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시그반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을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시그반
작품등록일 :
2019.04.01 12:01
최근연재일 :
2019.08.23 12:3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7,927
추천수 :
1,587
글자수 :
504,170

작성
19.08.11 12:30
조회
99
추천
5
글자
12쪽

91화 - 쌍둥이 (2)

DUMMY

마을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산골 마을이니 기껏해야 몇 명 정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마을엔 못해도 30명은 넘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나이대도 제각각이었다.

나이가 꽤 있는 사람부터, 아직 걷지 못할 정도로 나이가 어린 아이까지 있었다.


미아는 우리를 그들에게 소개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활짝 미소지으며 환영했다.

그건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나가는 객한테까지 친절한 마을이라니.

여기는 생각보다 살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한쪽에서 저들끼리 뛰어놀고 있었다.

여유롭지 않은 마을이라면 이런 분위기를 자아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들 친절하네.”

“응. 그래서 좋아.”


미아는 나무로 만들어진 집 앞에 섰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아끌었고, 문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여기는 빈집이라 마음대로 써도 돼.”

“빈집 치고는 꽤 정리가 잘 되어있네.”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빈집이라길래 거미줄과 먼지가 잔뜩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항상 청소라도 하는 건지 내부는 말끔하고 깔끔했다.


“응. 이 산을 넘어가는, 너희 같은 여행자들이 자주 있곤 했으니까. 일종의 여관 같은 셈이지.”

“그럼 숙박비 같은 거는?”

“안 줘도 돼. 아까도 말했듯이 여긴 소유주가 없는 빈집이니까.”


호오. 초반부터 운이 좋을 줄이야.

이번 여정은 저번과 달리 꽤나 순조로울지도 모르겠다.

미아는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며 몸을 돌려 이곳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루바닥에 드러누워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벌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어린 아이 한 명이 우리쪽으로 달려왔다.


“저기, 괜찮으시면 식사 같이 하실래요?”

“식사? 우리가?”

“네! 이장님이 여행자님들을 모시고 오라 하셨거든요.”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의아해했다.

식사까지 대접받기엔 좀 부담스러운데 말이지.

알리샤는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으음. 무척 고맙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하룻동안 머무를 곳을 제공받은 것만으로도 기쁜 걸.”

“하, 하지만...”


아이는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우리는 난감했다. 보통 마을에서 이렇게까지 지나가는 객을 대우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난처해하는 아이를 마냥 계속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알겠다고 말했다.


“신기한 마을이네.”


알리샤는 바깥에서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렇게까지 여행자를 환대해주는 마을은 처음 봤어. 보통은 정반대로 생각하지 않나? 내가 너무 편견에 사로잡힌거야?”

“아니, 나도 네 말에 동의해.”


나도 알리샤의 말에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를 상대로 마을 전체가 친절하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행자가 가진 돈을 뺏는 경우가 아니고서야...아니, 이건 너무 나갔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뭐야, 나 또 말로 내뱉은거야?”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굴을 감쌌다.

미쳤나봐. 왜 자꾸 속마음을 말로 내뱉는 건데.


“너무 친절하게 나오면 도리어 의심이 갈 만 하지. 우리가 저들과 아는 사이라면 모를까.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 지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봐.”

“응, 그거 고마운데 그렇게까지 말해주니까 좀 그렇다...”

“이것도 속마음이 나온 거야?”


에드는 순수하게 내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 건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야.


“어쨌든 초대를 받았는데 안 갈 수도 없으니까, 나갈까?”


알리샤가 앞으로 나서자, 나와 에드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이를 따라 우리가 밖에 나가자, 마을의 다른 아이들이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속삭였다.

다른 주민들 역시 우리를 곁눈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이들에 비하면 굉장히 은밀했기에, 어지간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닌 이상 쉽게 알아채기 힘들었다.


마을의 이방인이라 신기해서 그런 건가?

그렇다고 그들을 붙잡고 왜 자꾸 흘끔흘끔 쳐다보세요? 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애써 마음 한편에 의문을 묻어두었다.


이윽고 우리는 꽤나 겉모양새가 그럴듯한 집에 도착했다.

뜰 안쪽에는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알리샤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 아이로부터 전해 들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 식사를 권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오시게. 이곳에 사람이 오는 건 오랜만이어서 내 그만 주책을 부리고 말았네.”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보는 이방인이라 나도 모르게 한번 보고 싶었구려.”

“하하. 그..런가요?”


알리샤는 멋쩍은지 괜스레 뒷머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모습도 그렇고, 아이가 이곳으로 우리를 데려 왔다는 건, 이 사람이 바로 이 마을의 이장인가 보군.

남자는 나를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린 친구도 있다니. 이 아이와 나이대가 비슷해보이는데. 고생이 많겠구나.”

“제가 원해서 따라온 거인 걸요.”


나는 볼을 긁적이며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는 어디에서나 있을법한 평범하고 인자한 노인이었다.

흠. 괜히 경계했나.

조금 전까지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이쿠. 노인네가 말이 많았구만. 그래. 내 소개부터 해야겠군. 나는 이 마을의 이장인 조지 핸더슨일세. 내가 자네들을 부른 건, 식사도 그렇지만 우리 마을은 산 속에 있다 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이렇게 간혹 지나가는 여행객이 있으면 그들에세 세상사를 듣기 위해 부르곤 한다네. 혹시 신경이 많이 쓰였다면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저희도 덕분에 좋은 곳에서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른 거였구나.

생각해보면, 이곳은 말을 타고도 꽤나 돌아야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지도상에는 이런 마을이 있다고 표시조차 되어있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마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허허.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구려. 자, 그래서 천천히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

“네,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장의 집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장과의 대화는 무난했다.

물론 제국의 황실 상황이 개판이라던가,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라던가 등등의 이야기는 적당히 빼버렸다.

구태여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정도로 깊숙한 곳의 마을이라면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무척 고마웠네. 덕분에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구만.”


이장은 알리샤와 악수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덕분에 성대한 대접을 받아서 무척 기뻤습니다.”

“허허. 알리샤양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말만 하는 구려.”


이장은 선한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알리샤는 우리에게 말했다.


“저 사람을 보면 마냥 이 마을이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아.”

“그러게요. 저 사람이 마을 아래로 직접 내려가기엔 아무래도 여러모로 힘들어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나봐요.”

“......”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에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는 약간 정신을 빼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팔을 툭 쳤다.


“에드?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냐, 아무것도.”

“오늘 이상한데 너.”

“감각이 좀 예민해져서 그런 것뿐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일라이와의 대련의 여파인가?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에드는 내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제 생각에 잠겨있었다.


‘모르겠다. 무슨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 해주겠지.’


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잠깐 엿볼까 고민도 했지만 나는 금세 그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는 사이에서 그런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산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마을 전역에 깔렸다.


이윽고 날이 완전히 저물자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도통 잠에 들 수 없었다.

분명 환대를 받고 좋은 대접을 받았건만, 자꾸만 온 몸이 찌릿찌릿했다.

이상하다. 별달리 위협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었는데.


한참을 뒤척거리던 나는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 주변을 거닐다보면 잠이 오겠지 싶어 나는 문을 열었다.

달은 이제 막 크기를 키우고 있어, 뿜어내는 빛이 약했다.

하지만 밤눈이 좋은 덕에 어둠 속에서도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전부 잠들었는지, 창문에 불이 들어온 집은 없었다.

초가을 귀뚜라미가 약하게 우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청승맞네.

누가 보면 고백했다 차인 사람처럼 보이겠다.

나는 뒷목을 괜스레 쓸어내리며 우리가 묵고 있는 집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엔 리코리스 한 송이가 떨어져있었다.

미아가 떨어뜨린 건가? 나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깨어있구나.”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리코리스를 놓칠 뻔했다.

언제 이곳에 들어온 거야. 아무리 멍하니 있었다지만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못 느낄 정도로 둔하진 않았는데.


“미아?”

“잠이 안 오는 거야?”

“응, 오늘 따라 그러네.”


미아는 가볍게 발을 내딛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왜 미아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발소리를 전혀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소리로는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몰랐지.


미아는 내 앞에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내 동생 보러 갈래?”

“동생? 지금 잠들 시간 아니야?”

“응. 노아는 늦게 잠들거든.”


미아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여전히 그녀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시간에 네 집에 가는 건 아무래도 좀 민폐가 아닐까 싶은데... 너희 부모님도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얼른 너도 집에 돌아가.”

“부모님은 없어.”


이런. 오늘 낮에 이어서 또 실언을 한 건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나랑 노아는 잘 살아왔으니까.”

“그, 그래. 그렇겠네. 오늘 보니까 마을 사람들도 다들 착하고 친절하더라고.”

“응. 그렇지.”


미아는 빙글빙글 춤추듯 스텝을 밟던 것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가자. 노아도 기다리고 있어.”

“어, 어?”


미아가 돌연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빼내려 했으나 그럴수록 미아는 더욱 단단하게 내 손을 옭아매어왔다.

쉽게 떨쳐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아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괜찮지?”

“어...으응.”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나는 얼떨결에 미아의 제안을 승낙하고 말았다.

미아는 키득거리며 나를 이끌고 제 집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을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2 19.07.21 342 0 -
97 97화 - 에단과 패티 19.08.23 182 5 11쪽
96 96화 - 쌍둥이 (7) 19.08.21 103 4 11쪽
95 95화 - 쌍둥이 (6) 19.08.20 92 5 12쪽
94 94화 - 쌍둥이 (5) +1 19.08.16 114 6 11쪽
93 93화 - 쌍둥이 (4) 19.08.14 93 6 11쪽
92 92화 - 쌍둥이 (3) 19.08.13 100 5 12쪽
» 91화 - 쌍둥이 (2) +1 19.08.11 100 5 12쪽
90 90화 - 쌍둥이 (1) 19.08.10 104 5 11쪽
89 89화 - 늦여름 장마 +1 19.08.06 125 6 11쪽
88 88화 - 연기하는 고양이 (3) 19.07.21 137 3 12쪽
87 87화 - 연기하는 고양이 (2) 19.07.20 126 4 12쪽
86 86화 - 연기하는 고양이 (1) +1 19.07.19 161 5 11쪽
85 85화 - 잠깐의 여유 (2) 19.07.17 130 4 11쪽
84 84화 - 잠깐의 여유 (1) 19.07.16 129 4 11쪽
83 83화 - 생일 19.07.14 137 5 12쪽
82 82화 - 문과 열쇠 (2) +1 19.07.13 173 8 12쪽
81 81화 - 문과 열쇠 (1) 19.07.12 151 6 11쪽
80 80화 - 과거의 기억 19.07.10 161 6 11쪽
79 79화 - 준비작업 19.07.09 186 9 12쪽
78 78화 - 소원 (2) +1 19.07.07 196 6 13쪽
77 77화 - 소원 (1) 19.07.06 158 7 11쪽
76 76화 - 봉인 해제 +1 19.07.05 229 7 11쪽
75 75화 - 슈테른 (2) 19.07.03 157 8 11쪽
74 74화 - 슈테른 (1) 19.07.02 159 7 12쪽
73 73화 - 로니스 19.06.30 163 8 11쪽
72 72화 - 깊은 숲 속 아래 (3) 19.06.29 161 5 11쪽
71 71화 - 깊은 숲 속 아래 (2) 19.06.28 170 7 11쪽
70 70화 - 깊은 숲 속 아래 19.06.26 164 7 11쪽
69 69화 - 첫 의뢰 +1 19.06.25 219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