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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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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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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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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8)

DUMMY

조보를 받아보고 부정적인 예상을 한 사람은 윤웅렬뿐이 아니었다.

조보에 한성판윤이라 적혀 있는 김홍집은 예조판서가 돼 있는 김윤식의 집에 찾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책상에 조보를 올려 놓고 마주 앉아 있었다.

집주인 김윤식이 물었다.


“자기네가 만든 내각이니까 김옥균 당은 당연히 지금 경우궁에 있을 것이고, 나머지 인사들 중에 내각에 참여하겠다고 경우궁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누구요?”

“저도 몇밖에는 모릅니다. 이른바 영의정이라는 이재원, 좌찬성 이재면, 이조판서 신기선 이 세 사람은 들어갔다고들 하더이다.”


‘자기들 머릿속 생각을 적어 발표한다고 세상이 그대로 돌아가는 줄 아는가? 이 자들이 어설픈 작당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구나!’

하아, 답답한 마음에 김윤식은 한숨을 쉬고 장죽을 재떨이에 땅땅 내리쳤다.


마루에 있던 하인 아이가 뛰어 들어와서 김윤식의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김윤식은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곁에 있는 다른 담뱃대를 김홍집에게 권했다. 김홍집이 받아들자 하인 아이가 역시 불을 붙여 준 후 방을 나갔다.


“운양(김윤식의 호)공은 예조판서가 되셨고, 저는 한성판윤이라는데 예서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도원(김홍집의 호)은 농담을 할 여유도 있으시구려. 나는 답답증이 나서 뱃속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는 게요.”

“죄송합니다. 저도 답답다 보니 말이 실없이 나왔습니다.

돌아가는 판국이 하 위태로워 보여서 누군가 궁 안 사정을 알아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 봐도 김홍집의 답답한 가슴 속은 뚫리지 않았다. 김홍집의 긴장한 얼굴이 김윤식의 궁금증을 더 자극했다.


“운미가 난자당한 것 외에 또 무슨 소식을 들은 게요?”

“오는 길에 표정(민영익의 아버지 민태호의 호) 대감 댁에 들렀는데 지난 밤에 조영하 대감이 와서 함께 입궐하셨답니다.”

“표정이?”

“예. 아마도 아드님 일을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을 받고 가셨던 듯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김윤식은 민영익의 아버지 민태호도 살해됐으리라는 예감에 치를 떨었다.

조보를 보면 민씨 척족들이 대거 조정에서 밀려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민태호가 궁에 불려 들어갈 이유도 없었다.


자객에게 난자당해서 죽어가는 아들이 묄렌도르프의 집에 누워 있는데, 지난 밤에 궁에 들어가서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불길한 상황이었다.

참극은 민태호와 민영익 부자에서 끝났을 것 같지가 않았다.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김윤식의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다.


“조보를 보면 박영효와 서광범이 전후좌우 사영의 영사를 맡았다 되어 있소.”

“그렇습니다.”

“내가 듣기로 쓰러진 운미를 제외한 삼영사, 윤태준 이조연 한규직은 어젯밤 급히 입궐했다 하였소.”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속이 탄 김윤식은 신경질적으로 재떨이를 땅땅 내리쳤다. 하인 아이가 장지문을 빼꼼 열고 안을 들여다 봤다.


“냉큼 냉수 사발 대령하거라!”

“운양공, 아무래도 김옥균과 박영효가 조정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참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다케조에 공사와 한패가 되어서요.”

“그렇소. 지난밤에 일본 공사관 병력이 경우궁을 감쌌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소.

이 철없는 자들이 앞뒤 모르고 망동을 저지른 게 틀림없소.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건 제 멋이라지만, 그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 것인지······.”

“제 생각도 운양공 생각과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치 않은 것은 주상 전하의 판단입니다.”

“왜놈당이 전하를 겁박하고 있는 것인가, 전하의 승인을 얻고 정변을 치르는 중인가······.”

“물론 십중 팔구는 김옥균 당의 역모일 것입니다. 단지 직접 확인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할 따름입니다.”


김윤식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어젯밤 하도감 청군 진영에 갔을 때 원세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청군은 조선의 변란이라면 언제든 개입할 준비가 돼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상과 중전의 의견이라고 했다.


김윤식 자신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상이 김옥균과 한 뜻일 가능성이 열에 하나라도 있다면 판단할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대감 마님.”


냉수 사발은 하인 아이 대신 김윤식 집의 청지기가 들고 왔다. 그는 세상 물정에 밝고 도성 안에서 발이 넓었다.

김윤식에게 냉수 사발을 건네고 청지기는 자기가 들은 소문들을 전했다.


도성 안에 난리가 나서 임금님이 도성 밖으로 피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청나라와 일본이 하도감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중이라 곧 전쟁이 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했다.

위험을 피하려고 도성을 빠져나가거나 가솔을 도성 밖으로 피신시키는 사람은 본인이 직접 보았다는 게 청지기의 증언이었다.


방 안에 매캐한 담배 연기가 차는 만큼 김윤식과 김홍집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옥균의 무리가 무력으로 정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예상으로 그 정변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 문제는 그 정변의 불똥이 크나큰 난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겁을 먹은 일부 한양 백성의 상상처럼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변이었다.

두 사람은 신속히 사태를 파악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전은 수라간 상궁을 다그쳐서 곶감을 찾았다.

궁궐을 나올 때 찬거리와 부식도 챙겨 나오긴 했으나 갑작스런 이사라서 짐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보따리들을 풀고 풀어서 한 쟁반을 채울 만큼의 곶감을 찾아내게 한 중전은 직접 쟁반을 들고 대왕대비의 방으로 향했다.


“중전, 어서 오게. 뭘 또 손수 들고 왔나?”


대왕대비는 겨울이면 곶감을 즐겼다. 식사 사이에 출출할 때면 자주 곶감을 찾았다.


“상주 현감이 올려보냈던 곶감이온데 다행히 궁에서 몇 개 챙겨 왔습니다.”

“거기까지 마음을 쓰셨구만. 고맙네.”


말 끝에 대왕대비는 밭은 기침을 했다.

“겨울철에 즐기시던 거라서요. 기침에도 좋고요.”

“아무래도 여기는 쓰던 집이 아니니까 온돌이 부실하네.

기침하고 고뿔 걸리는 거야 어쩔 수 있겠나. 늙은 탓이 더 크겠지.”


환궁을 위해서 가장 확실한 조력자는 대왕대비라는 게 중전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기침이 나이 탓이라고 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근력이 정정하신데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차가운 날씨에 허술한 곳에서 주무셔서 편찮으신 거죠.

늘 계시던 방이 푸근했었는데 말입니다. 하다 못해 몇 개 안 남은 이 곶감도 동궐에 쌓아 두고 와서요.”


수십 년간 조정에서 많은 일을 지켜봐온 대왕대비였다.

중전의 의도를 눈치 챈 대왕 대비는 궁궐 말이 나오자 자신의 조카로 권력 핵심부에 있었던 조영하 이야기를 꺼냈다.


“주상이 이어했다는 소리를 분명 지금쯤은 들었을 텐데······.

영하가··· 주상을 배알하고 나한테도 인사를 와야 하는데······ 안 올 리가 없는데 말이야.”

“지금 일본당에 속한 대신들이 변란을 명분으로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들과 뜻이 다른 충신들은 자취를 감춘 사람이 많습니다.”


두 사람 다 조영하가 살해된 것은 몰랐다.

하지만 대왕대비는 정권이 바뀌면서 조영하가 위태로워졌으리라 짐작했고, 중전은 조금 더 강하게 개화당의 범행을 의심하고 있었다.


“스스로 숨은 것인가?”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어떻다 장담 드릴 수 없어 송구하옵니다.”

“그렇구만. 그 사람들 불러서 물어 볼까?”

“그리 하시겠습니까?”

“응. 곶감도 좀 먹으라고 하고.”



곶감 쟁반을 사이에 두고 두 여인과 세 사내가 마주 앉았다.

일흔일곱의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세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훗날 신정왕후라 불렸고 조대비란 이름으로 유명했던 대왕대비.


세자였던 남편이 일찍 죽고, 어려서 왕이 된 아들도 스물셋에 죽고, 그 뒤로 두 명의 왕을 뽑아 앉힌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지금의 주상이 열두 살에 즉위했을 때 3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왕권 강화를 위해 애쓴 왕실의 큰 어른이었다.


“중전이 나 먹으라고 곶감을 가져왔는데 혼자 먹기 미안합디다. 그런데 이 늙은이가 대감들을 불러놓고서는 오기도 전에 혼자 식탐을 부렸네.

장정들 상에 올려놓기에 너무 적어서 민망하구려.”


무슨 말씀을,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이 오가고 사내들이 곶감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중전이 세 사람이 개각으로 영전했음을 대왕대비에게 알렸고 대왕대비는 새 영의정과 좌의정, 좌우영사가 되었음을 축하했다.

곶감을 씹던 세 사내가 급히 삼키고 감사의 뜻을 고했다.


“이제 영전들을 하셨으니 어서 대궐 정전에서 천하대사를 논하셔야 할 텐데, 아쉽구려.”

“망극하옵니다. 대비마마.”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세 사내는 대궐 얘기가 나오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보정부에 계신 대원위 대감한테 경복궁 고쳐 달라고 조른 사람이 나란 건 아실 게요.”

“예. 대비마마.”

“궁궐이 말이오. 그냥 큰 집이 아니에요.

댓돌 하나 서까래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주상과 대신들이 고민하고 애쓴 정성들이 전각 구석구석에 다 서려 있는 거요.”


세 사내는 뭐라 대꾸를 못하고 어려워 했다. 문명 개화를 부르짖던 젊은이들도 코흘릴 때부터 소학에 동몽선습을 배운 서당 꼬맹이 선비였었다.


“그래서 궁궐이 제대로 딱 버티고 있어야 임금 어깨에 힘이 실리고, 백성들도 믿음직하니 걱정을 안 하는 거요.”

“하오나 변란으로 궁궐이 위험해져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송구하오나 지금은 난리 중이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시기가 어렵습니다.”

“낭패로구만······ 그럼 어떡하나?”


대왕대비는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아이고 대왕대비 마마, 큰 어르신이 역시 다르십니다.’

중전은 때 맞춰 기침을 하는 노인에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쳤다.


“늙은이가 외풍 심한 방에서 고뿔이 걸렸다고 중전이 나 대신 노심초사가 심하다네.

곶감이라도 먹여 달래려는데 동궐에 다 두고 와서 그것도 없다고 발을 동동 굴러요.”


연로한 궁궐의 큰 어르신이 몸이 아프다며 호소한다. 이렇게 되면 앞에 앉은 사내들은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곶감 쟁반만 내려다보던 홍영식의 머리에 집 한 채가 떠올랐다.


“마마.”

“금석이 좋은 생각이 있나 보오?”


홍영식이 이재원에게 눈짓을 했다. 영문을 몰라서 이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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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튿날(4) 23.10.12 13 3 13쪽
30 이튿날(3) 23.10.12 8 3 11쪽
29 이튿날(2) 23.10.11 12 3 12쪽
28 이튿날(1) 23.10.11 1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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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첫날(24) 23.10.10 11 3 15쪽
25 첫날(23) 23.10.09 12 3 16쪽
24 첫날(22) 23.10.09 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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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첫날(20) 23.10.07 11 2 9쪽
21 첫날(19) 23.10.06 13 3 9쪽
20 첫날(18) 23.10.06 1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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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첫날(16) 23.10.05 14 3 10쪽
17 첫날(15) 23.10.04 14 4 9쪽
16 첫날(14) 23.10.04 11 3 10쪽
15 첫날(13) 23.10.03 1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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