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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들이 내 펜션을 너무 좋아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ROHRAN노란
작품등록일 :
2024.08.31 08:05
최근연재일 :
2024.09.18 16:50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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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2
추천수 :
635
글자수 :
111,477

작성
24.09.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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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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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은설은 눈을 깔았다

DUMMY

하은설은 선천적으로 감정이 옅다.

병적으로 타인에게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소시오패스 기질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로애락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타인보다 현저하게 희미하게 느낀다.


하지만 그 대신 얻은 것이 기억력.

다른 이들보다 감정의 동요가 작은 대신 정보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노력형 천재’가 되었다.


접하는 정보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그 모든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현재, 그녀의 머릿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정보들은 한 가지 사실만을 고하고 있었다.


‘위험.’


멀찍이 떨어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

아니, 고양이의 형태를 한 ‘무언가’다.


‘저게 대체 뭐지?’


이곳은 그저 평화로운 시골의 펜션이 아닌가.

한데 그녀의 오감에 느껴지는 기척은.


‘S랭크? 아니, SS랭크 이상.’


설한 길드의 부길드장이며 S랭크 헌터인 자신을 능가하는 ‘무언가’가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죽는다.

그 사실을 느꼈기에, 하은설은 막혀오는 숨을 애써 삼키며 호흡에 집중했다.


언제 움직여야 할까?

아주 잠깐,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그때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내야 하나?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형준 씨는 민간인인데 어떻게 대피시켜야 하지?


하은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와중.

갑자기 형준이 벌떡 일어나고.

그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하은설이 형준과 고양이 사이를 가로막으려 한 순간이었다.


“호랑아! 너 요즘 자꾸 어딜 싸돌아다녀?”


성큼성큼 고양이에게 다가간 형준이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을 품에 안아 올리더니.

고양이의 미간을 슬슬 간지럽히며 말했다.


“어우, 무거워. 너 진짜 살 빼야겠는데.”

-워오오오옹.


불만 섞인 울음을 흘리며 형준의 가슴을 이마로 툭툭 미는 고양이의 모습.

하은설은 우뚝 선 자세 그대로 얼어있었다.


‘뭐지?’


형준이 고양이를 안아 올리는 것과 동시에 살을 찢을 것처럼 흉흉한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게다가 형준의 품에 안겨있는 고양이는 지금 이 상황이 편안하다는 듯이.


-거르르르릉.


무슨 오토바이 배기음 같은 골골 소리를 내며 형준의 품 안에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조금 전에 자신이 느낀 무시무시한 살기가 진정 현실이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한편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배를 슬슬 쓰다듬어주던 형준은 슬며시 하은설을 훔쳐봤다.


‘설마 고양이를 무서워하나?’


그도 그럴게, 뒤에 있는 건 호랑이 하나뿐이었는데 갑자기 ‘움직이지 마쇼!’하고 경고하고 마치 대피시키려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라고 말했으니.


그런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주혁이가 첫 손님으로 왔을 때도 이런 비슷한 반응을 보인 적 있었지.’


무슨 사생결단이라도 한 사람처럼 창을 움켜쥐고서 도망치라고 말하던 남주혁.

그때 그의 얼굴에 감돌던 긴장감은 그게 단순한 착각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진짜 이 근처에 뭐가 있기라도 한 건가?’


남주혁, 하은설이 이토록 긴장할 정도로?


‘근데 그 정도라면 진작 대피 방송 같은 게 나오고, 근방에 길드에서 보내온 헌터들이 좍 깔려야 할 텐데 그런 일도 전혀 없잖아.’


길드의 정보망은 장난이 아니다.

어디서 ‘이거 던전 아님?’ 하는 농담만 해도 길드에서 보낸 헌터들이 조사하러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즉 이 근방에서는 던전의 목격담도, 징후도 관측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남주혁, 나아가서 하은설 정도 되는 헌터들이 ‘두 번 연속 비슷한 착각’을 한다고?


‘이상하네. 그럴 가능성은 낮은데.’


왜 ‘그럴 리가 없다’가 아니라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냐면, 사실 그때의 남주혁과 지금의 하은설은 조금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시 남주혁은 술에 떡이 된 상태였고.

지금의 하은설은.


“저기, 부대표님.”

“······.”

“부대표님?”

“아, 네. 네에?”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던 하은설이 비로소 이쪽을 바라보자 말을 이었다.


“혹시 지금 많이 피곤하십니까? 아까 어제 막 던전 공략이 끝나서 피곤하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그 사이에 잠을 못 주무셨다거나······.”


그 물음에 하은설이 태연하게 답했다.


“나흘째 안 자긴 했죠.”


아이고, 세상에.

저러니까 남주혁이고 하은설이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위험해욧!’ 하고 지껄이는 것 아니겠는가.

당시 남주혁은 술 때문에 고주망태가 됐었고, 하은설은 나흘이나 잠을 안 잤으니 저러는구나 싶었다.


“그럼 얼른 식사하시고 한숨 주무세요. 많이 피곤하신 것 같네요. 어차피 기박 엔터 선발대는 점심 이후에 온다고 했고, 본대는 오후 늦게 온다니 조금 자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기박 엔터의 무슨 이사인가 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긴 해야 할 테니 계속 쭉 자는 건 힘들겠지만.

제정신을 차릴 때까진 잘 수 있겠지.

내 제안에 하은설도 자신이 졸려서 착각을 했나 하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래야겠어요. 하기야 이번에 던전 공략하느라 신경 쓸 것도 많았는데, 공략 끝나자마자 여기로 온 참이니······.”


하은설이 ‘피곤해서 그러나보다’ 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주혁이가 전기 포트를 들고나왔다.


“여기 뜨거운 물 대령이요!”


하은설의 라인을 타기 위해 깍듯이 전기 포트를 들고 나오던 주혁이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어?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하은설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별일 아닙니다.”


하은설이 뒤늦게 컵라면을 뜯어 스프를 털어 넣고, 주혁이가 조심스럽게 포트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물 많이 넣을까요?”

“아뇨. 선보다 조금 적게.”

“여윽시 부길드장님이십니다. 맛을 아시는군요.”


주혁이 저놈, 은근히 아부 떠는 성격이었군.

하기야 첫날에도 술 조금 들어가니 곧장 형님에 동생에 난리도 아니었으니.


다음으로는 내 컵라면에 물을 붓고, 마지막으로 자기 컵라면에 물을 부은 주혁이가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하은설의 옆자리, 내 맞은편이었다.


“이거 형님이 따로 발주 넣어 만든 거라 하셨죠?”

“응. 전에 왔을 때 너는 이거 못 먹어봤지?”

“흐흐, 그땐 소고기에 양주에 먹을 게 많아서 매점을 쓸 일이 없기는 했죠.”

“주리 씨는 이거 맛있다더라.”


설화 씨도, 정석 씨도 맛있다고 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주혁이의 반응이 예상 갔기 때문에.


“아, 그러면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데요. 걔는 뭐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다고 하는 애라서.”


역시 형제, 남매는 서로를 부정하는 존재구나!


‘뭐, 그래도 둘은 상당히 친해 보였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혁이와 별것 아닌 농담 따먹기나 하던 와중.

그가 내 옆에 앉은 고양이를 알아봤다.


“어어? 그 고양이 지난번에 걔 맞죠?”

“응, 맞아. 이름은 강호랑.”

“강호랑? 그럼 부를 때 호랑이라 불러요?”

“어. 이름 잘 지었지?”

“······눼.”


반응이 왜 이럴까.

내 작명 센스는 완벽한데 말이다.

아무튼 그날,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 다시 술에 취한 주혁이는 호랑이를 쓰다듬곤 했었다.


물론 처음엔 호랑이의 저항이 격렬했다.

그러나 주혁이가 구운 고기 몇 점을 건네주자 자비롭게도 그의 손길을 허락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슬금슬금 옆자리로 다가온 주혁이가 호랑이를 쓰다듬으려 한 순간.

호랑이가 앞발로 남주혁의 손을 후려쳤다.


“켁!”


주혁이가 손을 붙잡고 뒤로 물러나고.

그도, 나도 당황했다.


‘아니,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


고양이의 냥냥펀치가 낼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몽둥이로 때리는 ‘퍽’ 소리가 나다니.


“괜찮냐?”

“어어, 예. 괜찮아요.”


주혁이가 손을 주무르며 혀를 내둘렀다.


“와, 고양이가 힘이 왜 이렇게 세요? 진짜 손이 뒤로 확 밀리던데.”


호랑이의 든든한 등줄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가 산에서 뛰놀고 다니던 애라 그런지 속이 근육으로 꽉 찼더라. 들어보면 엄청 무거워.”

“그, 그래요? 어우, 깜짝이야.”

“그때는 고기 줘서 쓰다듬게 해줬나봐.”

“······구울까요?”


주혁이 이놈, 고양이 진짜 좋아하나 보다.


“좀 있다 손님들 오잖아.”

“쩝. 그렇네요.”

“그때 구워.”

“아하!”


형준과 남주혁이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누던 와중.

컵라면 용기를 양손으로 감싼 채 가만히 있던 하은설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입을 열며, 조심스럽게 강호랑을 힐끔 바라본 하은설이 몸을 흠칫 떨었다.

어느새 강호랑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스르륵-


하은설은 조용히 눈을 깔았다.

여태 그녀가 얻어온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본능’이 필사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뭔데? 저거 진짜 정체가 뭔데?’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을 관통하는 것 같던 살기.

마치 ‘허튼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라’ 하고 경고하는 듯했다.

마치 자신이 형준에게 ‘그 고양이, 대체 정체가 뭐죠?’ 라고 물어보려던 것을 눈치챈 것처럼.

그런데 이미 ‘저기’하고 말을 꺼낸 상황이었다.


“아, 네. 말씀하세요.”

“부길드장님, 필요하신 거 있으심까!”


어느새 형준과 남주혁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이었기에 뭐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원래 말하려던 ‘거 고양이 정체가 뭐요?’라고 물어봤다간.


‘죽을지도 몰라.’


그 정도로 조금 전의 살기는 무시무시했다.

무려 S랭크 헌터인 그녀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게 할 정도로.

결국 그녀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 말했다.


“······라면 다 익은 것 같으니 먹자고요.”

“아, 그러게요. 다 익었네요.”


태연하게 내뱉은 그녀의 말에 형준과 남주혁이 얼른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면을 휘휘 젓고.

그 와중 하은설은 듣고 말았다.


-푸흥!


호랑이가 콧방귀를 뀌는 소리!

이번 한 번만 봐준다고 말하는 듯한 콧방귀였다.


‘서열정리가 됐다고 판단하는 건가?’


자존심이 팍 찌그러지는 것 같았지만, 솔직히 하은설은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위험하진 않겠구나.’


헌터 길드의 부길드장쯤 되면 괜한 만용은 절대 부리지 않는다.

괜히 자존심을 걸고 용기를 냈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하은설은 선천적으로 감정이 옅지만 그만큼 생존에 대한 집착도 높다.

감정이 옅고 생존 욕구도 약한 사람들은 빨리 죽기 때문이다.


‘······라면이나 먹자.’


하은설은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휘 젓다가 조심스럽게 냄새까지 맡아본 후 면발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폭발하는 감각.


“······!!”


눈을 동그랗게 뜬 하은설이 마치 마시는 것처럼 정신없이 면발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형준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매차후의 라면 맛이 어떠냐.’


전 세계 산해진미를 몽땅 먹어봤을 설화 씨의 혀도 사로잡은 맛이 어떠냔 말이야.


이윽고 순식간에 컵라면 하나를 먹어 치운 하은설은 절제된 동작으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았다.


“맛있네요.”

“하하, 다행입니다.”

“사실 제가 매운 걸 전혀 못 먹거든요. 근데 이 라면은 담백함과 감칠맛이 굉장하네요. 이런 맛있는 라면은 처음 먹어봐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매운 걸 전혀 못 먹는다고?’


슬쩍 맞은편을 바라봤다.

남주혁은 라면을 흡입하면서.


“후우! 형님. 이거 진짜 맛있네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라면의 ‘얼큰함’을 즐기고 있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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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은설은 장설화를 바라봤다 +4 24.09.17 566 31 14쪽
» 하은설은 눈을 깔았다 +4 24.09.16 621 33 12쪽
16 S랭크 헌터 하은설 +5 24.09.15 683 30 12쪽
15 이 산은 이제 제겁니다 +3 24.09.14 711 29 12쪽
14 설화 씨와 밤 산책을 +5 24.09.13 739 29 12쪽
13 사장님, 주무세요? +6 24.09.12 762 32 15쪽
12 일정은 겹치면 안돼요 +4 24.09.11 798 38 14쪽
11 장설화가 알을 깨고 나왔다 +7 24.09.10 869 37 14쪽
10 고래는 오랜만에 숨을 들이마셨다 +7 24.09.09 897 35 14쪽
9 고래는 숨을 쉬고 싶다 +4 24.09.08 886 37 14쪽
8 물개가 고래를 데리고 왔다 +4 24.09.07 912 36 13쪽
7 물개가 세 마리 +5 24.09.06 937 34 12쪽
6 첫 손님 +5 24.09.05 920 30 12쪽
5 어서오세요 +3 24.09.04 940 31 14쪽
4 앞으로 잘 부탁해 +4 24.09.03 1,026 31 14쪽
3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4 24.09.02 1,116 30 12쪽
2 매점에 뭐가 있어요 +6 24.09.01 1,298 38 13쪽
1 송화 펜션 +10 24.08.31 1,578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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