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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별길 님의 서재입니다.

수사관과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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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erfall
작품등록일 :
2022.09.27 18:48
최근연재일 :
2022.10.12 14:21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93
추천수 :
5
글자수 :
20,129

작성
22.10.12 14:21
조회
162
추천
1
글자
10쪽

사막 위에서(5)

비판과 지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DUMMY

바람이 쌀쌀했다. 사내는 걸친 겉옷을 벗어 건네주었다. 모래가 반짝거렸다. 별은 샛노란색이었다. 마법석을 태우는 건물의 등불들은 붉은색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보지못할 풍경이리라. 어쩌면 다시 못볼지도 모르지. 이 모든 풍경들이. 그리고 눈 앞에서 울음을 참는 리즈 또한 마찬가지로.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미 다시는 보지 못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욕을 하고 싶으면 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


"왜요, 어차피 당신은 *좆도* 상관 없어서?"


소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올렸다. 손가락을 눈가에 가져다댄다. 아마도 눈물이 터지지는 않을거라고,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리즈니까.


"사람들이 저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걸레*래요."


"사람들은 원래 항상 무언가를 씨부리기 마련이잖아."


"왜 그런 말을 저한테 씨부리는지 알아요? 당신이랑 대화를 해서 그래요. 고작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카시크 또한 잘 알았다. 허나 그 누구도 리즈에게 아웃랜더와 대화하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순전히 그녀의 선택이다. 게다가 카시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녀는 온전한 이 세상 사람이다. 그러니 더더욱, 그녀의 선택이다.


"나는 이 세상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씨부리더군. 그건 고칠 수 없는 이유지. 하지만 넌 고칠 수 있는 이유잖아. 이미 떨어진건 다시 올라갈 수 없지만, 말은 하지 않으면 되니까."


"달래줄 생각이 전혀 없나보네요."


"오래 전에 까먹었어, 예쁘게 말하는 방법을."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거였는데. 하지만 전 했어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웃랜더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말.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라는 사람들의 말이 개소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보니-"


"맞는거 같다?"


리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무언의 긍정이라는건 자명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되었다고, 나는 개자식이고 너는 앞으로 잘 살라고 말해준 다음 일어나면 딱 좋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교류했던 사람이다.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사람이다.


"틀렸어."


"..."


"왜냐하면 내가 지금 마음이 아프거든. 네가 그렇게 말하는걸 듣고있으니 마음이 아파."


그녀는 눈밑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결국 눈물이 터지지는 않았다. 좋은 인내심이다.


"마음이 아프다고요."


그녀가 확인하듯 그렇게 말했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주변에선 여전히 수군거리며 훔쳐보았다. 리즈는 그 말을 듣고 훨씬 기분이 나아진듯 했다. 기분이 나아진건지 아니면 감정을 추스린지는 헷갈렸지만.


"왜 마음이 아픈지, 마음이 아프면 왜 같이 가자는 제 제안을 거절하는건지, 정말로 순전히 충동적으로 저 대신 지원한건지 끊임없이 묻고싶어요. 질문이 끝나지 않으면 당신이 떠날 일도 없을테니까."


그것 참 판타지 속의 필리버스터가 따로 없군.


"하지만 어차피 대답하지 않을거죠?"


"그래. 이미 한 말을 두번 반복하는건 무의미하니까."


"마음이 아프다는건 진실인가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할 이유가 없잖아."


"믿어요."


"믿어줘서 고맙군."


둘 다 술잔이 비었다. 카시크는 한 잔씩 더 주문할려 했지만, 리즈는 술기운은 충분하니 잠깐 걷자고 했다.


늦은 밤이었다. 내일은 평일이었다. 어둑한 사막 도시의 길거리에 행인들이 미아처럼 흐느적거렸다. 맨정신인 이는 거의 없었다. 다음날 일찍 기상할 필요없는 한량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일찍 기상해야함에도 건조함에 취해 밤길을 거니는 영혼들.


갈라진 벽과 모래빛 건물들만 아니었다면 텅 빈 사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임 황제들은 마땅히 문명이 박탈되었어야할 이곳에 강제로 도시를 세웠다. 저주받은 영혼들이 문명세계에서 쫒겨나 이곳에 자리잡았다. 근 몇세기가 지났음에도 가혹한 모래바람과 가뭄은 여전히 이곳에서 인간을 추방시키고 싶어하는듯 했다.


"이방인들은 비가 *쏟아진다*고 하더라구요. 웃기죠. 저는 눈이 쏟아지는건 봤어도 비가 쏟아지는건 본적이 없거든요. 기껏해야 변비걸린 닭똥처럼 뚝뚝 떨어질 뿐이지."


"동부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사람들이 알고있는 만큼은요."


"거기는 비가 쏟아지는 편인가?"


"지겹도록 쏟아진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수없이 굶어죽지만 적어도 목말라 죽는 일은 없다고, 그런 질낮은 농담이 있다고 해요."


"가서 확인해보도록 하지."


"가서 죽을 생각인가요?"


"뭐?"


리즈가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또다시 평상시의 그녀 모습이었다. 울음이 나지 않는, 그래서 울음을 참지 않는, 딱히 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평소처럼 비가 오지 않는 사막 같은.


"죽을 생각으로 지원한거냐구요. 이곳에서 살아가는게 너무 고달파서 차라리 동부에서 죽겠다, 뭐 그런건가요?"


좋은 질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수사관 노릇을 하다보면 알겠지만 보통 삶과 죽음이라는게 우리 의지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


"하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상관이 있죠. 불가피한 죽음과 삶을 포기하는건 다르니까.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줘요. 중요한 질문이에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 죽음이 다가오면 기꺼이 죽겠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할 생각은 없어."


"그러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희박하지."


"희박하다는건 적어도 있다는 뜻이죠."


"무슨 말을 하려는거지?"


"오늘부터 꿈을 꿀거에요."


말뜻 그대로의 꿈보다는 비유적인 꿈에 가까워보였다. 사내는 그 순간 술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했던 말을 후회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던 그 말 한마디. 괜히 조금은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했던 말 한마디.


"무슨 꿈?"


"말한적 있죠. 저는 큰 야망은 없다고. 그냥 평생 이 사막에서 돌고 돌다가 늙어죽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


"이 도시를 뜰거에요, *어떻게든*. 수도로 갈거에요."


"나 때문인가?"


리즈는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고향을 떠나는건, 아뇨. 하지만 이 도시를 뜬다음 언젠가 다시 당신을 만나게되는 꿈을 꾸는건, 네, 당신 때문이죠."


"수도에는 사람이 끔찍하도록 많다고 하던데."


"많죠."


"참으로 많이들 씨부릴거야, 이곳보다 훨씬."


"상관없어요."


"걸레 대신 촌년이 되겠군."


마지막 말에 리즈는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사내가 알던 리즈와 참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는 꿈은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시크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느새 자정이었다. 인공적인 붉은 불빛은 하나둘씩 꺼져갔고 샛노란 별빛만이 도시에 남았다. 밤공기는 서늘함과 스산함 그 사이였고, 시간은 어제와 내일 사이였으며, 도시는 문명과 폐허 사이의 어딘가였다.


이 모든 것이 사내에게는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였다.


"당장 내일 출발하죠?"


"내일 새벽. 이젠 내일인지도 애매하지만. 서류를 제출했는데 이럴때만 기가 막히게도 처리가 빠르더군."


"어디서 자요, 오늘?"


"정말로 어디서 자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나?"


"그럴리가 있겠어요?"


물론 그럴리는 없다. 리즈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졌다는듯 웃었다.


"제 입으로 직접 말해야 하나요, 일등 수사관님?"


"아까도 말했었지만 참을성이 정말 없군."


"맞아요.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여자에 대한 배려심이 정말정말 없네요."


리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자요, 오늘. 같이."


"글쎄."


"어차피 숙소에 돌아가봤자 당신을 비웃을 사람들밖에 없잖아요."


"나는 떠날 사람이야, 리즈.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래서요?"


"떠나는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아. 남는 사람만 지지. 사람들은 씨부려댈테고."


리즈가 뼛속 깊이 비웃었다.


"또 그 얘기에요? 사람들은 *씨부린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호사가들이 무엇을 지껄이든 상관없다고들 하지. 멋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라. 현실 속에선-"


사내는 말을 잇지 않았다. 정확히는 잇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입술을 깨물었다는게 더 그럴듯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끈적하기보다는 상큼했다. 선인장 냄새가 맛으로 느껴진다고,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입술을 떼며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다. 갈색 눈동자가 별빛에 반짝였다.


별빛에 반짝였고, 이 모든 세상에 대한 증오로 일렁거렸으며, 얼음 같은 냉소로 번득였다.


"다 좆이나 까라 그래요, 카시크. 알겠어요?"


사내는 알겠다고 말했다. 허나 그녀는 반복했다. 모두 다 좆이나 까라고. 눈 깜짝 않고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지부장도, 동쪽에서 도망오는 도망 귀족들도, 보이지 않는 신도, 보이지 않는 황제도, 단돈 3두캇에 다리를 벌리는 계집들도, 그걸 사는 역겨운 남자들도, 무엇을 지껄이는지 모르고 지껄이는 술꾼들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좆이나 까라고. 그녀는 저주했다.


"같잖은 착한척은 집어치워요, 카시크. 말을 해요. 원하면 원한다고. 원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다고."


잠깐 망설였다. 별자리를 들여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냈다. 이제는 상관 없는 세상 속의 이야기라고.


그래서 사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대신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끈적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바빠서 오랜만에 올리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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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막 위에서(2) 22.09.29 39 1 10쪽
2 사막 위에서(1) 22.09.27 4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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