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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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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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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가르타가 배치해둔 신수의 시야를 공유받은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자그마한 언덕. 일단의 무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있다.


병사들은 대부분 기병이었는데, 방패나 갑옷에 가문을 상징하는 마크가 박혀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이번 연합의 주축이 될 영지다.


나는 어느새엔가 태양의 위치로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있게된 것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원정군의 병사들은 상당히 불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저쪽은 두 명이서 전쟁에 참여했다는데..."


뉴비 부대의 활약상이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카엘과 아슬론만을 데리고 영지를 얻을만큼의 전공을 세웠다. 사실 다른 부대원들도 많았긴 하지만, 전공을 계산할 때에는 당연히 따로 취급했다.


그러니 저런 일반병들도 내 교단의 힘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행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는 용케 병사들의 대화를 들은 듯, 역정을 냈다.


"그래봤자 단 두 명이다. 다른 영지군과 함께 치면 무서울 것 없어!"


저들이 내 영지를 치러오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나는 그대로 화신강림 특성을 사용하여 나무 뒤에 자리잡았다.


조용히 마력을 일으킨 뒤에는 행렬 뒤쪽의 보급품 마차를 노렸다. 벌써부터 인명피해를 내는 것은 원치 않았고, 애초에 씨앗을 방치한 내게도 어느정도의 책임이 있었다.


"응?"


원정군의 지휘관이 내 마력을 느낀 듯, 등줄기를 세웠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완성한 주문은 한창 마차를 향하여 날아가는 중이었다.


곧이어 굉음과 함께 마차가 빠르게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놀란 병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고했다.


"다음에는 보급품 마차가 아니라 너희들쪽으로 날아갈거다. 네놈들 소굴로 돌아가!"


"이, 이놈!"


난데없이 습격당한 놈들은 뒤늦게 나를 공격했으나, 내 화신체는 이미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신강림을 계속 사용하다가는 만만찮은 신앙점수가 소모되리라. 그래서 나는 점수를 처음부터 아주 타이트하게 사용했다.


딱 일격을 날린 뒤에 특성이 자동으로 해제되게 해놓은 것이다. 상대측 지휘관은 내가 완전히 사라지자 치를 떨었다.


역시 특성과 특성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굉장했다. 화신강림과 신수창조를 동시에 사용했기에 얻은 결과.


보통 화신강림 특성의 보유자가 나처럼 기습을 하려면 정찰병을 보내야 하는데, 인간 사이즈의 정찰병은 자그마한 참새에 비해서 너무 잘 들킨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남아서 놈들이 불타다 남은 보급품을 건져내는걸 지켜봤다. 놈들이 건진 보급품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하... 돌아버리겠네."


잠시 고민하던 지휘관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대로 가다간 쫄쫄 굶으며 행군하게 생겼으니 어쩔 수가 없으리라.


만약 어찌어찌 합류한다 쳐도, 보급품이 없으면 만족스레 싸우지 못한다. 다른 영지군들이 자기네 보급품을 나눠주는 친절 따위는 바라기 힘들터다.


'이거 진짜 쉽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성제국을 상대하던 나는 실로 아득한 난이도 차이에 감탄까지 내뱉었다. 보급품 좀 태워주는 것만으로 적군을 회군시킬 수 있다니!


레니아의 작전을 시험해본 나는 그대로 다른 영지군들까지 강제로 철수시켰다. 놈들이 연합하기 전에 쳐부순다는 계획은 아주 착실히 진행되었다.


아슬론도 신수의 기동력과 본인의 전투력을 살려서 그럭저럭 잘 해냈다. 습격 전에 신수를 통해 정찰을 행하는지라 성공률이 무척 높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영지로 돌아간 나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며 집무실의 의자 위에 쓰러지듯 앉았다. 화신체의 마력이 고갈되는 감각은 그리 상쾌하지 않다.


집무실에 남아있던 카엘과 레니아는 그런 나를 보고 축하의 한 마디를 건넸다. 아마 아가르타에게서 작전의 경과를 들은 것이리라.


특히 작전의 발안자인 레니아는 몹시 감격한 표정. 나는 그런 그녀에게 뒤늦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는 어디서 이런걸 배운거야?"


그녀가 나열한 군사지식들이 그리 고급스러운 종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 귀족 영애들은 그런걸 아예 모른다.


이 세계의 주민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무척 한정되어 있다. 우리처럼 인터넷을 뒤져볼 수도 없으니, 따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배울 수 없으리라.


레니아는 돌연 쓴웃음을 지으며 대략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아버님과 오라버님들은 사상 최악의 전략가들이었죠. 누구든 그 작자들이 했던걸 반대로만 실행한다면 인류사 최고의 명장이 될 수 있을겁니다."


자기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은걸 감안해도 평가가 많이 박하다. 정말 어지간히도 훌륭한 반면교사였던 모양.


그녀는 되레 내게로 감탄의 화살을 돌렸다.


"사실 의견을 내면서도 반신반의 했습니다만... 어떻게 제 작전을 그대로 실행하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작전이었고, 별로 손해볼 것도 없었으니까."


나는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손쉽게 대답했다. 그러나 레니아는 본인의 의견이 그토록 진지하게 고려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는 전대 영주의 딸인데다 별다른 경력도 없습니다."


"응? 그건..."


"그건 인간들의 관념이지요. 알룬님은 하찮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대답을 고민하던 중, 카엘이 무척 시기적절한 추임새를 넣었다. 이게 상당히 멋들어진 대답이라, 나는 그것을 써먹기로 결정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레니아는 묘한 눈으로 나를 살펴봤다. 사실 별 생각이 안 나서 그녀의 의견을 채용한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눈길이다.


다른 영지들의 연합을 막는 작전은 그 뒤로도 수월하게 먹혀들었다.


놈들 중에서 아린 정도의 수완가가 있으면 또 몰라, 그게 아니면 합류하러 오는 족족 깨져나가는 상황을 극복하긴 힘들 것이다.


아슬론과 나의 기동력은 뛰어나기 그지없는지라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냥 당해야한다. 신성제국군이 아닌 이상, 하루 24시간 내내 철통 같은 경계태세를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


적진에 아슬론과 비등한 실력자가 있으면 어느정도 대처가 가능하겠지만... 그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면 혼자서 우리 영지를 치러 와도 된다.


결국 연합은 머지않아 흐지부지 되었다. 예정된 병력의 반절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분주히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아슬론이 놀고있던 부하들을 닦달하며 아가르타에게 물었다.


"이제 남은 곳은 없는거지?"


"당장은요. 그런데 조금 멀리서 수상쩍은 움직임이 보이네요."


"뭐야?"


신전의 방에서 신도들을 지켜보던 나는 아가르타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녀석은 내 등장에 허둥지둥하며 보고했다.


"성왕국의 국경선에서 상당한 규모의 부대가 출정했어요. 3성 귀족이 직접 이끌고 있는데, 이제 막 나서서 정확한 경로는 잘 모르겠네요."


"성왕국 군대가 왜 이쪽으로 들어와?"


아가르타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올리 없는 내용이다. 나는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있던 참모진을 소집했다. 사실 참모진이라고 해봤자 카엘과 레니아 꼴랑 두 명이다.


당연하지만,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성왕국의 대대적인 침공이다. 그들은 신성제국과의 전쟁에서 전력을 온전히 보존해뒀다. 그러니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출정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레니아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일단 이 주변을 모조리 먹으려는 것 치곤 병력이 너무 적습니다. 또한 침공 시기도 적절치 않아요."


"침공 시기가 왜?"


"신성제국과 싸우기 위해서 결성된 연합군은 아직 전후 처리를 하는 중입니다. 그들은 아직 성왕국을 견제할 수 있어요."


하긴, 내가 성왕국의 지휘관이라도 연합군이 완전히 해산된 뒤에 쳐들어오고 싶을 것이다. 아린도 바보가 아닌지라 놈들의 침공을 경계하며 해산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있다.


우리는 생각의 방향을 조금 전환해봤다. 나는 아래층에서 마법을 연마하고 있는 로인을 떠올렸다.


성왕국의 정보부는 일을 굉장히 잘 하는 것으로 보였지.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재앙의 씨앗에 대해서 잘 알고있으리라. 그러나 레니아는 내 의견을 또다시 부정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것 또한 아닙니다."


"왜?"


나는 카엘이 한쪽 눈썹을 못마땅하게 치켜올리는걸 애써 무시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녀가 아니다고 단언할 정도면 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레니아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만약 씨앗이 발아하여 재앙이 일어난다면... 그 상황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건 다름이 아닌 성왕국입니다."


"... 그건 그렇네."


우리끼리 때리고 얻어터지면 남부의 패자로 급부상한 성왕국이 무척 좋아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지라 영토 확장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원체 정보가 부족한지라, 회의에서는 또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성왕국 군대의 진군 방향조차 모른다. 지금은 놈들의 동태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성왕국의 진군은 이웃 영지들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들이 어떻게 대처할지 보지요. "


레니아가 흥미를 가득 담아서 말했다. 우리 영지는 신성제국 영토의 중심부에 있는지라 그들이 닿을 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왕국 군대는 별다른 저항 없이 빠르게 진군했다. 그들의 감시를 명받은 아가르타가 내게 보고했다.


"놈들은 다른 영지에 들어가기 전에 전령을 보내요. 그렇게 미리 통과를 허락받고 지나가는 중입니다."


"어... 진짜?"


내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건전한 방법. 자국의 군대를 움직인 것 치곤 지나칠 정도로 온화하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산책이나 나왔을리도 없을터다.


아쉽게도, 그 불안한 행군은 내 영지를 향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며 로인을 돌봤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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