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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별길 님의 서재입니다.

수사관과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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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erfall
작품등록일 :
2022.09.27 18:48
최근연재일 :
2022.10.12 14:21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91
추천수 :
5
글자수 :
20,129

작성
22.10.05 16:27
조회
26
추천
1
글자
8쪽

사막 위에서(4)

비판과 지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DUMMY

날짜로는 봄이었다. 낮에는 따뜻함과 뜨거움 그 사이쯤에 있는 햇빛이 내리쬐곤 했다. 그러나 밤만 되면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쳤고, 때때로 눈이 내려 시체를 차갑게 식혔다.


사막의 가혹한 강수량은 공교롭게도 겨울과 이른 봄에 몰렸고, 봄을 넘어서면 하늘은 끔찍하리만큼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쌀쌀한 밤이었다. 사내는 야외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망토가 이따금 바람에 흩날렸고, 덥수룩한 머리칼이 때때로 눈을 가렸다.


얼린 맥주는 쌉싸름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을 느끼며, 밤하늘을 말없이 바라본다. 맑았다. 항상 맑았다. 수치스러운 지상의 모습과 달리 하늘만큼은 언제나 무슨 cg마냥 별이 펼쳐졌다.


"무슨 생각해요?"


"생각 안해. 그림을 그리는 중이야."


"제 눈에는 술만 마시고 있는걸요."


"손 대신 눈으로."


리즈는 사내의 시선을 따라가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눈으로 별자리를 그리는건가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진 별자리 속에선 상상이 쉬웠다. 하늘 위에서 버스가 다녔고, 그는 그곳에서 얼음 맥주 대신 소주를 마셨다. 사랑하는 여자가 웃고 있었고, 간질거리는 감정으로 손을 잡았다.


"무슨 별자리들을 그리고 있나요?"


시선을 내려 현실로 돌아온다. 리즈는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패션에 한동안 사내는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군."


"제 옷이요?"


"태어날때부터 자켓이랑 바지를 입은채로 태어난줄 알았거든."


리즈는 웃었다. 사내의 맞은편에 걸터앉는다. 입은 옷은 달랐지만 향기는 그대로였다.


"카시크, 당신이 살던 곳엔 별이 많았나요?"


"많았지. 다만 보이지가 않았을뿐."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없는거에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사제들의 단골멘트와는 정반대였다.


"신을 믿지 않나?"


그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황제조차 믿지 않는다고. 한평생 이 사막에서 살아오며 보았던 것은 모래와 별일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민들을 위한다는 신과 황제는 별보다도 무의미한 무(無)라고 주장했다.


"다른 곳들엔 별이 이렇게 많지 않다고들 해요. 이방인들은 하늘의 별을 바다의 등대로 비유하더라구요. 하지만 보세요. 여기서는 별이 곧 바다에요."


사내는 웨이터를 불렀다. 주근깨 가득한 소녀는 카시크와 눈이 마주치고는 표정이 썩었다. 표정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맞은편의 리즈 때문인지 무시하지도 못했다. 얼음 맥주를 주문했다.


차가운 맥주를 들어올리며 리즈는 고맙다고 고개를 까닥했다.


"무슨 별자리를 그리는지, 알려주지 않을건가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여기서 죽어간 사람들을 별자리로 그리고 있어요. 신을 믿지는 않지만,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는 사제들의 말은 믿어요.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죽어서 영영 잊혀지기보다는, 그래도 별이라도 되는게 덜 허무하잖아요."


"정말 많은 별자리를 그려야겠군."


"아직까진 도화지가 부족하지 않아요. 제가 할머니가 될때까지 살아있다면 모르겠지만."


사내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사람은 잊기 마련이라고. 사람이 새롭게 죽는만큼 그녀는 까먹을테니 결국 그녀가 생을 마칠 때까지 그릴 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을거라고 했다. 리즈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이며 맥주만 홀짝였다.


카시크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혼자 마실때 받았던 혐오 가득한 시선과는 조금 달랐다. 질투가 섞여 있었다. 허나 리즈는 그런 시선에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아니지, 똑똑한 여자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다만 그냥 모르는척을 할뿐.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사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명한 사실이었다. 조각상을 뜯어보듯 리즈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녀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막의 태양에 그을린 피부는 티 한점 없고, 평소에 바짝 묶은 검은 머리칼은 비단결처럼 풀어헤쳐져 있다.


그렇게 둘은 해야할 말을, 혹은 하고싶은 말을 눌러삼키며 한동안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리즈가 침묵을 깼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말해."


"사실은 아주 많아요."


"그러니 물어봐, 얼마든지."


"대체 왜 그랬나요?"


당연히 예상한 질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올법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질문. 하지만 사내는 차라리 아까처럼 별자리와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시크, 당신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동부는 말그대로 엿같은 곳이에요. 이 세상에 이곳 사막보다 더 쓰레기 같은 장소가 단 하나 있다면-"


"나도 알아. 어떤 곳인지. 이곳에선 사람이 죽으면 최소한 수사관의 보고서에 수록이라도 되지만 그곳에선 수록은 커녕 그냥 잊혀진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제가 묻잖아요. 대체 왜."


사내는 맥주를 홀짝였다. 이곳의 맥주는 사내가 마시곤했던 소주만큼이나 도수가 셌다. 사내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냥, 그럴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당연한 일이다. 카시크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 하지마요."


"맞아, 하나도 안 웃기지."


"말장난 그만하고 대답해줘요."


사내는 다시한번 리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원하는 대답이 있는듯 했다. 그 대답이 무엇인지 추측하는건 쉬웠다. 듣고싶은대로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나기 전에 맛깔나는 로맨스 소설 하나 써주는게 그리 까다로운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러기엔 사내의 마음 속이 텅 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거짓말이다.


"만약 저를 위해서였다면-"


"참을성이 없군."


"..."


"듣고싶은 말이 있으면 참았어야지. 하지만 말해봐. 너를 위한거였다면? 그 다음 말은."


"...저랑 같이 가요. 하나보다는 둘이 낫잖아요. 하나보다는 둘이 더 살아남기 쉬울거에요."


"평생 고향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은 바뀌는 법이니까요."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사람은 가끔 멍청해진다고 표현하겠어. 술을 마셨을때처럼. 그러다가 다음날 깨어나면 병신 같은 생각을 했다고 자책하지."


리즈는 화를 냈다.


"함부로 말하지 마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각오를 하는지 당신이 감히 뭘 안다고-"


"관심 없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리즈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이나마 미안했다. 이곳에서 살아온 근 6년동안 처음으로 사내는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네가 숙고 끝에 각오를 했든 충동적으로 같이 가자고 했든 나는 상관없어, 엘리. 애초에 너를 위해서 자원을 한게 아니니까. 말했잖아. 그냥, 그럴 수 있었기에 그런거라고. 이유가 있어서 해야만 했던게 아니라 그냥 *저지른*거야. 내겐 그런 특권이 있거든. 인생을 열심히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없는, 그런 면죄부가."


바람이 쌀쌀했다. 사내는 걸친 겉옷을 벗어 건네주었다. 모래가 반짝거렸다. 별은 샛노란색이었다. 마법석을 태우는 건물의 등불들은 붉은색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보지못할 풍경이리라. 어쩌면 다시 못볼지도 모르지. 이 모든 풍경들이. 그리고 눈 앞에서 울음을 참는 리즈 또한 마찬가지로.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미 다시는 보지 못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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