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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유원's story.

엘리시아 황녀의 하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세유원
작품등록일 :
2012.11.21 23:11
최근연재일 :
2013.09.30 21:22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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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47
추천수 :
1,321
글자수 :
479,512

작성
12.12.1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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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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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1쪽

9화

DUMMY


09.


뭐냐, 저년은.

눈치가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둘다 인지.

어제 그 꼴을 당하고서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건 뭐하자는 수작이야?거기다 예의 없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보아하니 딸이라고 꽤나 곱게 곱게 키워진 것 같은데, 상대 잘못 골랐다, 계집아.

“어머, 일어나신지 얼마 안 됐나 보네요. 아, 맞다. 죄송해요. 시간 좀 걸린다기에 먼저 들어와서 기다렸어요.”

넌 그게 미안한 표정이냐?

멋대로 남의 방 들어온 주제에 겁도 없지. 그보다 밖에 있는 년놈들은 뭐하는 거야? 아무렴 내가 저년 보다 계급이 낮은 것도 아닐 텐데.

흐음, 어떤 대답을 할까.

내숭을 떨어볼까, 아니면 이왕 한번 한 거 그냥 성격 내보일까.

“듣자하니 낯가림 심하시고, 내성적이셔서 남들과 대화도 잘 못하신다구요?”

엘리시아가 나름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런 엘리시아의 행동에 유이나는 어이없다는 듯 조소를 머금었다.

“흥, 이제와서 그런 척 해봐야 내가 믿을 것 같나요? 혹시 낯을 가려서 아니라 그 더러운 입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요? 어떻게 황녀란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하? 꼴에 약간의 감은 있다?

하지만 그건 눈치 챘을지 언정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을 건들였으며,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게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은 모르는지 당돌하게 그녀는 엘리시아를 향해 적의어린 시선을 내보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저 계집이 무슨 말을 지껄일지 알 수 없었기에 빨리 하고 꺼지란 의미에서 엘리시아가 무심히 대꾸했다.

“그때 감히 나를 모욕한 거, 난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반드시 복수 할 거에요. 그리고 당신의 자리도 빼앗아주죠. 그때 아무리 울고 불고 매달려봤자 늦을 거란 말, 그 말 하려고 온거에요.”

하?

도대체 본인이 뭘 할 수 있다고 저리 자신감을 내보이는지.

엘리시아는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할 말을 마친 유이나는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엘리시아가 다소 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씨발.

아무리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덫이라지만 기분은 더럽게 더럽네.

엘리시아가 험악하게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나를 보자고 한 것이지?”

안그래도 바쁜데 굳이 자신과 만나고 싶어하는 간 큰 유이나의 행동에 아르한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에 유이나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때는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었지만, 제가 한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어요. 엘리시아 황녀 마마께서는 감히 황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정말 입에도 담지 못할 말을 내뱉으셨어요.”

호오?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지. 그 말이 무엇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만 꺼져줬음 좋겠군.”

냉정하고 차가운 그의 말에 유이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익숙해진 것 같았지만 새삼 이렇게 다시 그와 대화를 나누니 여전히 그의 말에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를 받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리 그가 황제라고 해도 그녀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심한 모욕이었다. 자신은 후작의 영애이고, 모든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하지만 그녀는 믿었다. 분명 그도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그저 그는 남들에 비해 까다로운 것 뿐이라고.

“제 입으론 말씀 드릴 수 없어요. 대신, 증명 해 드릴 수는 있어요.”

“호오, 어떻게 증명한다는 거지?”

“직접 보여드리죠. 아마 폐하께서도 그런 그녀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실망하실 거에요.”

그녀는 확신하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험악한, 그리고 그런 더러운 말을 내뱉는 황녀라니. 누구라도 정이 확 떨어질 것 같았다. 황녀로서 기본적인 교양도 모르는 사람이라.

만약 공작들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안다면 황녀의 자질을 핑계 삼아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것을 반대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가?”

“네. 황제 폐하께서 제 계획에 동참해주시기만 한다면요.”

그녀의 계획 자체는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보여준다는 그 상황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대답에 유이나는 그가 자신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기뻐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뭘?”

“히아르 후작 말입니다.”

감히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것도 그렇고, 후작 영애가 그녀에게 한 짓은 심히 그녀가 열 받아 하며 사건을 일으킬 만한 일이었기에 카얀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쨌든 다른 나라의 귀족을, 거기다 일개 귀족이 아닌 후작을 건드린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녀가 그 때문에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는 곤란해질 수 있었기에 미리 대응할 준비를 하고자 물은 것이었다.

“글쎄다?”

당장이라도 죽이겠다고 펄펄 날뛸 줄 알았던 그의 예상과 달리 잠잠한 그녀의 반응에 카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죽을려고 그러나?

“왠일이십니까?”

미묘하게 찌푸린 그의 얼굴에 뭐가 라며 엘리시아가 그를 노려보았다.

“단박에 죽이겠다고 펄펄 뛸 줄 알았습니다만?”

아아. 그럴거야. 설마 내가 그들을 살려둘려고.

“좀더 큰 재미를 위해 준비 좀 해둘려고.”

단순한 화를 위해 죽이는 것 보다 훗날 편해지기 위해서 다소의 조작은 필요할 것 같으니까. 조작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덫에 빠져들어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큭. 잠잠했던 황성 생활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녀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일도 좋지만, 그 재미있는 일이 가져다 줄 화풀이 사건도 참 좋지.


“오랜만입니다. 엘리시아님.”

엘리시아를 발견한 시엔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에 엘리시아가 띠꺼운 표정을 하며 겉으로는 다소곳하게 인사를 받았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굳이 자신을 사냥터에 데리고 가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물론 그녀는 사냥을 상당히 좋아하고, 날뛰는 것도 좋아하지만 거기에 방해꾼이 끼는 것은 사절이었다. 그것이 특히 아르한이라는 재수없는 자식이라면 더더욱 사절이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시엔의 뒤에 있던 하리안도 엘리시아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인사가 끝나고, 사냥 준비를 마친 아르한도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그 옷을 입고 갈 생각인가?”

엘리시아의 옷차림을 훑어보던 아르한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 엘리시아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안그래도 이런 치렁치렁한 옷 입고 싶어서 입은게 아닌데, 그것 가지고 지적질이니 심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도 이 옷 입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있는 옷이라는게 죄다 이런 옷에다, 그나마 가장 심플하고 편한 것으로 고른게 이거였다. 진짜 이거 하나 고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새삼 회상하니 더욱 짜증이 났다.

“확실히 사냥을 나가시엔 옷이 좀 걸리시겠군요.”

시엔 역시 아르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옷, 다시 갈아입고 오도록. 제발 사냥터에 걸맞는 옷을 입고 왔으면 좋겠군.”

하? 주고 말을 하지?

나보고 직접 옷을 만들어서 입으라는 것도 아니고.

짜증이 난 엘리시아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려는 자신의 손을 애써 참으며 인상을 구기고 뒤돌아섰다. 그 뒤를 카얀이 한숨을 쉬며 따라갔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제가 알기론 옷장엔 드레스 말고 따로 사냥을 할 때 입을 만한 옷은 본 적 없습니다만?”

그녀와 함께 옷을 골랐던 그였기에 옷장의 상황을 되새기며 물었다.

“그냥 넌 입 닥쳐.”

말하기도 짜증난다는 듯 대답한 엘리시아는 방에 도착하자 품 속에 숨겨놓은 단검을 꺼내 드레스를 짧게 잘랐다. 덕분에 드레스는 무릎 위로 확 짧게 쳐졌고, 그녀는 몸에 치덕치덕 붙어있는 레이스마저 쫙 다 뜯어냈다. 그러고 나니 제법 심플해지고, 치렁치렁한 부분이 사라진 것이 사냥을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바로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창에 달려있던 커튼을 뜯어 간단한 수작업을 통해 로브 형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커튼을 리폼하여 만든 로브를 몸에 걸쳤다. 그러니 황족으로서 너무 많은 노출을 한 살들이 대충 가려졌다.

호오?

금세 단촐한 모습으로 돌아온 엘리시아의 모습에 아르한이 이채를 띠었다. 솔직히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옷장에 있는 옷들은 죄다 무도회나 일상생활을 할 때에 입을 만한 드레스로 사냥을 할 때 입기에 적당한 옷들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가 굳이 그녀의 옷차림을 지적질 한 것은 그녀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예상외의 결과를 보여주다니. 훌륭하게 옷을 잘라내고, 커튼으로 보이는 천을 걸친 엘리시아의 행동은 생각 이상이었다. 특히나 황족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본인으로선 나름대로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연기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격을 완전히 커버하지 못했다. 그 중간 중간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의 단편들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잘 어울리는 군.”

시비냐?

비스듬히 웃는 모습은 얼핏 칭찬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절대 그의 말을 곱게 받아들일 수 없는 그녀였다. 특히나 그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들로 보았을 때 결코 그녀에게 좋은 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욕을 했다고 볼 수도 없었기에 엘리시아는 대충 넘어갔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빌어먹을.

그녀 자신도 말을 탈 수 있건만, 굳이 자신을 그의 뒤에 태우는 저의가 무엇인지 엘리시아는 이를 부득 갈았다. 물론 이해가 가기도 했다. 오랫동안 검술을 익히고 단련을 해온 그들이니, 황녀인 그녀가 그들을 따라오는 것이 무리라 생각하여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그의 뒤에 타야 한다는 것이, 그와 같은 말을 타고, 그로 인해 그와 신체접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싫었다. 특히나 남들과의 접촉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그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그것을 카얀 또한 알고 있었기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엘리시아가 중간에 폭발하여 아르한의 목을 조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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