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시그반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을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시그반
작품등록일 :
2019.04.01 12:01
최근연재일 :
2019.08.23 12:3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7,926
추천수 :
1,587
글자수 :
504,170

작성
19.07.17 12:30
조회
129
추천
4
글자
11쪽

85화 - 잠깐의 여유 (2)

DUMMY

로니에게 끌려 내려간 나는 줄곧 마을을 돌아다니는 내내 로니에게 시달렸다.


“와아- 안녕, 안녕!”


로니는 동네 아이들이 여럿 모여있는 곳으로 와다다 달려나갔다.

어느새 친해진 건지, 로니는 이곳의 아이들과 제법 잘 어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뒤에서 뚱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로니의 보호자라도 된 것 같잖아.

아니, 그게 맞긴 하지만... 애가 뒤에서 다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이래서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 기력이 빨린다는 말이 있지.”


공터에서 로니가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을 동안, 나는 뒤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꺄르르 웃는 소리, 그리고 간혹 서로 가볍게 다투는 소리.

그것이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 역시 한 때 로니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이다.


“에디이이~”


멀리서 로니가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투영할 수 있었다.


‘엄마!’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앞으로 달려가면, 행여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나를 붙잡아주었던 손만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이제는 얼굴도 흐릿해져 기억나지 않는 나의 부모.


‘애초에 추억이라 할 만한 기억도 없지만.’


그런 면에서 로니와 나는 꽤나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니에게는 일라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고, 나는...


“배고파졌어.”


어느 새 로니가 내 곁에 돌아와 칭얼거렸다.


“그럼 식당에 갈까?”

“아~ 나 저거 먹을래!”


로니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쪽엔 노점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로니가 가리킨 곳은 길쭉하게 튀긴 빵을 팔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으로 대충 때워도 괜찮으려나.

나는 잠시 갈등했지만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뭐 하루정도는 대충 먹어도 괜찮잖아?


“그럼 저기로 갈까?”

“좋아!”


로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노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우리의 양 손에는 가득 먹을 것으로 가득했다.

로니는 행복한 얼굴로 설탕이 듬뿍 뿌려진 빵을 입에 넣었다.

보기만 해도 단내에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오물오물 잘 먹는 로니를 바라보며, 투박하게 생긴 바게트를 집어들었다.

맛은 그다지 없었지만, 나는 기계적으로 그것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이제 연극을 보러 가는거야!”


슈크림을 입가에 잔뜩 묻힌 채 로니가 말했다.

나는 냅킨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디서 하는데?”

“우음. 저기랬나?”


로니가 고개짓한 곳엔 흰 색 외벽으로 이루어진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건물 옆에는 종탑도 있었다.

주변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듯한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오, 신기한데.”

“저게 유디스에 있는 ...어라. 일라이가 뭐라고 했더라?”

“극장?”

“응, 바로 그거!”


호오. 이런 극장도 있었구나.

하긴, 리카르트에서도 서쪽에 있는 윌드니스 구시가지에 예술가의 거리가 있었다고 했었다.

그러니 슈테른에도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정도는 있는 게 당연했다.


“조각상들이 아름답네.”

“우와. 나도 저런 거 만들어보고 싶어. 나도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연극이 언제 시작하는 지는 알아?”

“어...저기 적혀있다!”


나는 로니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6시부터 입장을 시작하겠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저녁 때 시작하나 본데?”

“헉. 아직 한참 멀었잖아! 그러면 더 돌아다녀야지.”

“잠깐, 로니!”


로니는 쌩하니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갑작스레 튀어나간 로니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갔다.

그리고 간신히 로니의 팔을 붙잡았을 때, 나는 골목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앞 똑바로 보고 다녀!”

“죄, 죄송합니다.”


나는 급하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로니에게 한 소리 하기 위해 그의 손을 붙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남자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시죠?”

“아- 여기 보라고. 다쳤잖아. 보상해야할 거 아냐!”


남자가 제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젠장. 그러니까 돈을 내놓아라 이거냐.

운도 없지. 하필이면 쓰레기 같은 인간과 부딪히다니.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돈이야 줄 수 있었지만, 저렇게 가볍게 부딪힌 걸로 보상을 운운하는 것이 같잖았다.


나는 곁눈질로 로니를 살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안 다쳤잖아?”

“뭐야. 꼬맹아. 지금 말대답하냐?”


놈이 으르렁거렸다.

기껏 좋아졌던 기분은 다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지금 여기서 화를 내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차분하게 생각하자.


하지만 내가 미처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로니가 발끈하며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이상하잖아! 다친데 없는데 왜 다쳤다고 그래?”

“애새끼가 말이 많네. 내상이라는 것도 모르냐? 그리고 먼저 부딪힌 주제에 꼬투리를 잡아?”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로니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의 주변에 마력이 넘실거렸다.

안 돼. 이 이상으로 일을 키우지마. 나는 로니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하세요. 부딪힌 건 저니까 저한테 말하시라구요. 저 애한테 화풀이하지 말고요.”

“그래. 새꺄. 그래서 지금 어른을 노려봐?”


쯧. 나이 운운하는 인간 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내가 언제 노려봤다고?”

“어쭈. 이젠 말까지 놓네? 싸가지 봐라.”

“그러는 그쪽이야 말로 양심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니고, 살짝 부딪혔는데 다치긴 뭐가 다쳐. 넘어지길 했어, 어디 부러지길 했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했는데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게 어디의 누군데?”


내가 소리 높여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와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먼저 잘못한 새끼가 입만 나불대고 말이야. 어른 공경이라는 걸 모르는 놈은 매가 약이지.”


놈이 내 멱살을 붙들었다. 놈의 생각 따위는 안 봐도 뻔했다.

나보다 커서 쉽게 힘으로 짓누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거지?

거기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체면까지 구겼으니 더욱 발광하는 게 분명했다.


“에디!”


로니가 달려들려 하는 걸, 나는 간신히 말렸다.


“쫄았냐, 꼬맹아. 애비애미가 어떻게 키웠으면 저렇게 자랐냐?”


놈이 나를 보고 킬킬 비웃었다.

그러자 내안의 이성이 서서히 끊겼다.


짜증났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다 거슬렸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하는 일은 항상 어딘가 어그러지고 망가졌다.

좋아하던 사람들은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나를 불길하게 여겼다.

이 세계가 게임 속 세계였다면, 아마 나는 불운에 스탯을 전부 몰아서 찍은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계속 그런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언젠가 괜찮겠지, 언젠가 좋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현실은 지옥이었고, 나는 죽지 못해 살았다.

정확히는,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는 한계였다. 지쳤다.

이전에 살았던 세계에서도 수백번 겪어왔던 일이었고, 그 때의 나였더라면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연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얼굴에 피가 몰렸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마력이 천천히 주먹에 깃들었다.

이대로 저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테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팔을 들어올리려 했다.

누군가가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린 애들 상대로 공갈은 너무한 거 아니야?”

“뭐야, 너는.”

“이봐. 어른이면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지.”

“오호, 그래. 아주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만.”


갑자기 나와 놈의 사이에 끼어든 한 남자가 놈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덕분에 나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콜록거렸다. 남자는 내 등을 손으로 토닥였다.


“그리고 나도 봤는데, 당신, 다칠 정도로 저 애랑 부딪힌 것도 아니던데? 그러니까 애 상대로 억지 부리지마~”

“비실비실한 놈은 닥쳐.”

“우와. 지금 공공장소에서 폭행하려고? 한 번 해보던가.”


놈은 갑작스레 끼어든 남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곳곳에서 짤막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가볍게 놈의 주먹을 피했다.


“이쪽이에요!”


남자가 크게 외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귀가 얼얼했다.

이윽고 한쪽에 칼을 찬 경비병들이 나타나 놈과 남자의 주변을 둘러쌌다.


“너, 이 새끼가!”

“워워. 진정해. 난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공공장소에서 폭력을 행사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죠?”


남자가 눈웃음을 치며 경비병에게 물었다.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 및 난동 건으로 신고가 다수 접수되었다. 얌전히 협조하도록.”

“크윽. 두고 봐.”


놈이 두 눈을 부라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도리어 웃으며 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뭐, 뭐야. 이번엔.


“친구들, 괜찮아?”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아, 그래서 말인데-”


남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남자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우리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제가요?”

“응응. 우리가 조금 곤란한 일이 있거든.”


나는 로니를 돌아보았다.

로니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쿠.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쪽 애가 급작스럽게 아파서 난처했거든. 이정도면 얼굴은 합격이고... 체격도 이정도면 딱이네. 연기실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음 상관없겠지. 어차피 주역도 아니고 대사가 몇 마디 있지도 않으니까.”

“네?”

“어때, 용돈벌이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내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서 있을 때, 근처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분 로완님 맞지? 멋지기도 하셔라. 잘생기신데다 어린 아이를 구해주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가지셨다니. 정말로 완벽한 분이라니까!”

“아아-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가 여기에 오신 걸까? 말 걸어도 괜찮을까?”

“지금은 저 애들이랑 이야기하시는 거 같은데? 부러워 죽겠다.”


연극? 그렇다는 건 눈앞의 남자가 배우란 소리인가?

그제야 나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자 남자가 볼을 긁적였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까 좀 부끄러운데.”

“앗.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할 일은 아니지. 그보다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


주변을 살펴보니, 여성 여럿이 눈앞의 남자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는 나와 로니의 손을 붙잡고 극장으로 향했다.

환호와 함께 간간히 아쉬운 탄식이 들렸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도 조용히 보내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느 날 고양이가 되었을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2 19.07.21 342 0 -
97 97화 - 에단과 패티 19.08.23 182 5 11쪽
96 96화 - 쌍둥이 (7) 19.08.21 103 4 11쪽
95 95화 - 쌍둥이 (6) 19.08.20 92 5 12쪽
94 94화 - 쌍둥이 (5) +1 19.08.16 114 6 11쪽
93 93화 - 쌍둥이 (4) 19.08.14 93 6 11쪽
92 92화 - 쌍둥이 (3) 19.08.13 100 5 12쪽
91 91화 - 쌍둥이 (2) +1 19.08.11 99 5 12쪽
90 90화 - 쌍둥이 (1) 19.08.10 104 5 11쪽
89 89화 - 늦여름 장마 +1 19.08.06 125 6 11쪽
88 88화 - 연기하는 고양이 (3) 19.07.21 137 3 12쪽
87 87화 - 연기하는 고양이 (2) 19.07.20 126 4 12쪽
86 86화 - 연기하는 고양이 (1) +1 19.07.19 161 5 11쪽
» 85화 - 잠깐의 여유 (2) 19.07.17 130 4 11쪽
84 84화 - 잠깐의 여유 (1) 19.07.16 129 4 11쪽
83 83화 - 생일 19.07.14 137 5 12쪽
82 82화 - 문과 열쇠 (2) +1 19.07.13 173 8 12쪽
81 81화 - 문과 열쇠 (1) 19.07.12 151 6 11쪽
80 80화 - 과거의 기억 19.07.10 161 6 11쪽
79 79화 - 준비작업 19.07.09 186 9 12쪽
78 78화 - 소원 (2) +1 19.07.07 196 6 13쪽
77 77화 - 소원 (1) 19.07.06 158 7 11쪽
76 76화 - 봉인 해제 +1 19.07.05 229 7 11쪽
75 75화 - 슈테른 (2) 19.07.03 157 8 11쪽
74 74화 - 슈테른 (1) 19.07.02 159 7 12쪽
73 73화 - 로니스 19.06.30 163 8 11쪽
72 72화 - 깊은 숲 속 아래 (3) 19.06.29 161 5 11쪽
71 71화 - 깊은 숲 속 아래 (2) 19.06.28 170 7 11쪽
70 70화 - 깊은 숲 속 아래 19.06.26 164 7 11쪽
69 69화 - 첫 의뢰 +1 19.06.25 219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