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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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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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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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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년 2개월 3주차 -2-

DUMMY

사영은 그래도 굳이 적을 늘리고 싶지 않아 하라는 대로 했다. 곧 해적의 침입이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하고, 조선 조정 또한 상당히 적대적인 상황에서 청국까지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단 말하는 대로 네 번 절하고 무릎을 꿇고 받은 후, 봉투의 봉인을 뜯고 들고 펼쳐보니, 한문이 그득하다. 한쪽에 찍힌 커다란 인장이 청나라의 국새인 듯 한데,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알 만한 사람에게 넘겨야 할 듯 싶었다. 사영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그것을 정약용에게 넘기려 하였으나, 정약용은 짐짓 한발 뒤로 물러서며 박규수를 보았다. 박규수는 움찔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 칙서를 받는 예에 따라 절하고 꿇어앉아 받들어 받으려 하기에 그냥 안겨줘버렸다. 그것을 본 밀사단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을 한 눈으로 보면서, 사영은 작은 소리로 두 명에게 물었다.


”진품입니까?“

”거짓으로 꾸며 쓴 것 같지는 않소.“


일단 다른 세력이 장난쳤을 확률은 좀 낮아진 것 같다.


사영은 궁금한 점이 많았고, 그것은 청 황제가 보냈다는 밀사단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황제께서 제안하신 것은 참으로 좋은 조건이기는 하나, 궁금한 점이 좀 있습니다.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오. 우리도 궁금한 것들이 많으니, 일단 피차 물어볼 것을 좀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시지요습. 그런데 말입니다...”

“말해보시오.”


“청국의 황제께서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청 황제의 깃발은 양황기라 하여 적색 테두리에 노란 깃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헌데, 이번에 저 배에 보이는 적색 바탕에 노란 다섯 개의 별이 그려진 깃발도 그렇고, 노농적군이라는 이름도 생소합니다. 혹시...”

“혹시..?”

“황제를 사칭하는 무리가 아닌가 궁금하오.”

“뭣이?!”


깃발 자체야 오성홍기, 눈에 익은 중국의 깃발이지만, 지금 시대에 나와서는 안되는 물건이었다. 청 황제가 아니라도 누군가 나처럼 시대를 거스른 자가 있다면, 황제를 사칭하여 이 정도 소수 인원을 밀사로 위장하여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리라. 설령 황제가 보낸 밀사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감정을 흔들어 속에 감춘 것이 무엇인지 봐야 할 상황이기는 했고.


“사람도 아닌 것이 감히 황제폐하의 말씀과 칙서와 첫 번째 정치국장이자 그 분의 말씀을 전하는 나를 능멸하는가!”


살살 건드리면 바로 불 붙는게 속내를 알아보기에는 좋은 타입 같다. 판이 깨지면.. 약속받은 예산이나 인력은 아쉽겠지만, 리스크를 회피하는 셈 치면 괜찮을 것이다. 이미 미래를 알면서 핵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자 아래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나저나 정치국장이라니. 통역을 맡은 박규수나 옆에 있는 정약용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다. 통역을 한번 거쳐 이야기를 주고받아서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감정 수습이 빠른 상대인지, 상대방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도 일단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칼을 뽑아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버럭 화를 터뜨리던 밀사단의 정치국장이라는 자는 다시 화를 억누르는 듯 보였다. 황제가 꽤나 강하게 나를 포섭해 데려오라고 명령한 듯 싶었다.


“정치국장이 무엇이오?”

“정치국장이라는건 말이오...”

그는 화를 억누르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가이시자 군사 지도자이시자 만백성과 천하의 어버이이신 황제폐하의 의지와 말씀을 전하는 자이오.

우리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가 사기 유지 및 고양과 계급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훈육할 책임을 지고 있소.

우리들은 황제 폐하 아래 모든 인민이 평등하며 인민의 의지와 숫자가 모이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보이는 사명을 가지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자들이오.”


‘커미사르?’


황제가 공산주의 혁명가라니했던가. 공산국가의 지배자들은 군대를 믿지 못해 정치장교를 따로 파견하고는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황제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에 사영은 피식 웃고 싶었다. 공산혁명가를 자처하는 황제라니. 공산 혁명이 일어났던 제국치고 황제의 목이 잘리지 않았던 나라가 있던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청 마지막 황제는 공산주의 혁명가들에 의해 끌어내려진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 되긴 되는 것인가.


“황제의 말을 대신 전한다 하셨으니 권한도 위임받아 오셨겠지요.”

“그렇소. 위대하신 황제폐하께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대와 그대의 배를 아국으로 포섭하여 모셔 오라 하셨소이다.”


통역해주던 박규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 이만큼 키워놓고 청국으로 도망가면 남은이는 어쩌려는 것인지 걱정이 되는 것일까.


“나는 이 배와 연결된 몸이라 이 배를 떠날 수 없고, 이 배는 동력계가 망가진 상태라 수리하려면 고급 기술이 필요하고, 고급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이 배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이 배가 움직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허면,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신게요?”

“그건 나도 모릅니다. 내 기억이 온전치 않으나, 이 배를 수리하고 기능을 복원할 때 쯤이면 내 기억도 돌아오지 않을까 할 뿐입니다.”

“기능을 상실한 배와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한 사람이 이만큼이나 일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이오? 저 멀리서부터 수평선 너머로 올라오는 연기와 불빛, 그리고 불타고 부서져있는 저 목선들, 갑판 위에 있는 수많은 기물들, 그것을 보았는데도 이 배와 그대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오?”


황명을 받들어 포섭하러 온 밀사치고는 태도가 꽤 고압적이다. 커미사르의 특징인걸까 아니면 중뽕과 황제의 권력에 취한 줄 잘 탄 청국인인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밀사단의 다른 사람이 그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무언가 심각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뭐라고 하시는지 들리십니까?”

“일이 틀어지면 황제폐하의 진노를 받아낼 수 있겠냐고, 머리 좀 식히고 목적을 생각하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짜 청국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건 좀 이따 우리끼리 있을 때 이야기하십시다. 저쪽도 듣는 귀가 있을 수 있으니.”


그렇게 서로 좀 떨어져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밀사단쪽에서 다시 이야기를 해 왔다.


“작은 배로 먼 길을 오느라 지쳤소. 하룻밤을 쉬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떠하겠소?”

“좋습니다. 이 배 안의 선실 몇 곳을 숙소를 내어드리지요.”


그들은 배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자기들끼리 한참동안 무엇인가를 논의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실시간으로 함교에 있던 사영과 정약용, 박규수에게 전해졌다.


“단지 기억을 되찾기 위해 이 많은 일들을 벌이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겠습니까?”

“말도 안되지. 허나 이 배나 그 자의 모습을 보면 그 또한 말이 안 되지 않겠는가.”

“황제께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섭해오라고 하셨으니 저희 쪽에서 제시할 것들이 무엇이 더 있을까요? 인력과 예산의 무한 지원을 폐하께서 약속하셨음에도 크게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부귀영화에는 관심이 없겠습니까?”

“이 배에 매인 데다 그딴 몸뚱아리로 부귀에 관심이나 있겠는가.”

“그래도 질러나 봐야지요. 세상에 부귀영화를 마다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선은 곤궁하고 비루하며 우리 대청은 조선보다는 수천배를 내어 놓을 수 있으니 폐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왜 아예 산해진미와 경국지색을 준다고 해보지 그러나.”

“아, 그것도 좋겠습니다.”

“몸이 그런데 여자나 품을 수 있겠습니까? 달려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근처에 해적들이 밀집하고 있다던데 일단 그들하고 싸움이나 붙여서 힘의 차이를 좀 보여주고 구하러 오면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잘 되면 해적들과 상잔시킬 수 있고, 잘못되더라도 이 배가 침몰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해적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말인가?”

“제가 그쪽 태생이라 아는 자들이 몇 있습니다.”


황제가 보낸 밀사 중에 해적과 연락하는 자들도 있고, 황제는 중국식 공산주의를 외치는 그런 상황에서 핵으로 세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자고.. 기계가 된 사영의 머리가 아플 리 없었으나 그는 있지도 않을 두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논의가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다음날 그들이 제시한 것도 들은 바와 거의 같았다.


밀사단은 사영을 포섭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당근을 더 내밀고자 했다. 허나 현재 그의 목표인 기억을 되찾는 것에 대해서 그들도 딱히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리 없었고, 부, 명예, 천하 제일의 진미나 경국지색이야 몸이 기계가 되어버린 사영에게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황제 아래 만민이 평등한 국가 같은 슬로건, 인간 평등에 반하는 계급과 사유재산의 소멸과 같은 이념 따위는 더더욱 쓸데없는 당근이었다. 아니, 그 결말이 어찌 되는지 아는 사영에게는 오히려 혐오감을 조장하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사영이 그나마 혹했던 것은 인력과 예산의 무한정 지원이라는 말이었으나, 공산국가가 대개 정치질에 능하지 않은 과학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얼추 알고 있는 이상, 손을 잡을 생각도 크게 없었다. 오히려 사영은, 그 인원과 예산, 자원을 이쪽 공충도쪽으로 지원해주고 그 결과를 나눠먹는 것이 어떠한지 역제안을 해 보았다. 밀사단은 사영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면서 동시에 쉽게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상대임을 인지하고, 황제의 명을 다시 받아 오겠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 바로 해적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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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2개월 3주차 -2- +7 22.06.14 1,309 43 10쪽
23 1년 2개월 3주차 +3 22.06.14 1,311 42 10쪽
22 1년 2개월 2주째 -4- +4 22.06.13 1,341 50 11쪽
21 1년 2개월 2주째 -3- +1 22.06.13 1,397 46 14쪽
20 1년 2개월 2주째 -2- +2 22.06.10 1,431 49 12쪽
19 1년 2개월 2주째 +2 22.06.09 1,456 43 10쪽
18 1년 2개월째 -청국의 사정- +3 22.06.08 1,488 46 10쪽
17 1년 2개월째 +9 22.06.08 1,514 58 16쪽
16 11개월째 +7 22.06.03 1,575 49 18쪽
15 10개월째 -2- +4 22.06.02 1,573 52 15쪽
14 10 개월째 +1 22.06.01 1,602 54 14쪽
13 9개월째 +3 22.05.31 1,654 54 14쪽
12 8개월째 +7 22.05.30 1,690 52 16쪽
11 일곱달째 +5 22.05.27 1,776 55 14쪽
10 여섯달 하고 일주일 후 +6 22.05.26 1,825 60 11쪽
9 여섯달 후 +3 22.05.26 1,863 59 17쪽
8 넉달 보름 후 +8 22.05.24 1,947 55 22쪽
7 넉달 후 +5 22.05.23 2,075 57 16쪽
6 백일 무렵 +10 22.05.20 2,232 65 19쪽
5 석달이 흐르고 +4 22.05.18 2,311 76 14쪽
4 일주일째 즈음. +5 22.05.16 2,636 79 21쪽
3 2일차~120일차 +3 22.05.13 3,435 66 17쪽
2 1일차 오후 +9 22.05.13 3,886 84 9쪽
1 1일차 오전 +9 22.05.12 5,578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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