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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땡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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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4.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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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언제까지 모른 척 하실겁니까?

DUMMY

[35화]




오늘의 공연이 전부 끝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참새둥지에는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관객들로 붐비고 있는 중이었다.

공연의 열기는 이미 전부 빠져나갔음에도 아직까지 여운이 남았다는 듯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는 ‘안현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건 처음 봤어.’


참새둥지의 설립시기부터 ‘안현상밴드’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 인디계의 대부라 평가받는 안현상이었다.

그런 만큼 무수한 무대에 서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봐온 그였다.


그러나 방금 전의 하예리의 무대는 그런 안현상마저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


문득 안현상의 뇌리에 아까 전 앵콜 무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달려든 관객에 의해, 노래를 하던 하예리가 무대 밑으로 떨어져버린 사고.


당연히 이곳에 있는 모두가 기겁을 할 만큼 위험한 사태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업계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경험 많은 뮤지션들에게도 가끔씩 벌어지곤 하는 사고라고나 할까?

물론 제대로 된 앨범도 내지 않은 신인이 관객을 그토록 달아오르게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긴 했지만, 한 마디로 말해 조금 좀 운이 없었던 거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작 안현상을 정말 놀라게 했던 것은 그 뒤에 일어났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올라가 있던 세션들마저 모두 놀라 공연에 대해서 잊고 있던 그때.

오직 단 사람만이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 나는 지금 바다,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는 밤의 바다, 그대와 서 있던 모래 위에 나는 지금 혼자 있어요.


그건 바로 무대에서 떨어진 장본인 하예리였다.


분명 사고를 당한 본인이 제일 놀랐을 것이 분명하건만,

그럼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 아래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아무런 반주도 조명도 없는 곳에서 마이크 없이 오로지 생목에 의지해 부르는 노래였지만 그건 분명 ‘밤의 해변’이었다.


- 그댄 어디 있나요, 그댄 어디 있나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마이크도 없이 울려 퍼지는 소녀의 노래.

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열광하며 달려들던 관객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며 소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이었다.

마치 고대 종교의 무녀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신도들처럼 일견 성스럽기까지 했던 장면이었다.


그리하여 큰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오늘의 공연은 한 소녀의 기지로 인해 무사히 끝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 아까 그 더벅머리가 박이한 그 녀석이었겠군.’


무대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무대로 달려가 하예리의 상태를 살피던 마스크 차림의 사내.

급하게 어딘가로 데려가는 걸 보면 분명 바로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으로 간 모양이었다.


‘녀석도 많이 변했네.’


늘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주변사람들을 밀어내던 예전의 박이한을 생각하면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

그렇기에 안현상은 술이나 한 잔 기울이며 그간 못했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니 18년 만에 재회인데 그렇게 재미없게 할 순 없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안현상이 옆에 앉아있는 신지아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공연의 여운에서 쉽사리 깨어날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는지 신지아 역시 조금은 멍한 얼굴로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지아, 너 박이한이랑 계속 연락하지?”

“저요? 그럼요.”


당연하다는 듯 신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인간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이제 저 밖에 안 남았을걸요?”

“그래, 그럼 다음에 저 녀석 만나면 조만간 내가 한 번 보자고 전해. 물론...”


잠시 뜸을 들이던 유현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늘 그랬듯 무대에서 말이야.”


말을 마치자 볼 일이 끝났다는 듯 그대로 걸음을 옮기는 유현상.

피곤에 지쳐있던 그의 얼굴 가득 엷은 미소가 감도는 순간이었다.



* * *



“단순 찰과상입니다. 발목을 조금 접지른 게 전부고요. 경미한 부상이라 연고 발라드리는 것 외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격무에 시달린 듯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응급실 의사의 목소리.

그 이야기를 들은 하예리가 나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삼촌, 저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애초에 무대 높이도 제 허리정도 밖에 안 됐는데....”

“....”


하예리의 힐난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저찌 참새둥지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굳이 괜찮다는 하예리를 붙들고 근처 병원의 응급실까지 허겁지겁 달려온 상황이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다리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르니 얼른 정밀 검사를 해봐야한다고 난리까지 쳤으니, 그 민망함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일단 여기서 대기 좀 하세요. 다른 급한 분들 먼저 봐드리고 연고 발라드릴 테니까요.”

“...네, 고생 많으십니다.”


자리를 뜨는 의사를 향해 면목없는 표정으로 푹 고개를 숙이는 나.


민망함에 얼굴이 불거진 나를 구한 건 하예리의 신입 매니저였던 안준호였다.


“하하,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이제부터는 제가 옆에 있을 테니 두 분께선 먼저 돌아가서 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안준호.


안주호의 말에 내 시선이 옆에 있는 스켈레톤즈의 리더 ‘서수혁’에게 가닿았다.

아까 전 서둘러 하예리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내 말에 서수혁은 앞 뒤 가리지 않고 함께 따라준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번에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하예리와 정이 꽤 든 모양이었다.


“준호 오빠 말이 맞아요. 이따가 엄마도 온다고 했으니까 두 분은 먼저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것도 민망하단 말이에요.”


과연 그 말대로 하예리는 부끄러운지 벌게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준호 씨 잘 좀 부탁드려요.”

“넵 걱정 마십쇼! 저희 회사의 미래는 제가 목숨 바쳐서라도 지켜낼 테니까요.”


과장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경례하는 안준호.


그런 안준호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은 내가 이윽고 서수혁과 함께 천천히 응급실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색하네....’


병원 복도를 걷던 내가 곁눈질로 서수혁을 힐끔거렸다.

응급실을 나온 지 몇 분이나 지났건만 아직 우리 둘은 한 마디도 없이 나란히 걷고만 있는 상태였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서수혁에게 나는 예전에 함께 했던 선배 뮤지션 한이 아닌, 정체모를 작곡가 2han인 상황.

그리고 나 역시 아직 내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기에, 한사코 남들 앞에선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다 그때 이후 18년이나 지났으니...’


자그마치 20년에 가까운 세월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때 혈기 넘치던 청년을 어느덧 주름을 걱정할만한 나이의 중년으로 만들기 충분한 시간.

만일 마스크를 벗은 맨 얼굴이라 할지라도 서수혁이 쉬이 나를 알아보기란 어려울 터였다.


그러다보니 나와 서수혁 사이엔 딱히 공통주제랄 게 없어 이 어색한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고맙다는 얘기정도는 해야겠지?’


문득 내 뇌리에 아까 전 무대가 끝나고 난 뒤의 서수혁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기지를 발휘한 하예리의 즉흥공연 덕에 관객들이 진정되었던 그때.

빽빽하게 몰린 관객들에 막혀 있던 나 대신 서둘러 하예리의 신변을 확보하던 모습.

만일 서수혁이 없었다면 또 다시 관객들은 통제 불능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기 아까 일은....”


내가 그렇게 서수혁을 향해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우뚝.


갑자기 자리에 멈춰선 채 나를 바라보는 서수혁.

이윽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언제까지 모른 척하실 겁니까. 형님.”


마치 마음속에 있는 말을 겨우 꺼낸 듯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사실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때 형님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 건지 아니까 그리 쉽게 돌아오시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아까 앵콜 공연을 보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서수혁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예리 씨는... 석훈이 형님 딸인 거지요? 그래서 형님이 지금껏 옆에서 도와주신 거고요.”

“....”

“만일 대답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러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정말 다시 돌아오신 거라면...”


잠시 뜸을 들이던 서수혁이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언젠가 형님이 돌아오실 수 있도록 지금껏 참새둥지를 지켜왔던 거니까요.”


말을 마친 서수혁의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 카리스마 넘치던 스켈레톤즈의 리더 서수혁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그래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


타고나길 사회부적응자로 태어나 끊임없이 남을 밀어내기만 하던 나에게, 팬이라며 수줍게 웃으며 다가오던 얼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심한 듯 내가 서수혁의 어께에 손을 올린 건 그때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형님..”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는 서수혁.


“이거 다 큰 새끼가 왜 이렇게 울어?”


그렇게 내 손에 전해지는 흔들림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서수혁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 * *



몇 십분 뒤 병원 로비.


“예리야, 일단 수납까지 전부 끝났어. 대표님이 병원비 전부 회사 돈으로 지불할 거니까 이 부분 걱정 말고 일단 오늘은 푹 쉬라고 하시네?”

“아 정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안준호의 말에 미안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하예리.

그 반응에 당치도 않다는 듯 안준호가 손을 내저었다.


“무슨 소리! 회사 일을 하다가 다쳤으니 당연히 회사가 책임져야지. 예전에 지아 누님은 술병 나서 링거 맞을 때도 회사 카드로 긁었는걸? 물론 그 다음에는 대표님한테 한 소리 듣긴 했지만 말이야.”

“하하...”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르는 말에

하예리가 당황하던 그때였다.


“그건 그렇고. 어머니 이제 조금 있으면 오신다고 했지?”

“네 맞아요. 한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나 그럼 어머니 마실 것까지 좀 사올 테니까 여기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어! 제가 가도 되는데...”

“됐어, 다리도 아픈 애가 무슨! 얼른 갔다 올게.”


일어서려는 하예리를 만류한 채 서둘러 지하 편의점을 향해 달려가는 안준호.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하예리의 시선이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향했다.


‘...오늘 그건 뭐였을까?’


아무리 노래를 해도 지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하게 무대아래 떨어졌을 때도 놀라지 않고 차분히 노래를 마치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건 확실히 평소의 소심했던 하예리라면 절대로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마치 무대에 올라가면 무언가에 홀린 듯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또 무대에 서고 싶어.’


그렇게 하예리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던 찰나였다.


“...저기, 혹시 하예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서있는 건 정체모를 소녀였다.

하예리와 비슷한 체구에 벙거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 누구......헉?!”


질문을 이어가려던 하예리가 순간 놀란 듯 숨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소녀가 살짝 벗은 선글라스와 마스크 안에 숨겨져 있던 얼굴은 바로...


‘...강유이?!’


바로 스타의 탄생 우승으로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천재가수 강유이였으니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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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모른 척 하실겁니까? +6 24.04.25 11,102 2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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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핵폭탄 +6 24.04.22 11,360 2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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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5 24.04.20 11,635 232 16쪽
29 JS엔터의 미래 +5 24.04.19 11,998 24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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