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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개


[얼개] 나도 모름.

CT4.


♧ 요하스

“물론 주인공이 그런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주인공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을 유지한 거니까요. 고지에 설 수 있음에도 등을 돌리는 게 마녀와는 조금도 관계를 개선할 여지를 두지 않으려 하는 거죠. 그걸 보니 사람 사이는 어느 한 쪽의 변화만으로 달라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님.”


소파에 엎어져서 펜을 끄적이는 요네즈를 보고 요하스는 염려했다. 내일 첫 수업을 해야 하는 요네즈였다. 요하스는 그녀가 딱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걸 보지 못했다. 이듀르웬이었다면 어련히 잘 하겠지 믿겠지마는 요네즈도 그러할지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곳 세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니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거라 짐작했는데 그렇지도 않아서 불만족스러웠다. 요네즈가 무엇이든 혼자 해내는 독립성을 갖추는 걸 요하스는 원치 않았다.


요하스는 찰나 재보다가 요네즈를 마주 끌어안았다. 장밋빛 머리칼이 보들보들하고 향기로웠다. 맞닿은 골육의 무게가 적당하여 안고 있으니 신기하게 편해졌다. 이래서 그녀가 늘 저를 끌어안았나 보다.


“아직도 덜 깼어?”

덜 깼냐는 물음에 요하스는 생각해볼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덜 깼다. 요네즈가 폭소를 터트리며 젖은 손을 요하스에게 내뻗었다. 애늙은이지만 잠투정할 건 다 하는 요하스다.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어도 새로 떠다줄 수는 있어요.”


포크 끝에는 마늘로 된 피클이 꽂혀 있었다. 요하스는 요네즈의 눈치를 봤다. 누이는 그저 어여쁘게 빙긋빙긋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편식하겠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요하스는 갈등하다가 포크를 물었다. 요네즈가 연이어 숟가락으로 롤도 떠다 줬다. 요하스는 얌전히 받아먹었다. 통통한 마늘을 이로 짓이길 때 흘러나오는 그 미묘한 쓴맛을 지울 수 있다면 뭐라도 먹을 것이었다. 요하스는 오물오물거리며 요네즈를 흘겼다. 저는 누이에게 맛있는 것만 주려고 하는데 요네즈는 자신에게 피하는 것만 떠먹여준다. 어느 쪽이 나쁘냐면 편식하는 쪽이 나쁜 거라 요하스는 군말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는 요네즈 곁에 서서 요하스는 걸음걸이를 늦추었다. 같이 걸어주는 것을 알아챈 요네즈가 요하스의 등을 떠밀며 씩씩 댔다. 요하스는 그저 웃을 뿐 먼저 나아가진 않았다.


이다지도 사랑하면서도 알아보지는 못한다는 것. 애당초 그 애정은 성혈이라는 육신을 향한 것이었나 하는 미약한 불신감이 술렁거렸다. 고귀한 영혼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었다.



◇ 세피아

“그렇구나, 공들여 전하였건만 그 쓸모를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법이지. 왜 갖고 놀지 않아 뮤 류클리오스를 슬프게 만드는 거냐, 어린 귀브.”


수백의 기사와 십여 명의 마법사가 지키는 왕성에서도 세피아는 몇 번이고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았었다. 어제까지 측근이었던 자가 돌변하여 공주와 동반자살을 꾀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제 존재를 기억해달라며 눈앞에서 독약을 마신 자도 있었고 공주의 정원에 숨어 들어가 목매단 자도 많았다. 세피아는 그런 자들로 인해 거동을 제한받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요네즈는 뚱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저 관념은 신분 차이 이전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인식 차이다. 부와 명예, 사람, 재능이 넘쳐나는 세피아가 개중 흥미로운 것을 택하는 의미와 몸뚱이조차 타인의 것인 자신이 마법을 택한 의미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헌데도 열등감과 박탈감이 들끓어 요네즈는 교편으로 자기 손바닥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 시오나

“이듀르웬인 걸 알아주었으면 하지만 힘들어하니까, 그렇게 싫다면, 그게 행복하다면 요네즈라고, 그리 부르려는 데도 그 앤 그것도 거부해. 그 아이가 속으로는 이듀르웬인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걸까? 자기는 아니라고 고집부리면서 나보고는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 뭐든 그 애 마음의 한 줄기 글귀라도 알았으면.”



♪ 요네즈

정원에 혼자 있으니까 별 문제의식 없이 흥얼거렸더니 이번엔 목소리가 얼마나 먼 곳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었다. 요네즈는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듣기만 했는데 환상을 보여주거나 심리를 조종하는 목소리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소름끼치고 끔찍할 것이었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나 요하스가 깨닫게 하고 싶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안 좋게 볼만한 짓을 했는데 왜 좋게 보길 바라야 해?”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어. 못 보일 필요도 없지. 그냥 날 알아주었으면 하는 사람에게만 나를 보여주면 되는 거야.”

티-파티의 영랑영애들에게도, 귀브가의 사람들에게도, 못 보이려고 한 적은 없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과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 이해합치가 되지 않아서 어긋나버리는 거다. 요네즈는 이듀르웬이 아닌 걸 구구절절 그들이 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그냥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과 섞여 살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듀르웬이란 이름을 마무리해주기 위해서 눌러앉은 거지, 육신에 대한 그런 예의도 차릴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 자리에도 없었을 것이었다.


세 시간쯤이 지났을 때 요네즈는 정신이 들었다. 이 이상 자면 안 돼. 신경을 타고 내리는 의식 한 줄기가 이상해 요네즈는 덜 깬 머리로 생각을 수정했다. 이 이상 못 자는 거겠지. 그제야 납득이 가서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내려가려는데 팔목이 붙잡혔다.


‘속이는 게 살기 편하네.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


아침부터 욕탕의 물을 가득 채운 요네즈는 대충 헹군 몸을 잠갔다. 잠수해서 머리끝까지 물속에 담갔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았다. 숨통을 막으면 몸뚱이는 살 생각밖에 안 한다. 숨을 참을 만큼 참았다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요네즈는 심호흡을 한 후 재차 입수했다.


요네즈는 요하스의 이목구미를 찬찬히 훑어 내렸다. 성장기가 오면 비율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눈코입의 조형이 잘 잡혀 있는 생김새였다. 장성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으로라도 썩 그려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저기서 더 잘나지는 것도 겁나고 저기서 못나지는 것도 겁난다. 지금 그대로만으로도 좋구나 싶었다. 섣부르지 않는 눈빛과 안정된 호흡과 무게를 아는 입술, 그렇게 외면을 통해 드러나는 요하스의 내면. 지금 그대로만 자라도 좋구나 싶다.

타고난 천성이 후천적 조건과 엮어 성품이 한창 자리 잡혀 가는 나이다. 요네즈는 요하스의 뿌리에 상처 같은 건 될 수 있으면 적게 남기고 싶었다. 친누이가 사라졌는데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세상이 열 살짜리 가슴속에 어떻게 남았는지 요네즈는 모른다. 그 속을 건드릴 엄두도 안 나서 아이의 머리만 쓰다듬어주었다. 처음으로 보아준 아이. 유일하게 상처를 나눈 아이.


“이게 안 어울려 보인다고요?”

요네즈는 키득거리며 목깃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단추를 목까지 채우면 갑갑한 느낌이 들어서 잡아당기는 손버릇이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밖에 못 보시나요, 백작 부인.”


두 노마법사가 주고받은 얘기의 주인공은 시녀장을 뜻하는 것일 테였다. 그 정도는 눈치로 알아먹은 요네즈가 조용해졌다. 무언지는 몰라도 노마법사들이 말하는 시녀장의 이면을 알고 싶지 않았다. 모름지기 봉인된 것은 봉인된 채로 놔두는 것이 본인에게 이롭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라.’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무엇을 목표하건 한계가 있을 거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들으니 오기가 난다. 의문이 차올랐다. 휴알레이가 본 제 한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해본 본인의 한계점은 어디인가.

“귀브 백작 영애!”

되짚어 본 짓이 한심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요네즈는 한계를 염두에 두는 편이 아니었다. 매사 호불호를 따져 행동했는지라, 좋아하는 것을 적정 수준으로만 좋아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싫어하는 것을 덜 싫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옳고 그름 따지기를 좋아해서 ‘이건 아니다.’ 싶으면 불이익을 보더라도 하지 않았고, 원치 않은 일을 인내하기도 했다.

‘어디까지 할 것이다, 가 아니라 아직 할 만한가, 지.’



@ 무슈

무슈는 그가 반나절 동안 고민한 것을 단번에 해결해버리는 요네즈를 보고 멍해졌다. 뭐든 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그에게 저런 발상은 불가능했다. 마법보다 손발을 이용하는 게 더 간편할 줄이야!


한 몸 던져 사브리나를 웃긴 요네즈는 골몰했다. 최면이나 세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두 사람에게만큼은 밝혀두었다. 사브리나는 매혹적인 신곡을 듣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지 않겠냐며 웃었고 무슈는 마땅히 높은 경지에 낮은 경지의 마법사가 지배당하는 거라고 심각하지 않게 응해줬다. 그런 두 사람이었다.


☆ 사브리나

주고받은 것을 염두에 두지 말고 속내만 밝히라 하면 사브리나는 답이 이미 확고했다. 프레쉬 후작의 금은보화도 쥬느왕의 티아라도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대지 위를 떠돌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가무를 나누는 것을 그만 둘 수 없었다.



◎ 장소

그렇게 아침식사를 끝마친 요네즈는 귀브저 부지에서도 고용인들이 머무는 사관으로 이동했다. 사관은 귀브의 주인들이 머무는 본저택보다는 단조로운 양식의 건물이었으나 붉은 벽돌을 따라 기어오른 담쟁이덩굴이 멋들어져 나름의 멋이 있어 보였다.

요네즈는 사관저의 현관을 무시하고 지나쳐 덩굴식물의 자주색 열매가 맺힌 벽 가를 쭉 걸어갔다. 사관저의 측면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회색빛 출입문이 놓여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란 딱지가 붙어있는 지하실 문을 열자 지하 공간 특유의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왔다. 문을 닫자 빛 한 점 들지 않는 암흑공간이 되었기에 요네즈는 입구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봉을 손에 들었다. 야광봉의 불을 켜자 계단 바깥쪽에 도색된 야광 염료가 반사광을 띠었다. 조금 깊숙이, 원형으로 된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갔다. 저 아래 빛이 보였다. 지하층은 멀지 않았다.

첫 방은 문이 없어 공실의 불빛이 계단에까지 퍼져 나올 수 있었다. 그 공실 안엔 파르스름한 불빛을 무대 삼아 새하얀 가운을 입은 웨일스가 서 있었다.


● 삶

사브리나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인성은 둘째 치고 무리장으로서 참한 쉐든이었다. 무능력한 상사를 힐난하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온 요네즈는 사브리나의 무리 구성이 흥미로웠다. 그간에는 관심 한 번 없다가 그들이 떠날 때가 되어서야 개개인들의 좋은 점이 눈에 띄었다.


“춤은 분위기입니다. 분위기란 공기죠. 어느 곳이든 공기가 없는 곳은 없어요. 그 자리에서 호흡하는 것부터 이미 춤은 시작된 거예요. 공기를 읽고 분위기의 중심을 자신 안에 담는 것입니다. 남은 건 표현하는 거죠. 이것만 되면 춤을 못 춘다고 할 수가 없지요. 아시죠?”


궁정 시녀들은 요네즈가 배타적이란 걸 알았다. 수다 떠는 것을 원치 않는 상전에게 맞춰 그녀들은 해야 할 말수를 줄였다. 그리해 불편해지는 것은 요네즈일 테지만 시녀들은 굳이 눈총 받으며 한마디 더 들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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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개 | 나도 모름. 14-06-07
2 얼개 | 00. 해피엔딩 *4 1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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