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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987,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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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8.04.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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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9쪽

베나레스의 총사(88)

DUMMY

"짐칸에 무엇을 실었습니까?"

걸걸한 사내 목소리가 물었다. 마부 자리에 타고 있던 알레한드로가 책을 읽듯 목록을 불렀다.

"발렌시아산 면직물 세 통, 치이난 산 엽차 다섯 통, 소화기용 화약 다섯 통."

"통과."

마차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칸까지 스며들던 등잔빛이 사그라들면서 좀 더 먼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빛들이 그림자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 소리와 파도소리, 바람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왔다.

까트린이 짐 상자에 눈동자 윗까지만 내민 채 투덜거렸다.

"당당치 못하게 숨어 들어오다니. 나까지 다 부끄러워지는군. 총사들은 이런 짓을 자주하는 모양이지?"

"우리는 경보병이니까 명예와 긍지 따위는 사치라고 할 수 있지. 그나저나 알레한드로."

벨린이 작게 말했다.

"그것이 암구어였나보군. 물건 목록."

"맞아." 알레한드로가 인정했다. "서류상 마우리체호에 실는 물건은 홀란드와 제휴를 맺은 무역선에 실을 교역물품이어야 하니까. 그런데 이 녀석들, 하필이면 포도주를 빼돌려 주고 있는 걸까?"

"선원들은 물 대신 술을 좋아하니까."

벨린은 마차의 짐칸을 가리고 있던 방수포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계략을 위해 동방회사의 전진기지를 둘러볼 차례였다. 방수포가 걷히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짐칸으로 스며들어왔다. 시야가 확보되자, 벨린과 까트린은 짐 상자에 몸을 숨겨 머리만 내민 채 밖을 보았다.

사방에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마차는 동방회사의 전진기지에 정박한 갈레온 함선들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갈레온 함선들은 하나같이 최근 건조된 것들이었고, 동방회사에서 함선 겸 무역선으로 운용하는 현역선들이었다. 단단한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500톤 수준의 대형 범선들이 도크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 범선들은 하나같이 히스파니아 국기 밑에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몸을 숨기지 않고 일어났다. 거대한 범선들이 정박해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방회사의 역량이 웬만한 국가의 해군과 버금간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까트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방회사의 함선들을 경계하듯 살펴보았다.

"저깄군."

벨린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는 도크를 가리켰다. 38번 도크, 그들이 그렇게 찾으려고 애쓴 평저선 주변에는 수많은 불빛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오렌지공 마우리체호는 전형적인 평저선으로, 평저선이란 홀란드의 무역상사들이 애용하는 상선의 한 종류였다. 이 배는 말 그대로 갑판이 평평했는데, 그 이유는 홀란드인들이 빠른 속도로 배를 건조하기 위해 배의 구조를 단순화했기 때문이었다. 평저선으로 상징되는 홀란드의 무역선들은 히스파니아나 다른 에우로파 국가들의 크고 작은 무역상사들과 제휴를 맺고 원양무역의 첨병으로 나섰다.

오렌지공 마우리체호는 평저선 중에서는 중간 크기에 속하는 300톤급 함선으로, 세 개의 마스트를 달고 두 개의 중앙 돛과 네 개의 보조 돛을 단 쾌속선이었다. 역풍과 순풍에도 거침없이 항해하도록 되어 있었고, 평저선이라 배의 바닥이 평평하다는 구조상의 특이점만 제외하면 무척 아름다운 배였다. 오크 재질의 선체는 횃불에 반짝거리며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이 오렌지공 마우리체호와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물자와 배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완전무장한 동방회사군이었고, 나머지 반은 짐을 나르기 위한 일꾼들이었다.

조안은 마찻길을 따라 물자가 적재되어 있는 공터쪽으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동방회사군 병사들이 마차를 인도했다. 벨린과 까트린은 짐짝 깊은 곳에 숨어 각각 무기를 든 채 숨을 죽였다.

이윽고 조안이 짐이 가득 적재된 공터 옆에 마차를 멈췄다. 이미 주변에는 여러 마차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마차들 속에서 짐을 내리는데 한참이었기에, 그들의 마차는 멈춘 이후에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벨린이 손짓했다. 조안과 알레한드로가 자리에서 내려서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았다. 벨린 데 란테와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짐칸에서 뛰어내려서는 짐짝들 틈으로 재빨리 숨었다. 그들의 뒤를 조안과 알레한드로가 천천히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회사의 일꾼들이 그들이 탄 마차에서도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알레한드로가 뒤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운이 좋았군, 이제 어떡하지?"

"조용히."

벨린이 숨을 죽이며 몸을 숨긴 채 앞을 바라보았다. 까트린도 눈 앞에 누가 있는지 발견하고는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들이 몸을 숨긴 짐 상자와 불과 20미터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쬐는 두 사내가 있었다. 더구나 그 가운데 한 명은 그들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바로 그 자였다.

바로 검은 옷을 입은 빌랜드인 사내.

모두들 두 사내의 대화에 숨을 죽였다.

"출항준비는 얼마나 남았소?"

검은 옷에 검은 삼각모를 쓴 사내가 말했다. 그의 히스파니아어 억양은 딱딱하고 영 어색했다. 주홍빛 정장을 차려입은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이사는 손에 든 명부를 통해 저 홀란드 무역선에 실은 물자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중이었다.

"항해물자는 지금 적재중이오. 회계 문제는 당신네 회계사와 접촉하여 이미 끝냈소. 홀란드 선박으로 위장하는데 사용한 비용서부터 제국 내에서 공작에 사용된 비용까지 모조리 지불했소. 세뇨르 윌리엄."

검은 옷 사내는 히스파니아 식 경칭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투였다.

"돈 알바티니. 당신네 나라의 치안기관만 좀 더 무능했다면 이번 일이 훨씬 쉬웠을 텐데 아쉽군요."

동방회사의 이사가 어깨를 으쓱 했다.

"그건 당신들이 벌집을 너무 심하게 건드려 그런 거겠지요. 이 나라의 황녀가 평판에 얼마나 민감한지 브리타니아 출신인 당신들은 모르오. 우리도 황녀의 평판에 신경을 써야하고 말이요."

"리노바티오가 진행될 판국에 평판이라니. 당신들은 참 웃긴단 말이야."

검은 옷 사내가 그렇게 대꾸하고서는 낄낄거렸다.

"우리 빌랜드인들은 20년 전에 국왕을 처형하고 새 나라를 만들었지. 당신들에게도 그런 결단력이 있을지 의문이군."

"글쎄올시다. 우리는 청교도가 아니라서."

동방회사의 이사는 국왕을 처형했다는 빌랜드인들의 과격함에 혐오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가 사무적인 어투로 "출항준비가 끝나는대로 말씀드리지요" 하고서는 뒤를 돌아 사라졌다. 검은 옷 사내 또한 오렌지공 마우리체호가 있는 부두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까트린이 총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리노바티오가 무슨 뜻이지?"

"라투니스어로군."

알레한드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는 귀족출신답게 학창 라투니스어를 배웠지만 이제는 다 까먹어버렸다. 까막눈인 조안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짐작도 못하고 어리둥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단어의 뜻을 알아차린 벨린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돈 주스피앙, 그 자 생각보다 야심이 큰 자군."

그 말에 모두들 벨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총사대 대위가 재밌다는 투로 까트린을 바라보았다.

"이봐, 추기경의 헌병군."

벨린이 까트린을 불렀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물론 알지. 그런데 녀석들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군. 아무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그게 뭔데?"

그녀는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벨린 데 란테가 물어볼 때가 있다니. 갈색 머리칼을 풀어헤친 잘 생긴 총사의 두 눈이 유난히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그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만약, 히스파니아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추기경은 누구 편을 들까?"

까트린이 그 질문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의 뒤에서 머스킷총을 겨누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흠칫하여 몸을 돌렸다. 순찰을 돌던 히스파니아군 병사 하나가 맨 뒤에 서 있던 까트린에게 총을 겨눈 것이었다.

그 병사가 동료들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침입자, 침입자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조안이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어 재빨리 쏘았다.


-------------------------


슬슬 이야기가 급류를 타네요. 비평이나 그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리메이크때문에 옛날만큼 안 보나 싶어, 이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진출하면 제목을 바꿔볼까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하고 있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단 연참이 중요하겠죠? 빨리 전역하고 싶어요ㅜ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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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9

  • 작성자
    Personacon 진다래
    작성일
    08.04.12 16:41
    No. 1

    오.. 첫 리플을 드디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성주[城主]
    작성일
    08.04.12 16:52
    No. 2
  • 작성자
    Lv.71 Like빤쓰
    작성일
    08.04.12 17:41
    No. 3

    도대체 오렌지공이 누굴까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몰과내
    작성일
    08.04.12 18:05
    No. 4

    시간아 빨리가라~~~ ~~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眞魂
    작성일
    08.04.12 19:17
    No. 5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kazema
    작성일
    08.04.12 20:31
    No. 6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하얀별빛
    작성일
    08.04.12 20:37
    No. 7

    까트린 어딜가든 문제네-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노사
    작성일
    08.04.12 20:46
    No. 8

    아 동인도 회사가 혁명세력을 지원하는군요.

    황실과 혁명세력 양다리 걸치고 이익을 챙기고 있는듯 한데...

    아무래도 절대왕조 보다는 혁명이 더 장사에 유리하다고 판단한듯...

    재밌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ul*****
    작성일
    08.04.12 21:33
    No. 9

    비평해드리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단지 읽는것만정도밖엔....ㅜㅡ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5 s2****
    작성일
    08.04.12 22:00
    No. 10

    까뜨린은 유리잔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돌적인면이 동키오테 같은느낌도 들고 침착한 주인공에게 잘 조율되는 케릭터 이길바라면서~
    노예 하나 더 만드심이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짝대기
    작성일
    08.04.13 11:01
    No. 11

    즐겁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Gavin
    작성일
    08.04.13 14:46
    No. 12

    2부의 제목이 모든것에 대한 혁명인 이유가 슬슬 나오고 있는 거죠..

    오렌지공 마우리체에 대해서는.. 아직은 드릴 말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leadman
    작성일
    08.04.13 16:03
    No. 13

    평저선이 갑판이 평평해서 평저선이다라고 하셨는데 배는 갑판이 다 평평하지 않나요?
    배의 잠기는 부분이 평평해서 평저선인거 같은데요. 우리나라 판옥선처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Σ비호란™
    작성일
    08.04.13 18:49
    No. 14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1 Gavin
    작성일
    08.04.13 19:27
    No. 15

    아. 맞아요. 갑판이라고 묘사를 잘못했군요. 수정합니다.

    ------

    그건 둘째치고 한 일주일간 연재가 힘들 듯 싶어요. 훈련기간이라서요 양해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상병나부랭이
    작성일
    08.04.13 20:47
    No. 16

    5대기 비사아아아아아앙!!!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82 다훈
    작성일
    08.12.25 10:05
    No. 17

    잠입하면서 복장이나 좀 신경을 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탈퇴계정]
    작성일
    09.05.18 22:15
    No. 18

    휴... 혁명...ㄷㄷ
    문제는 시민 의식수준.
    과연 제국의 시민들은 공화정에 동의하는가..?

    실제 프랑스의 경우 루이16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걸 많은 백성들이 거부했다고 하네요.

    과격한 소수의 지식층과 보수파의 대결이었을 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transistor
    작성일
    10.12.02 17:38
    No. 19

    나라를 확 뒤집어 놓는 게 돈 벌기 좋다고 생각한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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