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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반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을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시그반
작품등록일 :
2019.04.01 12:01
최근연재일 :
2019.08.23 12:3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7,925
추천수 :
1,587
글자수 :
504,170

작성
19.06.26 12:30
조회
163
추천
7
글자
11쪽

70화 - 깊은 숲 속 아래

DUMMY

항구 도시에서 벗어난 우리는, 클라인 숲을 향했다.

제국과 달리 베른은 길이 험하긴 해도, 몬스터의 출몰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덕분에 클라인 숲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생각보다 꽃을 찾는 게 어렵네.”


에드가 덩굴들을 칼로 잘라내며 말했다.

적당히 입구 근처에도 피어있겠거니 했건만,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나는 풀숲을 발로 짓밟으며 말했다.


“차라리 수도에 가서 의뢰 실패 처리를 하는 거 어때요?”

“그건 안 돼.”

“왜요?”

“의뢰서 하단에 적혀있잖아.”


알리샤가 나에게 종이를 들이밀었다.

그곳엔 저번에 미처 보지 못한 항목들이 두어줄 적혀 있었다.


[의뢰 실패 시, 지급했던 3,000골드 회수 및 용병 등급 하락]

[무단으로 의뢰 이탈 시, 해당 용병대 자격 영구 박탈]


하긴 길드나 의뢰자가 바보도 아니고, 골드를 먹고 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저런 조건을 걸겠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혹시 백합이 아예 피지 않았다면요?”

“그럴 리는 없는 게, 백합은 보통 여름에 피거든. 의뢰자도 그걸 아니까 지금 의뢰를 넣은 거일 테고.”

“으엑. 결국 어떻게든 갖고 가야한다는 거네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거기서 짧은 막일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도저히 못 찾겠으면 실패 처리 해. 등급 떨어지는 거야 어차피 환영할 일이고, 골드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구할 테니까.”

“어떻게?”


알리샤가 물었지만, 에드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에드가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한 가지, 있었으니까.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새로 지어진 지금, 유일하게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는 그것을 처분할 생각인 거 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허무하게 팔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리어 수도와 더 멀어져.”

“어차피 이미 늦을 대로 늦었는데 뭐. 스승님 정도라면 우리가 어디서 삽질하고 있는지도 알겠지.”


내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알리샤가 폭소했다.


“아하하. 하긴. 내가 스승님의 통신구에 연결까지 했다는 흔적을 남겼으니까, 적어도 우리가 베른 쪽에 가깝다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 채셨을 걸.”


조급했던 마음은 어느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편안해졌고,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면 붉은 백합이 숲 외곽에 있는 꽃이었으면 의뢰자가 굳이 그걸 갖고와달라고 할 이유도 없었을 거다.

그러니 아마도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연 그 생각은 옳았다.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는 깊은 곳에서, 나는 작은 옹달샘을 발견했다.

붉은 백합은 옹달샘의 주위를 수놓고 있었다.

꽃봉오리가 만개한 것이, 생각보다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꺾어 가면 된다고 했나.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붉은 백합의 줄기를 꺾었다.

그러고 보니, 의뢰자는 이걸로 뭘 하려는 생각인걸까?

구하기 힘든 꽃을 원하는 거라면, 차라리 뿌리째 상하지 않게 갖고 오라고 할 법도 한데 말이다.

꽃만 멀쩡하면 된다는 걸 보면 말려서 책갈피로라도 쓸 생각인가?

뭐,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다.


나는 손에 묻은 흙을 가볍게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가도 되겠...다?”


툭-


나는 꺾었던 백합을 떨어뜨렸다.


“에드? 알리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목청껏 불렀지만, 내 목소리는 나무에 부딪혀 사그라졌다.

높게 솟은 나무들 위로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나는 간담이 서늘했다.


“내 목소리 들려?”


재차 외쳤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무턱대고 돌아다닌다 쳐도 만날 확률이 낮은데.’


차라리 가만히 기다리는 게 나으려나.

나는 갈팡질팡했다.

두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이곳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움직인다면, 엇갈릴 확률이 높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가 있나?”


나는 바닥에 떨어져, 꽃잎에 흙이 덕지덕지 묻은 백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다.


‘어라, 여기에 구멍이 있네?’


떨어진 백합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그곳으로 걸어갔다.


‘으악, 엄청 커.’


동물이 파둔 구덩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지나치게 컸다.

이곳에 사는 몬스터들이 만든 걸까?

하지만 클라인 숲을 요란스럽게 헤매고 다니는 동안, 나는 몬스터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었다.


잠깐, 몬스터가 없었다고? 이만한 규모의 숲에서?


나는 구덩이를 다시 한 번 살폈다.

구덩이 안쪽은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있었다.

깊이가 상당해보였다.

가능하면 저기서 멀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발을 실수로 잘못 디뎌 몸이 휘청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구덩이 안쪽으로 곤두박질쳤다.


푸른 하늘이 시야에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이윽고, 완전한 어둠이 나를 덮쳤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 속도라면, 바닥에 닿을 때 쯤, 내 뼈는 전부 으스러질 거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최악이었다.

다음 생은 부디 정말로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록, 나는 바닥에 도착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몸은 허공에서 하강 중이었다.

처음에는 공포심에 질려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나는 슬쩍 눈을 떴다. 발밑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얼마나 깊은 건데, 이 구덩이는.’


잠깐만. 어두운데 발이 보인다고?


나는 두 손을 쳐다보았다.

분명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구덩이 속이었건만, 내 팔과 다리는 두 눈에 똑똑하게 보였다.


나는 더더욱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끝없이 떨어지는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 내 몸은 보인다고?

설마 저번처럼 또 갑자기 쓰러져서 꿈이라도 꾸는 건가.


최대한 이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갖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어느 것 하나 이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이러고 있으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어서 좋긴 하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느 새 하강하는 속도가 조금 전과 달리 확연하게 느려졌다.

마치 누군가가 밑에서 내가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가. 이정도면 바닥에 떨어져도 가벼운 타박상을 입는 것 정도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갑자기 속도가 느려진 거지?

여전히 이 구덩이 속은 이해할 수 없는 원리로 가득했다.


그 때, 발밑이 점차 밝아졌다. 나는 갈색 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발밑으로는 저 멀리 노란 색 볏짚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착지 지점인가.


이제 하강 속도는 완연하게 느려져 있었다.

좋아, 떨어질 때 완충재도 있겠다 다치지는 않겠군.

나는 천천히 발을 뻗었다.


푸욱-


짚더미는 생각보다 깊었다. 나는 짚더미 속에 파묻혔다.


“으웩, 퉤퉤.”


입안에 지푸라기가 사정없이 들어왔다.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것들을 뱉어냈다.


짚더미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나는, 몸에 달라붙은 지푸라기를 잡아떼며 주변을 살폈다.

분명 햇빛도 들어오지 않건만, 어째선지 이곳은 생각보다 환했다.


이곳에 온 방식만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을 그저 어디 산골짜기에 있는 동굴 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어마어마하네.”


동굴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러니까, 거대한 몬스터 여럿 정도는 가볍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땅 속에 이런 거대한 굴이 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지하라서 그런지 동굴의 벽은 차갑고 축축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나는 오랜 시간 낙하하느라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얼른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에드와 알리샤가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저벅저벅-


내가 걷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앞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엔 분명 무언가가 살고 있거나, 살았다는 것을.


일례로 지금 내 눈앞에는 동굴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동굴에 액자라니...”


그곳엔 한 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빨갛고 긴 머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의 초상화라도 되는 걸까?


‘아니 그보다 내가 떨어진 높이를 감안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팔수도 없을 굴이었는데?’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나 나는 갈 길을 재촉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윽고 나는 갈색 나무문을 발견했다.

동굴의 규모와 달리 문은 비교적 앙증맞았다.

나는 주저하며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덜컥-


오호라. 닫혀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문은 쉽게 열렸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헤 벌리고 말았다.


“별세계라도 되는 거야?”


차갑고 어둑하며 퍼런빛을 발하던 동굴과 달리, 문 안은 싱그러운 녹색빛으로 가득했다.

바닥은 푸른 잔디로 가득했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으며, 형형색색의 꽃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엔 맑고 하얀 구름이 둥실둥실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문을 기점으로 세계가 바뀐 것만 같았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을 말하는 게 아닐까.

어느 새, 나는 내 목표를 잠시 망각 한 채, 이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왼편에서 흐르는 시냇물은 졸졸거리는 소리를 내며 밑으로 흘러내렸고, 따듯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든 것은 완벽해 보였다.

정확히는 내가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뭐야, 이게?”


발에 거치적거리는 덩굴줄기가 있었다.

덩굴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덩굴을 손으로 짚어가며 따라갔다.


그리고 나는 내 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왜... 여기에 묶여 있지?”


축 늘어진 몸들이 덩굴에 칭칭 감겨 나무마다 매달려 있었다.

왼편에도, 오른편에도, 꽁꽁 묶여 나무줄기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손에서 식은땀이 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깜빡이며 나에게 경고를 보냈다.

이곳에서 얼른 나가야한다고 외치며.

하지만 나는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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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화 - 쌍둥이 (3) 19.08.13 100 5 12쪽
91 91화 - 쌍둥이 (2) +1 19.08.11 99 5 12쪽
90 90화 - 쌍둥이 (1) 19.08.10 10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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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 연기하는 고양이 (3) 19.07.21 137 3 12쪽
87 87화 - 연기하는 고양이 (2) 19.07.20 12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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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생일 19.07.14 137 5 12쪽
82 82화 - 문과 열쇠 (2) +1 19.07.13 173 8 12쪽
81 81화 - 문과 열쇠 (1) 19.07.12 151 6 11쪽
80 80화 - 과거의 기억 19.07.10 161 6 11쪽
79 79화 - 준비작업 19.07.09 186 9 12쪽
78 78화 - 소원 (2) +1 19.07.07 196 6 13쪽
77 77화 - 소원 (1) 19.07.06 158 7 11쪽
76 76화 - 봉인 해제 +1 19.07.05 229 7 11쪽
75 75화 - 슈테른 (2) 19.07.03 157 8 11쪽
74 74화 - 슈테른 (1) 19.07.02 159 7 12쪽
73 73화 - 로니스 19.06.30 163 8 11쪽
72 72화 - 깊은 숲 속 아래 (3) 19.06.29 161 5 11쪽
71 71화 - 깊은 숲 속 아래 (2) 19.06.28 170 7 11쪽
» 70화 - 깊은 숲 속 아래 19.06.26 164 7 11쪽
69 69화 - 첫 의뢰 +1 19.06.25 21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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