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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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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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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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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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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백일 무렵

DUMMY

본래 조선은 국왕이 다스리나, 국왕이라고 해서 멋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왕은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고, 업무시간에는 사관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신들 또한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의 선비들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그들을 무시하고 무리수를 두었다가는 업무가 마비되고 역사에 악명높은 자로 박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신들은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로 안 먹히면 “죽여주시옵소서!”라면서 자신의 목숨으로 왕의 만행을 저지했다. 그러다 실제로 죽음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으나, 그렇게 신하를 처리한 왕은 항상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였다.


대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이나 대신이나 신분 고하에 상관 없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사관이나 유생은 물론, 아직 과거도 치르지 못한 어린 학생이나 기생까지도 도끼를 등에 지고 상소를 올리곤 했다. 물론 그 도끼로 잘못한 자의 뚝배기를 깬다는 뜻은 아니었고, “상소문 안 받을 거면 내가 가져온 도끼로 내 대가리를 내리쳐라!”라는 패기를 부리며 목숨 걸고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었으니, 도끼를 지고 상소를 올린다 하여 '지부상소'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만큼 유명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왕조차도 매우 아니꼬울 경우

“내 능력이 부족하니 세자한테 왕의 자리를 넘기겠다."


즉 양위를 거론하여 훌륭하게 신하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빅엿을 먹이기도 했으니, 이에 섣불리 찬성하면 역모가 되는 것이고 섣불리 반대했다가 실제 양위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후임 왕에게 모가지가 날아갈 것을 감수했어야 했다.


이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살벌할 견제야말로 조선이 국가로서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누군가 선을 넘는다고 하면,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던져 뜯어말린다. 그렇게 조선은 지배계층의 피를 빨아 정상적으로 굴러왔고, 그렇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은 저러한 상호 견제 시스템이 망가진 지 꽤 오래된 상황이었다.


시스템이 망가지니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빨리는 것은 지배계층의 피 대신 백성들의 피가 빨리게 되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는다고 했다.


당장 대신과 대간이 같은 편을 먹고 정적이나 정적으로 부상할 수 있는 싹을 다 쳐내는 바람에 한양과 그 일대, 그리고 조선의 상당 부분은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이라는 두 가문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었고, 의정부와 6조 또한 비변사 아래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나마 왕이 건재하다면 조선‘왕국’에서 최소한 왕권과 신권이 서로 견제하는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작동했겠지만...


왕은 홍경래의 난 때 이미 몸도 마음도 상했다.


그래도 조선의 국운이 기울지 않았는지 세자가 똑똑하고 건강했으며 의욕적이었기에 왕이 세자에게 실권을 넘겨주고 나라의 경영을 맡겨보았으나, 그 세자도 채 4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나마 새로운 세도 정치의 서막을 연 핵심 인물, 김조순은 선비로서의 명예와 체면을 어느 정도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최소한 국가가 휘청될 정도로 국력을 빨지는 않았고, 실권을 챙기되 선을 넘어 전면에 나선다거나 왕보다 더 왕처럼 행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본인과 본인의 가문을 위해 적당히 조선을 빨아먹기는 하였으되, 조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여 오래오래 빨 기틀을 마련했'었'다.


문제는 그의 사후, 이제 체면을 차리지 않게 된 남은 일족이 전면에 나서고 왕도 왕권을 던져버리면서 국가가 망하는 길을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변수가 생겼다.


여느 이양선 같으면야 통상이나 몇 번 요구하거나 서학을 몰래 퍼뜨리기 위한 선교사라는 작자들이나 몇 내려주고 떠났으련만, 이번에 온 것은 좀 달랐다.


큰게 왔다.


이제 조선을 거의 집어삼켜가고 있던 안동 김문에서 변수의 출현을 곱게 여길 리 없었고, 그 이양선이 어떤 일을 벌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감찰관을 파견했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감찰관도 이양선에 대해 경계심을 잔뜩 갖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감찰관이 마을에서 본 것들은 그의 마음을 적지 않게 풀어지게 했다. 일단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지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이양선은 최소한 적의는 갖고 온 것은 아님을 증명했다. 아니, 조정에서조차 하지 못한 것을 최소한 이 일대에는 해둔 것 아닌가.


‘백성들은 무지몽매하나, 최소한 입에 밥은 넣어주어야 사고를 치지 않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감찰관은 그 큰 배를 실제로 보고서도 어느정도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그 크기를 보니 오금이 저리고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최소한 이양선이 당장 조선을 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나마 마음이 좀 놓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홍경래의 난도 결국 먹고 살 것까지 싹 다 털어먹다 그 탈이 난 것 아니었는가. 이양선은 조선 사정에 어두우니, 잘 구슬려 그 식량들에 관한 것을 털어놓게 하고 줄 것은 줘서 떠나보내면 될 일이다.’


그리 생각하고 이양선에 올랐으나, 그 배 자체라고 하는 사영이라는 자를 보자, 감찰관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분명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갑판 위에 서 있는 그것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강렬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요즘 서역으로부터 온 이양선에 오귀자(흑인)니 홍모귀(붉은머리 백인)니 벽안귀(눈이 푸른 백인)니 하는 것들이 많이 온다더니... 그런 종류인가?'


그리 생각한 감찰관은 소리를 질렀다.


“너는 무엇이냐? 사람이면 대답하고 귀신이면 썩 물럿거라!”

“네?”


사영은 순간 등 뒤에 박혀있는 케이블 때문인가 싶어 그것을 한번 손으로 슥 만져보았다. 그러나 감찰관의 시선은 케이블과 상관없이 사영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사영이 생각에 잠겨 있는 그 짧은 순간동안 이미 갑판 위에 올라와 작업조별로 모여있던 사람들, 그리고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빠르게 험악해졌다.


“이런 하루하루 글만 읽고 거름이나 만드는 양반이 뭐라고 하는거에유?”

“그러게유. 누구 때문에 겨울에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고있는디”

“오늘 물괴기 창세기(창자)에 다진 선비 괴기 들어가는 날인가봐유.”

“아따 씨불것이 지금 뭐라고 한겨?”

“느그 아비가 그리 시키드나?”


각종 욕설들이 터져나왔고, 개중에는 진짜로 스패너와 망치, 드라이버 등등을 들어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직 감찰관을 데리고 같이 왔던 집 남자만 안절부절하며 사람들을 말리고, 감찰관을 호위하며 내려온 군관들이 우물쭈물하며 칼 대신 육모방망이를 비끄러 쥐고 방어 태세를 취할 뿐이었다,


말리지 않으면 진짜 사람 하나 다져서 바닷물에 쳐 넣을 분위기였다. 그래도 백여 일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일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먹고 먹이고 하는 동안, 여기 사람들은 사영을 은인 내지는 가족,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로 여기기 시작한 듯 했다.


“아 거 귀신 취급 좀 했기로서니 조정에서 내려 보낸 감찰관을 다지려 들면 되겠습니까?”

“아 저 시불놈이 다짜고짜 사람을 귀신 취급하는걸 어찌 보고 넘긴다는 말이유?”

“그렇슈. 우리 굶어 죽을 때 코빼기도 안뵈던 조정에서 뭐 쳐먹겠다고 이리 사람을 내려보내고 그랬겠슈.”

“그냥 다지고 호환 당해서 뒤졌다고 해버리지유. 저거 여기 먹고 살만하다 생각하면 또 꼰질러서 세금이나 쳐 뜯으러 올 거유.”

“자 진정들 하시고, 일단 이야기나 더 들어 보십시다.”


저승사자가 다녀간 때문인지, 감찰관은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누구신지요?”

“저는 김 모라고 하옵고, 비변사에서 이 곳의 이양선에 대해 허실을 탐하라 하여 내려왔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사영이라고 하고, 귀신은 아니지만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사영은 일단 분위기도 좀 식힐 겸, 썰렁한 말로 인사를 건넸다.


”아니, 사람같이 생겼고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해 구휼을 하고 했으면 사람이지 어찌 귀신이란 말이오?“


옆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박규수가 한 마디 거들었다.


“고맙습니다.”


박규수에게 인사를 건넨 사영은 다시 감찰관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승선을 환영합니다. 제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저는 이 배이고, 이 배가 바로 저이지요.”

“아... ”


이번에는 감찰관이 생각에 잠겼다. 그는 무언가 생각해 내려는 듯, 고개를 꼬아보기도 하고 수염을 쓸어보기도 하면서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사람은 아닌 듯 한데, 귀신은 또 확실히 아닌 것 같소이다. 설명을 해 보시오.”


생각 후 그는 내게 반존대로 말을 건네었다. 태도도 못생긴 말하는 개구리를 대하는 것 같은 자세와 표정에서 어느 정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사영은 간략하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이야기해주었다. 감찰관의 표정에서 많은 생각이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점점 공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호기심이 대신 채워지는 것 같았다.


“허면 몸은 사람과 기물이 반반쯤 섞인 것이고, 이 배와 그대가 한 몸이다, 이 뜻이오?”


감찰관의 말에 박규수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람으로서의 이(理)가 큰 뜻을 이루기 위한 생각 아래 물(物)로 옮겨진 것이라 보면 대충 맞는 것 같소이다."

”낙론과 호론에 대해 논하는 것 같구려.“

”그렇지요. 이게 벌써 논의된 지 백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박규수와 감찰관은 신난 것 같았다. 사영이 궁금해하는 것 같자, 둘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백여년 전쯤, 당대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이 사람의 본성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다투는 일이 있었지요.“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인간이나 사물에도 이가 모두 존재하고, 그러므로 오상-인의예지신-의 덕이 있다고 하는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낙하-서울-에 살기에 낙론이라 이름이 붙었습니다.“

”반면에 인성과 물성은 엄연히 다르며, 오상 또한 인간과 사물이 달라 오직 인간만이 오상의 덕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은 주로 호서-충청도-에 살았기에 호론이라 이름이 붙었지요. 이(理)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게 이야기는 한참이나 이어졌고, 사영은 일단 말을 끊었다.


”여기 마을 분들이 오늘의 할 일을 기다리고 계시니 일단 남은 이야기는 이따 마저 하시지요.“

"일단 여기서 줄여야 할 것 같사오이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하자면 한 달도 모자라겠군요.”


사영도 일단 이야기를 끊기는 하였으나, 주제 자체는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본인의 상태에도 상당히 해당되는 이야기라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다른 생물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소 철학적인 주제였으나 분명 재미있는 주제였다. 맹자가 사람과 사물의 성품을 다르다고 하며 설명한 것과 주자가 인간과 물성은 같으나 기질이 다를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거나 하는 부분도 그렇고, 대학자의 의견을 받거나 거부하거나 하며 각 학파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이론을 어떻게 갈아나가는지 듣는 것도 분명 재밌었다.


감찰관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그 호론의 지방 공충도에 온 이양선에서 낙론이 실제함을 직접 보고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는군요."


그러더니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거대한 이양선이 출몰하였다는 풍문을 듣고 궁금증이 들어 여기로 오기 시작하였으나, 오는 길에 보니 참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물과 식량, 학문이라니 이것이 바로 서경에 나오는 이용후생이 아니겠습니까.”


홍희근, 박규수도 그렇고 이 감찰관도 그렇고, 생각보다 이곳은 꽤나 열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많은가보다. 일반인들의 삶의 질은 낮은 편이고, 낙후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나 적어도 생각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말이 통한다니 적어도 문화 충돌이나 이념과 사상의 충돌은 좀 적지 않을까 싶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여기 모인 분들과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이따 식사 시간이나 밤에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 그럼 당분간 이 근처에 머무르면서 봐도 괜찮겠습니까? 일에 최대한 방해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이따 마저 하시지요.”


감찰관은 데려 온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곳 여기저기를 다녀보고, 중간중간 짬이 날 때마다 궁금한 것을 적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작업을 일찍 마치는 날에는 희망자에 한해 한글을 가르치고, 목표를 달성한 사람에게 추가로 삯을 지급한다는 이야기에는 꽤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렇게 4일간 사람들이 작업을 끝내고, 삯을 받아 돌아간 저녁 시간, 그는 다시 이야기를 청해 왔다. 감찰관은 처음 만났을 때, 귀신인지 사람인지 묻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약용이 주장하던 것이 저 대국은 몰라도 조선에서는 허황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행하여 지는 것을 보니,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다 싶군요.”

“어허, 연배도 경륜도 이룬 학문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분더러 그렇게 함자를 함부로 부르다니, 무슨 예의입니까 그게?”

“서학하다 풍비박산난 역적 집안 아닙니까.”

“다산 선생께서 서학을 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녁에 다시 모인 사영과 박규수, 그리고 감찰관은 다시 으르렁댔다.

“정약용? 다산? 어떠한 부분이 말입니까?”

“다산 선생님께서는 만민을 가르쳐서 각자 스스로 수신하게 하고, 배와 수레를 만들어 물산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며, 선진적 기술을 통해 백성과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선진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이용후생을 통해 경세제민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게 가난하고 먹고 살기도 어려운 조선땅에서 가능하겠는가 말입니다. 저 땅 넓고 평지도 많은 대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겠지요. 허나, 이 곳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니 마냥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겠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분제 타파, 족보보다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 중상공업, 국민 개개인을 풍족하게 만들어 부국을 이루고 강병을 육성하고 농업, 공업, 방직, 군사, 의료, 수학, 과학 등등에 선진 기술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을 이미 책으로 정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식량과 연료를 삯으로 주고 한글을 가르치고 하는 이유는 저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허나, 한글을 가르치고 다음 기초 학문을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것은, 고급 노동 인력과 연구 인력이 필요한 때문이고, 그 인력이 필요한 까닭은 보이는 바와 같이 이 배를 복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배에 실려 있는, 지금은 저의 뇌처럼 작동중인 여러 설비와 장치를 완전히 복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력과 강철과 각종 화학 물질들이 안정적으로, 대량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생산하려면 일단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전문 인력이 키워지려면 먼저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어 먹고 사는 걱정은 적어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식량과 연료와 지식을 제공하는 것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삯을 주고 부리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러자 감찰관이 나서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원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지요. 누구나 물질적인 이득, 명예, 맛난 것, 권력, 혹은 여자를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허나, 그러한 사욕을 추구함이 다른 사람과 가족과 국가에 이득이 된다면, 결국 천하가 널리 이로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배운 자가 덜 배운 자를 가르치고, 그것으로 그들이 더 잘 일하도록 하여 그 댓가를 받으면 배운 자도 더 많은 힘과 재산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덜 배운 자도 기꺼워 할 것입니다.


”더 배운 자가 덜 배운 자를 가르쳐 뜯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허나 그 뜯는 부분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일과 배움을 즐거워하고, 밥 짓는 연기가 매일 오르고, 배부르고 등 따수운 것이야말로 천하가 평화로워지는 가장 으뜸이 되는 길 아니겠습니까.”


“뭐, 그리 좋게 생각해주신다니 너무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 목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왜 어떻게 여기 이렇게 오게 되었으며 누가 나를 살려 이런 철선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아닙니다.”


사영은 깨어났을 때부터 걱정하는 바가 몇 가지 있었으나, 그것을 아직 이야기해야 할 때는 아니라 여겨 여기서 일단 말을 삼켰다. 박규수는 내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갔고.


“설령 그것이 서역의 것이거나 귀신의 것이라 한들, 급하면 쓰지 못할 바 없을진대, 서역의 것도 아니고, 귀신의 것도 아니고, 야소교의 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쓰지 못할 바 없지 않습니까.

결국 타인을 이롭게 하는 사욕의 추구는 선한 것이며,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아서,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을 것이며, 구하지 않아도 결국 구해지게 될 것입니다. 아, 제가 아직 경험이 적고 학식이 부족하여 깨달은 바를 다 적어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렵군요. 역시 저 하나보다는 다산 선생님을 이쪽으로 모셔서 같이 논의해봐야겠습니다. 추사 선생님도 분명 이것을 좋아하실 것이고, 또 보자...”


뭐 좋게 생각해 주면 좋은 것이겠지. 한글을 떼는 사람이 많아지고, 이후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때가 오면, 이와 같이 생각이 트이고 똑똑하고 의욕적인 선비들과 일을 같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싶기도 했다.


그렇게 감찰관은 여기서 보고 들은 바를 정리해 다시 한양에 가서 잘 말해주겠노라 이야기했고, 사영과 박규수는 조정에서 이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무언가 도움을 주겠거니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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