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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의 세계입니다.

춤추는 진흙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암현
작품등록일 :
2017.07.29 23:25
최근연재일 :
2017.08.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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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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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UMMY

살짝 굽히고 있던 손가락을 펴 그것을 만졌다. 말랑한 살갗이 만져졌다. 살갗을 만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 악취가 풍겼다. 정지되어 있던 공기가 움직이듯 코끝을 스쳤다. 바람, 창문은 다 닫았으니 바람이 통할 리 없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손끝에 만져진 살갗에서 거친 힘이 느껴졌다.

양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춰 달려드는 것의 품 안에 들어갔다. 허리춤으로 인식되는 곳을 잡고 그대로 비스듬하게 받아 넘겼다.

신음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세만 바로 했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진 않았다.

그 사이 넘어진 것이 일어나는 기척이 그녀의 귀로 들어왔다.

밤에 익숙해진 눈이 희미한 달빛에 비친 날붙이를 잡아냈다.


들고 나왔던 것으로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지던 날붙이를 막고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듯 올린 오른손으로 목으로 추정되는 곳을 움켜잡았다. 컥컥대는 숨 막히는 소리만 낼 뿐 다른 말은 일절 없었다. 그녀도 별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다음 무릎으로 날붙이를 잡고 있는 팔의 팔꿈치를 누르고 남은 무릎으로 배꼽 근처를 눌렀다. 반대쪽 손이 그녀의 옆구리를 쉬지 않고 때렸고 다리가 마구 버둥거렸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손을 비틀어 날붙이를 빼앗았다. 손가락 한두 개 정도 반대로 비틀어버린 것 같았지만 그녀가 겪는 일은 아니었으니 그녀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는 아무런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일까.

동맥을 눌렀다. 버둥거림이 더 심해졌지만 그녀를 떨쳐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숨을 몇 번 쉬고 내뱉었다. 버둥거림이 약해지고 누르고 있는 상대의 숨이 멈추는 것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거칠어지던 맥박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느려진다.

완전히 멈추기 직전, 죽기 직전에 손을 뗐다. 곧장 사방에 불을 켜 기절한 그것을 확인했다.

사람이었다는 게 별로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겨울도 아닌데 목을 감은 더러운 천과 전체적으로 후줄근한 차림새, 특유의 악취. 때가 묻은 얼굴과 몇 주나 감지 않은 듯 한 머리카락. 그리고 그런 그가 휘두른 조잡한 칼에 망가진 담뱃대.

그녀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절한 그를 의자에 묶어두었다.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여니 밖에서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겁을 먹고 도망치려는 것을 잡아 묶어두었다.


그리고 단순한 흡연.

담뱃대는 우파나히의 것을 썼다. 그는 곧 의식을 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고 작은 아이도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그 이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단단히 묶어두었으니 따로 감시할 필요도 없었고 만에 하나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창문을 넘기 전에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으로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밤은 어두웠지만 손에 들린 기름등이 주변을 밝혔다. 등을 감싸고 있는 유리를 바꾸니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조심스레 위로 올라가 욕실에 쌓인 빨래를 들고 내려왔다. 빨래 바구니를 드는 동안 기름등은 그녀의 머리 위에 놓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문고리가 부서진 것을 멀찌감치 한번 바라보며 짜증을 참아 냈다.


밖으로 나가 수돗가에 바구니를 놓고 안에서 기름등을 몇 개 더 가지고 와 불을 붙였다. 그것들을 사방에 놓으니 빨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는 되었다.

야밤의 갑작스런 빛에 깬 무무가 낮게 울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무로 만든 장갑을 끼고 마당 한편에 세워져 있는 대야를 꺼내 그 안에 빨랫감을 쏟아 부었다. 이어 대야 안에 물을 가득 채웠고 나뭇잎 몇 장을 꺼내 물에 비벼 푼 다음 한 장은 빨래판에 비볐다. 나뭇잎을 비비면서 일어난 좋은 향이 그녀의 코끝을 스쳤지만 그걸 감상할 생각은 없다는 듯 물에 충분히 적신 빨래를 빨래판에 비비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소녀의 빨랫감은 하늘하늘 거리고 약한 재질이 많은 탓에 손으로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는 정도밖엔 할 수 없어 빨래판에 비비진 않았다.

우파나히의 것은 거칠고 뭉툭한 것들이 많아 그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발로 밟지 않으면 때가 잘 빠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것만 따로 빼 장화를 신고, 대야 안으로 들어가 밟아 때를 빼냈다. 물로 몇 번 헹궈내는 것도 큰일이었다.


빨래를 하는 동안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가 새벽에 닿아 있었다.

다 끝난 빨래는 정원 한 쪽에 있는 건조실로 들어갔다. 그 역시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사치의 극에 달해 있는 집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빨래를 널고 돌아온 거실에 묶어둔 두 사람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도망가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악취는 진득하게 남아 있어 창문을 열어두어도 잘 사라지지 않았다.

소녀와 우파나히가 일어나면 그 처우에 대해 물을 생각이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듯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지만 눈물을 떨어트리진 않고 있었다. 겁이 나는 것을 참고 있을 뿐이었지만 조금은 어른스러웠다.


묶은 것을 확인한 다음 이라베이는 등을 하나만 남기고 모두 끈 뒤, 안에 들어갔다. 다시 자기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하진 않았다.

찬장 깊숙이 숨겼던 검은 열매가 든 꾸러미를 다시 꺼내 그 안에서 서너 알정도 집은 뒤 다시 숨겼고 그걸 주머니에 가만히 넣은 채 지하로 내려갔다.

향신료나 술 따위를 보관하는 지하실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두 배 길이 정도 되는 계단을 내려가야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었다.

사방을 돌로 막고 선반을 놓아 여러 물건들을 보관한 그곳은 서늘했지만 수차를 이용한 환기장치가 있어 습기가 머물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용무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곳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곳, 그곳으로 가는 문을 향해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바닥 한쪽 구석에 만들어진 작은 나무문은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듯 먼지하나 쌓이지 않은 모양새였다. 윤이 나는 도료를 발라 가벼운 광이 나긴 했지만 그 때문인지 나무 특유의 질감은 조금 죽어 있었다.

이라베이는 그 나무문을 손가락으로 한번 쓸어내린 다음 둥근 쇠로 만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곳엔 몰래 감춘 과자나 비상금 따위가 아닌 뛰어난 석공이 만든 듯 한 통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모난 곳 없이 둥글게 다듬은 천장과 굴곡진 곳 하나 없는 계단, 천장에는 군데군데 빛을 내는 유리조각 같은 것들이 박혀 있어 어둠 속에 발을 헛디딜 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낸 까만 열매를 계단 아래로 굴려 보낼 뿐이었다.

열매는 으깨지는 일 없이 통통 튀며 계단 아래로 굴러갔고 조금씩 속도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닫았다. 닫고 난 뒤 그 행위가 마음에 들기라도 하는 듯 나무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올라 주방으로 간 뒤 묶은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서야 아침식사와 짧은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전날에 샀던 것들은 대부분 수레에 실려 있었기에 크게 준비할 것들은 없었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준비했고 대신 쉽게 상하지 않을 것들로 도시락을 쌌다. 점심에는 삶은 달걀을 으깨 넣은 샌드위치와 삶은 밤을 꿀과 함께 뭉친 것. 저녁에는 말린 과일과 훈제 생선. 그리고 다음날 아침으론 견과류를 갈아 넣은 가루 스프와 말린 고기를 준비했다. 모두 우파나히가 산 건조식보다는 좋은 것이었다.

다 만든 요리의 맛을 볼 때는 아주 조금만 입에 넣었고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는 뱉었다.

그 행동 자체는 이상하긴 했지만 요리는 아주 훌륭하게 만들었고 소녀가 그걸 직접 보는 일도 없었으니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귀퉁이 같은 남는 것들을 모아 두 사람 앞에 두고 아이를 묶은 줄을 풀었다. 눈을 떼진 않았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 같아보였지만 한 조각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 것을 보여줬다. 그 다음 접시를 앞으로 조금 밀자 작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집었다.

먼저 먹지 않았다. 묶여 있는 그에게 먼저 먹였고 그 다음 자신이 먹었다.

닮은 구석은 없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닮았다면 닮았다고 할까. 그 외에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목에 두른 천이 신경 쓰였지만 식사 중에는 별로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뒷정리를 하는 사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듯 우파나히가 내려왔다.

밤중에 있었던 소동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손에는 옷가지가 들었을 법한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내려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불청객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이라베이의 눈에 오늘따라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이는 것이 그녀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세 명 밖에 살지 않는 집에서도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온통 시커멓고 무표정한 우파나히를 그녀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식탁에 앉아도 차 한 잔 내놓지 않았다. 묶지만 않았을 뿐 불청객과 같은 대우였다.


우파나히도 그것에 대해 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 다리를 올리지 않은 것은 곧 내려올 소녀가 그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먹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전에 불청객들의 처우를 결정해야 했지만 말이다.


“뭐지.”

“도둑입니다.”


두 불청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파나히의 눈에 망가진 담뱃대와 그걸 망가트린 칼이 들어왔다.

칼을 집어 날을 확인했다. 형태는 조잡했지만 날이 잘 살아 있는 좋은 칼이었다. 칼을 다시 내려놓고 난 뒤 이라베이가 신경 썼지만 그때는 건드리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을 건드렸다.

꾀죄죄한 그의 턱을 잡아 올리고 목에 감겨있던 천을 벗겼다. 선명한 칼자국이 보였다. 전투나 싸움에서 나는 거친 상흔이 아닌 정교한 솜씨로 성대를 척출한 수술 자국이었다.


“넌 누구지.”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우파나히는 열린 창문 쪽으로 가 침입한 흔적을 찾아냈다. 잠금 쇠 가까이에 손가락을 넣어 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유리를 잘라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잘린 가장자리에 미세한 금도 가지 않은 정교한 솜씨였다.


“난동부리면 죽인다.”


그 말과 함께 묶은 줄을 풀었다.

푸는 순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그의 몸과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쓰지 못하게 된 오른손을 우파나히의 얼굴로 날렸고 왼손은 탁자 위에 놓인 칼로 향했다. 눈은 등을 돌리고 선 이라베이에게 향해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얼굴에 주먹을 꽂으면 물러서거나 반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대로 이마를 대어 주먹을 막았다. 그리고 팔을 잡아 당겨 쓰러트림으로써 칼을 챙기려는 시도도 실패로 돌아갈 수밖엔 없었다.


“가만히.”


쓰러트려 억눌렀다. 무릎으로 등을 누르고 오른손을 등 뒤로 꺾었다. 그 뒤 뒤통수를 눌러 턱을 바닥에 닿게 했다. 남는 무릎으론 반대쪽 팔의 어깨를 눌러 고정함과 동시에 겨드랑이 안쪽으로 힘을 실어 관절을 빼냈다.

관절이 빠질 때 고통이 심했을 것이었지만 그의 목은 바람소리만 낼 뿐 어떤 형태의 비명소리도 내지 못했다.

꺾은 팔에 힘을 줬다. 소리는 내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충분히 느낄 것이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꽉 깨문 어금니가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두개골과 목뼈 사이를 눌렀다. 우파나히의 힘이라면 그 사이에 힘을 줘 부러트리는 것도 가능할 일이었다.


“손가락.”


짜증을 삭힐 곳 없는 이라베이의 시선이 향한 곳은 꺾인 팔의 손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달려있어야 할 손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없었다. 나머지는 그만큼 두껍게 발달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이라베이가 칼을 빼앗을 때 뒤로 접어버려 제대로 쓸 순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단면을 잠시 관찰했다.

잘린 손가락들은 싸우다 잃은 것인지, 스스로 자른 것인지 상처자국이 균일하지 못했다. 우파나히는 남은 팔의 관절도 빼버린 다음에야 손을 뗐다.

움직임은 멈췄지만 우파나히는 자기가 할 일을 계속했다.

목 뒤에 그의 칼을 살짝 밀어 넣었다. 칼날이 피부 아래로 파고들고 피가 방울질 정도로만 찔렀다. 그 상처에 “잘린다.” 라는 말까지 섞어 넣으니 저항을 포기한 듯,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애초에 아무렇지 않게 사람 한 명의 팔 관절을 빼버리는 사람과 싸워 이길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뒷덜미를 잡아 의자에 앉히고 왼쪽 어깨 관절을 다시 밀어 넣었다. 남의 관절을 힘으로 빼고 붙이는 제멋대로인 그에게 질려버린 것인지 짧은 한숨으로 심정을 나타냈다.

우파나히는 곧 잉크병과 종이, 깃펜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아줬다. 등을 돌리긴 했지만 어떻게 할 마음도 없어보였고 이라베이의 시선도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써라.”


글을 쓸 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확인하지도 않은 배려심 없는 말이었지만 그는 깃펜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날카로운 끝을 엄지로 살짝 만졌다. 날카롭게 깎인 끝은 약간의 사용감이 있어 거친 피부에 가볍게 걸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상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을 단단히 잡고 목이나 눈을 찌르면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명했다.

가만히 자신을 보고 있는 네 개의 눈들을 한번 흘겨보고는 그대로 포기했다. 대신 어깨를 가볍게 한번 돌린 뒤 깃펜을 고쳐 잡고 우파나히가 이르는 대로 쓸 준비를 했다.


“떠돌이인가.”


서툰 쥠으로 느릿느릿, 삐뚤빼뚤하게 그렇다. 라고 적었다.

글을 본 우파나히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라베이가 “북부 문자입니다.” 라고 말하자 몇 번 음을 되뇌더니 곧 이해했다.


“애는.”


이번엔 그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파나히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동행자. 라고 적었다. 아이는 우파나히의 눈빛을 흘겨보곤 가볍게 떨고 있었다. 지저분한 입술도 조금 파리해진 것이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보였고 콜록거리는 것을 보아 가벼운 병증도 있어보였다.

우파나히가 곧 이라베이에게 눈짓했지만 그녀는 별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우파나히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재료로 차를 끓여 탁자 위에 놓았다.


“뜨겁다.”


아이가 찻잔에 손을 대려는 순간 이라베이가 아이의 뒤로 돌아가 아이의 목에 감겨 있던 천을 칼로 끊어냈다. 아이는 놀라 허겁지겁 목을 감싸 쥐었다. 허둥대며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꼬꾸라져 게거품을 물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괜찮다. 그렇게 말하듯 아이의 동행자가 아이를 감싸 안았다.

증오스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이라베이를 노려보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턱을 발로 차 쓰러트린 다음 아이 앞으로 찻잔을 내밀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아이는 목만 감싸 쥘 뿐 찻잔 따위에 손을 댈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우파나히가 이라베이를 한번 보곤 먼저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내밀었다. 아이는 동행자의 손에 의해 겨우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여전히 목을 감싸 쥔 채 턱을 아래로 꾹 눌렀다.

천이 끊어지고 목을 감싸 쥐는 그 짧은 사이에 정교한 실력으로 성대를 잘라낸 상처가 우파나히의 눈에 들어왔다. 같은 상처. 그리고 유리를 잘라낸 검술. 평범한 도둑은 아닌 것을 보였다.


“검술.”


그는 아이에게 찻잔을 쥐어준 다음에야 우파나히가 내민 찻잔을 받아들었다.

조금 마신 뒤 질문의 형태에 익숙해진 태도로 북부, 라고 짧게 적었다. 이라베이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오른쪽 손목을 잡아 고정시킨 뒤 손등에 포크를 찔러 넣었다. 세게 내려찍지 않고 천천히 고통을 음미하라는 듯 눌러 밀어 넣었고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이 무사한 걸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피가 맺히자 뺐고 그대로 얼굴로 올려 눈썹 아래를 살짝 두들겼다. 여차하면 눈을 찌르겠다는 표정과 행동이었다. 그제야 철벽너머. 라고 적었다. 그걸 보고 있던 아이는 이라베이 쪽을 경계했고 우파나히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보고만 있지 말고 직접 해보시지요.”


이라베이는 자기를 가르치려드는 그의 태도가 싫었다. 하지만 우파나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제시할 뿐이었다.


“바늘, 꽂는다.”


순식간에 바늘 세 개가 남자의 손등에 박혔다. 피가 맺히자 끝을 잡고 빙글빙글 돌려 고통을 더 했다. 바들바들 떨었지만 그의 목은 아무런 비명소리도 내지 못했다. 우파나히는 느긋하게 그 시간을 즐겼다.

쓰기도 쉽고 보관하기도 쉽다. 깊게 찔러 넣으면 살짝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움직여 피부 아래를 휘저어버린다.

고통은 오래가고 근육을 망가트리지만 쉽게 죽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더하기에 좋았다.


“바늘에 독나방 가루를 바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간지럼 두더지 기름.”

“바닥에 피가 눌어붙어서 귀찮습니다.”


“피부를 스스로 벗겨내니까 번거로울 일이 줄어든다.” 라는 말은 북부 어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이의 눈이 커지며 이라베이와 우파나히 둘 다 경계했다. 우파나히는 그렇게 말한 뒤 안심하라는 듯 먹을 것을 만들어 그들의 앞에 내놓았다.

전날 쓰고 남은 큰 새고기를 크게 잘라 칼집을 내 구웠고 남은 빵은 작은 냄비에 옮긴 스튜에 넣어 죽처럼 끓여냈다. 아이가 냄새를 참지 못하고 식탁에 놓인 고기에 손을 대려 했지만 그걸 본 우파나히가 국자로 가볍게 손등을 때린 다음 개수대로 데려와 손부터 씻겼다.

그리고 물을 두 잔 먹인 다음 스튜를 조금 덜어 먹였고 고기는 자기가 먹었다.


“먹어라.”


스튜를 내밀었지만 그는 쉽게 먹지 않았다.

오른손은 만신창이였고 왼손은 깃펜을 놓는 것 조차하지 못하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신고할 생각, 없다.”


차라리 경찰에 신고 해줬으면 할 상황이었다.


“유리가 잘렸습니다.”


잘린 유리창으로 이라베이의 시선이 향했다. 하지만 우파나히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걸 곧 입 밖으로 내어 그녀의 화만 돋우었다.


“새 것 산다.”

“비쌉니다. 그리고 고문한다는 건 농담이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라베이의 눈은 여전히 잘린 창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 유리는 아름다움이 장점이었지만 수리가 안 되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비쌌다.

어딘가에서 도둑은 손을 잘랐던가. 라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우파나히가 “아니.” 라며 그녀의 생각을 잠시 끊었다.

바로 말을 잇지 않고 맨손으로 고기를 잡고 뜯었다. 우파나히는 그렇게 먹는 걸 좋아했다.

손은 씻었다.


“몸이 약한 상태에서 고문하면 빨리 죽는다.”


고기를 입에 문 채 물병에 물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올려놓는 사이 고기는 목 아래로 내려갔다.


“체액이 부족한 상태라면 더 빨리 죽는다.”


고문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말이 많아진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얼굴로 잔에 물을 담아 내밀었다.

그는 마시지 않았고 먹지 않았다. 깃펜은 아직 놓지 않았다. 그걸 들은 이라베이는 “아······그래서 그때······” 라는 말만 중얼거렸고 아이는 북부 어 외의 다른 언어는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뭘 원하나. 라고 적었다. 우파나히는 “답” 이라 답했다.


“왜 내려왔나.”


비가 왔다. 라고 시작된 글은 길어졌다.

추위와 굶주림, 습기로 인한 병에 대해 몇 줄, 아이와 만난 이야기에 대해 두어줄, 그리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 몇 줄. 그렇게 적었다.


“읽을 수 있나.”

“늪지라는 단어입니다. 비 때문에 늪지대가 넓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우파나히는 모르는 단어에 대해 이라베이에게 물어보곤 했지만 몇 단어에 대해서는 이라베이도 답해주지 못했고 그 역시 북부 문자 이외에는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도망치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인지 그는 깃펜에서 손을 떼고 아이의 목에 천을 묶어주었다. 아이도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인지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파나히와 이라베이가 글을 해석하는 사이 산발한 머리카락을 한 소녀가 내려왔다.

이리저리 붕 떠버린 머리카락에 질질 끄는 발걸음, 축 늘어진 어깨를 자랑인 냥 내세우며 내려온 그녀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차 주세요.” 라는 말만 했다.


“우아아암······진하게 주세요.”


불청객을 눈치 챈 것은 그로부터 코가 냄새를 감지한 때였다.


“으······냄새······이 사람들은······?”

“수해민이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킁킁대는 게 집짐승 같았다. 선이 확실한 악취에 소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고 우파나히가 나서서 설명했지만 의문만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비가 내리진 않았을 텐데요?”

“북부에서 왔다.”

“지금 계절에요? 이상하네요.”


이상하단 의문과 찻잔의 기울임은 같았다. 미지근한 차를 양껏 마시고 난 뒤 초대한 적 없는 손님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 다음 내뱉은 말은 이라베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아, 저 사람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볼일 다 봤으면 빨리 가라고 해요.”


딱딱하고 차갑고, 적의마저 느껴지는 투박한 말투는 그녀가 쓸 것이 아니었다.

이라베이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에 충실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님.”


소녀는 불청객이 나가는 것도 보지 않았다.

더 보기 싫다는 듯 다 비우지도 않은 찻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뒤 다시 위로 올라갔다.

평소와는 달리 그녀의 걸음걸음이 난폭하다고 느껴졌다.

격한 감정. 이라베이는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섞여 나온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답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상처를 낸 곳은 씻기고 부목을 대고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았다. 그 사이 우파나히는 사두었던 건조식을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고 그가 치료를 받고 난 뒤 그가 가지고 있던 칼을 손잡이가 그를 향하게 해 건네줬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들었지만 우파나히를 해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대문을 나서는 것까지 봤고 잘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손 인사에는 손을 가볍게 들어주었다.


그 역시 그 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이라베이는 생각했다.

의문은 의문을 낳았고 그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론은 왜? 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젯밤에 마님께서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셨는지요.”


자신의 눈이 닿지 않은 유일한 시간이었다. 자고 일어난 뒤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밀어냈다. 평소의 그녀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아니.”


잘 마시지도 않던 차를 우파나히 스스로 따라 마셨다. 맛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찬장에서 꺼낸 설탕을 가득 넣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이 나라는 제도가 좋다.”


이상한 일이라고. 이라베이가 그렇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차를 마셨다. 그리고 친절하게 답변도 해주었다. 이라베이가 이때까지 쌓아두고 있던 모든 상식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조금······조금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이해 못하겠다.”


이번에는 평소와 같은 모습.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소녀가 개운한 모습으로 내려와 차를 한 잔 하는 동안 우파나히는 창가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담배를 피웠다.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면서 이라베이의 담뱃대를 수리했다.

칼에 맞아 깨진 담배통 바로 아래를 잘라내고 짧아진 대에 새로운 담배통을 붙였다. 대는 짧아졌지만 피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수리가 다되자 마지막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지 불어본 다음 멀뚱히 보고 있던 이라베이를 향해 던져 줬다.


“잘 쓰겠습니다.”


새로 사야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 간단히 고쳐지자 신기한 듯 우파나히의 얼굴과 담뱃대를 몇 번 번갈아 보았고 그 사이 들어온 바람에 담배 연기가 실려 소녀가 화를 내었다.


“밖에 나가서 피면 안 돼요? 냄새 진짜 싫거든요!”

“끈다.”


아직 남은 담배를 창밖으로 탁탁, 털어낸 뒤 창문을 잠시 열어두었다. 아쉬운 듯 아직 식지 않은 담뱃대만 만지작대는 것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출발은 안하시는 지요.”


담뱃대를 고쳐준 답례랄까. 평소와는 다른 나긋한 목소리를 들려줬지만 돌아온 것은 “살게 있다.” 라는 딱딱한 말뿐이었다. 소녀는 미묘하게 신경질적이었고 우파나히는 지나칠 정도로 느긋했다.

이상한 아침. 이라베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 배고파요!”


이상한 아침이었지만 식사는 해야 했다.

소녀가 곧 배고프다며 나긋나긋한 소릴 질러대었고 우파나히가 이에 반응해 식사를 준비했다.

이라베이가 식사 준비 하는 것을 도왔고 소녀가 권하기 전 자리에 앉았다. 곁에 앉는 그녀의 행동에 소녀가 의아하다는 듯 반응했지만 곧 “같이 먹으니까 좋죠? 많이 먹어요~!” 라며 기뻐했다.


“오늘은 꽤 풍성하네요~”

“저녁에 출발한다.”


내일 간다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입을 삐죽 내밀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갈 때 문단속 잘해요. 도둑 드는 건 싫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마님.”


차를 한잔 마시는 순간 코끝에 남아 있던 악취와 자신이 말한 도둑이라는 단어가 함께 섞여 그녀가 싫어하는 경우를 떠올리게 해줬다. 그리고 문득, 한순간 말이 튀어나왔다.


“남을래요?”


말을 내뱉는 순간 아차 싶었던 것일까. 기울이던 찻잔을 황급히 돌리며 말을 바꿨다. 차가 식탁에 조금 흘렀지만 그녀에겐 지금 그 순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 아니지, 아니지, 모처럼 인데 같이 가는 것도······아니지······도둑 드는 건 정말 싫은데······으으음······”


소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고전하는 동안 우파나히는 고기를 더 구웠다. 뺏어 먹는 사람이 없어 그런지 움직임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불청객 앞에서 이미 한 접시 먹었던 그였지만 더 먹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겨울에 대비해 영양을 비축하려는 짐승처럼 잔뜩 먹어대고 있었다.


소녀는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많이 먹는다. 이라베이로썬 잘 알지 못하는 감각이었다. 보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작은 결정을 내렸다.


“남겠습니다. 마님.”

“으으음······음~!”


이라베이의 대답을 들었지만 소녀는 아직 엄청 싫다는 표정과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이라베이로써는 그 표정에 재미를 느낄 수 없었기에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우파나히는 그 사이 구운 고기를 다 먹고 또 구웠다. 소녀는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이라베이가 넌저시 쳐다보자 한참을 굽던 중 시선을 느낀 것인지 되받아치듯 본 뒤 소녀에게 일렀다.


“남겨라.”

“하지만······”

“집 볼 사람은 필요하다.”

“모처럼 가족 여행인데······”


가족이란 말에 이라베이는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웃었다. 우파나히는 다녀와서 가자. 라는 제안을 했지만 소녀는 수긍하면서도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인지 찻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 거렸다.

이에 우파나히가 이라베이의 의사를 다시 한 번 물었고 이라베이는 “그렇습니다.” 라고 답했다.


“남는다고 했다. 남겨라.”


이라베이의 대답을 들은 그가 차를 이리저리 흘리고 다니는 소녀의 찻잔을 뺏고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버둥거렸지만 겨드랑이와 위쪽 팔이 당겨져 그리 큰 움직임을 낼 순 없었다.


“우으······.”

“둘이서 가긴 싫은 건가.”

“네?”


들고 있던 소녀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듣는 당사자의 앞엔 찻잔이 놓여졌다.

소녀는 순간 의외라는 표정을 살짝 지어보인 뒤 곧 묘한 웃음을 보이며 식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양손으로 꽃을 만든 것 위에 턱을 올렸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에요? 뭐······히히······”


웃고 난 뒤의 얼굴은 일부러 지은 듯 한 뚱한 표정이었지만 눈과 입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우파나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식탁 위에 올라와 있던 소녀의 손끝에 자신의 손끝을 대었다. 소녀는 피하지 않았다. 찻잔에 차를 따른 뒤 그것을 그의 손등에 잠시 올려둘 뿐이었다. 우파나히는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은 채 꾹 참았다. 소녀는 곧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뇨, 전혀. 그런 경우의 수는 없어요.”


한 모금을 덜어낸 찻잔은 다시 우파나히의 손등 위로 올라갔다. 그만큼 열기와 무게가 줄어들었지만 쉽게 견딜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더 노골적으로 굴어도 귀여워 해줄게요.”


그녀의 말에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등에 올린 찻잔이 달그닥 거렸다.

소녀가 “쏟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고 우파나히의 시선이 벗어난 곳에선 이라베이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찻잔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우파나히는 방법을 바꾸어 남은 손으로 찻잔을 치우려 했지만 재빨리 날아온 소녀의 손이 그의 손등을 때렸다. 찰싹 거리는 소리가 나며 그의 손이 물러갔다. 그리 아프진 않은 것 같았지만 다시 손을 올리진 않았다.

소녀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안 돼요.”

“찻잔을 쏟지 않곤 힘들다.”

“그래서 올려놓은 거예요. 함부로 달려들면 곤란하잖아요?”


검지와 엄지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목에 살짝 대었다. 그리곤 옥죄듯 살짝 올리며 “목줄을 잘 채워야죠.” 라며 놀렸다. 그렇게 자신을 놀려대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댄 것은 이때였다. 조금은 포기한 듯 한 모양새였지만 찻잔이 올려져 있는 손을 움직여 보려 노력하곤 있었다.

별 성과는 없었다. 수전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마음이 급한 것인지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찻잔은 떨어질 듯 달그닥 거렸다. 곧 포기하고서 손을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그는 그 상황이 싫었다.


“맛있네요. 이거.”


우파나히가 찻잔으로 만든 목줄에 잘 매여 있는 동안 접시에 남아 있던 고기는 소녀의 차지가 되었다.

그만큼 먹고도 양에 차지 않았던 것인지 우파나히가 접시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소녀가 한발 앞서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손이 닿지 않게 했다. 그리곤 놀려대듯 일부러 입을 크게 벌려 먹었고 씹는 소리와 맛을 음미하는 소리도 크게 내었다.

유치하고 얄미운 모습이었고 우파나히의 표정이 편해지는 행동이었다.


우파나히의 손에서 눈을 뗀 이라베이는 잘린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먼지, 혹시나 모를 도둑의 손길을 막을 방법에 대해 궁리 중이었다.

모래 따위를 혼합한 것에 열을 가해 만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장난삼아 유리조각에 열을 가했다가 깨진 기억이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접착제를 사용할 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랬다간 도둑들에게 여기로 손을 넣어 문을 여세요. 라고 광고하는 꼴이 될게 뻔했다.


“아직 고민 중이에요?”

“예, 붙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마님.”

“음······으으······! 좀 들어주실래요?”


잘린 부분까지 닿지 않는 손끝은 까치발을 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들어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이라베이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녀를 들어 주었다.


“이건 이런 식으로······”


어째서 인지 그녀의 손엔 잘린 조각이 들려 있었다. 자른 것을 어디서 주운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도둑질을 하면서 그것을 안전한 장소에 두는 도둑은 그리 많지 않을 일이었다.

약간의 의문이 원래의 의문에 더해졌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침묵했다. 소녀는 조심스레 잘린 작은 부분을 잘린 큰 부분에 대고 살짝 눌렀다. 반대쪽으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손끝으로 두드려 조각을 맞췄다.

그리곤 잘린 부분을 손끝으로 천천히 잡아당기듯 쓸어내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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