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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아이디어 모음 영감은 일푼


[떠도는 아이디어 모음 영감은 일푼] 세금... 원래 정확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그냥 맛배기만(확장해나갈 개념이라기보단 사실)

역사 속의 토지 및 세금에 대하여...


먼저 서양과 동양의 구분을 하고 잘 아는 동양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검색이나 이것저것을 한 것이 아니고 제가 아는 데로... 나쁜 말로 하면 씨부리는... 주관적인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대충 큰 흐름만 적으니까... 아시는 분들은 추가 강화하셔서 성지로 만들어 주셔도... 부탁드립니다!!!)


1. 동양의 토지제도 및 세금 등에 관하여

동양이라고 하면 ‘중국’이 중심입니다.
‘중국’은
은-주-춘추전국시대-진-한-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
대를 거치면서 각 시대마다 고유한 토지제도나 세금이 있었겠지요.
거기에 대해서 다 조사하진 못했고, 주로 국사를 공부하면서 배우는 것이
‘당’나라의 ‘조용조제도’라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도 사실 북위 이래 수-당나라를 거치면서 당대에 완성된 제도고요. 이는 한반도를 타고 일본 열도까지 전달되어서 결국 동양의 고전 세법은 ‘조용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세법 사항은 검색을 해보시면 될 것이고
‘조용조’제도의 핵심은 인두세, 토지세, 군역에 대한 ‘정액’과세라는 것에 있습니다.
즉 사람 머리당 얼마씩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고, 토지를 소유하면 토지의 넓이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고, 군역 이것은 사실 세금뿐만 아니라 인구의 파악 및 지배를 위한 것이었죠.

여기서 가급적 군역은 제외하고 보겠습니다.
(사실 신라시대에 ‘민정문서’에 의하면... 후설)

먼저 이런 조세제도의 사상적 기반에는 ‘왕토사상’과 ‘백성은 국가에 의해 보호받는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있습니다(현실은 말로만 왕토지 주인이 다 다르고 집문서 땅문서가 버젓이 존재 하지만 왕이 그것을 ‘인정’해준거다. 라는 식의 철학논쟁으로...).

해서 먼저 인두세를 보자면 인두세는 정액제입니다. ‘백성은 국가에 의해 보호받는 존재’ 즉 국가가 존재하기에 백성들이 ‘오랑캐’나 외풍 혹은 자연재해(이건 뭐... 일단 황제가 태산인가에서 재를 지내고 물을 다스리는 의미에서 뭘 하고 수로를 하고 이런 것에도 전해져 있고 예전의 ‘자연’을 무서워하던 신앙사상... 뭐였지 애니멀리즘? 샤머니즘? 이런것의 흔적입니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국가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을 바쳐야 한다. 라는 세금입니다. 나중에 백골징세니 뱃속에 있는 태아징수니 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죠...

다음으로 토지세를 보자면 이것 또한 정액제입니다. 발전 하면서 그 해의 풍흉에 따라, 논밭의 상태에 따라 차등 적용 하는 것이 나중에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더라 하여도 법에서 정해진 대로 만 납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액’제입니다. 액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죠.(이는 서양 세법 이야기 하면서 점점 근대화 세법 이야기 하면... 아이고 누가 재정학 이야기 한 이유가 여기있나?) 원래는 중국 이야기 하다가 조선 이야기 따로하고 이럴려고 했는데 그냥 뭉퉁구려서 다 하겠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즈음해서 넘어온 조용조 제도는 그 이후로 일제강점기 전까지 한반도를 지배하는 세금에 대한 법리였습니다.(그 외로도 잘보면 ‘당’나라 시절에 정해진 것들이 많이 내려옵니다. 그중 하나가 ‘니들은 당나라 군대냐?’라는 명언...) 조선시대에 대동법이니 뭐니 하면서 1결당 12두니 무슨 전분육등이나 구등법이니 하는 것도 사실 어떻게 적용하느냐 적용의 차등 문제지 결국 전부가 정액제였죠.

해서 동양 세금에서 하려는 말은
인두세, 토지세, 사람의 노동력에 대한 세금 이렇게 3가지(조용조)가 있었고 그것은 전부 정액제였다고 하려는 겁니다. 노동력은 사실 납부방식이 무조건적인 노동력 착취에서 나중에는 노동력 대신 다른 물품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변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액제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세금에 대한 이야기 이고, 특별한 세금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그 지역의 ‘특산품’이 한 가지 예입니다. 제가 쓴 다른 글에 댓글로 추가 강화해주신 quicker님의 말에도 있지만, 국가가 세금을 걷는 이유는 국가가 쓰려고 걷는 것입니다. 나중에 화패가 발달하고 시장이 발달하면서 점차 특산품도 국가에서 사다가 쓰는 방식으로 즉 시장에 납품상인에게 납품시키게 하는 식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 지방의 xx가 그렇게 좋다네?’하면 그럼 이제 ‘너 특산품!’하는 식으로 지정이 되고 ‘언제언제 얼마나 바쳐’라는 식으로 그때그때 법이 정해졌지요. 거기다가 국가 즉 궁에서 꼭 필요로 하는 특산품의 경우에는 아주 특산품 생산촌을 조성해서 만들게 하는 식으로 발전합니다.(후일 사라지지만) ‘무기’나 ‘공산품’같은 것도 이렇게 ‘특산품’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해서 예전에 동양은 ‘관용 수공업’ 위주로 관에 소속한 장인들이 뭔가를 만들고 남은 것을 공급했지요. 이것도 ‘무기’의 확산을 막을 목적으로, ‘전략 물자’인 ‘철기’의 관리를 위해, ‘국왕이나 귀족 이하로는 이런거 못써’라는 식의 사치를 위해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그랬답니다.

그리고 특산품 말고 국가에 의해 ‘특허’ 즉 특별하게 허가받아 사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금도 있지요. 뭐 뒤지면 나오긴 하는데... ‘광물’이나 ‘소금양식’ 혹은 ‘양잠(비단)’ ‘초석(화약원료)’등이 대표적으로 ‘얌체’라는 것이 광물을 국가 몰래 캐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뭐 여하튼 그렇게 국가에 의해 ‘특허’를 받아서 사업하는 것에도 다른 세금이 정해졌지만, 일정 생산량당 얼마씩 돈으로 바치던가 아니면 전량을 국가에 바치던가 하는식으로 세금이 정해졌습니다. 아니면 그냥 정승한테 슥삭해서 손만 잘 비비면 공짜일수도...

여하튼 여기까지가 중앙에서 거두어드리는 세금이고...
지방세는 좀 다릅니다.


일단 특별 행정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조선을 예로 들면 조선은 북방 2개도에는 중앙 세금 면제이고 국방을 위해 니네가 걷어서 니네가 알아서 써라 이랬다고 알고 있습니다.(정확하게 뭐라고하고 그게 함경도랑 뭐 지역에는 뭐가 어쩌구저쩌구 있는데) 이런 것은 특수한 행정구역에 대해서 특별한 세금제도를 하는 것인데... 여하튼 거둬서 국방에 쓰이고 뭐만 하면 사람들 불러다가 성 다지게하고 한다고 아시면 됩니다. 대부분 농산품 나오면 정액제로 거두어 갔겠지만 여하튼 지방관이 알아서 했겠지요...

그리고 일반적인 지방에서는
‘중앙집권’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각 지방의 호족이나 족장 관리들은 그 지역에서 ‘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예 우리가 아는 서양의 중세시대가 동양의 ‘중앙집권’화 되지 않은 부족국가 혹은 연합부족왕국과 비슷합니다(거기다가 이것은 사견인데 그리스 지방은 폴리스라고 해서 도시끼리 따로 놀다가 페르시아같이 큰 나라가 와야 이제 좀 뭉침. 그러다가 로마로 통합 되고 뭐 그러긴 하는데 여하튼 원체 따로따로 노는 것을 좋아함. 개인주의가 당연하고 논리정연하고 이성적인 것을 중요시 하면서 정신적인 것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죠. 물론 나중에는 점점 바뀌기 시작하지만.... 동양쪽은 오히려 정신적인 쪽을 중요시 하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중요시 하다가... 결국 서양에 패권을 주긴 했지만. 이것은 사견. 인데 역사.). ‘중앙’이 만약 있다면 그들에게 주는 세금을 따로 땝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지방관 호족 족장의 몫이지요. 그것도 지방의 귀족들의 힘이 세면 안냅니다. 안내도 뭐라고 못합니다.
이러던 것이 ‘중앙집권화’되면서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실 ‘고려시대’까지는 중앙집권화 되었다고 하지만 지방의 귀족세력들의 힘이 더 강했습니다. 그러니 고려 중기에 가서는 왕의 목숨이 파리목숨... 그리고 무관들이 힘이 강했던 이유도 ‘사병’을 ‘지방’에서 키웠기 때문이죠... 이것도 말로는 ‘왕토’사상인데 왕이 ‘내 땅 다 내놓고 다른 관리에게 주거라!’ 하면 ‘뻐큐, 갓뎀!’ 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그랬죠.(그래서 역사 공부하다보면 국왕이 병사가 많고 힘이 강하면 토지제도가 좀 바로 잡히다가 반란/암살 등으로 죽거나 몇 대 지나서 왕이 개념이 없어지면 다시 문란해지고 엎치락뒤치락(의를 같이 붙이면 한글이 빨간 줄로 인식하네요. 신기하다.)의 반복. 왕권이 어느 때 어떻게 강해지고 언제부터 신권이 강해지고 쿨럭 년도 외우는 건 빡셈 여하튼 전 흐름만 보고 갈게요) 그러다가 그나마 좀 괜찮아 진 것이 조선시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군인’출신인 성계형이 나라를 세워서 처음으로 각 지방마다 지방관을 파견하고(그전에도 있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지방관 파견) 세금을 제대로 걷기 시작했죠. 사병을 키우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법도 세우고... 그런데 지금보니 제가 하려는 말과는 좀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해서 지방관들이 중앙에서 파견됩니다. 이것도 보면 중앙에서 파견되는 지방관 말고 ‘향리’ 즉 이방이니 형방이니 하는 지방 유지들이 있어서 실정을 잘 알고 있을 테니 그냥 ‘어차피 거쳐 가는 곳인 지방관리직 따위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고 나 중앙에서 정치 할 때 돈이나 쓰게 뒷돈이나 챙겨주소.’ 하는 식의 운영으로 결국 문란해지는 겁니다.
그래도 결국 ‘정액제’를 기반으로 한 세금이 주가 되었고, 각 지방의 재량에 따라 달랐지요.

뭐 그러다가 요즘은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조 땐가 정조 땐가부터 현물 말고 현금으로 납부 하라고 하던가 그러는데 그것은 이제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고 화폐가 돌기 시작하면서 이지요...(아 화패이야기 하니 당백전이 생각나는데 패스)
그리고 근대를 거처 현대로 넘어옵니다. 그리고 근대 현대는 패스.


2. 서양

서양은 아시다시피 ‘장원제’가 발전하지요.
‘장원제’에서는 ‘장원’의 주인인 ‘영주’가 그 지역에서의 왕입니다. 그리고 왕조차도 사실 ‘큰 장원’을 가진 가장 힘이 센 ‘영주’로서 주변의 장원 주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이었지요. 그래서 유럽사에도 보면 영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국가에 찰싹 날라붙고 그랬습니다. 해서 당시 세금은 ‘영주’가 달라는 대로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주’들은 거주(라기 보단 국적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밑에서 그 사람들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보장된다 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논밭을 다시 개간해야 하니까요.(그래도 못 버티겠으면 화전민으로 gogo) 중앙에도 세금을 ‘얼마 내세요.’ 해버리면 왕이 더 세면 찍 소리도 못하고 얼마가 되던 수탈해서 내야 했고, 왕하고 비등비등하면 그제서야 ‘싫은데? 너 왕 하기 싫어?’하면서 반항하고 했지요. 이런 건 귀족 이야기고 민간인은 해당이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니 로마시절 까지 찾아가면...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스는 일단 세금을 내는 자국인 남자를 ‘시민’으로 하는 ‘시민’중심 문화였고, 로마는 거기서 조금 발전하면서도 중앙집권적이긴 한데... 거긴 제가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 로마도 한마디 하자면 이곳 저곳 점령하면서 각 지방에 지방총사령관? 이런 걸 파견하는데 해서 그 지방마다 뭐가 달랐을 거고... 카이사르나 뭐 이런저런 사람들 유명한 이야기도 파면 나오긴 하는데 패스)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장원’은 영주의 저택(혹은 영주성)을 중심으로 ‘내성’이 있고 내성의 주변과 ‘외성’사이에 시민들이 살지요. 그리고 그 밖에 마을이나 다른 것들이 있고요. 주로 내성과 외성 사이가 영주 직할이라고 해서 제논에 물데기도 하고(가뭄이 와도 항상 영주성은 곡식이 빠방... 풍년 때보단 덜하겠지만...) 이것저것 해서 사실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고, 이제 외성 밖의 여러 마을들은 선출직이라기보다는 세습직인 촌장들이 주축이 되어서 눈치것 내거나, ‘더줘~~!(용가x치킨?)’하면 그때 더주고... 뭐 이런식... 나중에는 이것도 영주의 힘이 강해지면 관리가 파견되고 뭐 그렇겠지만...

여하튼 자세하게는 패스.

 

그러다가 아마도 십자군 전쟁 이후로 귀족들도 많이 죽고 젊은이들도 많이 죽고 스미스들이 대세가 될 때...(실제 서양에 스미스가 많은 이유와 정조대의 상관관계는?.... 성인 주제이므로 패스 흐흐흐. 킹덤오브 헤븐의 주인공도 스미스 하앍!) 흠, 흠 여하튼 그즈음 되면서 귀족들이 자신의 영주성을 비우는 시기가 많아지고 아마도 이즈음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관료학이 더욱더 발전 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물론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가면 더 많겠지만... 행정학 측에서는 사회계약설인가? 왕권신수설인가? 뭐였지? 여하튼 그때를 기점으로 행정학이 생기는 걸로 하던데... 행정학이 사실 제왕학에서 파생된 경영학에서 파생된 학문인데... 제왕학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겠지만 제왕학이 왕에서부터 귀족으로 귀족에서부터 관료들에게로 내려오기 까지는... 정확한 년도는 잘 모르것네... 흠... 여하튼 십자군 패(조...ㅅ)망 이후부터 아마도 영주가 없어도 영지를 잘 돌아가게 하는 학문이 발전하면서 이것저것 더 자세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하튼 카톨릭이 유럽사에 큰 영향을 주는데

하나가 십자군이요

하나가 면죄부 발급과 종교혁명 입니다.

십자군전쟁은 일부 광신도들과 어린애들 낭만 가득한 젊은 기사들이 ‘갑시다’하고가서 어떤 사람들은 노예가 되기도 하고(아마 이거 관련해서 이야기도 있을걸요? 없으면 집필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깡패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멋도 모르고 가서 싸우다보니 환갑인데 총각(마법사의 시초)... 여하튼 십자군 전쟁은 그것 말고도 농지의 많은 농민들의 이탈과 영주의 영지 지배력 약화를 불러왔고 이로 인해서 관료들이 발전하면서 이 근처에 대부분의 민중문학 특히 그 영국의 아쳐 누구냐.... 롸뷘 후웃!의 설화에 보면 ‘영주’대리를 하고 있는(아니 왕 대리구나) 영주(아마 동생이던가?)대리나 세리들(세금 걷는애들)의 악행이 극에 달한다고 그래서 민중 항쟁을 하고 사람들이 이탈한다고 뭐 그렇게 알고 있는데... 여하튼 아마 이러한 실제 사례들 때문에 후에 관료학과 세금에대한 제대로된 정비가 이루어 지지 않나 싶습니다. 해서 이 이전에는 대학가에서 신학이나 철학 예술에 대한 논쟁 그리고 이성과 뭐 이런거 저런거 신의 증명 이런게 주가 되었던 대학에서 제왕학이나 뭐 이것 저것이 가르쳐지고 연구되기 시작했겠죠. 그래서 관료주의를 탄생시킨 사상의 바탕에는 대부분 ‘철학(서양철학)’이 큰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사회계약성, 왕권신수설, 군주론, 뭐 이런거 저런거 이야기 일 텐데 여하튼... 패스

 

그런데 여하튼 이렇게 해서 관료들이 생기고 뭐하면 뭘합니까?

 

이제 한 1600년대 이후인가? 그쯤을 기점으로 왕권이 엄청 강해지고(카톨릭이 약화되면서) 귀족들이 눌림당하고 이제 당시 향신료 무역이나 원거리 무역 즉 대항해시대(1빼고 다해봤다!)를 거치면서 부자들이 된 사람들이 왕에게 세금이라는 명목하에 수탈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세금도 보면 정말 어의없는 세금들이 많죠. 어느분이 창문세 이야기를 하셨는데 실제 영국은 그래서 창문이 없는 집도 아직까지 남아있죠. 그것이 왕실의 흥청망청을 감당하기 위해 제정된 사치세의 일부... 여하튼 아시다시피 이것이 시민혁명이나 권리청원 권리장전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시민혁명(프)의 경우는 아시다시피 브루조아들(부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었고(주된 목적은 세금좀 적게걷고 그냥 국방의 의무나 수행하시오) 권리장전(마그나카르타였나?)은 귀족들의 권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짐이 곳 태양이다. 태양왕 루의 13세의 폐기... 13세 맞나?)

 

해서 결국 농민들은 소외되었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농민들이 적어지긴 했지만 역시 농민들은 도시것들은 배불러서 지들만 챙긴다고 꿍시렁... 응? 이게 아니고 여하튼 농민들에 대한 배려, 일반적인 사람들 즉 현대 개념의 ‘시민’들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지요.... 다 지배계층 이야기... 그런데 여기 정확하게 얼마를 거두고 이런건 잘 모름 흐흐흐...

 

그러다가 아마 프랑스의 위대한 황제(시민혁명 하더니 다시 황제가 나오는걸 냅두는 프랑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참 모순됨... 이러다가 또 독일서 히틀러 나오잖아!!)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님이 나오시면서 많은 것을 정비합니다...

아시다 시피 원래 황제들이다 이러면 대부분 월력이나 일력을 정비합니다. 이것이 농사에 가장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다들 잘 아실겁니다. 월력 일력을 정비한다는 것은 즉 농사의 주기에 대한 것의 기준을 잡아준다는 의미니까요(원레 아우구스티누스대제인가? 그사람이-어거스트의 어원- 지금의 태양력을 만들었던가?)... 그런데 이분이 더 나아가서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미터법과 그램법인가를 만듭니다.

그전에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한자, 한치, 한족 이렇게 나갔었고, 외국도 인치 피트 이렇게 주먹구구와 손발사용해서 나가고 파운드니 뭐니 이렇게 나가던 것들이 통일이 되면서 한가지 계량형으로 쓰이죠.(영국과 미국이 아직도 피트 인치 쓰는것은 일단 영국은 프랑스에 점령당하지 않았었고 아주 평생 앙숙이고 미국은 영국인들이 세운나라니 당연... 자존심 싸움이죠...) 이러한 계량형의 발달은 세법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즉 화폐등에는 정률제가 가능했지만 농산품에도 정률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함정은 농산품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사람들이 사가고 돈을 주면 그것으로 세금을 냈다는 것...

화패의 보급은 서양이 동양보다 빨랐을 겁니다... 아마 그 언제냐 대항해시대를 거쳐 이것저것 식민지가 개발되면서 멕시코에서 은광 쏟아지고 미국에서 금이 쏟아지고... 실제로 인플레이션이 있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즉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이지요...

 

뭐 대충 이정도 하겠습니다.

지금은 정액제 + 정률제를 어느나라를 가던 쓰고 있습니다.(북한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게 정률제도 이제 무슨 누진이니 뭐니 하면서 다르고 복잡하게 돌아가죠...

이걸 다 알면 제가 회계사나 세무사를 하고 있겟지만... 적당히는 알죠... 기본원리랑.... 뭐 여하튼 지금은 모든 것이 돈을 기준으로 하고 있고요...(실제로 현금박치기하면 세금에서 많이 제해지는 것이 잇지만 이것은 그냥 지하경제려니...) 여하튼 .,,,

 

서양쪽은 더 자세히 파야 알겠지만 대충 요정도가 제가 아는 사실을 대충 써놓은 겁니다...

그리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쓰는 다크북에서는

계량형이 통일되었고 세리학과 관료학이 발전된 ‘중세’사회 입니다....

메롱

 


댓글 1

  • 001. Lv.12 김백경

    13.03.26 13:34

    조선시대에서 사또를 임명할 때 임명장과 함께 주는 것이 척과 되였다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일부 악덕 사또들은 부임지로 내려가기 전에 척과 되를 살짝 줄인 것을 만들어서 지역으로 내려간 뒤 차익을 챙겼다고 합니다. 암행어사들이 가끔 확인하는 것도 그 도량형이었다고 합니다. 읽은 기억은 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맞는지 자신을 못하겠네요.

    고대 로마 같은 노예제도가 일반화된 국가들은 노예 = 재산입니다. 노예가 생산하는 것은 모두 주인의 차지였고 땅은 사람보다 훨씬 넓었으니까요. 세금도 간단합니다. 무엇을 하는 데 노예나 병사가 얼마만큼 필요하다 알아서 보내라. 그러면 각 가문들이 나눕니다. 아마도 고대 로마가 공화정 시대였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군주제도 마찬가지였지요. 왕이 무엇을 하는 데에 필요하니 바치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병사와 노예였지요. 할당 받은 만큼의 노예나 병사가 없을 경우 흥정을 해서 현물로 바치는 식이었지요. 중세시대의 세금제도는 중국보다도 못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천년 가까이 자급자족이 주가 되는 사회가 시작되었으니까요.

    화폐는 생각보다 일찍부터 사용되었습니다. 금화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기원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닳기도 하고 무겁기도 해서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유통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부의 축적 용으로 사용된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고대 로마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조차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실물이 전해지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금화나 은화의 인플레이션은 유럽 각 국가들의 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각 국가의 부의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금과 은을 기준으로 삼았기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덕분에 금과 은에 대한 열망은 엄청났지만 금과 은이 그대로 화폐화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부의 축적용으로 사용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땅에 대한 인식과 비슷합니다. 18세기에 들어서서 그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은 유럽은 부의 척도를 기술과 과학이라고 생각했고 그 덕분에 현재의 서양 문물이 꽃 피우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에는 부의 척도를 땅에 두고 있었지요. 그 덕분에 과학이나 기술에 대한 편견이 심했고 덕분에 화려했던 문화가 서양의 기술력에 무릎꿇게 된 것이지요.

    금과 은을 맡기고 환어음을 주어서 유통하는 방식의 지폐가 출현한 것도 중국은 12세기, 서양은 13세기에 출현합니다. 국가 단위로 실질적인 지폐를 발행한 것도 중국의 원나라가 최초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을까요? ^^a

    아 맞다. 세금.

    중세시대는 암흑시대라고 불리울 만큼 그 이전 보다도 못한 문명으로 되돌아간 시대입니다. 그래서 중세시대의 세금제도는 힘 쎈 놈이 약한 놈에게 빼앗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면 동양은 국가 통치에 대한 제도 확립이 완전히 마련되었기에 조세제도에 관한 한 서양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세련된 편이었습니다. 그것은 서양의 산업혁명 전 까지 유지되다가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국가의 부의 척도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우위는 뒤집히게 됩니다. 그 후 수학을 천시한 동양은 서양과 비교하여 뒤쳐지게 되고 서양은 반대로 우위의 입장에 서게 되지요. 조세 제도 역시 그와 동일한 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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