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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별길 님의 서재입니다.

수사관과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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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erfall
작품등록일 :
2022.09.27 18:48
최근연재일 :
2022.10.12 14:21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95
추천수 :
5
글자수 :
20,129

작성
22.10.02 16:20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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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사막 위에서(3)

비판과 지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DUMMY

"쓰레기 같은 년놈들이군. 그 누구도 제국과 황제폐하를 위해 한몸 바칠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 이건가. 그 정신머리로 수사관을 자처하다니."


모두가 기다릴 것이다. 멍청한 인간이 한명 정도는 있기를. 살다보면 보통 있곤 했다. 한명 정도는 반장이 되고 싶어했고, 한명 정도는 전투병이 되고 싶어했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박수를 쳤다.


그런 용기있는 자가 한명쯤 있는건 박수를 받기 때문이다. 단지 바보가 될뿐만 아니라 멋지다는 칭찬도 같이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원하는건 용기있는게 아니다. 멋지지도 않다. 그저 인생을 추락시킬 뿐이다.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침묵만이 흘렀다. 유리창으로 햇빛이 내리쬐었다. 담뱃재와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누군가는 가야한다. 이미 이곳에서 한명을 차출하기로 약속했고, 바뀌지 않을거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지목하겠다."


그 말에 사람들이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다들 바닥을 맹렬하게 바라본다. 지부장이 심술궂은 표정으로 팔짱을 낀다.


"탈주자들을 잡아넣은 수사관이 있다고 보좌관에게 들었다. 누구지?"


옆에서 리즈가 긴장하며 몸을 바짝 굳힌다.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나보지. 옆을 슬쩍 보니 표정이 안쓰러울만큼 굳어있다. 대답을 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색이다.


누군가가 그 고민을 덜어주었다. 리즈는 아니었다.


"이등 수사관 리즈입니다."


알렌이었다. 친절하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그녀를 가리킨다. 지부장의 시선이 그 손가락 끝을 따라가 리즈에 닿는다.


기막힌 동료애에 사내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 딱히 소속감을 느껴본적도 없고, 그래서인지 감정 이입을 해본적도 없다. 과몰입 같아서.


하지만 지금만큼은 희미하게나마, 사내는 *느꼈다*. 역겨움을.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리즈를 가리키는 알렌에 대한 역겨움을.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다며 즐거워하는 특등 수사관에 대한 증오를.


지부장이 저벅저벅 걸어온다. 홍해처럼 길이 갈린다. 리즈는 지금껏 훌륭하게 처신해왔다. *아웃랜더*에게 대놓고 말을 걸면서도 다른 이들의 미움을 사지 않을만큼. 허나 결국, 제아무리 훌륭히 살아왔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도울 사람은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리즈를 향한다. 안도감과 질투, 악의까지 이것저것 섞여있는 추악한 집합체. 사내는 알렌이 싱글벙글 웃는 것을 보았고 사무실의 절반 이상에게 다리를 벌렸다고 소문이 자자한 계집 두셋이 기쁘게 미소짓는 것을 보았다.


세상은 미쳤다. 년놈들은 좆같고. 그게 사내의 결론이었다. 지난 몇년간 수십번은 내린 결론.


"직급이 어떻게 되지?"


"...이등 수사관 리즈 예르마크엘입니다."


"이름있는 가문이군."


"먼 친척일 뿐입니다."


"탈주자를 잡아넣었다고 하던데."


"황제께서 손을 뻗으셨으니, 저는 움켜쥐었을 뿐입니다."


모범적인 대답이었다. 지부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즈의 앞에 서서 그녀를 가만히 관찰하더니 얼굴에 손을 뻗는다. 거미처럼 얼굴을 쓰다듬는다. 리즈는 파르르 떨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지부장의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뜩인다.


"아깝군. 이 한심한 곳에서 썩어가기엔 너무 아까워."


"훌륭한 말씀 감사합니다."


"동부의 이름모를 도시에서 객사하기에도 마찬가지로 아깝지만...황제께서 직접 수락하신 지원요청이니 유능한 이가 파견되어야 한다. 너는 충분히 유능해 보이는군."


리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께서 원하신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거짓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가 나를 돕는다면, 나 또한 너를 도울 수 있다."


지부장은 리즈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썩은 진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리즈는 찡그리며 볼을 손가락으로 쓸어냈다.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지부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제가 지부장님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분명 알고 있었다. 남자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욕망이 일렁거렸고, 여자들은 자신보다 훨씬 더 고귀했던 계집이 추락하는 모습을 고대했다.


"나에겐 힘이 있고, 너에겐 몸이 있다. 훌륭한 조합이지 않나?"


사내는 실소했다. 막장 드라마를 관람하는 것처럼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건 선택의 여지를 주는게 아니다. 지부장은 방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했다. 그녀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모두가 알게될 것이다. 고개를 젓는다면, 이름모를 시골에서 객사하게 될 것이다.


리즈는 입술을 깨물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그녀는 파멸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재정신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손에 총이 있었다면 쏘았으리라. 마법사였다면 이곳을 불태웠으리라. 하지만 그녀에겐 총이 없었다. 마법사도 아니었고. 주먹만 부르르 떨릴 뿐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군. 점심을 먹고 올테니 그때까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하라는 그런 뜻이겠지.


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전혀* 상관없이 어느날 인생이 뒤바뀌어버린다면? 자고 일어났더니 낯선 세상에 떨어져버린 사람에게는, 선택 똑바로 하라는 말이 그저 같잖게 느껴질 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예상할 수 없다. 훌륭한 선택과 밤을 새는 고민 따위 천재지변 앞에선 그저 무의미한 헛짓거리일 뿐이다. 그러면 머리 아프게 가능성을 계산하는 대신, 그냥 눈 딱 감고 *꼴리는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사내는 입을 열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사내는 보았다. 지부장의 얼굴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알렌의 표정에 미소가 사라지고, 걸레 같은 계집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내는 옆에서 리즈의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말리지 않았다. 말릴만큼 착하고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지부장이 침묵을 깼다.


"...이름이 뭐지?"


"카시크. 일등 수사관 카시크입니다."


"어디 출신인가."


"제겐 출신이 없습니다, 지부장님."


아웃랜더라는 뜻이었다. 지부장의 얼굴에 순수한 경멸이 깃든다. 참으로 순도 높은 감정이라서, 사내는 짜증나기보다는 차라리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역겨운 아웃랜더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저는 황제폐하의 묵인 아래 이곳 수사처에 자리잡았습니다. 지금껏 무덤에서 기어나오는 악마를 찢어죽였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떨거지들을 수도로 압송했으며, 방구석에 어린 계집을 수집해놓은 포주들의 피를 모래에 뿌렸습니다. 역겹든 역겹지 않든 그건 지부장님의 자유지만 지부장님께 감히 제 자격을 운운할 *자격*은 없습니다. 황제가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그런 자격은 없을겁니다."


지부장은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리즈 대신 지부장이 입술을 깨물 차례였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빠져나갈 개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리즈는 차라리 죽고 싶었을테지만, 지부장은 그저 본인의 역겨운 *성기*만 가라앉히고 뒤로 물러나면 된다.


지부장은 그렇게 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리즈를 탐했다가, 포기했다는듯 다시 카시크를 응시한다.


"...네놈은 처참하게 죽을거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제대로 묻히지도 못하겠지. 그 알량한 만용 따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다 죽습니다. 그 누구도 아웃랜더 따위를 기억해주지 않죠."


사내는 빙긋 웃었다.


"어차피 기억되지 못할텐데, 제 사지가 몇조각이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리하여, 아무래도 늘상 같은 일상은 아니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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