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돌아가다 -1
“크르르르르”
빨간 피. 날도 갈아져 있지 않은 투박한 무기들. 그리고 그 무기를 쥔 오크.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방이 오크들이었다.
혹은 바닥에 있는 시체이거나.
그리고 남아있는 이는 그 혼자 뿐이다.
“시x,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뛰어왔다.
시야에 가까이 다가오는 새빨간 도끼를 보면서 그는 쓰게 웃었다.
퍽.
뜨겁고, 아릿한 고통 속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죽음이 그에게 다가와 그를 끌어 안았다.
**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노예이든, 거지이든 누구나 다 죽는다. 그것은 그도 마찬 가지였을 것이다.
“로우드, 일어나라. 더 늦으면 아침도 없다!”
“헉!”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나이 40이 되어서도 그리워했던 목소리였다.
어머니.
그랬다. 그 목소리는 그의 어머니를 닮았다.
‘뭐야? 나 죽은거 아니었나? 아니면 죽고나서 신이 가장 그리웠던 것을 보여주는거야? .. 아님 악마?’
혼란스러운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투박한 손이 아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도 작고 여린 손이 자신의 눈에 보였다. 뭐지?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그 때에 누군가가 문을 덜컥 열었다.
“어서 일어나라고 했잖아! 로우드!!”
중년의 여성이 시야 가득히 들어 온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죽기 전의 꿈? 혹은 천국?
“어머니?”
로우드가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를 불러 본다.
“그래! 내가 니 엄마다! 어서 일어나지 못 해? 뭘 멍하니 있어!”
“어머니... 엄마?”
로우드는 침대에 일어난 채로 가만히 있으며 혼란스러워 했다.
그런 모습에 로우드의 어머니는 짜증이 일었는지 성큼 성큼 다가가서는 로우드에게는 솥뚜껑만한 큰 손으로 등을 퍽하고 쳤다.
어머니의 사랑의 가르침(?)으로 정신을 차렸는지, 로우드는 크게 ‘어머니’ 하고 소리지르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머니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럽게 울기만 하는 로우드가 이상해보였는지 어머니도 로우드와 같이 감싸 안아 주었다.
“꿈이라도 꾼거니 로우드?”
“아뇨. 아니에요.”
어머니 품에 안겨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하고 로우드는 한없이 생각했다.
**
어머니와 함께 있던 그 방에서 로우드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혼란스러움을 간직한 채로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웠던 부모님을 보는 행복함에 로우드는 어머니가 이끄는 데로 부엌에 갔었다.
부엌에서 먼저 있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와 같이 혼자서 한바탕 신파극을 찍은 후 정신없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하고는 방에 와서는 계속 이 상태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큰 홍수가 왔었을 때에 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던 부모님이 살아 돌아와 계셨다.
그것도 너무도 건강한 모습으로. 예전과 똑같은 집, 자신의 방, 식사를 했던 부엌까지 모두가 어렸을 때의 기억과 일치했다.
자신은 분명 오크의 도끼에 죽은 것이 아니었던가? 로우드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항상 그리워했던 가족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 악마의 장난인 것만 같았다.
“만약, 만약에..?”
한참을 앉아있던 로우드는 벌떡 일어나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로우드!”라고 어머니의 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린아이의 발로는 한참을 뛴 로우드는 야트막한 언덕위에서 마을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어린 눈에는 크게만 보이는 넓은 농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터에서 뛰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기억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내 결심을 한 듯 로우드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크게만 보이는 농장을 지나서 마을 중앙에 있는 다른 집들보다는 약간은 큰 베일리프(촌장)의 집.
그 옆으로 있는 잡화점, 식당, 여관들까지 가까이서 보아도 기억에 있던 그대로 였다.
그리워하던 것을 보는 듯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가던 로우드는 이내 마을의 공터에까지 다가섰다. 그 때 공터에서 어린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로우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자 어린아이 하나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벨른?”
“뭐야! 늦었어 너. 오늘 같이 놀기로 한거 까먹은거야?”
어린애다운 말투와 칭얼거림. 중요한 것은 기억과 똑같은 소꿉친구의 모습이었다. ‘벨른’ 하고 외치며 로우드는 벨른에게도 안기려고 했다.
벨른의 당황스러워하며 피하는 것에 실패했지만.
신파극을 실패한 로우드는 궁금한 것을 풀려면 같은 나이 또래에 묻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신파극에 당할 뻔한 벨른은 이 애가 왜 이러느냐는 눈빛으로 로우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벨른. 물어볼게 있어.”
“어..어? 뭐? 말해.”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친구때문인지 벨른은 약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 로우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질문하였다.
나이? 12세
날짜는? 320년 4월
마을? 고른 마을
오늘 자신과 뭘 하려고 했었는지까지 로우드는 꼬치 꼬치 캐물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로우드의 모습에도 친구가 물어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벨른은 성심성의껏 자신이 아는대로 대답을 했다.
이 애가 뭔가 이상하구나 하고 생각 또한 계속하면서. 한참을 물어본 로우드는 벨른에게 인사를 하며 간다고 말을 하였다.
또래 친구라면 무슨 소리냐면서 잡았겠지만 어린 아이어도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낌 벨른은 잘가라고 인사하며 순순히 보내주었다.
벨른과 작별한 로우드는 아까 전에 내려왔던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다.
너무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덕위에 가만히 앉아 로우드는 생각했다.
돌아왔다.
가장 그리워하던 그 때에.
돌아가신 부모님.
하루하루 같은 것을 하며 놀면서도 재밌기만 했던 그 때의 소꿉친구.
어릴 때는 너무도 크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마을 어른들까지.
모든 것이 기억 속 그대로인 그 때로 돌아왔다.
자신은 죽은 게 아니라 어린 그 날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워하던 그때로 돌아온 것이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로우드는 두려웠다.
죽은 사람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온다는 것은 말도 안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에게 말해도 미쳤다고 말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누가 믿겠는가? 어린 나이에 미쳤다고 손가락질이나 받을 것이다.
누가 미쳤다고 한들 자신은 돌아왔다. 어린 나이의 그때로 자신이 돌아온 것이 너무도 행복했다.
악마가 자신을 돌아오게 해줬을까? 그렇다기엔 자신이 대가로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임금 노동을 악마가 할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신? 역시 신밖에 없지 않을까? 용병으로 살며 살인도 하고 나쁜 짓도 하긴 하였지만 자신의 본의로 한 것은 없었으니 다시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로우드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을 하며 합리화를 했다.
주신이 자신에게 다시 한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고.
다시 한번 얻은 기회다.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기회.
또 한번의 삶.
- 작가의말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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