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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비축] 3.

 남궁세가에서 장화순 부부에게 내어준 방은 무림에서 배분이 상당한 사람들에게나 제공되는 귀빈실이었다. 아마도 무수선사의 일행이다 보니, 부부의 행색이나 언행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배려를 해줬을 터이다.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방, 호군정은 홀로 탁장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수선사와 장주 남궁단호, 그리고 백의인 장무정은 그들끼리의 얘기를 나누느라 부인들을 물러나게 했다.

 자객들의 내습이라는 불식간의 일로 하여 십수년을 살아온 대자산을 떠나고 보니 향수가 없을 리 없었다. 그 마음에 심숭함을 더하는 것은 죽은 아들과 너무나도 닮은 백의인의 존재였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파도처럼 가슴에 밀려왔다.


 몽연이랑 어찌 그렇게 닮았을까? 혹시 몽연의 친가 쪽이랑 관계가 있는 사람일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본인이 기억을 잃어버렸으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언젠가 기회를 잡아 백의인의 가문에 대하여 물어봐야겠다고 호군정은 마음먹었다.


 호군정의 마음에 이는 의혹은 그뿐이 아니었다. 남궁세가까지 오는 길, 남의 이목을 피해서 발걸음을 서두르느라 매일 먹던 약을 끊은 지 사흘이 지났다. 남편은 그녀의 병이 악화될까봐 안절부절하였다. 확실히 기력은 약해지고 몸의 기혈이 뒤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대자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맑았다. 광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정신줄을 놓은 적이 많았고, 특히나 십오륙세 또래의 젊은이를 보면 아들로 착각하는 바람에 남편을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 적지 않았다.


 남편은 방을 안내해주고 떠나려는 시비를 붙들고 물었다.


 “혹시 약을 달이기에 적당한 장소가 없겠소? 아내의 병이 위중한지라 지체할 수가 없소만.”


 “약제실로 가시면 될거에요. 우리 남궁세가의 약제실은 유명 약국 못지 않은 약재와 시설을 갖추고 있답니다.”


 대답하는 시비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과연 무림에서 명성이 쟁쟁한 무가인가인지라 갖가지 부상을 스리려면 제대로 된 약제실이 필요할 것이다.


 “세가에 머무르는 의원님도 계신데 부인의 진맥을 부탁드릴까요?”


 장화순의  눈이 갑자기 매서워졌다.


 “아내의 병은 나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으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시요.”


 안색만큼이나 매서운 목소리에 시비가 움추려들었다.


 “하지만........ 의원님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도 약제실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걸요.”


 “흠. 그러하면 내가 직접 가주님께 허락받아야겠구만.”


 말을 끝내자마자 장화순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시비가 난감한 표정으로 호군정을 바라본 뒤 종종 장화순을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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