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다. 이 사건 때문에 눈물도 났다.
작가 분에 대해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작품이란 게 있다.
저마다 얘기하고자 하는 건 다르다.
하지만 공간은 제한적이다. 하늘. 바다. 땅. 들판. 집. 숲. 똑같은 거 쓴다.
사건도 제한적이다. 생노병사. 희노애락. 똑같은 거 쓴다.
삶도 한정적이다.
겹칠 수밖에 없다.
작품과 작품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다.
작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겹침은 나눔이고 물려줌이라고 봐야 한다.
미치겠는 건 독자들의 반응이다.
깐다.
까내린다.
그린 사람은 논외로 치고 두 작품 다 어여쁜데 작품을 내리깐다.
흔하고 클리셰고 특별할 거 없다고.
작품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보고서 심상에 남아야 한다. 수작이라면 남는 게 있다.
그것이 있다면 온갖 클리셰를 가져다 썼어도 좋은 작품이고,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독특하고 기발해도 못 볼 것이다.
스토리 뿐만이 아니다.
그림 역시 특별히 이쁜 그림체가 아니라도 인상적인 한 컷이 있잖나.
그런 거다. 그걸 봐야 한다. 그것도 표현 못하는 작품이 세상 천지에 깔렸다.
표현해내지 못한 작품이 쓰레기인 게 아니라 표현해낸 작품이 뛰어난 것이다.
뛰어난 것을 일반화하지 말라.
미치겠는 건 추 작가 분의 대응이 추잡해서 싫은데 그래도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는 거다.
이건 정말 미치겠다.
이번 편을 봤다.
클리셰라고 하든 뭐든.
누군가는 아주 많이 봐서 질린 걸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 소재를 작가가 다시금 재해석해 자기 색깔로 내뱉어낸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게 있다고.
작품에 대한 어떤 것을 작가가 담아서 표현하고 있다고.
그게 대단한 건데,
정말 대단한 건데,
그렇게 당신이 자부심 가져도 그럴 만 하다 싶은 건데,
하필 그것으로 타인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억눌렀냐는 거다.
그러지 않았겠지.
줄 그은 건 그냥 내 추측이다.
추 작가 분이 남긴 사과글이란 걸 보고 그런 피상밖에 받지 못했다.
슬프다.
모르겠다.
미치겠는 건 그 작품을 응원한다.
그리는 사람인 당신을 응원한다.
하지만 당신 자체는 응원하지 않는다.
나 말고도 손가락질 할 사람은 많으니까,
줄이겠다.
당신 작품이 좋아서 그 작품을 응원하는
내가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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