 우리가 이 배에 타길 바란건데?"

웃음을 거두고 벨린이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애당초 몰래 배 안으로 들어갈 작정이었으니까. 그래야, 동방회사군이 없는 곳에서 저들을 처치할 수 있지."

"아아."

까트린이 덩달아 주저앉았다. 그녀는 이 젊은 총사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아직도 한 가지 부분이 이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해... 저자들 왜 우리를 죽이지 않지?"

"그건 나 때문이지."

벨린이 대답했다. 힘이 빠진 까트린이 자연스레 벨린의 어깨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그 빌랜드인, 마법사거든. 마법사들은 나를 처음 볼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곤 하지."

"마법사라고?"

까트린이 말했다. 벨린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 자들에게 나는 흥미로운 잡종처럼 보일 테지. 아무렴 상관없어. 걸려들었으니까. 그나저나..."

벨린 데 란테가 일어났다. 그는 다시금 냉정함을 되찾은 듯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까트린 데 세비아노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쉴 시간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벽의 틈사이에 눈을 대어 바깥 풍경을 보았다.

벨린이 눈을 때며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 30분 정도 되겠군."

"무슨 시간?"

그가 단호히 말했다.

"산 살바도르 요새에서 '황립 해군'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

벨린이 철창을 살폈다. 견고해보였다. 발길질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터였다.

젊은 총사가 까트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진 않겠지, 데 세비아노?"

"그럼, 당연하지!"

까트린이 날이 선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데 세비아노."

벨린이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살짝 보이며 질문했다.

"정렬적인 히스파니아 남녀 한 쌍이 차가운 빌랜드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발이 뭘까?"


* * *


잠시 후, 선원 한 명이 갑판장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갑판에서 선창으로 내려왔다. 그가 받은 명령은 선미에 강금한 포로들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풍향의 세기를 조절하기 위해 오랫 동안 선창을 비웠고, 그래서 배가 안정된 속력을 얻자마자 포로들을 감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건장하고 덮수룩이 수염을 기른 그 붉은머리 빌랜드인은 무척이나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였다. 이 배에 탑승한 선원들은 철저한 신원조사를 거친 이들이었기에, 그의 신앙심과 보수적인 강건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쩌면 그 점 때문에, 저 퇴폐한 스페냐드 남녀를 감시하란 명령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가 허리에 커틀라스를 차고 선창으로 터벅터벅 내려갔을 때, 그가 들은 소리는 엄격한 신교도에게 있어 죄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

탈고는 내일 마저.


영국이란 표현을 무심결에 썼는데 뜨끔했어요. 손을 봤습니다... 그리고 스페냐드라는 말은 살롱 데 이스타나에서 저 검은 옷을 입은 빌랜드인 윌리엄이 쓴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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