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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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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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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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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대책 회의

DUMMY

구급차와 순찰차는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에게 고해곤이라는 60대 남성을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미랑과 훈련사까지 우리 세 사람은 관할 경찰서에 가서 목격 당시 상황을 진술해야 했다.


사망 직후에 발견된 게 아니고 아직 타살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질문은 없었다.

다만 고박사를 찾으려 했던 동기 부분은 좀 꾸며서 말해야 했다. 중간자의 존재를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고박사에게 공격성을 가진 동물에 대해 자문을 받았던 지인이라고 둘러댔다. ‘여전히 동물 연구에 열정을 가진 고박사가 스스로 연구실을 불태우고 잠적했을 리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휴일을 맞아서 찾아 나서 봤다’고 살짝 꾸며서 말했다.

관할서 형사들은 내 오지랖을 딱히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기철이 형과 통화를 했다.

조수석의 미랑은 중간자 친구들과 문자를 교환했다. 그들에게 고박사 사망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겉보기로는 외상은 없었어요. 물론 옷 안엔 못 봤지만.”

“그 집이 고박사랑 관계가 있는 집이래?”

“저도 직접 본 거 외에는 잘 몰라요. 그쪽 형사들도 아직은 파악 단계인 것 같고요. 근데··· 동네 사람들 말하는 거 듣기로는 고박사가 그쪽에 연고는 없다는 것 같아요.”

“부패는 진행되지 않아 보였다고?”

“네. 겉보기에는요. 다른 냄새랑 섞이긴 했지만 썩는 냄새도 없는 것 같았고요.”

“봄 날씨니까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날 텐데···”

“그러게요. 우리가 조금만 일찍 갔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요?”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다. 살릴지 죽일지는 아무도 몰라. 오늘 찾아낸 것만 해도 빠른 거야.”


맞는 말이었다.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옆에서 스피커폰 소리를 듣고 있던 미랑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었다. 나와 기철이 형은 서로를 격려하고 통화를 마쳤다.


“뭘까? 진짜 혼술 때문일까?”

미랑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술 먹다가 죽은 게 아니라고 부정한 게 아니었다. 나의 성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였다.


“전화 먼저 해요.”

“누구한테요?”

“번개 훈련사.”


아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왔다가 사망 현장은 물론 경찰서까지 동행하느라 시간을 뺏긴 사람.


“고마워요.”

물론 훈련사한테 감사해야 하지만 먼저 미랑이 고마웠다. 혼자서는 까먹었을 일인데 세심한 동반자 덕에 챙길 수 있었다.


사람 좋은 훈련사는 번개가 제 실력을 입증해 보인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술과 과일을 늦게 배달했지만 집안 잔치에도 별 지장이 없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다음날인 월요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한 강력반엔 기철이 형이 와 있었다.

“형님, 벌써 출근이에요?”

“내일까지 병가고. 모레부터야. 오늘은 적응 훈련. 회사 오는 길 잊어먹을까 봐.”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장님이 끼어들었다.

“경찰서 전기 쓰려고 나온 거랜다. 집에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께임이 잘 안 된대.”

“그럼 레벨업하려고 사무실 나온 거예요?”

“왜들 이러시나? 업무 들어가기 전에 꼼꼼하게 예습하려는 사람한테.”


말한 대로 받아들인다면 기철이 형은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김반장님께서는 나와 내 파트너 기철이 형을 조금 미심쩍게 봐온 게 사실이다. 내가 신호진 사건과 용근이 체포 때 괴존재를 언급한 다음부터 나와 기철이 형의 언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기철이 형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에 자율 출근에 이은 자율 퇴근을 실천했다.

“께임하러 온 줄 알았더니 밥 먹으러 온 거구만.”

반장님이 뒤통수에 대고 평가질을 했지만 기철이 형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면서 깁스한 팔만 흔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오전 내내 기철이 형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시 받은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경찰다운 일을 하긴 했다.

그리고 식후 연초를 태우면서 오전에 알아낸 것들을 나에게 전달해 줬었다.


“니가 얘기한 대로 고박사는 그 동네에 연고가 없어. 그리고 사망 추정 시간은 발견되기 약 15시간에서 20시간 전이래. 토요일 한밤중쯤 되는 거지.”

“목격한 사람은 없대요?”

“구멍가게 주인이 봤대. 금요일날 밤에 술 사러 왔는데 못 보던 사람이라 기억이 난다고 했대.”


고박사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1.8리터짜리 25도 담금주용 소주를 사 갔다고 했다.

제 발로 혼자 가게에 와서 술을 사 간 알코올 중독자가 고박사다. 그리고 그는 술병이 나뒹구는 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러면 살인사건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에 의한 급사로 보는 게 상식이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 먹다가 죽었다. 그렇게 결론 나기가 쉽겠네요?”

“그러겠지. 화재도 셀프 방화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


원래 고박사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다가 학계에서 쫓겨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야생동물 반 인간 반인 이상한 존재가 있다는 말 같지 않은 이론을 떠들던 주정뱅이. 망상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자 완전히 술독에 빠져버린 알코올 중독자. 결국 이 정신병자는 자기 연구실을 스스로 불태워 버리고 남의 빈집에 들어가서 무지막지하게 술을 퍼마시다가 급사했다.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연고가 없는 동네로 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죽은 건 이상해 보이잖아요?”

“이상하긴 하지. 정상인이라면 그런 짓을 안 하겠지. 그런데 맛 간 주정뱅이들은 상식 같은 건 가볍게 초월하잖아.”


그랬다. 사고를 당한, 아니 사고를 친 주정뱅이 가족들은 경찰의 결론이 말도 안 된다고 항의를 하곤 한다. 아무리 술을 마셨다 해도 자기 심신을 해치는 위험한 행동을 무슨 이유로 하겠냐고 따지는 거다.

경찰이 다른 범죄를 은폐하고 수사를 덮으려고 몰상식한 소리를 한다고도 주장한다. 사회면 댓글에도 그런 비판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나도 의식을 잃고 개꼬장을 부려봐서 아주 쪼금 알기도 하고···

수많은 만취 행패 또는 사고자들을 겪어본 짭새 입장에서 볼 때, 주정뱅이들의 초현실적인 행동은 자주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기철이 형과 나는 동시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로 한숨을 대신한 거였다.


“과수팀에선 뭐라고 그런대요?”

“부검 결과가 나와야 확실하겠지만,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으로 본대. 꽐라들 쇼크나 호흡곤란으로 가는 경우 종종 있으니까.”


알코올 중독 급사라··· 상황이 설득력이 있다는 게 더 기분이 나빴다.


“만약 누군가 고박사를 죽게 만든 거라면···”

“어려울 거야. 밝혀내기가···”


불길했다. 높고 두터운 벽에 부딪친 느낌. 만만찮은 놈들이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미랑의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식후에 옥,희와 천연호 씨 아이는 아직 내 명의로 돼 있는 옥탑방과 옥상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고 성인들은 3층에서 일종의 회의를 했다.


“주성 씨가 최근에 고박사 만났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자기 연구실에 불지르고 죽어라 퍼마셨을까요?”

천연호 씨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것 같아요. 좀 이상한 사람 같긴 했지만 자기가 알아낸 것에 대해 확신이 있었어요. 남들한테 무시당하지만 좌절하거나 우울증에 빠진 것 같진 않았고요.”


“그럼··· 살인이라고 치면··· 누가 그랬을까? 어떻게들 생각해요?”

종대가 묻자 미랑이 견해를 밝혔다.

“중간자들의 존재가 밝혀지는 걸 막으려는 세력 아닐까?”


“우리 정체를 숨겨주는 거라면 좋게 봐야 되는 거예요?”

종대는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천연호 씨가 답했다.

“그건 아니라고 봐. 정체를 숨긴 중간자들 협박하면서 이득을 얻는 놈들이 있잖아. 그놈들 입장에선 고박사 입을 막고 싶었을 거야. 걔네가 계속 중간자들을 뜯어먹으려면 중간자 존재가 공개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중간자가 존재하는 걸 감추고 뜯어먹는 악당들 소행이다, 이거죠?”

내 질문에 천연호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연호 씨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같은 중간자들을 협박 갈취하는 깡패 같은 놈들 짓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정체가 공개될까봐 두려워하는 중간자는 한둘이 아니잖아요? 고박사가 죽기를 바랐던 중간자도 많지 않을까요? 원래 악당이 아니더라도.”


내 두 번째 질문에는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위기가 불편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내친김에 할 말을 했다.


“황묘화 씨 경우에도 백기철 형사 입을 막아버리려고 했잖아요. 평소에 범죄를 일삼던 악당이 아니더라도 황묘화 씨처럼 위험인물을 해칠 생각을 할 수 있지 않나요?”


내가 말을 끝맺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자기 앞의 찻잔이나 맥주 캔을 홀짝일 뿐 세 사람 다 입 열기를 꺼렸다.

내가 형사 노릇하듯 미랑 친구들을 몰아붙인 건가? 살짝 후회가 됐다. 그래서 대화 방향을 바꿔 보려고 했는데,

“제가 너무 딱딱하게,”


미랑이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중간자들은 모두 잠재적 살인 용의자다.”

엥? 왜 이러는 거지? 내 마누라가? 나뿐 아니라 종대와 천연호 씨 표정도 굳었다.

“주성 씨가 그런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맞죠?”

휴, 나는 진짜 입 밖으로 안도의 한숨을 뱉을 뻔했다. 미랑의 돌발 개입이 분위기를 확 바꾸긴 했다.


“그럼요.”

“묘화가 정말 그랬을 거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죠?”

이번에는 천연호 씨가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제가 형사다 보니까 요만한 가능성만 있어도 의심하고 물어보거든요.”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고박사가 살해된 거라면 살인자는 프로페셔널이에요. 중간자들의 신체 능력으로 해친 게 아니잖아요. 고박사의 약점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위장한 거예요. 타살로 의심하지 못 하게.”

끄덕끄덕. 세 사람 모두 내 의견에 동의했다.


“내가 묘화 씨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한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꼼꼼하게 해칠 분은 아니라고 봐요.”

묘화를 좋게 이야기하자 세 사람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나는 무겁지 않은 질문으로 대화를 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 심정은 저도 알겠는데요. 다른 중간자들 생각은 어떨까요? 고박사 죽은 게 알려지면 좋아할까요?”


천연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중간자들은 야수성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누군가 못 참고 험한 짓을 저지르면 어쩌나 하고요.”

“맞아. 적응하려고 쌩고생했는데 어떤 놈이 사고 치는 바람에 뽀록날까봐 걱정이 많다고. 우리는 괴물이 아니니까. 악랄한 짐승도 아니고.”

종대는 흥분해서 살짝 언성을 높였다. 옆에 앉은 미랑이 누나로서 어깨를 토닥여줬다. 짜식, 살짝 기분 나빠지는데···


“오리지널 인간을 중간자가 해치는 일이 생기고 정체도 발각된다. 그건 생각만 해도 최악이에요. 영원히 괴물들로 낙인찍히고 오리지널들은 중간자를 박멸한다고 난리가 날 테니까요.”

천연호의 우려에 이어서 미랑도 걱정어린 발언을 했다.

“당장은 존재가 드러나는 게 제일 무섭죠.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해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악당들만 신나는 거예요. 평범한 중간자들은 더 겁을 먹고 눈치를 보게 되고.”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중간자들은 더 위축될 거라는 얘기. 미랑의 예상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내 관점에서 타살로 보이는 고박사의 죽음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중간자들에겐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놔두면 결국 ‘오리지널’ 인간들에게도 해를 끼칠 사건이었다.


“미야아아오~”

새삼 사건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을 때 현관 밖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묘화가 집을 비운 뒤 한 동안 고양이들이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삑삐빅삑삑.”

그리곤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상하다, 아이들은 지금도 옥상에서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쿵쿵대는 발걸음 소리가 천장을 울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보랏빛 화장으로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쥐 잡아먹은 듯 새빨갛게 입술을 칠한 여인. 몸에 딱 붙는 검은 색 미니 원피스를 입은 여인. 뒷모습을 보면 긴 꼬리가 위로 솟아 있을 것 같은···


황묘화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뭐야? 나한테는 연락도 안 하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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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혈투 24.02.28 25 2 12쪽
42 어둡고 큰 숲속의 집 +2 24.02.27 24 2 14쪽
41 추격 +2 24.02.26 21 3 12쪽
40 추적과 압박 24.02.22 21 3 13쪽
39 2세의 취조 24.02.21 23 3 12쪽
38 잘못된 출혈 +2 24.02.20 28 3 12쪽
37 야밤의 협상 24.02.19 22 3 12쪽
36 싸울 거야! 그런데 누구랑? +2 24.02.15 24 3 13쪽
35 불어라 대규야 +2 24.02.13 31 4 14쪽
34 빡대, 위기일발! 24.02.08 25 4 14쪽
33 한(恨)이 꼭 예술이 되진 않아 +4 24.02.07 30 4 12쪽
32 종이의 한 +2 24.02.06 28 4 14쪽
31 빡대꾸 24.02.05 23 4 14쪽
30 추적 시작 +4 24.02.01 30 4 13쪽
29 새 출발의 신호 24.01.31 28 4 14쪽
» 대책 회의 24.01.30 26 3 14쪽
27 뜻밖의 침몰 +2 24.01.29 25 4 12쪽
26 합동 수색 +2 24.01.25 28 4 14쪽
25 마주칠 결심 24.01.24 26 4 13쪽
24 불길한 화염 24.01.23 30 4 13쪽
23 시정마 Teaser Horse +4 24.01.22 34 4 15쪽
22 은밀한 빵꾸 24.01.18 41 4 14쪽
21 여우 (같은) 마누라 +2 24.01.17 43 4 15쪽
20 두 갠디유 +4 24.01.16 44 4 14쪽
19 일단 주성과 함께 세계관 정리해요 +4 24.01.15 42 4 13쪽
18 아내의 참모습 +2 24.01.13 45 4 14쪽
17 여우 vs 고양이 +4 24.01.12 46 5 14쪽
16 이런, 이런, 큰일이다 +2 24.01.11 53 5 14쪽
15 상식의 출구 진실의 입구 +6 24.01.10 61 4 14쪽
14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4.01.09 53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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