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하님의 서재입니다.

전체 글


[내 일상] 고요한 악의 연못

프롤로그


 내 아내는 살인자다.
 본인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일로 거짓말이나 농담을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가 물었다.
 "왜? 왜 죽였는데?"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따분했거든."
  아내는 돌아누웠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가 자그맣게 침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죽은 여인의 회상[1]


 "이번 여행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식탁에 앉아 식사가 차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불쑥 말을 꺼냈다. 가족 여행을 사흘 앞둔 저녁이었다. 남편이 눈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 잡혀있던 미팅이 갑자기 나흘 후로 미뤄졌어."

 마지막 음식인 김치찌개를 식탁에 옮긴 뒤 나는 남편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편이 수저를 들었다가 도로 놓았다.
 남편의 옆에서 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은 채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그 재빠르고 열성적인 손가락질이 신경에 거슬렸다. 한마디 하려다가 포기하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일 계약이 성사될 것 같다고 했잖아요?"

 끄떡이는 남편의 안색이 어두웠다.

 "그랬지. 근데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남편은 크지는 않지만 실속이 있는 it 회사의 영업 과장이었다. 그 분야에 대해서 나는 거의 문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업부 일이라는 게 다른 업종과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일감을 물어 회사에 바치는 것. 변수가 많은 일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히기까지는 한시도 방심을 할 수 없었다.

 이번에 수주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는 일감은 규모가 작지 않아서 회사의 시선이 남편에게 쏠려있었다. 주문을 받기만 하면 두세 달은  너끈히 실무팀을  바쁘게 돌릴 만한 일이었다.

 한동안 실적이 저조했던 남편은  직접 발품을 팔면서 공을 들였는데 드디어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객에게 반승낙을 얻어낸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휴가를 신청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개선장군처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려던 남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새나간 것 같아."

 나의 마음에도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왔다.

 계약 단계에서 고객이 변덕을 부리는 경우는 대부분 경쟁 회사의 방해 때문에 일어나는 불상사였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영업일이란 결국 개싸움이었다. 다른 사냥개가 냄새를 맡고 코를 들이밀었다면 결전을 각오해야 했다. 이제 한가하게 가족 여행이나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어떡해요?"

 남편이 처한 비상사태가 안타까웠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 주로 미룰까요?"

 "다음 주면 바닷물이 차가워져서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그때까지 말없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던 딸이 불쑥 끼어들었다.

 "친구들은 다 피서 다녀왔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내게는 보여주는 법이 거의 없는 애교가 담긴 눈으로 생글생글 제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 광경에 울컥 짜증이 밀려왔다.

 "아빠가 회사 일 때문에 못 간 대잖아. 넌 수영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7 글 비축 | 1 24-02-06
6 글 비축 | 1 20-10-06
» 내 일상 | 고요한 악의 연못 19-02-12
4 내 일상 | 고요한 악[惡] 눈 19-02-11
3 글 비축 | 고요[2] 19-02-09
2 글 비축 | 무제[1] 19-02-08
1 글 비축 | 3. 17-06-30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