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일단이거 님의 서재입니다.

7급 별정직 저승사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일단이거
작품등록일 :
2019.04.01 15:55
최근연재일 :
2019.05.02 22:15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9,044
추천수 :
384
글자수 :
421,041

작성
19.04.18 22:11
조회
131
추천
8
글자
20쪽

037. 금묘 (3)

DUMMY

일단 링에 오르긴 했지만, 나도 딱히 뾰족한 수는 없다. 여기선 전적으로 수영 선배에게 기댈 수밖에.


"혹시 괜찮은 작전을 생각해 둔 것 있어?"


"도구를 어떻게 쓸지는 사용하는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쯧쯧, 그래서야 범람하는 인공지능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그래도 아직은 제가 더 성능이 좋을 거예요. 그나저나, 선배도 작전 같은 거 남은 것 없어요?"


"나야 언제든 플랜 B가 있는 여자지."


"그럼 그걸로 하면 되잖아요."


"아니, 네가 어설픈 작전을 들이밀어야 네 플랜 A보다 내 플랜 B가 우월하단 사실을 자랑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우리 같은 편이죠?"


나는 투덜거리며 수영 선배에게 물었다.


"그 우월한 플랜 B는 뭔가요."


"너 고양이 키운다고 했지?"


"모신다고 했죠."


"그렇게 갈고 닦은 집사의 실력으로 새끼 고양이를 잘 꼬셔 봐."


"...우월한 플랜 B? 어디가?"


"존재하지도 않는 네 플랜 A보단 낫겠지. 자, 가라, 경우!"


선배가 등을 떠밀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금아 앞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가 만담 같은 대화를 나누는 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금아는 내가 앞으로 나서자 귀를 쫑긋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수영 선배의 반응 속도로도 잡기 어려운데 내가 무작정 달려 들어서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일단 경계를 풀어서 접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옹."


"...먀?"


"애옹 애옹."


"먀먀!"


친근하게 고양이 울음 소리를 흉내내 보았는데, 별로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경계 태세가 진돗개 셋에서 둘이 된 느낌이다.


옛날에 내가 키웠던 고양이들은 박스만 주면 환장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장 구할 방법도 없고, 설마하니 지금 상황에서 그런 유치한 함정에 걸리지는 않겠지.


그렇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나는 금아 앞에서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꿇었다.


"...뭐해?"


"원래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큰 상대를 경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고양이과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들이 하악질 할 때 털과 꼬리를 바짝 세우는 것도 덩치가 더 크게 보이기 위해서다.


금아는 도깨비인 만큼 야생 동물과 같은 취급을 할 순 없지만, 아직 사람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먀먀거리는 걸 보면 동물로서의 본능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저자세가 아닐까?"


"금아 키가 너무 작아서 어쩔 수 없는데요."


나는 그냥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금아보다 컸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상체도 앞으로 숙여야 했다. 그러니까, 옆에서 보면 금아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나 스스로는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이성재가 나를 강력한 경쟁자로 보는 눈빛을 불태우고 있는 걸 보니, 옆에서 보기에 심히 안 좋은 모습이란 건 알 수 있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아예 수영 선배에게 아까 금아가 관심을 보였던 붉은 리본을 받아서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며 말했다.


"이거 줄 테니까, 잠깐만 이리 와볼래?"


"...."


좋아, 갈등하는군.


나는 리본 끝을 잡고 살랑살랑 저으며 금아를 유혹했다.


"이리 와서, 오빠랑 재미있는 놀이를 같이 할까?"


"...성재가 옮았나?"


음, 7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장신구로 유혹하면서 재밌는 놀이를 하자고 했을 뿐인데, 뭔가 부대 내에서 내 평가가 급속도로 감소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통한 것인지, 금아는 머뭇머뭇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거의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금아를 보고 여기서 덮쳐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갈등하고 있을 때, 의외의 사건이 일어났다.


쓰윽 쓰윽


"...."


왠지 금아가 먼저 다가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금묘를 향해 먀먀 거리며 뭐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먀먀!"


"어허, 생명이 있는 것을 충동적으로 키우려 들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더냐."


"먀...."


"...."


뭔가 펫숍에서 자주 보는 것 같은 풍경이긴 한데, 주체가 반대로 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아는 어린아이가 강아지를 끌어 안고 떼를 쓰듯 내 목을 안고 금묘에게 칭얼거렸고, 나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는 대신 수영 선배에게 눈으로 물었다.


'이제 어쩌죠.'


'나도 모르겠지만, 재밌으니까 됐어.'


어깨를 으쓱한 수영 선배는 금아에게 다가가서 붉은 리본으로 머리를 예쁘게 묶어 주었다.


"아무튼, 술래잡기는 내가 이긴 것 같은데?"


"흠, 미끼에 완전히 넘어가버렸으니, 오 별장이 이긴 걸로 칩시다."


요즘 나 왠지 미끼로서 인기가 급상승중인 느낌인데?


"그럼 다음은 어느 분이 나설 것이오?"


술래잡기가 답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와 수영 선배가 성공을 했으니 다른 저승사자들도 앞다투어 금아와 술래잡기를 신청했다.


하지만 리본을 달고 기분이 좋아진 금아는 저승사자들을 완전히 농락하며 완승을 거두었다.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도 아무리 손을 뻗어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는 금아의 몸놀림에 저승사자들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졌다.


"허억, 허억, 포기다, 포기."


"후욱, 후욱... 겁나 힘들어... 하지만 행복했다...."


뭔가 위험해 보이는 감상도 껴 있었지만, 귀여운 금아와 술래잡기는 정신이 피폐한 저승사자들에게 일종의 힐링 테라피 같은 효과가 있었다.


거기에 도깨비인 금아의 움직임은 정말 신출귀몰했기에 민첩 훈련으로서의 성과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


할 수만 있다면 제0사단 정규 훈련 종목으로 편성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놈은 도대체 어떻게 꼬신 거야?"


"이경우, 마성의 남자."


다른 저승사자들의 도전이 이어지는 동안, 금아를 잡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을 벤치마킹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나도 옆에서 보니까 저놈은 인간이길 포기했나 싶을 정도로 셀프 굴욕을 자초하는 방법이었지만, 제0사단엔 워낙 미친 분들이 많아서.


하지만 나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대충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자세한 건 톰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어떻게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소."


"사실 저희에게 더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의현 중령의 예의 바른 말에 금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상 겸 제안할 것이 하나 있는데, 가능하겠소?"


"어떤...?"


"당분간 금아를 이곳에 상주시키고자 하오. 오늘처럼 술래잡기 같은 훈련을 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겠소?"


"저희야 영광입니다만...."


정의현 중령 입장에서는 아무리 어리다 해도 도깨비를 일반인도 있는 제0사단에 상주시켜도 괜찮을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금아는 아직 어려 도깨비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업도 쌓지 못 했고, 평소엔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니 업에 대한 걱정은 잊으셔도 좋소."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금묘는 파격적인 제안을 추가했다.


"정히 불안하다면, 금아를 이곳에 맡기는 것도 업무에 추가하시오. 내 그에 대해선 따로 보상을 하리다."


제0사단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소고기는 없는 법. 무엇 때문에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고민하던 정의현 중령의 시선이 내게 닿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금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분 모두 이경우 군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으니, 특별히 그에게 업무를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배려해주니 감사하오."


누구 마음대로! 라고 외치고 싶지만, 어차피 정의현 중령이 내 직장 상사니 업무 배치는 정의현 중령 마음대로가 맞다....


자기들 마음대로 거취를 결정한 금묘는 금아를 데리고 뭔가 이야기만 간단히 하고 쿨하게 떠나버렸다.


어린 자식을 맡기는데 불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도깨비는 다른 건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심하게 쿨한 이별이었다.


"...톰한테 키우라고 해볼까?"


졸지에 애 아빠가 되게 생겼네.



*



"당연히 이 몸의 시비(侍婢)로 보낸 것이다옹. 그런데 내가 왜 시비의 시중을 들어야 하냥."


졸지에 금아를 맡게 돼서 톰에게 슬쩍 떠넘기려 했더니, 톰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금묘가 금아를 이곳에 남긴 이유가 위대한 왕인 자신의 시중을 들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으니, 일부러 자기 자식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양이 손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까만은....


"금아가 김 서방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사실 내 덕분이 아니냥."


"그래? 네 냄새라도 나는 건가?"


"나는 그렇게 칠칠찮게 냄새를 흘리고 다니진 않는다옹. 그보다 김 서방은 이 몸의 창귀인데다, 여의주의 기운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냥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친숙하게 느끼는 거다옹."


역시, 금아가 내게 먼저 손을 내민 것에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아무튼, 금아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지?"


"특별히 이 몸의 수발을 들 수 있는 영광을 내리겠다옹."


내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금아가 허락이 떨어지자 슬며시 톰에게 다가가 늘어져 있는 톰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까 금묘도 왕이니 뭐니 했지만, 정말 톰이 도깨비 사이에서도 제법 영향력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귀여운 아이가 고양이 다리를 주물러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금아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먀!"


"나 불렀어?"


뭔가 이리 와보라는 것 같은 얼굴이라 옆으로 갔더니, 자기 다리를 턱하고 나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먀먀!"


"...다리 좀 주물러 봐라고?"


아무래도 금아의 머릿속에는 타무르 > 금아 > 집사 순서로 이미 서열이 정해진 모양이었다.


이성재였으면 업계 포상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겠지만, 정상적인 감수성을 가진 나로선 피곤할 일만 남은 셈.


"먀! 먀먀!"


뭐, 귀여우니까 괜찮지만.



*



금아는 금방 제0사단의 공주님이 되었다. 술래잡기 훈련을 할 때가 아니면 평소엔 아기 고양이의 모습으로 다녔는데, 그럴 때는 꼭 저승사자가 누구 하나는 옆에 붙어 있었다.


힐링이 되면서 실제로 유익한 술래잡기 훈련은 제0사단 저승사자들이 앞다투어 신청하는 바람에 예약제가 되었는데, 불행히도 이성재는 시작도 전부터 블랙 리스트에 올라 예약조차 하지 못했다.


"크흙, 어째서...!!"


"이유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 신기하군."


일이 있어 금묘가 방문한 날 부대에 없었던 만재 형님이나 신하유도 금아를 보고 푹 빠졌다.


신하유는 아기 고양이 모드인 금아를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밤에 잘 때도 같이 데리고 잘 정도였다.


만재 형님은 금아를 보며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귀엽네."


"희진이보다 더요?"


"아니, 그보단 쪼끔 못하지만, 그래도 옆에서 꿀리지는 않을 정도?"


참고로 희진은 만재 형님의 딸 이름이며, 이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딸바보다.


솔직히 금아는 도깨비라 인간 폼일 때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귀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만재 형님의 콩깍지를 벗겨내진 못 했다.


요즘 딸바보 아빠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나도 만약 딸이 생기면 만재 형님처럼 세상에서 내 딸이 제일 귀여워 보일까?


내가 농담 삼아 그렇게 물으니 만재 형님은 진지하게 정색하며 내게 사과했다.


"그것 때문에 말인데, 나는 언젠가 너에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요?"


"응, 네가 아무리 예쁘고 귀여운 딸을 낳아도, 어차피 2등밖엔 안 될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여운 딸의 자리는 이미 희진이가 차지하고 있다는, 거의 종교적 신념에 맞먹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을 어떻게 떼어놓고 이렇게 출근을 하셨대요."


"그러게 말이야. 왜 우리나라는 국가의 보물인 희진이 아빠란 직업에 걸맞은 품위 유지비를 지급하지 않는 걸까?"


"...."


아무튼, 국가적인 보물을 입히고 먹이기 위해 오늘도 일을 나선 만재 형님과 우리가 순찰을 도는 곳은 양평의 흑천 일대였는데, 그 근방에서 최근 실종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두억시니에게 당한 경우,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목격자가 잘 남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는 모두 실종으로 처리된다.


그 말은 실종자 숫자가 두억시니 출현 빈도의 바로미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소리다.


"물론 실종자의 대부분은 단순 가출이나 잠수로 밝혀지지만, 끝내 못찾고 진짜 실종으로 처리되는 사람이 일 년에도 수천 명이 넘는단 말이지."


그것마저 경찰에 신고 된 실종자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고, 신고가 안 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은폐된 사람들까지 따지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아무도 모르게 우리나라에서 사라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0사단에서 정보를 다루는 부류의 사람들은 인간 혐오에 걸리기 쉽다.


두억시니에게 당한 것일까봐 열심히 추적해 보면 범죄 조직에 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을 납치하는 범죄 조직에서 벌이는 일은, 정말 인간 혐오에 걸리기 딱 좋은 짓들이다.


'김준이 평소 묵언 수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마여은이 그렇게 냉소적인 성격이 된 것도 어쩌면....'


아니, 그 둘까지 갈 것이 아니라, 당장 얼마 전에 만난 김영웅만 하더라도 그런 정보를 쫓는 지원팀 소속이지 않았던가.


아무튼, 실종자를 뒤쫓는 일은 제0사단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었고, 특히 일반적이지 않고 수상한 점이 두드러지는 사건이면 100% 저승사자들이 출동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낚시하러 간다고 나가서 연락이 끊긴 55세 남성과 운동한다고 나가서 사라진 27세 남성 둘은 확실히 수상하긴 하네요."


"예상되는 실종 지점도 비슷하고, 그곳 위주로 수색을 해봐야겠어."


55세의 사회적 기반을 갖춘 남성이 가출 같은 걸 할 이유도 없고, 납치를 당한 것 같지도 않다.


사실 몸값을 노린 유괴가 꼭 어린아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성인 남성도 얼마든지 납치를 당할 수 있지만, 그런 범죄였다면 범인의 연락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같이 운동한다고 사라진 27세 남성 둘은 더욱더 특이한 케이스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을 계획적인 범죄 대상으로 삼는 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0사단은 이곳 일대가 수상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우리가 파견되어 일대를 수색하기에 이르렀다.


"조원들 사이의 거리 유지하고, 위험하겠다 싶으면 일단 갈겨."


"넵!"


어차피 두억시니가 나타나면 무전도 안 먹힐 거고, 괜히 신호탄 같은 걸 쏠 시간에 그냥 K-2를 난사하는 편이 더 빠른 집결 신호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서로 도우러 올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둘씩 세 갈래로 나뉘어 수색을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전위와 후위로 짝을 지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일대를 둘러볼 파트너는 후위에 속하는 신하유. 수영 선배는 윤혜성을 데리고 가고 만재 형님은 고유경과 짝을 이루어 각자 흩어졌다.


"이번에도 우리 둘이 페어네? 잘 부탁해, 신 선배."


"저도요."


살짝 수줍게 웃는 신하유. 뭔가 요즘 짝을 지을 때 신하유가 걸리는 일이 많은 건 기분 탓이겠지?


하긴, 전위와 후위를 구성할 때 상성이 좋게 짝을 짓다 보면 같은 사람이 계속 걸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수영 선배가 어련히 알아서 잘 나눴으려고.'


그래도 예전의 보육원 사건 때 좀 친해진 것 같아서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수색은 신하유가 앞장서고 내가 뒤에서 따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원래 전위가 앞장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신하유가 나이는 어려도 나보다 선배고 투시 능력까지 있기 때문에 수색은 그녀 위주로 진행한 것이다.


"그거 안 무거워? 혹시 내가 들어도 괜찮아?"


"괜찮아요. 아, 그러니까 제가 들어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저도 일단은 내력계라서...."


신하유의 주력 무기는 바렛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대물 저격총인데, 이게 탄가지 더하면 15kg이 넘는 쇳덩이다.


내가 들고 있는 K-2의 무게가 탄창까지 포함해서 4kg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저 총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 수 있다.


그래도 당연히 자기 무기는 자기가 들어야 하겠지만, 거의 띠동갑에 가까운 여자아이가 나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보다 앞장서서 수색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괜히 한 번 물어보았다.


"...이상해요."


"뭐가?"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주변을 수색하던 신하유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 역시 목소리를 낮추고 물어보니, 신하유는 계속 주위를 둘러 보며 손으로 귀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


이런 곳에서 흔히 들려야 할 벌레 소리, 새 소리 따위가 일절 들리지 않았다. 소설에서 보면 보통 이런 경우에는 주변에 매복한 적이 있는 경우가 많던데....


"주변에 누가 있어?"


"아니요, 그보다 두억시니가 있다고 벌레가 울음을 멈추진 않아요. 두억시니는 거의 인간이나 사념을 발생시킬 수 있는 지능 높은 동물에게나 위험한 존재거든요."


그렇다면 정말로 사람이?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신하유의 투시를 피해 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잠깐 능력을 멈춰 봐."


신하유에게 신호를 보낸 나는 일부러 건전지를 쓰는 LED 랜턴을 꺼내서 주변에 뿌렸다.


흔히 시계에 쓰는 작은 단추형 건전지가 들어간 초소형 랜턴인데, 두억시니의 영력에 당하면 즉시 고장나 불이 꺼지기 때문에 불을 밝히는 용도가 아니라 영력 탐색의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내가 주변에 뿌린 랜턴 중 불이 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영능력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면 이 고요한 정적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이건 좀...."


"아, 저기!"


내가 의문을 표하려는 찰나, 갑자기 주변에 뿌려 둔 랜턴 중 하나가 불이 깜빡이며 꺼지더니, 곧 모든 램프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그리고 땅이 꾸물거리더니, 갑자기 뭔가가 팟! 하고 튀어나오는데, 깜짝 놀라 쳐다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손이었다.


곧이어 사람의 머리가 땅을 뚫고 솟아 오르기 시작했는데, 반쯤 썩어 눈구멍 밖으로 삐져 나와 대롱거리는 눈알이 소름끼치게 움직이며 우리를 바라보....


탕!


"크헤엑!"


...기 전에 박살나 허공에 흩어졌다.


"뭐야, 저건? 무슨 좀비야? 여기가 무슨 미국도 아니고."


"좀비 미드나 영화가 히트친 게 많아서, 저런 형태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좀비가 땅에서 솟아나는 장면은 충분히 공포스럽고 소름 끼쳤지만, 땅에 박혀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적을 보고 비명만 지르고 있기엔 그동안 우리가 해치운 적들이 너무 무서웠다.


"무슨 일이야?"


"뭐가 나타났었어?"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흩어져 있던 조원들이 달려왔는데, 우리가 사살한 좀비 비슷한 녀석은 원래 엑토플라즘으로 이루어져 있던 놈이라 죽은 뒤 스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하려 했는데, 수영 선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바닥을 펼쳐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만, 손님 맞을 준비나 해. 단체 고객이니까 실수하지 말고."


"그아아아..."


"으어어어!"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고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손이 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작가의말

 독자 여러분들께 먼저 사과 말씀 드립니다.

 오늘 급성편도선염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평소 하던 오후 연재를 무단으로 빠져 먹었습니다. 약 먹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상태가 좀 좋아져서 오후부터 부랴부랴 써서 한 편이라도 올립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마 내일도 한 편밖에 못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파도 성실하게 연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겠지만, 제가 써 놓고 보니 요즘 컨디션 안 좋은 상태로 글을 썼더니 글도 별로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내일까지만 좀 여유를 가지려 합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께 사과 말씀 드리며, 항상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위대한밥상
    작성일
    19.04.19 07:22
    No. 1

    창귀는 두억시니가 아닌건지 경우가 되다 말아서 유령이 된건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위대한밥상
    작성일
    19.04.19 13:29
    No. 2

    지금 보니까 수영과 만재 둘다 고유경이 파트너가 되있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일단이거
    작성일
    19.04.19 21:30
    No. 3

    지적 감사합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원래 오수영은 부리기 좋은 혜성일 잘 데리고 다녀요! 어차피 오수영 밑으로 남자들은 다 부리기 좋은 놈들이지만....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7급 별정직 저승사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예정이 많이 늦어져 사과 말씀 드립니다 +7 19.05.24 279 0 -
공지 리메이크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1 19.05.03 118 0 -
공지 인사 & 연재주기 +1 19.04.01 197 0 -
58 058. 특무대 (2) +1 19.05.02 149 6 15쪽
57 057. 특무대 (1) +1 19.05.01 99 4 15쪽
56 056. 귀수산 (2) 19.04.30 88 6 15쪽
55 055. 귀수산 (1) +1 19.04.29 129 5 16쪽
54 054. 태자귀 (4) +1 19.04.28 111 5 16쪽
53 053. 태자귀 (3) 19.04.28 115 2 15쪽
52 052. 태자귀 (2) +1 19.04.27 168 5 14쪽
51 051. 태자귀 (1) 19.04.27 125 5 16쪽
50 050. 정리 (2) +1 19.04.26 118 7 16쪽
49 049. 정리 (1) +1 19.04.26 104 6 16쪽
48 048. 폭우 (4) +1 19.04.25 119 4 16쪽
47 047. 폭우 (3) +1 19.04.24 119 4 15쪽
46 046. 폭우 (2) +1 19.04.24 120 5 17쪽
45 045. 폭우 (1) +2 19.04.23 135 5 17쪽
44 044. 불사교 (5) +2 19.04.22 110 6 19쪽
43 043. 불사교 (4) 19.04.22 122 4 16쪽
42 042. 불사교 (3) 19.04.21 128 2 16쪽
41 041. 불사교 (2) 19.04.21 98 5 16쪽
40 040. 불사교 (1) 19.04.20 112 5 17쪽
39 039. 노크 (2) 19.04.20 99 5 13쪽
38 038. 노크 (1) 19.04.19 120 6 16쪽
» 037. 금묘 (3) +3 19.04.18 132 8 20쪽
36 036. 금묘 (2) +1 19.04.17 122 7 16쪽
35 035. 금묘 (1) 19.04.17 135 7 16쪽
34 034. 손말명 (4) +1 19.04.16 119 8 15쪽
33 033. 손말명 (3) +1 19.04.16 115 7 17쪽
32 032. 손말명 (2) 19.04.15 111 6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