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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꿈
작품등록일 :
2016.04.26 23:43
최근연재일 :
2017.07.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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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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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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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냥꾼.1

DUMMY

게임 타임으로 닷새 후, 마더 트리 북쪽 뿌리 지대.


예리한 장검과 투박한 단검 두 자루 그리고 각반과 장갑까지 이안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스템에 대한 감은 어느 정도 잡았어.'


지난 열흘 동안 이안은 리얼리티의 시스템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이템 강탈이다.

리얼리티는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이지 않아도 아이템을 뺏을 수 있었다. 즉,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더라도 싸우는 도중에 아이템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PVP에 대한 모든 메타*가 바뀐다는 뜻이고 어쩌면 PVE에 대한 메타도 바뀔 수도 있었다.

(*게임에서 유행하는 전략 전술 플레이 방법 따위)

하지만 뺏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가 하면 뺏을 수 없는 아이템도 있었다. 현재 이안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아직 한 자리 숫자인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스텟 시스템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몬스터가 아닌 같은 유저들을 사냥해도 경험치를 얻는다. 그것이 이안이 알아낸 두번째 사실이었다. 어쩌면 경험치량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행동에 따라 경험치를 얻는 것일 수도 있었다.


'행동에 따라 스텟이 분배되는 건 확실해······.'


리얼리티의 스텟 시스템은 기존 RPG와 많이 달랐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PK로 레벨 업을 했다고 느낄 때마다 감각이 조금씩 더 예리해졌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온다!'


작고 노란 광채가 이색적인 숲을 배경으로 마치 번개 같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안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노란 광채를 말이다. 문제는 반응하고 피하면 이미 늦는다는 것이었다.

퍽! 이안의 등을 강타한 노란 광채의 정체는 바로 더러운 인상을 지닌 토끼였다. 이안이 재빨리 단검으로 반격했지만 토끼는 이미 거리를 벌린 뒤였다.


'너무 빨라···.'


더러운 인상의 토끼는 특이하게도 코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일명 컬러풀 노즈. 형형색색의 빛나는 코를 지닌 짐승형 몬스터로 그 종류가 정말로 다양했다.

육식을 하는 붉은 코 사슴을 시작으로 25톤 덤프트럭 만한 크기의 파란 코 멧돼지, 초식을 하는 초록 코 호랑이, 동족까지 먹어치우는 보라 코 거대곰 등.

코의 색깔과 모양이 다른 몬스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하나 하나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고 컬러풀 노즈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정보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코의 색깔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노란 코의 토끼, 유저들이 만렙 토끼라고 부르는 '옐로우 노즈'처럼 말이다.


"캭!"


노란 코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이안이 크게 긴장했다. 노즈 몬스터들은 기술을 사용할 때 코에서 빛을 뿜어내는 게 특징이었다. 마침내 노란 코에서 빛이 절정으로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온다!'

"퉤!"


껄렁한 모습의 옐로우 노즈가 갑자기 이안에서 침을 뱉었고 긴장했던 그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저 미친 토끼를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보통 초보존 아니 스타팅 포인트의 몬스터는 귀여운 게 정석이다. 그게 게임을 처음 접하는 유저들에 대한 배려였다.

특히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는 가상현실 게임은 필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생생한 몬스터의 모습은 공포와 혐오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언데드가 아니라 다행이지.'


그럼에도 옐로우 노즈는 토끼라고 보기 힘들었다. 껄렁한 모습은 물론이고 더럽고 험상궂은 얼굴에 온몸 가득한 흉터까지 상상속의 범죄 집단이 토끼로 변한다면 딱 저런 모습일 것이다.

몬스터와의 대치 상황에서 이안이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옐로우 노즈가 움직였다.


'온··· 컥!'


옐로우 노즈의 박치기가 마치 총알 같은 속도로 이안의 배를 가격했다. 엄청난 충격에 이안이 바닥을 구르며 튕겨 나갔다.


'집중하자. 안 그러면 느끼지도 못해.'


재빨리 일어서며 중심을 잡은 이안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옐로우 노즈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때 바람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이번엔 안 당한다.'


흥분을 하면 할수록 불리해진다. 여러 공략 사이트와 방송으로 이곳 북쪽 뿌리 지대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이안이엇다. 그는 검을 쥔 채 차분하게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바람소리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이안이 왼쪽으로 검을 휘둘렸다. 하지만 그의 카운터는 먹히지 않았다.


"퉤!!"


갑자기 멈춰선 옐로우 노즈가 또 다시 침을 뱉었기 때문이다. 헛손질을 하고 덤으로 침까지 맞은 이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확실히 정신나간 패턴과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를 보면 유저들이 괜히 만렙 토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옐로우 노즈 특유의 패턴이 문제였다. 성자가 아닌 이상 백이면 백 이성의 끈을 놓치게 된다.


"이 미친 라마 토끼가!!!"


분노한 이안의 장검이 재차 옐로우 노즈를 노렸지만 반응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옐로우 노즈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른 유저들은 인해전술이나 아이템 혹은 능력을 이용해서 옐로우 노즈를 해치웠지만 혼자인데다가 컨트롤 유저도 아닌 이안에게 그런 방법은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돌진하는 순간 반격을 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역시 솔플로 옐로우 노즈를 잡는 건 무리인가?'


예리해진 감각과 템빨을 믿었지만 쉽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옐로우 노즈의 공격이 다른 몬스터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놈의 공격으론 쉽게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캭!"


우측에서 나타난 녀석의 노란 코가 또 다시 빛을 뿜어냈다. 이 구역 미친 놈답게 녀석의 눈이 뒤집혀 있었다. 이안은 재빨리 놈에게 단검을 던지며 달려갔다.


'이번엔 안 속는다!'


또 다시 침을 뱉겠지. 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휘두른 순간, 빛나는 노란 코가 허공에 무수한 궤적을 그리며 돌진해 왔다.


*


활과 작은 손도끼 그리고 단검으로 무장한 젊은 외양의 NPC '한'은 숲의 유일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마법사 브람의 동료로써 사냥과 채집을 하며 그의 연구를 돕고 있었다.

오늘도 브람의 연구를 돕기 위해 사냥에 나선 한은 오랜만에 재밌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좀 죽어!"

"캭!"


웬 허접한 이계인 하나가 토끼와 숨막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통통 부은 얼굴에 온몸의 피멍까지 꽤 오랫동안 싸운 모습이 분명했다.

그 치열한 재미에 한은 자기도 모르게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육포를 씹어 먹으며 싸움 구경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목적도 잊은 채 말이다.


"이계에 싸움 구경이라는 문화가 왜 발전되었는지 알겠어···."


문득 이계의 문물에 대한 브람의 말에 코웃음을 쳤던 일이 기억났다. 얼마나 어이없고 허황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니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판단은 꽤 빠른데 몸이 못 따라가고 있군."


이계인들이 정말로 불사(不死)의 존재가 맞는 지 확인해 봤기 때문에 한은 전혀 도울 생각이 없었다.


"쯧쯧, 아무리 정수를 먹은 놈이라지만···."


하지만 답답함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코가 반짝일 때 때려야지!"


*


'정수? 코가 반짝일 때?'


십오 분가량을 옐로우 노즈와 사투를 벌이던 이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싸움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지만 지척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NPC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냥꾼 한?'

"지금 뒤를 보고 있을 때인가? 싸움이나 똑바로 하라고!"

"아!"


한의 경고에 이안이 재빨리 정면을 보았다. 하지만 빈틈을 노린 공격은 오지 않았다. 이안이 지친 만큼 옐로우 노즈 또한 지친 것이다.

어쩌면 이안 이상으로 지친 상태일 수도 있었다. 놈은 처음 보았던 번개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았고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 나답지 않게 너무 흥분했어.'


게임에 감정 이입을 하는 순간 자신은 이도 저도 아닌 평균 이하의 유저가 되고 만다. 이안은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술에 관한 재능이 없고 마법에 필요한 본능적인 창의력도 부족하다. 타고난 감각도 없을 뿐더러 흐름을 간파하는 본능적인 직감 또한 부족하다.

타고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유저, 가진 것이라곤 오직 경험 뿐인 유저. 하지만 웬만한 랭커 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은 유저. 그게 바로 이안이었다. 백전노장인 그의 무기는 튜토리얼를 클리어했다는 경험뿐인 것이다.


'애초에 이런 몬스터가 처음도 아니고···.'


평정을 찾은 이안은 싸우면서 알게 된 옐로우 노즈의 약점을 상기했다. 일단 지친 상태였고 토끼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발톱과 이빨이 있지만 맹수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방금 들은 공략법이 있었다.


'코가 반짝일 때 때린다.'


이안의 움직임이 변했다. 옐로우 노즈를 노리던 검이 단순한 견제와 위협으로 바뀌었다. 장검으로 옐로우 노즈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단검으로 정확한 반격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호오."


갑자기 이안의 움직임이 변하자 한의 표정에서 묘한 감탄이 묻어났다. 싸우는 도중에 말 몇 마디를 듣고 곧바로 움직임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옐로우 노즈가 코로 노란 빛을 뿜어내며 돌진했다.


"결국 잡았군."


옐로우 노즈가 벼락 같은 속도로 옆구리를 돌진하는 순간 녀석의 공격을 유도한 이안이 단검으로 완벽하게 반격했다.


'잡았다!'


확신과 함께 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단검에 목을 찔린 녀석은 몸을 부들 부들 떨더니 이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하아!"


쓰러지는 옐로우 노즈와 함께 이안도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숨이 차오르면서 여러 감정과 생각이 떠올랐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컬러풀 노즈 중 가장 약한 옐로우 노즈를 상대로 십오 분이나 싸웠다.


'역시 컨트롤 유저가 아닌 이상 솔플은 힘들겠어.'


최하위 몬스터를 상대로 이 정도라면 몬스터 사냥은 커녕 레드 노즈나 퍼플 노즈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고 결국엔 뒤쳐지고 말 것이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눈 앞에 있었다.


"좋아, 생각 보다 재밌는 싸움이었어. 이름은?"

"···이안입니다."


짝짝, 박수를 치며 가까이 다가온 한은 이안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씁, 생긴 것은 멀쩡한데 말이야···."


지칠대로 지친 이안은 그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숲의 몇 없는 NPC이기도 했고 랭커들과 비교해도 아득한 위치의 강자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편하게 생활하려면 잘 보일 필요가 있었고 최대한 빌붙어서 뭐라도 얻어가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깔보는 듯한 저 눈빛이 신경 쓰였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알려줄 수 있겠나?"


턱을 긁적이며 묻는 그의 말에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숲의 NPC들에게 궁금한 것을 알려주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상황은 생각 보다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네들은 몬스터를 사냥한다면서 왜 대결을 하고 있지?"

"···예?"


당황한 이안을 보며 한이 재차 말했다.


"왜 자네들은 사냥을 한다면서 싸움을 하고 있냐, 이 말일세. 나 뿐만 아니라 숲의 모든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내용이지. 문물이 그렇게나 발달했다면서 사냥이 뭔지도 모르는 건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런 토끼 한 마리와 왜 싸우고 있지? 함정이면 쉽게 잡는데 말이야."


이안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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