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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몬스터 먹고 영웅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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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8.01 11:58
최근연재일 :
2023.08.12 21:3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328
추천수 :
9
글자수 :
105,701

작성
23.08.02 15:53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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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DUMMY

어릴 적부터 강 건너까지 소문이 짜하게 났었지. 웬 시커먼 놈들이 나를 불러내 손에 군것질거리를 쥐어주며 누나에게 쪽지를 전해달라고 애걸하곤 했었소. 그러면 나는 먹을 것만 쏙 집어먹고 쪽지는 아궁이에 던져버리곤 했지.


어려서 천지분간 못하던 시절이기는 했어도, 그런 놈들한테 누나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어릴 때 나는, 누나가 어디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왕자 같은 놈이랑 엮여서 나까지 신세 펴는 거 아닌가 하는 기대를 했던 적도 있었소. 그때도 내 삶은 개 같았으니까.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 혹시 제 손에 들어올까 싶으면 꽃을 꺾어주고 선물을 보내지만, 손에 영 안 들어올 것 같으면 아예 망가뜨리고 없애버리려 하니 말이오.


말했잖소. 약초를 캐서 먹고 사는 집이었다고. 마녀로 엮어 넣기에 그보다 좋은 집이 있었을 것 같소?


누군가 밀고를 했겠지. 아마 나한테 와서 쪽지를 주던 놈들 중 하나였을 거요.


바로 온가족이 다 잡혀 들어갔었소.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덕분에 그날 이후로 나는 오랜 시간 동안을 괴로워해야 했지. 내가 너무 어리고 철없이 굴어서 그런 일이 터진 게 아닐까, 만일 내가 그 쪽지들을 누나에게 제대로 전달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악독한 마음은 품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너무 자책하는 것 같다고? 글쎄... 내 추측이 맞을 거요. 아마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소. 한 번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적은 없었지만... 그래서 누나한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오.


그래 이제 알려드리지. 마녀사냥이 시작되면, 이단심판관들이 나타나서 가족과 이웃들을 다 잡아다 가두고 고문을 시작할 거요. 마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소. 아니 지금 생각하니 아예 말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군.


그날 우리도 완전히 몰살당할 판이었지.


그런데 변수가 있었소. 내가 너무 어렸던 거요. 그 덕에 나도 누나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 우습지 않소? 어리고 철이 없어서 불러들인 불행이, 어리다는 이유로 다시 홀연히 사라져버렸으니 말이오.


그날 나는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모든 방향으로 꿇어 엎드려 빌었소. 아주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 누구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거기 끌려가서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고 듣게 되면 다들 그렇게 되지. 마법사님도 예외는 아닐 거요.


거기서 누나와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던지를 다 말했소. 내가 먹을 것만 받아먹고 쪽지를 불태워서 그런 거라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지.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누나만은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이단심판관들은 대체로 맨 정신이 아닌 놈들이 임명된다오. 유일신의 사제들이라는 게 원래 평범한 사람들이랑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들이지만, 거기 나와있는 것들은 그 중에서도 정도가 가장 심한 놈들이란 말이오. 기억해 두는 게 좋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때는, 마음 한 구석에 자비심 한 조각쯤이 남아 있는 성직자가 있었던 모양이오. 덕분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지. 마녀 혐의로 붙잡아놓고 심문하던 사람들을 그렇게 금방 다 풀어줬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하더군.


내게 쪽지를 줬던 놈들도 그때 다 풀려났소.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지.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집중적으로 고문을 당했던 누나는 이듬해 여름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지. 솔직히 나는 누나가 평생 앉은뱅이로 살게 될 줄 알았소.


다행히 앉은뱅이가 되는 건 면했지만, 그 뒤로는 완전히 겁에 질려서 숲에 숨어들어 살게 됐으니 뭐... 어쩌면 더 안 좋게 풀린 걸 지도 모르지.


같은 동네 살던 그놈들이 어디 사람으로 보였겠소? 그림자만 보여도 피해 다니느라 바빴지. 그러다 혼기를 다 놓친 다음에야 매형을 만나게 됐던 거고. 어차피 매형도 떠돌이 처지였으니 신랑에게도 좋은 일이었지. 다행이었소.


아니. 이단심판관들은 칼로 찌르거나 채찍질을 하거나 하지 않소. 유일신의 자비로 마녀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피를 내지 않는 거라고 하던데... 크흐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그때 심문받던 사람들 중에는 차라리 칼로 찔러 죽여줬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니까.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잘 알지. 피를 내지 않는 대신, 온몸의 관절과 뼈를 다 비틀고 꺾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거든. 지금은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 내가 본 바로는 그랬소.


마법사님. 아들의 병을 고쳐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단심판관을 부를 거요.


아니. 아니라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요. 소용없소. 뭐라고 말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마녀인지 아닌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소.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마녀가 아니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지? 저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증좌가 될 텐데? 뭐건 사제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면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거요.


당장 여기를 다 불태우고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사냥을 하다 보면 알게 되오. 짐승들이 쫓겨 도망칠 때의 반응은 거의 다 비슷하다는 걸. 큰 짐승이건, 작은 짐승이건...


도망칠 수 없을 거요. 유일신의 사제들은 금방 흔적을 찾아낼 테니까. 내가 짐승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는 것처럼. 그 인간들을 보고 멍청한 고자새끼들이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절대로 무시할 만한 인간들이 아니었소. 그날 거기 끌려갔을 때 뼈저리게 느꼈지.


그리고 불을 지른다는 것 자체가 혐의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이런 시골구석에서는 도망칠 곳이 잘 보이지 않지. 끽해야 숲이나 산으로 도망가겠지만, 그런 곳에서 약한 여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아니 아니,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말했잖소. 나는 돈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오.


마법사님. 제발


내.

아들을.

살려주시오.


미안하오.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오. 이렇게 빌겠소. 부탁이오. 제발... 제발.


아아...! 고맙소. 정말이지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그럴 리가 있겠소? 너무 겸손하시군. 그렇게 두꺼운 마법책이 있으니 분명 내 아들의 병을 고칠 방법도 나와 있을 게요. 하지만 마법사님이 그 책을 찾아보는 동안 내가 옆에 가 있어도 되겠지? 그래야만 하오.


아니, 아니오. 걱정 마시오. 나는 그냥 석상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할 거니까.


왜? 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소? 당신이 이상한 주문을 외워 나를 골탕 먹일 생각이 아니라면!


괜찮소. 천천히 찾아보시오 마법사님. 나는 아주 오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냥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뭔지 아시오? 화살도 창도 아니오. 기다림이라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를 쓰고 인내하는, 시간의 무기지.


...뭐라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트롤? 트롤이라고?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그러니까 그게, 그놈의 병이 트롤의 피를 먹여야만 낫는 거였단 말이오?


트롤? 그게 얼마만한 놈인 줄 알고나 있소?


트롤의 피를 받아서 먹이라고? 아니 무슨... 와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아니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그게 말이 되냐요? 내가 트롤을 어떻게 잡냐고? 그리고 그런 괴물에게서 받아낸 피에 독이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안다는 거요?


뭐라고? 그대로 먹이면 안 되니까, 마법으로 한 번 더 가공을 해야 한다고?


...그럼 결국 당신에게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군.


...


하. 기가 막히는 소리요. 트롤이라니. 이대로 트롤을 잡으러 갔다간... 개죽음을 당할 텐데.


...혹시 나를 죽여 없애려고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지어낸 건 아닌가? 마법사 선생.


책에? 그렇게 나온다고? 그 망할 놈의 마법책에? 나는 그 책의 문자를 읽을 수 없소. 그러니 사실을 확인할 도리가 없지.


그렇다고 그런 소리를 무턱대고 믿을 수도 없소. 마법사님. 내 눈을 보고 말해보시오. 지금 그 말 정말이오?


하긴. 우스울 만도 하지. 느닷없이 쳐들어와 협박을 하고 있는 주제에 진실을 찾으려 하다니. 그래, 비웃고 싶으면 비웃으시오. 괜찮소, 이미 익숙해진 일이니까.


그렇지만 내 눈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오.


...짐승들을 사냥해오던 동안, 나는 사람이 거짓말 하는 순간을 알아볼 수 있게 됐소. 늘 짐승들 눈을 봐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게 된 거겠지.


짐승들 눈은 정직하오. 사람의 눈은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이런 제기랄. 거짓말이 아닌 것 같군. 당신의 눈은 숲의 작은 짐승들을 닮았소. 갓 태어난 아기들 눈이 그렇지.


이상해할 일도 아니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처럼 울던 사람이니 뭐...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이제 다른 걸 잘 모르겠군. 당신 정말 마법사가 맞기는 한 거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거요? 죽는 게 두려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오. 내가 죽어서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나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을 거요. 그러나 내가 값없이 개죽음을 당하게 되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될지...


사슴? 사슴고기? 그걸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아, 사슴고기가 아니라 사슴뿔을 구해 먹여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뿔을 어떻게 먹인다는 거요?


...그것 역시 여기로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군. 당신이 가공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가. 마법사님. 내가 죽을죄를 지었소...


그런데 정말이오? 정말 그렇게 하찮은 재료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돼 있소?


아... 병세가 호전되게 할 뿐이라는 거요...? 완치되는 게 아니라?


뭐, 그 정도라고 해도 좋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평생 사냥을 해 먹고 살면서도 사슴을 사냥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군.


그야 이 나라의 모든 사슴은 왕의 것이니까. 사슴사냥을 하다가 발각되는 즉시 참수당할 거요. 이 나라는, 왕과 귀족들이 사냥터에서 즐길 유희를 위해서 백성들이 굶주리게 돼 있는 곳이니까. 아마 평생 사슴고기를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죽는 놈들이 절대다수일걸? 그야 마법사님도 잘 알 것 아니오?


...뭐야. 당신 혹시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 거요?


뭐,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소. 병만 낫게 할 수 있다면야.


왕의 재산이니... 만약 사슴뿔을 손에 넣는다 해도, 언제 어떻게 잡혀 죽게 될지 몰라 마음 졸이게 되겠군. 그런 면에서는 트롤을 잡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트롤을 잡으면 당장 유명한 이야깃거리가 되고 인기를 얻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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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숲과 야만 23.08.13 11 0 -
23 꼬일게요 23.08.12 17 0 10쪽
22 검은 매의 순간 23.08.11 8 0 10쪽
21 전역자의 재무장 23.08.08 10 0 10쪽
20 뒷거래 23.08.06 14 0 10쪽
19 또 만났네 23.08.05 14 0 9쪽
18 사소한 시비 23.08.04 14 0 10쪽
17 시그나스 23.08.03 13 0 10쪽
16 약기운 23.08.03 12 0 10쪽
15 먹으라고 23.08.03 9 0 10쪽
14 두 번째 약 23.08.03 9 0 10쪽
13 약값 23.08.02 10 0 10쪽
12 이상하게 서운하네 23.08.02 10 0 10쪽
11 식빵과 약솥 23.08.02 10 0 10쪽
10 살인마 23.08.02 12 1 10쪽
9 베테랑 23.08.02 11 1 11쪽
8 내 눈 23.08.02 9 1 11쪽
7 만남 23.08.02 9 1 11쪽
6 추격자 23.08.02 9 1 10쪽
5 날개 23.08.02 11 1 11쪽
4 호기심이 사냥꾼을 23.08.02 11 1 11쪽
3 뿔과 흙의 시간 23.08.02 19 1 12쪽
» 하늘의 별을 따오라 그래 23.08.02 25 0 11쪽
1 피가 멈춰 23.08.02 6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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