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증영대근

몬스터 먹고 영웅 접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8.01 11:58
최근연재일 :
2023.08.12 21:3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329
추천수 :
9
글자수 :
105,701

작성
23.08.02 15:53
조회
11
추천
1
글자
11쪽

호기심이 사냥꾼을

DUMMY

어둠을 뚫고 날아간 화살의 검은 꽁지깃을 눈으로 따라갈 도리는 없었다. 사람의 시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청각으로는 추적이 가능했다. 아르달하는 화살이 젖은 대기를 가르며 낸 소리의 끝자락에


뚜둑!


하고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얹히는 것을 들었다.


그 소리에 놀란 사슴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일어선 아르달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내달렸다.


맞았나? 뿔! 부러졌나?


그러나 사슴떼가 한꺼번에 날뛰기 시작한 탓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슴들은 서로 뒤엉켜 쓰러지고 비척거리고 엉망진창으로 뒹굴다가 두세 박자 늦게 사방팔방으로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우두두두!


사슴들의 발굽 소리가 젖은 땅을 울리고 흔들기 시작했다.


사슴들은 동물적인 혼돈에 빠져 가능한 모든 방향을 향해 날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바로 조금 전 졸다가 깨어났던 아르달하가 그랬듯 정신을 못 차린 놈도 있었다.


눈에 띄게 큰 사슴이었다. 아마도 사슴들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놈은 아르달하를 뿔로 들이받으려는 듯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진흙밭에 발이 빠져 비척거리고 나동그라지면서도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가소로운 일이었다. 아르달하는 활을 집어넣고 여유 있게 충돌을 대비했다. 허리춤의 밀림도는 뽑아들지도 않은 채였다.


충돌 직전 한 발을 크게 물리고 몸을 홱 틀면서 옆으로 빠졌다. 기민하고 갑작스러운 동작이었다. 사슴 입장에서는 아예 아르달하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터였다.


사슴으로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든 것이었지만, 그 움직임은 너무 직선적이었다. 사삼의 돌격을 어렵지 않게 빗겨낸 아르달하는, 놈의 뿔을 옆에서 잡아채며 사슴과 같은 방향으로 머리 방향을 맞췄다. 몸을 옆에 나란히 붙이고 매달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팔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사슴모가지를 휘감고는, 놈의 대가리를 옆구리에 단단히 끼웠다. 오래 전 야생마를 생포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사슴의 모가지는 체감상 말의 것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더 쉽게 잡혔다.


사슴은 아르달하를 떼어내려고 길길이 뛰었지만 그런다고 놔줄 리 없었다. 아르달하는 사슴대가리를 옆구리에 낀 상태로 놈의 다리를 걸었다. 그러나 사슴의 몸과 다리는 예상보다 훨씬 낭창낭창하고 탄력이 있어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껑충껑충 날뛰는 사슴의 앞다리에 허벅지와 정강이를 걷어 채였을 뿐이었다.


아르달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모든 체중을 다 실어 놈의 대가리를 땅으로 찍어 눌렀다. 놈은 펄쩍 뛰던 제 힘으로 대가리를 흙바닥에 쳐 박으며 물구나무서듯 나자빠져 버렸다.


콰직!


그 난리 통에 오른쪽 뿔이 부러져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아르달하는 사슴 위에 올라탔다. 사슴모가지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내리눌렀다. 험하게 바닥에 깔아뭉개진 몸뚱이가 파르르 떨렸다.


아르달하는 실소했다.


이 새끼 엄살 부리는 것 좀 보소? 화살이라도 맞은 놈마냥 굴고 앉았네?


쓰러뜨려놓고 보니 꽤나 크고 팔팔한 놈이었다. 살기 위해 온몸으로 버둥대는 야생의 힘이 참으로 대단했다.


순간 아르달하는, 몸부림치는 여자를 잡아 쓰러뜨린 뒤 억지로 찍어 누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밤과 어둠이 만들어낸 음험한 환각이었다. 이 환영을 쫓아내기 위해 아르달하는 사납게 고개를 흔들었다.


스릉!


밀림도를 뽑아들었던 것은 그때였다. 잠시 구름을 털어낸 초승달이, 아르달하가 치켜든 칼날 속으로 들어와 박히며 날을 빛냈다.


쇅!


날과 달이 함께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푸훅!


그러나 휘둘러진 칼은 젖은 땅바닥에 박히고 말았다. 젊고 힘이 좋은 놈이어서였다.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리는 놈을 꼼짝 못하게 찍어 눌러 놓으려면, 아르달하 역시 모든 체중을 다 실어야 했던 것이다.


산 목숨을 거두려면 이쪽도 온전히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사냥의 철칙이었다. 알고 보면 사냥은 저울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르달하는 급히 다리와 허리를 뒤로 빼며 온몸을 길게 눕혔다. 그러나 그렇게 놈을 찍어 눌러 제압하려하면 손에 힘이 빠져 칼질이 떴다. 그렇다고 칼에 힘을 실으려 하면 사슴은 금방이라도 떨치고 일어날 것처럼 퍼덕이며 제 몸뚱이를 공중으로 띄위고 튕겨 올렸다.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수사슴의 뿔을 혼자만의 힘으로 잘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답답하기가 짝이 없었다. 사슴을 죽일 마음은 없었건만, 그런 속내를 사슴이 알 리 없었다.


퍼헉! 퍽! 푸욱!


네 번째 칼질까지 빗나가자 아르달하는 화가 치밀었다. 이것 역시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르달하는 사냥 중에 화를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오 이 쌍놈의 사슴새끼가 진짜!


아르달하는 거의 이성을 잃었다. 마치 사람을 깔아놓고 줘 패듯 주먹으로 사슴의 죽통을 갈기기 시작했다.


퍽! 퍽!


물론 이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사슴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주기는커녕 더 결사적으로 반항하고 대들기 시작했다.


챙강!


사슴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아 넣던 중, 손에 들고 있던 밀림도가 미끄러져 날아가버렸다. 아르달하는 그제야 주먹으로 팰 게 아니라 칼자루로 찍었어야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아르달하가 사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숨통을 조르다가 손이 미끄러지면 사슴대가리를 붙잡고 땅바닥에 내리찍고, 다시 목을 조르기를 반복했다.


야만의 시간이었다. 인간이 사냥하는 법을 깨우치기 이전에나 벌어졌을 법한.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사슴은 더는 반항하지 못하고 축 늘어져있었다.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죽은 것 같기도 했다.


오른쪽 뿔은 진작 부러졌기 때문에 남은 건 왼쪽 뿐이었다. 아르달하는 뿔을 휘어잡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듯 꺾었다.


우직!


뿔 끄트머리가 부러지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조금 전 칼질이 빗나가면서 만들어진 칼집 덕분에 뿔 밑동이 부러졌다. 아르달하의 손에는 거의 온전한 모양의 사슴뿔이 쥐여졌다.


목표를 달성한 아르달하의 긴장이 풀리자, 사슴은 기다렸다는 듯 몸부림을 쳐 아르달하를 떨쳐내고는 홱 일어나버렸다. 그 와중에도 아르달하는 놈이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엄살이었구나 이 개새끼...!


풀과 진흙 위를 구르느라 개처럼 엉망진창이 된 사슴이, 죽을힘을 다해 굴욕의 현장을 이탈했다.


사냥이 끝나 있었다. 순식간에, 환희도 성취감도 없이.


패배자는 날듯이 달렸고, 승리자는 허우적대며 두 번이나 미끄러지고 난 뒤에야 진흙 위에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설 힘은 있었지만 걸음을 옮길 힘이 없었다. 아르달하는 허리를 구부리고 땅을 보면서 거칠게 헐떡였다. 토할 것 같았다. 먹은 것이 있었다면 정말 토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숨소리마저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숨이 너무 차서 좀처럼 호흡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아르달하의 입과 코에서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사냥의 열로 잔뜩 달아오른 몸에서도 하얀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겨우 고개를 든 아르달하의 눈에 숲이 보였다. 아르달하가 숨어들어온 곳인 동시에 나갈 길이기도 했다. 시간이 없었다. 아르달하는 부러져 날아가 있던 오른쪽 뿔을 찾아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주워들었다.


대가리 하나에 달려 있었던 뿔은 둘이 되어 있었다. 뿔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어쩐지 뭔가를 벌어들인 것 같아 적이 흡족했다. 아르달하는 사슴뿔 두 개를 끈으로 묶어 어깨와 허리에 둘러 연결했다.


감시인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르달하는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기운이 없었다.


아르달하는 숲을 향해 추적추적 걷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드니까 발자국 같은 건 얼마든지 남아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기서 그대로 기든지 걷든지 달리든지 해서 숲까지만 내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순간, 아르달하는 궁금해졌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까 어둠 속에서 날렸던 화살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분명히.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었다고!


이미 원하는 걸 얻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평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사냥이 성공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저 맥이 빠지고 허무하기만 할 뿐.


화살을 찾아내면, 아니 화살을 찾아내야만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르달하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휘청대면서 뒤로 돌았다.


철벅, 철벅!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순간 발이 미끄러져 또 넘어졌다.


간신히 일어선 아르달하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 틈바구니를 헤집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 달빛 한 줄기가 땅에 꽂혀 있었다. 마치 그 자리를 아르달하에게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날다가 떨어져 땅에 꽂힌 화살처럼, 꼬리깃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달의 화살은 밤하늘을 뚫을 것처럼 발기되어 있었다. 그 빛에 홀린 듯 비척거리며 그곳을 향해 걷는 아르달하의 사타구니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었다. 아르달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이한 성욕을 느꼈다.


달이 화살촉으로 찍어준 바로 그 자리에 사슴뿔이 있었다.


사슴뿔은, 누군가 일부러 꽂아놓은 것처럼 흙에 박혀 있었다. 아니 땅을 뚫고 돋아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부러진 고목의 뿌리 같기도 했고, 땅 속에 묻힌 시신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으며, 쥐덫 위에 올려놓은 미끼 같기도 했다.


불길한 느낌이었다. 이유 없이, 눈이 흐릿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비라도 뿜어낼 것처럼 온몸이 우르르 떨렸다.


일단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풀린 다리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리막이었다. 아르달하는 쓰러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휘적휘적 계속 나아갔다. 추락하듯이 미끄러지고 흘러내렸다.


에라 이 썅! 모르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몬스터 먹고 영웅 접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숲과 야만 23.08.13 11 0 -
23 꼬일게요 23.08.12 17 0 10쪽
22 검은 매의 순간 23.08.11 8 0 10쪽
21 전역자의 재무장 23.08.08 10 0 10쪽
20 뒷거래 23.08.06 14 0 10쪽
19 또 만났네 23.08.05 14 0 9쪽
18 사소한 시비 23.08.04 14 0 10쪽
17 시그나스 23.08.03 13 0 10쪽
16 약기운 23.08.03 12 0 10쪽
15 먹으라고 23.08.03 9 0 10쪽
14 두 번째 약 23.08.03 9 0 10쪽
13 약값 23.08.02 10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3.08.02 10 0 10쪽
11 식빵과 약솥 23.08.02 10 0 10쪽
10 살인마 23.08.02 12 1 10쪽
9 베테랑 23.08.02 11 1 11쪽
8 내 눈 23.08.02 9 1 11쪽
7 만남 23.08.02 9 1 11쪽
6 추격자 23.08.02 9 1 10쪽
5 날개 23.08.02 11 1 11쪽
» 호기심이 사냥꾼을 23.08.02 12 1 11쪽
3 뿔과 흙의 시간 23.08.02 19 1 12쪽
2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3.08.02 25 0 11쪽
1 피가 멈춰 23.08.02 63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