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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별길 님의 서재입니다.

수사관과 귀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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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merfall
작품등록일 :
2022.09.27 18:48
최근연재일 :
2022.10.12 14:21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94
추천수 :
5
글자수 :
20,129

작성
22.09.27 19:52
조회
47
추천
1
글자
8쪽

사막 위에서(1)

비판과 지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DUMMY

1321 관할서는 늘상 똑같다. 물론 사내는 그 지루한 일상에 딱히 불만이 없다. 이 동네에서 지루함이란 결국 차악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깨지면 개고생이 시작된다. 그 개고생이란 물론 고생스럽지만, 무엇보다 의미가 없다


빵 하나 훔친 꼬마놈의 손목을 자르기 위해 수사관은 길거리를 헤집는다. 전혀 유쾌하지 않다. 보람차지도 않고.

울먹이는 빵도둑을 도시 재판소 넘기고 돌아올때면 귀족 따까리 나부랭이가 골목에서 설치는 것을 본다. 불쌍한 계집을 뒷골목 으슥한 곳에 끌고가는 모습을.


그럴때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게 이곳 수사관의 본질이다. 처음에는 다들 주먹을 쥐거나 입술을 깨문다. 몇달이 지나면 그러는 대신 담배를 피운다.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바닥에는 담배가루와 침이 범벅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책상에 앉아 어떻게든 시간을 의미없이 녹이려는 인간들로 가득하다. 자기들끼리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중이다.


누군가가 사내의 신발 앞에 침을 탁-하고 뱉었다. 고개를 들어 가만히 바라본다. 코는 빨갛고 입천장은 검게 물든 맥칼리 일등 수사관이다. 업무는 *좆도* 하지 않는다.


이 동네에도 장군 진급 포기한 대령인가 하는 장포대 같은 그런게 있더라고. 승진을 포기한 일등 수사관은 황제도 건드리지 못한다나 뭐라나.


"더러운 아웃랜더 새끼..."


"더 해봐."


사내가 빙긋 웃으며 대꾸한다.


"지옥에 떨어지라고도 해야지."


일등 수사관은 사내의 웃는 얼굴을 증오스럽게 응시하더니 이내 또다시 침을 뱉었다. 이번엔 바닥이 아니라 사내의 가죽 신발에.


사내는 신발에 묻은 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어났다. 그대로 일등 수사관의 턱을 걷어찼다. 턱에 침이 묻었으려나.


1321 관할서의 일상은 그렇게 박살났다. 어쩌면 늘상 똑같은 하루는 아니었을지도.


수많은 인파가 둘 사이로 몰려들었다. 다른쪽 발로 턱에다가 한방 더 갈겼다. 그건 확실했다. 주먹은 욱신거렸는데 벽에다가 박았는지 상대 면상에 박았는지는 불분명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 사내와 맥칼리 수사관은 이미 사람들 사이로 분리되어 있었다. 상대의 코에서 코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반면 이쪽은 한대도 맞지 않았다.

물론 이걸로 스스로가 대단한 싸움꾼이라 자랑할 생각은 없다. 담배연기와 술을 매일 들이키는 노친네와 싸워서 이기는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까.


"개같은 새끼가...! 이거 놔!"


"놓으면 더 두들겨 맞을까봐 동료들이 친히 잡고 계신거잖아, 영감. 고마운줄 알아야지."


"그만. 그만!"


유난히 젊은 특등 수사관 알렌이 호통을 쳤다. 귀족의 피가 흐른다고 했었나. 출세해서 수도로 가고싶어하는 야망꾼.

출세라니, 아주 단단히 잘못 찾아오셨지. 이 늪 같은 동네에서 대체 어떻게 출세를 하시겠다는건지.


"여긴 수사처 관할서지 저잣거리가 아니다! 제국의 돈을 받고 일하는 놈들이 대체 무슨 추태냐는 말이다!"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바깥에선 범죄가 버젓히 일어나고 이곳에선 침이나 찍찍 뱉어대는 망나니들을 보고 있자니 그리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다.


설교를 이어나가려던 알렌은 맥칼리의 고집스럽고 퉁명스러운 표정과 마주한다. 아집이 가득하다. 무엇을 듣고 경험하든 더이상 바뀌지 않을 노인의 표정.

알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를 역겹다는듯이 바라본다.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듯이.


"오늘 키바라에서 지부장이 온다."


키바라는 이 거지같은 사막 동네에서 그나마 규모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고, 그곳의 지부장은 쉽게 말해 이 사막의 수사처에서 가장 높은 인간이다. 달갑지 않은 소식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누군가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왜 온답니까?"


쓰레기통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궁금한가보지. 다른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를 이어 들려왔다.


"그야 그분께서 오시면 알게될 일이다. 그러니-"


아마 그러니, 적당히 청소도 좀 하고 깨끗하게 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다가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침과 담뱃재와 술병이 사이좋게 뒹굴거리는 모습을. 지껄여봤자 소용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특등 수사관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 각자 할일로 돌아가도록. 괜히 지부장님께 찍히지 말고."


알렌의 시선이 사내를 향한다. 역겹다는듯이 그를 바라본다. 다른 이들이 항상 그러듯. 좋은 점은 특등 수사관은 사내뿐만 아니라 거의 모두를 역겨워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 세상에서 드물게 타인과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의자에 앉아 서랍에서 담배를 꺼낸다. *아웃랜더*에게 허락된 사무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목구멍에 발암물질을 되새김질하며 사람들이 저마다 열심히 *할일*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야, 어제 오스트베르쪽에서 사람이 한놈 죽었대.


그래서? 꼭 내가 좆도 상관이라도 할 것처럼 얘기하네.


좀 들어봐. 목격자들이 분명 어젯밤 죽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봤다는거야. 몽둥이에 두들겨 맞았다고.

그런데 딜런이 밤에 가서 만져보니까 글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더라고. 말이 되냐? 몇시간 지나지도 않았을텐데.


당연히 말이 되지 병신아. 어제 눈 왔잖아.


그렇네. 이런 좆같은 촌구석 오기 전까지 어디 눈이라는걸 본적이 있어야지.


됐고, 케밥이나 조지러 가자. 여기 있어봤자 지부장한테 시비나 걸릴걸.


이 사람들의 할일이란 주로 이런 식이다. 책상에 놓인 서류를 무심하게 들춰본다.


그 내용들이란-부유한 노인은 의문사를 했고 철로에는 신원불명의 피해자가 머리가 깨진채로 누워있다. 다수의 창녀가 다리를 벌린채로 도살당했고 사과를 훔치려던 아이는 메추리를 먹어치우는 뚱뚱한 상인 앞에서 맞아 죽었다. -이런 것들이다.


사내의 손에 들린 서류는 따라서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의 *총집결지*라고 할 수 있다. 오후쯤에 역으로 가서 시체나 치워야겠다. 어차피 신원미상이니 자살 처리하면 그만이겠지.


물론 자살한게 아닐 수도 있다. 알코올과 함께 여정을 떠났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그 끝에서 추락했을지도. 허나 딱히 상관 없는 일이다.


의자를 돌려 밖을 바라보면 거대한 사막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의 작은 도시. 혹은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과분한 마을.

사람들은 적당히 불행하고, 범죄는 적당히 일어나며, 쇠락해가는 제국에 걸맞게 적당히 쇠락한 마을에서 사람들은 적당히 살아간다.


이곳은 대륙의 정중앙이지만 또한 제국의 변방. 제국 수사처의 관할서는 동부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나아가며 숫자를 부여받는다.

저주받은 반도는 1, 수도 실버핸드의 앞자리는 2, 남부의 배때기에 기름 낀 소르티 도시들은 345, 서부의 부유한 항구도시들은 10 언저리, 그리고 한바퀴를 빙 돌아 이 한적하고 별볼일없는 사막에 와서야 13이란 숫자가 등장한다.

바로 이곳, 키바라 사막에서.


"건강에 나빠요."


유리창 반대편으로 여인의 흐릿한 실루엣이 보인다. 의자를 다시 한바퀴 돌리자 여자는 어느새 자기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상에 걸터앉아 있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질끈 묶은 머리칼과 얼굴의 주근깨, 그리고 몸에 붙는 가죽재킷은 항상 그랬듯 잘 어울렸다.


허나 무엇보다 그녀는 향기가 났다. 꽃 향기.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인장 옆에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꽃. 자극적이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박스가 많네요. 다음화부터는 줄어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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