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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님의 서재입니다.

무영창의 마법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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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3.10.31 19:07
최근연재일 :
2024.05.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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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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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장례식 1

DUMMY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해가 뜨고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들이닥친 내게 아이샤는 궁금한 게 많아 보였지만 선뜻 묻지 못했다.


아이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고 하더라도 난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할아버지를 잃어야 한다고?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 대의가 되어 버렸고, 대의를 이루기 위해 다시 한 번 할아버지를 잃어야 한다는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중한 것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힘을 손에 넣었는데, 그 힘에 세계의 책임이 달려있다면.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소중한 것을 희생해야 한다면.


이 모순을 스스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건만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나 대신 소식을 가져 온 것은 란기트와 키리에였다.


"······유젤."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할 무렵.

새벽에 나타난 나는 물론이고 란기트와 키리에까지 기존에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빨리 술고래 여관에 나타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통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는 나와 영문을 모르고 당황해 있는 아이샤를 볼 수 있었다.


아이샤와 달리, 두 사람은 술고래 여관에 자리 잡고 있던 날 보고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이 들고 온 것은 수도 전체에 퍼지고 있는 소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키리에가 천천히 내뱉었다.


"이제르바이잔 님이······."


다음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키리에의 입에서 짐작이 확실한 사실로 자리매김한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옆에서 아이샤의 새된 비명이 튀어나왔다.


"······무······."


"오늘 아침에 발표된 소식이다."


"······어떻게······."


새벽에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카달리우스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놀라지 않는군.

알고 있었나?"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침통한 표정의 키리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짐작했을 뿐이야."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어제 황궁에 숨어들었던 일과 동쪽 궁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이제르바이잔 님이 일부러 황궁에 남아계셨다고?"


아이샤가 창백해진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내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곧이어 이렇게 덧붙였으니까.


"······이제르바이잔 님이 하시려고 한 건 뭘까?"


"할아버지는 날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어."


"······돌아가셨는데도?"


내 말에도 불구하고 란기트는 회의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옆에서 키리에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돌아가실 분이 아니지."


그 말에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투.

키리에는 한층 더 단단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아는 이제르바이잔 님은 그렇다.

그렇지 않나, 유젤?"


키리에는 그렇게 말하며 날 똑바로 쳐다봤고, 난 흔들림없는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았다.

그리고 나 또한 떠올렸다.

우리 할아버지, 대마법사 이제르바이잔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그래,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헛되게 소비하게 두실 분이 아니시지."


분명 할아버지는 자신이 날 돕기 위해 그곳에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비록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지라도 무언가 카달리우스의 발목을 잡을 만한 일을 하고 가셨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때, 우리 셋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내 이제껏 별다른 이견없이 말을 듣고 있던 란기트가 입을 열었다.

란기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뜻밖의 소식이었다.


"장례식을 연다던데."


"누가?"


"황실 주관하에, 카달리우스가 직접."


"······이제르바이잔 님은 카달리우스에게 살해당하신 게 아닌가······?"


그렇게 내뱉는 아이샤의 기막힌 얼굴은 내 심정을 온전히 대변해주는 느낌이었다.

아니, 카달리우스 이 미친 새끼가?


"정황상 그게 맞겠지."


"근데 장례식을 치룬다고? 황실에서?"


황당해하는 아이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지만, 란기트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난 자꾸 터져나오는 욕지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빌어처먹을 도마뱀 새끼가 진짜······."


싸늘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지만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를 모양이야."


"대체 무슨 속셈이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황족이나 그에 버금가는 업적을 지닌 위인에게나 허락되는 일이다.

내 할아버지는 충분히 그만한 위인이라 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른다는 것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나를 불러들이려는 속셈이군."


할아버지는 똑같이 돌아가셨다.

훨씬 빠르게.

이전 생에서는 죄인으로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다지만, 이번에는 황족에 버금갈 정도로 성대한 장례식이 열릴 거란 것이 다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내 존재.

이전 생과 확연히 달라진 내가 가진 힘.

대마법사의 하나 뿐인 손자 외에는 가치가 없었던 이전 생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할아버지 이상으로 카달리우스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다.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카달리우스가 엘스티야 황가와 맺은 맹약을 조정하는 데에 카이샤르의 피가 필요했다면, 그래서 내 할아버지를 희생시켰다면······.

하나 뿐인 혈육을 잃은 내가 놈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라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이전 생에도 내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달라진 것은 내가 가진 힘.

이전 생에서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애송이 마법사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놈에게 충분히 경계해야할만한 존재가 된 것읻다.


"함정이라는 뜻인가?"


"그럴 확률이 높지."


내가 그렇게 내뱉자 세 사람에게서 동시에 곤란한 기색이 나타났다.

란기트는 미간을 찌푸렸고, 키리에는 어딘가 분한 사람처럼 턱을 악물었다.

특히나 아이샤에게서는 슬픔이 느껴졌다.

세 사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짐작되었기에, 그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나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장례식에는 갈 거야."


"갈 거라고?"


"그래. 국장으로 성대하게 치뤄준다는데 빠질 수 없지."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세 사람은 동시에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함정일 거라고 했잖아?"


"위험한 걸 알면서도 가겠다고?"


"동시에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해."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황실 주관하게 카달리우스가 '직접' 한다고 했다.

그럼 분명 그 자리에 놈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아니, 틀림없이 나타나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카달리우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지금보다 조건은 훨씬 나아진다.

나를 불러낸 것은 카달리우스지만 놈 또한 내게 노출되는 것이다.


"······괜찮겠나?"


그렇게 묻는 키리에의 표정을 복잡했다.

키리에의 그 물음은 무척 복합적인 질문이었으니까.

나 또한 이러 의미를 함께 담아 대꾸했다.


"괜찮아."


설사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한다.

이것은 내가 줄곧 원한 일이자 내가 해내야 하는 의무다.

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어."


내 단호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키리에는 나를 오랫동안 마주봤다.

마치 내 각오를 살피려는 사람처럼.

키리에는 그렇게 한참의 침묵 끝에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알겠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뭐지?"




*




"화려하군."


옆에서 란기트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눈앞의 광경이 불쾌한 모양인지 목소리가 잔뜩 곤두서 있었다.


"쓸데없다고 생각될 정도야."


키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아이샤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푹 뒤집어쓴 후드 아래로 보이는 턱이 단단히 다물리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황제의 장례식인 줄 알겠어."


자조적인 말에 일순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은 것이 느껴졌다.

내 혼잣말을 들은 것은 내 일행들 뿐이겠지만, 그들이 얼어붙은 것은 내가 황제를 운운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눈앞의 풍경은 마치 축제 직전의 소란스러움을 닮아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눈앞의 광경, 이전 생의 초라함과는 대비되는 화려함이 내게 상당한 어지럼증을 유발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화려한 장례식을 연단 말인가.


새벽에 멀쩡히 살아계신 할아버지와 만났으니 할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리 빨라도 아침 나절이다.

아마, 내가 황궁을 빠져나온 직후에 일어난 일이겠지.


할아버지 본인이 각오하신 일이라고 하지만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무엇을 각오하셨는지 알기 때문에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수도 없을 노릇이니까.


카달리우스가 이토록 화려하게 일을 키웠지만, 제대로 된 장례 절차를 갖추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온전할까?

아니, 반드시 온전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니 기껏해야 초종(初終)이 끝난 후 습(襲)의 절차가 막 끝났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장례 절차는 이미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을 거쳐 염의 절차를 마친 모양이었다.


장례식으로 날 불러내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나?


"뭘 위해서 저러는지 알잖아."


아이샤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단단히 감싸쥐었다.

격해지는 내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아이샤의 시도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 그림자에 숨어있는 가르누달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으니까.

아마 아이샤가 말리지 않았다면 나 대신 가르누달이 자리에서 튀어나갔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나는 깊게 심호흡하며 아이샤를 향해 말했다.


"······알아."


평소에도 롱누스와 가르누달, 키르모시아나는 내 감정에 쉽게 동홛되는데, 오늘은 유난히 영향을 많이 받는 모양이었다.

특히 가르누달이.


'······롱누스나 키르모시아나랑 달리 형태가 불분명해서 그런가?'


실제로 가르누달은 유난히 내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르누달 단독으로는 형체가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는 중이었는데, 키리에가 나즈막히 내 이름을 불렀다.


"······유젤."


나는 묻는 대신 키리에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키리에는 그런 내게 여전히 목소리를 낮춘 채 속삭였다.


"왼쪽에서 일곱번째. 아이올리아 학장이다."


키리에게 말한 것은 날 향해서였는데, 당황한 것은 란기트였다.

······맞다, 란기트는······.


"······왜 그러지?"


란기트의 기겁하는 반응에 키리에가 의아하게 묻자, 사색이 되며 고개를 숙이는 란기트 대신 내가 설명했다.


"란기트가 아이올리아 학장과 악연이 있거든."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란기트가 멜젤른 아카데미에 숨어들었다가 아이올리아 학장에게 붙잡힐 뻔 했다는 걸.

나조차 잊고 있던 사실인데 키리에와 아이샤, 두 사람은 모르는 일이 당연했다.


"아이올리아 학장 님과?"


그러니 키리에가 의아하게 되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당장 키리에에게 '란기트가 멜젤른 아카데미 도서관에 몰래 들어와서 서쪽 서가를 부쉈던 범인' 이라고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키리에에게 사실대로 설명하는 대신 대충 얼버무려 버렸다.


"그럴 일이 있어.

란기트, 너는 최대한 마법은 안 쓰는 게 좋겠다."


란기트는 아이올리아 학장과 마법으로 부딪힌 일이 있으니, 그녀가 란기트의 마법적 특색을 알아차릴 확률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란기트는 대꾸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 저 뒤집어쓴 후드 밑에는 사색이 된 녀석의 얼굴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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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장례식 5 +2 24.04.14 18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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