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연재수 :
166 회
조회수 :
157,771
추천수 :
6,522
글자수 :
832,090

작성
22.05.13 18:10
조회
3,904
추천
84
글자
9쪽

1일차 오후

DUMMY

팔십 평생을 살다 죽으면서 어지간한 일은 모두 겪어 본 사영이었지만, 이 상황은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백병원에서 눈을 뜬 심영이 영 좋지 않은 곳에 총알을 맞았다는 통보를 받은 느낌이 이랬을까.


‘배라니... 아니, 내가 배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배라니~!! 내가, 내가 배라니!!!’


배니까 당연히 고자겠지. ‘내가 고자라니!’를 외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사영은 곧 진정했다.

그는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늙어 죽은 몸. 기왕 썩어 없어지는 바에야 기증하자 해서 잘게 썰어진 몸 아니던가.’


죽음을 기억하는 그로서는 이런 몸이더라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천천히 자신의 현 상태와 기억에 대해 싹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틀림없는 배다.’

‘나의 몸이 배라면, 그 배에 깃든 정신인 나는 예전의 나라고 봐야 하는가. 이것은 내 생각인가 아니면 배가 내게 이렇게 생각하게 하도록 만든 것인가.’

‘뭐...어쨌거나 예전 몸은 썰려 없어졌고 지금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배의 시스템 위에 얹어져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또는 영혼이라고 주장한다면 영혼과 같은 것이리라. 사실 그것을 프로그램이라 부르건 영혼, 정신, 아니면 현상이라 부르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자아가 있고, 생각도 가능하니,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인간의 몸으로,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는 감각 기관으로 받아들이던 세상에 대한 정보 대신, 다른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눈 두개, 귀 두 개, 열 손가락 대신, 수십개의 카메라와 레이더로 세상을, 배 내부를 따라 그물처럼 자라있는 신경망으로 이제는 몸이 된 배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오감을 느끼고, 판단하고, 팔다리를 움직이던 때가 분명 기억이 나는데, 배들로서의 몸도 마치 내 몸이었던 것처럼 움직이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배라는 생명채로 있는 몸인 것 마냥, 지금 상태와 손상된 부위, 일부분이긴 하지만 배들의 내부 상태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 고통을 느꼈다.

몸 여기저기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배 여기저기가 손상된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일 때로 따지면 피부가 벗겨지고 팔 다리 갈비뼈가 부러진 것처럼, 이 배도 여기저기에 심한 손상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배의 상당 부분이 뻥 뚫리거나 없어진 것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분명 배로서 그의 기억으로는 움직여야 할 부분인 추진부나 조타장치, 그리고 주 동력원인 원자로 대부분,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격실 중 상당수 등등에 대한 감각은 있는데, 막상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많거나 현황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큰 사고를 당했을 때나 임종 직전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 일부가 손상되고, 반대로 뇌에서 사지로 나가야 하는 운동신경은 상당수 끊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일단 손상 정도를 파악하고, 주변 상황부터 알아봐야 하겠군.’


손상된 부위부터 들여다보고 어떤 손상인지, 손상이라면 수리 가능한지 등등을 파악해 보기 위해 그는 가용한 자원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동력부터 보자...’


당장 동력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그의 활동도 정지, 그대로 거대한 고철이 되어 녹이나 슬다 침몰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리저리 기억을 되돌려보고 지금은 내 몸이 된 배들과 그 내부를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이 커다란 배는 원자로에서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400MW짜리 SMR(Small Modular Reactor, 소형 모듈 증식로) 원자로 두 대와 40MW짜리 비상용 MMR(Micro Modular Reactor, 초소형 모듈 증식로) 다섯대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 도는 것은 SMR 한 대, 그것도 최대 출력의 절반 이하로만 돌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수소와 폐열은 배 뒤쪽으로 공급되어 특이하게도 포도당의 열합성에 쓰이고 있었고, 이 합성된 포도당의 일부는 다시 효모와 질소고정세균의 배양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효모와 질소고정세균은 소화과정을 거쳐 배 외장과 내장 일부에 들어가는 생체조직과 외피,내부 신경계, 순환계를 유지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생체조직으로 표면을 씌운 배라니...’


배의 뼈대는 철제였다. 그러나 그 바깥쪽에는 탄산칼슘 입자와 콜라겐, DOPA(dihydroxyphenylalanine)와 같은 결합조직이 단단하게 외피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 위쪽으로 다시 얇은 혈관과 연조직 및 분비샘이 존재하는 껍질,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분비샘으로부터 나온 미세한 강철과 황화철이 마치 상어 껍질과 같은 모양으로 두텁게 쌓여 배를 외부 공격이나 따개비와 같은 접착성 생물들로부터 방어하고 있었다.


사영은 이제 그의 몸이 된 배의 기술 문서들을 분명 그의 기억은 아니나 머릿속, 아니 이제는 배에 들어있는 기억에서 꺼내 다시 습득해 나갔다.


그러나 그 기억 상당부분은 잠겨 있거나 접속이 불가능했다. 배의 기능들은 배 자체의 손상과 동력 저하로 간신히 배의 현상 유지 및 내부 저온 창고와 질소탱크 유지에나 쓰일 수 있는 정도였고, 이 배를 수복하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외부에서 철과 우라늄등의 보급이 필요했다.


‘배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가. 내 대신 움직여 외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 함교쪽에 작동 가능한 인간형 몸체가 하나 있었고, 원자로도 일단은 기능을 어느정도 유지하는 중이었다.


함교쪽에 있는 인간형 몸체를 확인하고, 그 쪽으로 집중을 하자, 마치 의식 일부가 그쪽으로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 보았다.


배로서 존재할 때의 이질적인 감각 외에 드디어 좀 더 익숙한 감각과 신체가 느껴졌다. 좀 전까지 배로서만 존재할 때 보다 훨씬 편안한 느낌이었다.

인간형인 몸체가 있었던 곳은 관 같은 것이었는지, 눈 앞으로 팔을 쭉 뻗으면 닿을 정도 거리에 석관 뚜껑같은 것이 보였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 살펴보니, 관이라고 하기에는 꽤 여유가 있긴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이 보였다. 손발에도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그 관 뚜껑 같은 것을 힘주어 밀었다. 아니, 밀려고 했다.


한쪽 손은 사람 손인데, 다른쪽은 아니었다. 오른쪽 다섯 개 손가락은 가죽을 벗긴 것처럼 골격에 근육이 드러난 것 같은 형태였으나, 이음매도, 주름도, 광택도 없는 백색 물질로 코팅되어 있었다. 손과 이어진 팔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얼굴은 그나마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 배와 마찬가지로, 기계 위에 생체조직을 얹어 놓은 것 같았다. 뒤통수부터 뒷목까지 케이블이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만져졌다.


하얀 손과 팔에는 검은색과 붉은색, 노란색으로 글과 문양이 써 있었다. 스티커도 몇 개 붙어있었는데, 노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몇 개 그려진 스티커는 그도 이미 많이 본 적 있는 것이었다.


Plug-in Hybrid

Fully Charge Before First Use

Gamma Sterlized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전기충전도 가능하고 식사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첫 사용 전 완전히 충전하라... 감마선 멸균됨..”


사영은 생전에 보던 자동차나 생물 실험실에서 많이 보던 그 문구들이 적혀있거나 붙어있는 손과 팔을 보고,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


“생체 조직을 씌운 기계라니 꼭 무슨 터미네이터 같군.”


표면에 감각도 있고, 움직이는 것도 꽤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도 하다. 일단 감마선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만 봐도, 몸 자체가 생물 자체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감마선으로 멸균했다고 써 있는 것을 보니, 의료용 아니면 생물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몸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을 마친 그는, 목 뒤에 연결된 케이블을 빼고 함교로 나갔다. 직접 손상된 부위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밖으로 나서자, 크고 작은 섬 몇 개가 가까이에 있는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황토색 네모난 돛 두 개를 단 배가 섬 쪽에서부터 노를 열심히 저어 오고 있었다. 황포 돛이라니, 문화 행사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배 위에서 흑색 조끼와 적색 소매를 한 조선시대에나 볼 법한 옷을 입은 군관이 소리를 질렀다.


”이양선은 문정을 받으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1년 2개월 4주차 +3 22.06.15 1,275 45 11쪽
24 1년 2개월 3주차 -2- +7 22.06.14 1,316 43 10쪽
23 1년 2개월 3주차 +3 22.06.14 1,317 42 10쪽
22 1년 2개월 2주째 -4- +4 22.06.13 1,346 50 11쪽
21 1년 2개월 2주째 -3- +1 22.06.13 1,403 46 14쪽
20 1년 2개월 2주째 -2- +2 22.06.10 1,438 49 12쪽
19 1년 2개월 2주째 +2 22.06.09 1,462 43 10쪽
18 1년 2개월째 -청국의 사정- +3 22.06.08 1,494 46 10쪽
17 1년 2개월째 +9 22.06.08 1,522 58 16쪽
16 11개월째 +7 22.06.03 1,581 49 18쪽
15 10개월째 -2- +4 22.06.02 1,581 52 15쪽
14 10 개월째 +1 22.06.01 1,607 54 14쪽
13 9개월째 +3 22.05.31 1,662 54 14쪽
12 8개월째 +7 22.05.30 1,697 52 16쪽
11 일곱달째 +5 22.05.27 1,783 55 14쪽
10 여섯달 하고 일주일 후 +6 22.05.26 1,831 60 11쪽
9 여섯달 후 +3 22.05.26 1,872 59 17쪽
8 넉달 보름 후 +8 22.05.24 1,958 55 22쪽
7 넉달 후 +5 22.05.23 2,086 57 16쪽
6 백일 무렵 +10 22.05.20 2,241 65 19쪽
5 석달이 흐르고 +4 22.05.18 2,320 76 14쪽
4 일주일째 즈음. +5 22.05.16 2,648 79 21쪽
3 2일차~120일차 +3 22.05.13 3,449 66 17쪽
» 1일차 오후 +9 22.05.13 3,905 84 9쪽
1 1일차 오전 +9 22.05.12 5,611 9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