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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4 07:20
연재수 :
1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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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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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2.0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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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78화

DUMMY

“헌터관리국이다! 움직이지 마!”


헌터관리국의 요원들은 첩보를 통해 입수한 테러리스트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바를 급습했다.

미리 파악해둔 모든 출입구에서 요원들이 동시에 들이닥쳤고 놀란 바텐더와 직원들은 쭈뼛쭈뼛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가게 내 인원 전원 확보해, 한 명도 놓치지 마.”


작전팀 리더인 오주한 요원의 지시에 따라 요원들은 가게 내부를 수색해 모든 직원을 잡아 한곳에 모았다.


“흐음⋯.”


오주한이 보기에 이곳에 있는 직원 중 각성자는 없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도 전부 각성자가 아닌 민간인이었다고 하니, 이걸로 무언가 판단을 내리긴 어려웠다.


“일단 모시고 가서 조사해.”

“네.”

“아니, 잠시만요. 저희 장사해야 하는데요?”

“지금 체포하시는 거예요? 이유가 뭔데요? 뭐, 헌터관리국이면 미라클 원칙 그런 것도 없이 막 체포해도 돼요?”

“체포가 아니라 협조 요청입니다. 수사에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급적 일찍 끝내드리겠습니다.”

“싫어요, 내 몸에 손대지 마!”


아무리 별거 없어 보여도 다 들은 말이 있어서 현장을 덮친 것이기에 일단 직원들을 데려가 조사하려는데 그들은 가지 않겠다며 저항했다.

오주한은 좀 좋게좋게 말할 때 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체포해드리겠습니다. 전부 체포해.”


그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증거를 인멸하거나 주요 용의자가 도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주한은 망설이지 않고 직원들은 전부 체포해 연행시켰고 남은 요원들과 가게 내부를 추가적으로 수색했다.


“나는 숨겨진 공간이 없는지 확인해볼 테니 너희는 cctv 확보하고 뭐 이상한 거 없나 뒤져봐.”

“예.”


오주한은 사방으로 마력을 흘려 가게 구조를 훑기 시작했다.

무언가로 가려진 공간은 없는지, 건물의 설계도와 다르게 개조된 흔적은 없는지 그러한 것을 살폈다.


“⋯⋯있다.”


현장을 수색할 때 그냥 매뉴얼처럼 한 번씩 확인하는 일종의 절차일 뿐인데 그의 마력에 진짜 무언가가 감지됐다.

오주한은 이상함을 느낀 커다란 업소용 냉장고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째선지 그 뒤로 마력이 반사되지 않고 계속 흘러 들어가졌다.

그는 냉장고를 들어내 그 뒷부분을 확인해보았다.


“하.”


그러자 예상대로 냉장고 뒤쪽 벽에 사람이 들락날락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고 그 구멍 안엔 꽤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 파앗.


오주한은 마법으로 만든 빛의 구를 띄워 주변을 밝혔다.

뭐라도 건질 게 있기를 바랬지만 아쉽게도 냉장고 뒤 공간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여기서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긴 한 듯 술을 마시는 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회용 주사기의 포장지나 붕대 같은 잡스러운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cctv는 어때, 뭐라도 있어?”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cctv를 확인하는 요원에게 가봤지만 그도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영상이 삭제됐다는 이야기야?”

“하.”


오주한의 물음에 요원은 코웃음을 쳤다.


“영상이 삭제된 수준이 아니에요. 이거 보세요.”


요원은 컴퓨터 안에서 하드디스크를 꺼내 보여주었다.


“하드디스크 자체를 바꿨습니다. 포렌식 복원이고 뭐고 못하게 그냥 아예 새 걸로 바꿔놨어요. 그것도 딱 어제 저녁에요.”

“후우⋯.”


또 허탕만 친 오주한 요원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쉬었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그는 자신들이 멍청하게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됐다, 일단 밥이나 먹자.”


현장을 감식반에 맡긴 오주한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사안이 엄중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 했다.

어제도 그제도, 계속 빵이나 컵라면 같은 걸로 끼니를 해결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을 때 제대로 된 밥을 먹어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요원으로서의 실력이고 능력이었다.


“⋯⋯⋯⋯.”


적당히 현장 근처의 국밥집을 찾아 들어간 오주한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국밥은 진작 나왔지만 오주한은 계속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직 동주 팀장님 쪽에선 연락 없나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던 김민주 요원이 물었다.

오주한은 다른 현장을 맡은 쪽에선 뭔가 나왔기를 바라는 기대와 초조함에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밥 먹자.”


상사가 숟갈을 뜨질 않으니 눈치가 보인 부하 요원들도 수저를 들지 못하는 모습을 본 오주한은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수저를 들었다.

그는 국밥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순식간에 한 그릇을 해치우곤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한 그릇을 또 시켰다.

뜨거운 음식을 입천장 델 일 없이 빠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각성자의 소소한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


식사를 마치고 관리국 본부로 돌아온 오주한은 팀원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팀에서의 연락은 아직도 없었다.


“아, 팀장님 오셨어요?”

“⋯뭐 연락 오거나 조사하면서 나온 거 없어?”

“네, 아직 없습니다.”

“⋯⋯⋯⋯.”


오주한은 계속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일어서며 말했다.


“장비 챙겨.”

“예, 예⋯? 자, 장비요. 알겠습니다!”


뜬금없는 한마디에 팀원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오주한이 쓸데없이 나대며 빈말하는 스타일이 아님을 아는 부하 요원들은 곧장 전투복으로 환복 후 각자의 장비를 챙겨 집합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장한 그들이 향한 곳은 김동주 팀장의 팀이 수색을 담당한 한 폐공장이었다.


“티, 팀장님, 저거⋯!”


차를 타고 폐공장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김민주 요원이 길가에 세워진 차량 한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동주 팀장의 팀이 타고 이동한 차량이었다.

아직까지 덩그러니 작전지역 근방에 세워진 차량을 보니 불길함이 더해졌다.


- ⋯⋯⋯⋯.


차량에서 내려 도보로 폐공장까지 이동한 오주한은 진입을 대기 중인 김민주 요원에게 조용히 진입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김민주 요원은 소리 없이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3, 2, 1, 카운드다운을 했고.


- 콰아앙!

- 파아앗!


김민주 요원이 방패를 앞에서 폐공장의 문을 부숴버리며 진입함과 동시에 오주한 요원은 섬광탄처럼 공장 안을 향해 밝은 빛을 비추며 혹시 있을지 모를 적들의 시야를 차단함과 동시에 아군의 시야를 밝혀주었다.


- 찰팍.


그러나 폐공장을 급습한 오주한과 요원들을 맞이한 건 피 칠갑이 된 공장의 바닥과 갈기갈기 찢어진 요원들의 시신이었다.


“허억⋯!”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고 별에 별꼴을 다 본 요원들이라고 해도 참혹하게 찢어진 동료의 시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순 없었다.

요원들은 급히 동료의 생사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들의 숨이 끊긴 지는 이미 오래되었는지 바닥을 흐르는 피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하지만 오주한은 이 와중에도 공장 내부를 먼저 수색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공장 안에 남은 것은 오직 동료들의 시신뿐이었다.


“⋯⋯⋯⋯.”


내부 수색을 마친 오주한은 찍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자세히 확인해보았다.

모두 한 명의 적에게 당했는지 부상의 모양새가 일치했는데 잘린 팔과 다리 몸통 등 부상 부위가 매우 지저분하고 불규칙했다.

예리하거나 뾰족한 무기로 절단한 것이 아닌 힘으로 강제로 잡아 뜯고 찢었다는 소리였다.


오주한은 마지막으로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김동주 요원의 시신을 확인했다.

김동주 요원은 마지막 순간까지 맞서 싸웠는지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었고 오주한은 그런 친구의 눈을 감겨준 뒤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오늘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각인하는 듯했다.


“⋯다 모여봐.”


오주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팀원을 불러 모았다.

요원들은 훈련을 받던 연수원 시절로 돌아간 듯 기합이 바짝 들어 그의 앞으로 나란히 도열했다.


“나는 지금부터⋯⋯ 크으으⋯.”


오주한은 최대한 침착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다시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앞뒤 안 잰다.”


한참 입을 꾹 다물고 화를 삭히던 그가 처음으로 꺼낸 한 마디는 그것이었다.


“절차, 보고, 법. 다 좆까라 그래. 난 이 씨발새끼들 잡아 족치는데 내 인생 건다. 그 뒤에 요원을 때려치우던 깜빵을 가던 그냥 이 개새끼들 잡아 죽여버릴 수만 있으면 무조건 들이받는다.”


평소에 욕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욕은 더욱 무게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적인 복수에 너희들까지 휘말려서 인생 조지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빠질 사람은 빠지라고요?”


오주한이 하려던 말을 김민주 요원이 가로챘다.

그녀의 말에 오주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지금 팀장님만 열 받은 거 아니에요.”

“저희라고 다른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다른 요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들 상사의 앞에서 함부로 감정을 분출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눈동자엔 안광이 희번덕이고 있었다.




***




“후우⋯!”

“야⋯ 너 괜찮아?”

“아니⋯ 별로 안 괜찮은 것 같아, 머리가 뜨거워.”


몇 시간에 걸친 청문회가 끝나고 국회를 빠져나가려는데 아린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으으으!”

“어어어! 안 돼, 하지 마!”


이를 박박 갈며 분노에 가득 차 있던 아린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벽을 주먹으로 치려다 내 제지에 급히 속도를 낮춰 주먹을 벽에 툭 가져다 대기만 했다.

국회 벽 부숴버리는 줄 알고 식겁했다.


“이, 일단 좀 쉬었다 가자.”


나는 뒤에서 아린이의 어깨를 붙잡고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잠시 앉혀두었다.

국회를 나서면 또 기자들이 달려들 텐데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런 환경에 떠밀었다간 진짜 공황장애라도 올까 봐 내가 다 무서웠다.

나는 아린이가 좀 진정할 때까지 뭘 부수거나 하지 못하도록 계속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아, 알겠다.”

“응?”


아린이는 혼자 뚱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앉아있더니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이유를 알았어.”

“뭔데?”

“⋯어릴 때 생각나서.”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말이야. 그때가 이번 일이랑 겹쳐 보였어.”


그러고 보니 아린이는 어릴 때 던전 브레이크로 부모님을 잃었다고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에 죽어있는 사람들, 비명, 피 냄새, 사람들을 쫓는 몬스터, 울음소리, 다 똑같아.”

“⋯너도 그때 현장에 있었어?”

“응. 뭘 하러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같이 있었어, 그리고⋯ 아무것도 못 했어.”


아린이는 어릴 때를, 그리고 얼마 전 참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지 눈동자가 수축했다 확장했다 엄청나게 요동쳤다.


“이번에도 똑같아, 그 자리에 뻔히 있었고 사람들을 지킬 힘도 있었는데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어. 그게⋯ 그게 너무 짜증 나.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직 아니야.”


아린이는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짚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퍽퍽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린이의 행동에서 일종의 강박증 증세를 느꼈다.

설마 그렇게 훈련에 집중하던 게 단순히 집중력이 좋고 재능이 있고를 떠나서 어린 시절의 충격이 더 빨리, 더 많이,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게 괴롭힌 건가.


“그, 그러지 마. 하지 마.”


나는 자신의 이마를 치는 아린이의 손을 붙잡아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행동은 마음을 따르고 마음은 행동을 따르는 법, 격한 행동을 할수록 마음도 격해질 뿐이다.


“대체, 대체 난 뭘 해야 하지⋯? 뭐, 뭘⋯ 뭘 해야 맞는 거지? 내, 내가 뭘 더 할 수 있는데? 내가 뭘 어떻게⋯!”


아린이는 완전히 맛이 가서는 동공이 와들와들 떨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게 머릿속에서 어릴 때의, 지난번의 기억이 자꾸 재생되는 모양이다.

상태가 아주 심각해 보였다.

이대로는 무언가 와장창 깨지며 완전히 망가져 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린아? 윤아린! 정신 차려. 나 봐, 내 눈 봐봐.”


나는 그런 아린이를 진정시키려고 강제로 나와 눈을 마주치게 했지만 아린이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려있었다.

뺨도 몇 대 세게 때려 봤지만 바윗덩어리를 때리는 듯 내 손만 아프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 아이템 스킬 [혹한의 냉기]를 발동합니다. 』


- 쩌저저적!


“히약?!”


그래서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아린이의 뒷목에 손을 넣고 혹한의 냉기를 사용했다.

아린이는 깜짝 놀라 팔을 휘저어 내 팔을 쳐내며 앞으로 팍 튀어 나갔다.


- 우직.


“아.”


효과는 좋았지만 부작용도 있긴 있었다.

S급 헌터가 깜짝 놀라 휘두른 팔에 맞은 내 팔은 이쑤시개처럼 뚝 부러지며 팔꿈치가 꺾여선 안 되는 방향으로 꺾여버렸다.

아프긴 아프지만 굳은살 특전 덕분에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앗⋯! 미, 미안해! 이, 이걸 어떡하지?”

“아니, 어떻게 할 필요 없어, 그냥 두면 알아서 나을⋯!”


- 우득!


순간적인 상황에 당황한 아린이는 꺾인 내 팔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답시고 다시 반대로 꺾었다.

덕분에 팔뚝 뼈가 한 번 더 부러졌다.


“꺄악! 미, 미안해!”


그냥 좀 건드렸을 뿐인데 뭐가 또 부러지는 느낌이 난 아린이는 놀라 내 팔에서 급히 손을 떼었다.


“어우⋯ 아니야, 됐어. 다 붙었다.”


하지만 내 유일한 장점인 재생력은 이럴 때 밥값을 톡톡히 해주었고 뚜둑뚜둑 소리가 나며 팔이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이제 좀 괜찮아?”

“어어⋯? 어⋯ 응⋯.”


내가 상태를 묻자 아린이는 악몽이라도 꾸다 깬 사람처럼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전자기기나 사람이나 좀 이상하다 싶으면 한 대 때리면 낫는구만.

충격요법에 뇌가 초기화된 아린이는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 참, 내가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결국 네 말은 사람들을 더 잘 돕고 싶은 거잖아?”

“으응⋯? 아, 응⋯ 그, 그렇지?”

“그럼 너무 매정한 말일 수도 있는데⋯ 육체적으로 강해지는 것보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해.”

“마음을⋯?”

“네가 신도 아니고 세상 모든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각오가 필요하다는 거지. 누군가를 구하지 못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멘탈 터져버리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물론 네가 어떤 기분인지 모르는 건 아니야. 나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너나 나나 구한 사람도 많잖아? 난 그쪽을 생각하기로 했어.”


예비군 훈련 뒤로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잘했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혀봤자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기력을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내가 구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로 했다.


“내가⋯ 구한 사람들⋯.”


아린이는 잠시 자신이 구하지 못한 사람 대신 구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곤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묵은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은 망가지면 끝이잖아.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 비워봐.”

“⋯그 말이 맞는 말이네. 내가 먼저 망가져 버리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 거지.”


내 말을 들은 아린이는 조금은 편해졌는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났다.

집에 가자는 신호였다.

그러고 보니 형한테 끝났다고 연락하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는데 형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청문회를 보고 있었는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혹시⋯.”

“응?”

“혹시 오늘 저녁 너희 집에서 먹어도 될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린이가 갑자기 그런 걸 물었다.


“그래라?”

“아~ 그런 걸 뭘 물어보셔~ 우리 싸장님은 언제든 당근빠따 노프라블럼이지~.”


나와 형이 모두 동의하자 아린이는 그거면 됐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우리 내일 레이드 일정은 어떻게 되더라?”

“어, 내일? 잠깐만⋯ 나도 확인 해 봐야겠는데?”

“너 이 새끼 일 똑바로 안 해?”

“아니,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이 안 나서 그래. 대출금 메꾸려고 잡히는 대로 막 잡기도 했고.”

“너 그거 확인 잘해둬라? 멍청하게 까먹고 있다가 던전 브레이크 직전 돼서 헌터관리국에서 연락하게 만들면 바로 길드 평가 바닥 밑에 지하실 구경하러 간다?”

“그 정도로 대충은 안 하지.”

“그, 근데 준호야, 우리 이번 달 대출금 메꾸려면 얼마나 더 벌어야 해?”

“진짜 알고 싶어?”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할게.”

“좋은 생각이야.”


열심히 한다고 최대한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마 이번 달은 적자로 끝날 것 같았다.


“하~ 어디서 A급 던전 한 번 안 나오나? 그거 한 번 잡으면 이번 달 걱정은 끝인데.”

“야, 근데 A급 던전은 어떻게 따내도 문제 아니냐? 그게 셋이서 감당이 돼?”

“형이 아직 얘 싸우는 걸 못 봐서 그래.”

“이야, S급이 다르긴 다른가 보다.”


정신없이 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린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고 청문회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파편이 되어 흩어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말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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