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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디 님의 서재입니다.

권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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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디
작품등록일 :
2020.05.11 21:07
최근연재일 :
2020.05.13 20:30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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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7
글자수 :
16,284

작성
20.05.1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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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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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장 축하합니다

DUMMY

1장

축하합니다










인력 감축 대상에 계약직 직원이 포함되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세존씨, 우리도 참 난처한 입장이라서 말이야. ···미안하게 됐어.”


비흡연자인 팀장이 따로 불러내서 담배한대 같이 피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러니 내일부턴 나올 필요 없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도록 해. 그동안 고생했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내 등을 토닥이며 돌아서는 팀장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지이이잉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는 나를 핸드폰이 흔들어 깨웠다.


[주세존 고객님? 신용카드 대금이 연체되셨습니다. 이 달 15일까지 입금하지 않으시면···]


카드사는 귀신같이 기가 막힌 타이밍을 어떻게 알았는지, 훅하고 들어와서는 언제나처럼 멘탈을 또 다시 흔들어 놓고 갔다.


배정받은 자리도 없는데 딱히 짐이라고 챙겨 나올 것도 없는 처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걸쳐둔 외투를 챙겨 말없이 허공에 대고 꾸벅 인사를 남긴 채 조용히 빠져나왔다.


로비 정문에 비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 기대와 달리 결국 작년과 모양새가 똑같아져 버렸다.


-꼬르르

당장 혹한기 날씨보다 시리고 쓰라린 환경에 던져지게 됐는데 이놈의 뱃속은 눈치도 없이 밥 달라고 징징이다.


“오늘은 총각 혼자야?”


“···뭐, 나중에 다들 올 거예요.”


회사 앞 단골 백반집.

점심시간마다 들린 곳이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하긴 했지만 이제는 안녕이다. 환하게 반겨주는 주인아주머니에겐 미안하지만 굳이 집에서 1시간이나 걸려서 와야 할 만큼 맛집은 아니니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뭐하는 할머니래요?”


“음, 이 동네 큰손이 아닐까?”


등 뒤에서 들려온 낭랑한 여자들의 목소리가 때마침 귓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딱! 정해진 시간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시크하게 현금 뭉치를 턱! 하고 놓고 가는데~”


어디 일수놀이나 하는 팔자 풀린 노인네 얘기일 테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 백만 원은 좀 많지 않아요?”


“무슨 소리니! 백만 원이면 놀라지도 않아~ 천만 원이라니까!”


“전부 만 원권으로요?”


“웅웅! 한번은 지점장님이 슬쩍 말을 걸었는데, 글쎄! 절래 하더니 휑하니 말없이 돌아가는 거야~”


“어머어머! 꽤 수상하네~”


“그지? 한 달도 넘었을 거야. 내일도 분명 올걸?”


매일 천만 원!?

밀린 방세와 카드대금을 다 갚고도 두서너 달을 버틸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순간, 머리털이 쭈뼛하고 솟아올랐다. 해서는 안 되는 상상을 해버린 것이다.


“아주머니~ 잘 먹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 여자들이 카운터 앞에 섰다.

찌개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슬쩍 눈을 추켜올려 몰래 그녀들을 살폈다. 유니폼을 보니 옆 건물 1층에 있는 대형 은행 직원이었다.


<난 세존이 네가 올바르게만 살았으면 좋겠어.>


그 날 짓던 형의 표정이 뜬금없이 생각났다.


바르게 살아야지. 암, 바르게 사는 게 맞지. 하지만 그것도 일단 목숨은 연명하고 나서 생각할 문제였다. 당장에 돈이 없어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 * *



백수가 된 첫날.

정확히 10시다.

오픈하자마자 와서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사전답사로 왔으니 말이다. 대충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녀들의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한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한참을 멀뚱히 앉은 내게 청경이 접근해왔다.


“···아, 아뇨. 치, 친구 기다려요.”


실수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은행일거라고는 전혀 예상지 못한 것이다.

이 큰 은행에 나 혼자라니!


“아~ 그러세요.”


청경은 생글 웃는 눈으로 빠르게 위아래로 나를 훑고 지나갔다.


“친구랑 같이 만나서 은행일 좀 보려고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그럼···”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선 청경.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가스총이 마치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라도 되는 것인 냥 보인다.


딱히 당장에 뭘 해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청경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긴장하는 꼴이라니. 새가슴인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찜찜한 기운을 벗어던지고 핸드폰을 슬쩍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58분.


어제 여직원들이 식당에 온 시간을 유추해보면 그 노인네는 분명 한 시간 안에 등장할게 분명하다.


“어서 오세요!”


꼬박 1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청경의 우렁찬 인사말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이곳의 공기가 미묘하게 어그러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출입문 쪽을 향했다.

천만 원. 아니, 그 할머니가 드디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입금해드릴까요?”


어제 백반집에서 봤던 여직원이 할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150cm 남짓한 키의 왜소한 체구.

긴 롱치마에 두터운 누빔 점퍼를 입은 할머니는 돈이 든 주머니를 은행원에게 건네며 한결같이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 천만 원이네요.”


지폐계수기를 작동시킨 여직원의 밝은 목소리. 나를 의식한 것 마냥 크게 들린 건 기분 탓일까.


아무튼, 사실 확인을 마쳤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은행은 건물 입구의 큰 정문 1개와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뒤편의 작은 문 1개가 있다. 저 할머니가 걸어왔을 수도 있지만 돈 많은 양반이니 차를 끌고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통이라면 본인이 왔던 길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할머니가 돌아갈 때를 확인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자, 할머니가 돌아섰다.

이제부터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청경의 눈을 피해 조심히 할머니의 뒤를 밟을 일만 남았다.


“가시게요?”


아니나 다를까 출입문을 향하는 나에게 청경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 이 녀석은 분명 처음부터 나를 수상하게 여긴 게 맞다.


“하핫 친구가 늦는다고 해서요. 좀 있다 다시 올게요.”


청경 녀석이 말을 걸어오는 통에 하마터면 놓칠 뻔 했지만 가까스로 노인이 탄 차를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은색 고급세단.

차 번호 3693.

옅은 선팅덕분에 직접 운전을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일도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지잉

때마침 날아온 카드사 문자 메시지.

독촉이 아닌 독려로 느껴지는 타이밍이다.

그래. 이런 독촉 문자 보낼 일 없도록 반드시 성공할 테니 지켜봐.


* * *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한숨도 못자고 이곳에 왔지만 오늘만 지나면 편히 잘 수 있으리라.


입이 바싹 말라왔다.

당장에 물 한모금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싶던 찰나였다. 텅 빈 주차장에 천만 원, 아니 은색 고급세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 번호 3693. 사냥감 등장이시다.


-텅

운전석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삑

이내 차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지며.


-닥. 닥. 닥.

사냥감의 발소리가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저릿해지는 손끝.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키다말고 설마 하는 마음에 발끝을 내려다봤다. 신발끈 이상무.


한손에 쥔 복면을 꺼내들어 재빨리 뒤집어썼다. 작년에 보일러가 터져 냉바닥에서 자다 행여 입이나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에 사놨던 복면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탁. 탁. 탁.

계산상으로는 10초 이내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탁! 탁! 탁!

바로 지금이닷!


“까악!”


모퉁이에서 불쑥 등장한 나를 보고 노인이 비명을 지를거란건 이미 예상한 시나리오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의 시간이 곧바로 이어졌다.


-팟!

내 생에 이렇게 민첩했던 적이 있었을까? 할머니의 한손에 들려진 돈주머니를 잽싸게 낚아채고 주차장 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꺄아아악!!”


뒤에서 다시금 날아든 끔찍한 비명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은 퇴로를 향한 한 점만을 남겨둔 채, 눈앞의 시야를 급격히 좁혔다.


어금니가 맞부딪히며 연신 딱딱 소리를 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것보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데도 들숨이 막힌 듯한 답답한 통증이 가슴을 억세게 짓눌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보니 눈앞에 철조망이 나타났다.

저곳을 넘어가면 건물 뒤편의 공터로 빠지게 된다. 그 인근은 오래전부터 건물을 짓다말고 공사가 중지된 곳이라 인적이 드물어 도주로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계획대로 도착하고 나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쫓아오는 이도 없었다.


<세존아, 없이 살아도 절대 남의 것을 탐하면 안돼. 떳떳하게 살아야지? 그치?>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간 형의 얼굴.


“푸핫!”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내자 그제야 참았던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내 타오르는 갈증이 가슴팍을 갈기갈기 찢어놓더니 금방이라도 마른 피를 한 움큼 토해낼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헉··· 헉···”


털썩 주저앉아 한손에 쥔 노인의 주머니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푸르디푸른 돈뭉치.

난생처음으로 남의 것을 탐했다.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형의 말을 어긴 것이다.


“···나도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쉰 소리를 흘렸다.

눈언저리가 화끈거리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낼 것만 같다. 하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눈물을 도로 삼켰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늦다는 것을 안다.

어쩔 수 없었노라 당장에 울음을 터트리며 청승을 떨어봤자 그 자체로 가식이고 위선인 것이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했으니까. 범죄라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그 때,


-지이이잉

바지 주머니 깊은 곳에서 핸드폰이 잔잔하게 요동쳤다.


“012108···?”


모르는 번호지만 얼떨결에 덜컥 받아버렸다.


“···여, 여보세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신께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자세한···]


끊었다.

보통 이런 번호는 보나마나 스팸전화다.


-지이이잉

다시 걸려온 전화.

말도 안 되는 이벤트니 경품이니 하는 스팸전화 따위에 응할 심적 여유란 없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지이이잉

몇 발짝 못가서 또다시 걸려온 전화.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그딴 거 관심 없으니까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마요!”


[네, 이해합니다. 모두들 처음에는 같은 반응을 보이시니까요.]


젊은 여자 목소리.

그녀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상냥한 어조로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저희 상담원은 플레이어와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됐고!! 다시 전화하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알아!! 끊어!!”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그녀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노인의 돈을 소매치기 하셨다는 사실을 제가 알고 있는데, 이대로 전화를 끊으셔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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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장 012108 20.05.13 27 2 11쪽
3 2장 갓-핑거 20.05.12 36 3 12쪽
» 1장 축하합니다 20.05.11 48 5 12쪽
1 프롤로그 20.05.11 85 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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