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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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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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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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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심문회가 끝난지 며칠이 지났다.


다른 외계신들은 나를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섣불리 군사를 일으키진 않았다. 예의 심문회장에서 원주민 영주들이 예상보다 분발해준 모양.


덕분에 나는 당분간 영지의 관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레니아는 예전보다 일거리가 늘어서 오히려 신이난 듯 했다. 그녀는 무척 기쁜 표정으로 내게 보고했다.


"이주민 마을의 건설은 거의 완료됐습니다. 식량 비축분도 여유롭게 확보해뒀으니 당장 먹을 것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음... 잘 됐네."


나는 상당히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의 보고를 들었다. 영지경영에 있어서는 나보다 그녀가 훨씬 더 전문가인지라 이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레니아는 눈치가 빠르고 배려심 또한 깊었다. 그녀는 내가 집중해야할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짚어줬다.


"영지민들의 숫자가 늘어서 농업 이외의 분야에도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지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이쯤에서 기술직을 양성하는게 좋겠어요."


"기술직 양성이라고?"


내 영지 최대의 강점은 바로 드넓은 농지다. 하지만 땅덩어리에는 한계가 있고, 농사라는게 워낙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지민들의 숫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술직을 양성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레니아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각 마을에서 지원자들을 받아 자유 교역 도시에 기술 연수를 보내는겁니다."


"으음."


자유 교역 도시에는 수많은 분야의 장인들이 모여있다. 그들의 기술을 우리 영지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면 큰 힘이 되리라.


사실 이런 인재 양성은 전망이 보이는 기술자를 후원해주는 식으로 하는게 보통이지만... 우리 영지는 아직 세력이 작아서 후원금을 받고도 생깔 가능성이 크단다.


내가 생각해봐도 레니아의 것이 명안이다. 기왕 자유 교역 도시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용해먹을 것은 이용해먹어야겠지.


나는 곧장 고용인들을 시켜 각 마을에 공지를 돌리도록 했다. 지원자들의 숫자는 의외로 상당했다.


부모님들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기 힘든 둘째, 셋째의 경우에는 기술자의 길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 듯 하다. 레니아는 영주성 앞마당에 몰려든 아이들을 보고 감탄했다.


"알룬님께서는 영지민들에게 믿음을 받고 계시나봅니다."


"어... 어딜봐서?"


"아니면 소중한 자식을 생소한 도시로 보내려고 하진 않겠지요."


그녀의 말을 듣자 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 될 것 같다. 나는 카엘을 이번 일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자유 교역 도시에 관한 일에는 그녀만한 적임자가 없다.


카엘은 의외로 순순히 내 명을 받았다. 그녀는 내 애매한 표정을 보고 묻는다.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게..."


나는 그녀의 비밀을 처음 알았을때의 충격을 잊지 않았다. 요정족의 숲을 되찾기 위한 봉기. 그녀는 아직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내 교단의 규모가 이 정도까지 커졌으면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어 볼 법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숨겨뒀던 속내를 조용히 털어놓자 카엘은 슬프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직은 감히 알룬님의 조력을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저희의 숲을 차지한 세력은 무척 강대합니다. 대주교님 같은 전사가 한 다섯 명 정도 더 있고, 애버론님 급의 마법사가 두 명 정도 있으면 몰라... 그 전에는 수복하기 힘들겠지요."


"그, 그정도야?"


내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자 카엘이 담담히 긍정을 표한다.


"저희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고향을 버린데엔 그런 이유가 있었지요. 알룬님께서 호의를 보여주신 것은 정말 기쁩니다. 솔직히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


카엘은 아직 내 영지의 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모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숙한 요정의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내가 자신의 사정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큰 안심이 된 듯 하다. 그녀의 충성은 당분간 의심할 필요가 없겠다.


오래지 않아 각 마을에서 엄선된 아이들이 기술 연수를 위해서 떠났다. 카엘이 한동안 그들을 돌봐주기로 했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나는 그 뒤로도 영지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했다. 이번 일로 덩치가 꽤 커져서 신경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주변 영지들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하여 신수들을 충원하는 한편, 우리와 정기적으로 거래할 상인들도 물색했다. 그 외에도 쓸만한 새싹을 찾기 위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능 검사도 실시했다.


그러나 마력이나 신성력에 관한 재능을 가진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술 연수를 보내기 전에 검사해본 결과도 마찬가지. 하기사 재앙의 씨앗, 로인이 있으니 마냥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로인과 가끔씩 만날 때면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의 몸 안에 있는 폭탄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 그게 사라지면 녀석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택을 미룰 뿐이다. 나는 이 유예가 되도록 길게 이어지도록 빌었다.


한편, 아슬론은 슬슬 영지병들에게서 기대를 접었다. 그들 같은 인간족은 아인종들에 비하여 그 한계가 명확하다. 육체가 연약한 것은 물론이고 마력에 대한 재능도 한 없이 떨어진다.


사실 그들이 아슬론의 훈련을 소화하여 역전의 용사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웃긴 일이 될거다. 레니아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걱정했다.


"저희 영지의 군사력은 알룬님과 아슬론님. 두 분께 극단적으로 몰려있어서..."


로인 또한 무척 강력한 마법사이지만 어지간하면 쓰고싶지 않으니까 논외로 놓자. 마음 같아서는 신수창조 특성으로 커버하고 싶은데, 강력한 신수는 신앙점수를 많이 먹을 뿐더러 통제 또한 어렵다.


그렇다고 실력도 없는 영지병들을 죄다 성물로 무장시킬 수도 없는 노릇. 거의 모든 문제가 술술 풀려나가는 와중 이 문제 만큼은 끝까지 내 발목을 잡는다.


이걸 잠자코 방치할 수도 없는게, 제대로 된 군사력이 없으면 정치도 불가능하다. 우리처럼 작은 규모의 영지들은 더더욱 그렇다.


불행히도 주변 지역의 상황은 그리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 영지와 거래할 상인들을 검토해본 레니아는 조금 걱정스런 기색으로 이야기했다.


"알룬님, 한 가지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보고?"


"네. 저희 영지와 거래할 상인들을 확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


나는 그녀의 보고에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설마 저번 심문회장에서의 사건이 그렇게까지 악영향을 끼친 것인가?


하지만 이번 건은 레니아 본인이 추진한 일이다.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었다면 그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조금이나마 냉정을 회복한 뒤에 물었다.


"갑자기 왜? 그 건은 쉽게 진행될 것 같다고 했잖아."


돈이 없고 물건이 없어서 거래를 못 하는 경우야 많다. 그러나 상인들이 없어서 거래를 못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온 대륙의 방방곳곳에 발품을 팔아 이득을 챙기는 이들이 아니던가.


이 주변 지역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황폐화된 상태고, 우리 영지에는 잉여 농산물이 상당히 쌓여있다. 눈치 빠른 상인들이라면 군침을 흘릴만한 곳인데 아무도 거래를 안 한다니?


레니아는 재빠른 보충설명으로 내 오해를 풀어줬다.


"저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주변 영지들은 모두 똑같은 문제를 겪고있어요."


"... 어디서 전쟁이라도 났대?"


신성제국이 준동할 때 상인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내가 그 기억을 살리며 묻자 레니아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무래도 상황이 꽤 심각한 모양. 그녀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다. 전쟁은 아니겠지만, 전쟁 비슷한 상황인가보다.


"그게... 최근 외곽 지역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답니다. 이종족들이 숲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있어요."


내가 있는 이곳을 남부 지역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이 호칭은 '상대적으로 남쪽'이라는 뜻이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1등 종족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인류는 대륙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대륙 구석구석의 이종족들까지 몰아내지는 못했다. 다른 이종족들이 인간을 물리치기 위하여 연합하면 종족의 존망이 위태로워진다.


때문에 대륙의 외곽 지역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그곳에는 인류의 손길도, 눈길도 제대로 닿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거창하게 설명하긴 했으나... 사실 나와 아슬론에게는 그리 생소한 곳이 아니다. 당장 아슬론만 해도 용인의 숲 출신이 아니던가. 여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곳도 훌륭한 외곽지역이다.


내 호출을 받은 즉시 집무실로 달려온 아슬론은 그 주변에 대해서 상세히 고했다.


"용인들의 숲 주변에는 이렇다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다들 저희를 겁내서 제대로 다가오지도 않았지요."


아슬론은 평소 레니아에게 하대를 하곤 했으나, 그는 지금 레니아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굳이 존대를 하는 것이겠지.


레니아가 그의 공손한 태도에 묘하게 반응하며 추가로 질문했다.


"그래도 주변 사정을 아주 모르고 계시진 않죠?"


"물론입니다. 제가 듣기로 마을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늪지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쪽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산다고 했지요."


마을의 용인들이 그가 멀리 나가는걸 허락했을리는 없다. 용인의 마을은 예로부터 극도로 폐쇄적이었으니까. 레니아가 일말의 희망을 품고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혹시 그 이종족들이 주거지를 옮길만한 이유로 짐작가는게 있으신가요?"


"주거지를 옮긴다고요?"


"네. 단순히 한두 부족이 옮기는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대규모 이주 같아보이는데..."


"음..."


아슬론은 잠시 고민했으나, 대답을 질질 끌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명확하고 시원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이종족들도 인간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요. 수 세대를 거쳐가며 기껏 정착한 땅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로 상황이 나빠진겁니다. 숲 전체가 썩어들어가거나 하지 않는 한... 남은 이유는 하나 뿐이지요."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아무리 터프한 이종족들이라도 익숙한 땅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겠지. 당장 카엘을 비롯한 요정족들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레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뭔가요?"


"그 땅에 새로운 지배자가 나타난겁니다. 그것도 다른 모든 종족들을 위협할 만큼 강력한 놈이... 카엘을 비롯한 요정족들의 경우가 딱 그렇지 않았습니까. 옛 이야기에 따르면 저희 용인족의 선조들이 정착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남부의 외곽 지역 전체를 들썩이게 할 만큼 위력적인 지배자라. 과연 그런 놈이 있긴 한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돌연 영주성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우리가 창 밖을 보려는데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온 땅을 뒤덮었다. 나는 영지의 상공을 유영하는 불청객의 모습을 보고 잠깐 얼어붙어버렸다.


거대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 금속처럼 차갑게 빛나는 비늘까지. 창 밖에 보이는 적색의 생명체가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내가 저걸 실물로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지만 다른 답이 존재할 수가 없다.


"용!"


나와 마찬가지로 잠시 얼어붙었던 레니아가 비명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슬론이 이를 갈면서 영주성 밖으로 뛰쳐나가는 동안, 적색의 용은 도시의 앞에 우아하게 착지했다. 저 거구 내려앉는 것 치곤 터무니없이 작은 소음. 나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심정으로 낯선 불청객을 맞이하러 나갔다.


작가의말

장문의 코멘트를 달아주신 몽중정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전에 에피소드가 하나쯤 더 있었으면 좋았겠네요.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상황에 너무 끌려다니는게 아닌가 싶어서 넣어봤습니다. 이제껏 주인공이 뭔가를 주도적으로 보여준게 거의 없는지라... 그런데 소시민적인 캐릭터성이랑 잘 안 맞았던 것 같네요. 제가 너무 오버한 것도 있고...

충고 해주신 점들은 제가 유용히 잘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모자란 글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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