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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고요한 악[惡] 눈

프롤로그


 내 아내는 살인자다.
 본인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일로 거짓말이나 농담을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가 물었다.
 "왜? 왜 죽였는데?"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따분했거든."
  아내는 돌아누웠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가 자그맣게 침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죽은 여자의 수기[1]


 가족 여행 사흘 전에 남편이 자기는 동행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만나기로 했던 고객이 약속을 나흘이나 미룬 탓이었다.

 남편은 IT 회사의 영업과장이다. IT 분야에 관해서 나는 거의 문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영업부 일이라는 건 결국 다른 업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남편은 말했다. 회사에 일감을 물어 바치는 것. 이번 일감은 제법 덩어리가 커서 부하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남편이 직접 공을 들였다.

 그 계약이 드디어 성사될 참이었다. 그런데 고객이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이다. 조건을 새로 검토해봐야겠으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런 경우 경쟁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손을 내민 게 분명하다고 남편은 말했다. 이제 한가하게 가족과 여행이나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어떡해요? 우리도 여행을 미룰까?"

 내 어투엔 분명 실망의 기색이 담겨있었을 터였다. 남편은 여름 끝자락에 겨우 사흘의 휴가를 낼 수 있었다.  난 짧은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두었다. 가족 여행이라고 여행 내내 다 함께 움직이는 일정은 아니었다.

 우선 바다에 도착하면 수영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 여름에는 서핑 강습에도 참가해볼 예정이었다. 남쪽의 휴양지로 떠날 날을 기다리면서 서핑에 관한 글을 검색하거나 동영상을 찾아보느라 면 기대감이 몽글몽글 거품처럼 일었다. 

 남편과 딸은 나와는 달리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억지로 내 취향을 강요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하루 정도 배낚시를 홀로 즐기는 시간을 배려해두었다. 그 정도 사치는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딸아이에게는 적당한 돈을 손에 쥐어 줄 참이었다. 아이는 알아서 쇼핑을하든지 자기 취미에 맞는 오락거리를 찾아내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니야. 이 일이 언제 마무리될지 몰라. 여름도 금방 지나갈 텐데 나 때문에 피서를 놓치면 안 되지. 두 사람끼리 다녀와."

 순간 심장을 얼음 물에 풍덩 담갔다가 꺼낸 것 마냥 심한 오한이 들어 나는 몸을 떨었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은 채 연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딸에게 눈을 돌렸다.

 저 아이랑 단둘이 여행을 간다고?

 이유 모를 불쾌감이 온몸을 뱀처럼 휘어감았다.

우선 바다에 도착하면 수영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 여름에는 서핑 강습에도 참가해볼 예정이었다. 남쪽의 휴양지로 떠날 날을 기다리면서 서핑에 관한 글을 검색하거나 동영상을 찾아보느라 면 기대감이 몽글몽글 거품처럼 일었다. 

 남편과 딸은 나와는 달리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억지로 내 취향을 강요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하루 정도 배낚시를 홀로 즐기는 시간을 배려해두었다. 그 정도 사치는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딸아이에게는 적당한 돈을 손에 쥐어 줄 참이었다. 아이는 알아서 쇼핑을하든지 자기 취미에 맞는 오락거리를 찾아내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니야. 이 일이 언제 마무리될지 몰라. 여름도 금방 지나갈 텐데 나 때문에 피서를 놓치면 안 되지. 두 사람끼리 다녀와."

 순간 심장을 얼음 물에 풍덩 담갔다가 꺼낸 것 마냥 심한 오한이 들어 나는 몸을 떨었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은 채 연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딸에게 눈을 돌렸다.

 저 아이랑 단둘이 여행을 간다고?

 불쾌감이 온몸을 뱀처럼 휘어감았다.

 싫어!

 단발마의 비명처럼 날카롭게 입술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그 말을 억지로 집어삼키느라 나는 훅 숨을 들이쉬었다. 곧바로 자책이 꼬리를 물었다. 딸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비참했다.

 나는 딸이 불편했다. 마치 아이가 고슴도치인양 가까이 오면 흠칫 몸이 굳었다. 딸의 눈이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처럼 느껴져 무서울 때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딸에게 오래 시선을 두는 법이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딸이 갑자기 고개를 세워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얼굴을 붉히면서 돌리려는데  딸의 입가가 슬쩍 뒤틀리는 것이 시선 끝에 잡혔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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