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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108

잔잔한 세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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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108
작품등록일 :
2023.04.03 16:52
최근연재일 :
2023.05.01 22:39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838
추천수 :
47
글자수 :
83,532

작성
23.04.22 23:03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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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잔잔한 세계로부터 13화

DUMMY

늦은 저녁.


"그러니까... 회사에 병약한 직원이 있냐, 이 말이냐?"

"네."

"무슨..."


이장진은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병약한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을 왜 찾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답을 찾아냈다.


"새로운 과일을 발견했구나."

"맞아요."

"무슨 효과가 있는데."

"병을 치료해 준다고 되어 있어요."

"병을 치료한다고?"


그답지 않게 눈을 번쩍 뜨며 목소리가 올라갔다.


열매의 효과는 틀림이 없었다.

자신 또한 효과를 체험했고.

얼마 전에 복숭아를 가져간 직원이 자신에게 절을 할 정도였으니.


게다가 아들에게 들어보니 손님들도 효과를 봤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니 열매의 효과를 의심하는 건 바보 같은 짓.

그럼에도 이장진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병을 치료해준다.

미치도록 간단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이렇게 대단한 과일을 발견했음에도 아들의 얼굴이 썩 좋지 않았다.


"대신..."

"대신?"

"엄청 써요."

"병을 치료해 준다는데 그게 뭔 대수라고. 원래 몸에 좋은 건 쓴 법이다."

"그렇죠. 근데 문제는 너무 쓰다는 거예요."

"얼마나 쓰길래."

"잘못하면 기절할 정도로요. 저도 중간에 숨이 막혀서 어지러웠어요."

"... ..."


그 정도면 단순히 쓴 게 아니라 독이 아닐까.


"그래도 문제되지 않는다."

"드셔보시면 그런 말씀 못하실 걸요."

"아니, 너도 알잖아.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내가 병에 걸려 수년을 고생했다.

원인조차 불분명한 불치병에 다닌 병원만 수십 곳.


그때의 심정은 하루하루가 물 없이 말라가는 나무와 같았다.

거기에 태양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몸과 마음은 정처 없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건 그렇죠..."


아버지의 말씀에 이정인은 우울한 목소리를 뱉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지만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


성장했구나.

아들의 얼굴을 보며 이장진은 속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아버지, 왜 어머니는 이 과일을 먹지 않으셨을까요?"

"몰랐을 수도 있지. 평범한 과일은 아니잖아."


하긴.

아셨다면 진즉에 드셨겠지.

만약 아셨어도 너무 써서 한 입 먹고 버렸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젠장, 내가 같이 애서린에 갔었어도.


이정인은 쓰린 속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래."

"이 과일이 쓰긴 한데 방법이 있어요."

"무슨 방법."

"쓴 맛을 중화시키는 방법이요. 아니, 중화를 넘어 끝내주는 맛을 내는 방법이 있어요."

"그럼 문제가 없는 거 아니냐."

"다만..."

"다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과일을 섞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효과가 사라질까 두려워 나중으로 미뤄 까먹고 있었다.


"다른 과일들로 해보면 되잖아."

"오늘 해봤어요. 근데 효과가 미비해서요. 아마도 비율에 비밀이 있는 거 같아요."

"흠, 그래서 효과를 확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네, 그런 직원 안 계시나요?"

"병약한 직원이라..."


철컥.


그때 굳게 닫혀있던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여성 한 명이 들어왔다.

목까지 올라오는 티, 얇은 장갑, 덥수룩한 머리, 얼굴 대부분을 가린 마스크와 두꺼운 뿔테 안경.

그 사이로 보이는 얼굴 액면가로 보면 대략 사회 초년생 같았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이제 완연한 봄인데 장갑이라니.

추위를 잘 타시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정인은 굳이 물어보는 실례를 범하진 않았다.


"이 사원,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놓고 간 게 있어서요."


눈치를 보며 서둘러 자리로 이동한 이 사원.

서랍을 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스르륵.


머리카락이 내려가며 살을 드러냈다.

폴라 티를 입어서 드러나는 부분이 극히 일부였으나.

피부가 검붉은 색에 가깝게 변한 걸 보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상은 아닌 거 같은데.

피부병인가.

힘들겠... 어? 잠깐만!

굳이 심하게 아픈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잖아.

피부병이면 효과가 눈에 더 잘 보일 테고.


찾았다!

효과를 알려줄 사람!


"저기..."


마음이 앞선 탓일까.

평소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꺼렸던 정인답지 않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예?"

"이거 드세요."

"... 이게 뭔데요?"

"몸에 좋은 거예요."


다짜고짜 몸에 좋은 거라니.

이 사람은 누군데 자신한테 이걸 주는 걸까?


이 사원, 이민아는 내심 꺼렸으나 빨리 나가고 싶었기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주스를 받아 회사를 나갔다.


과연 어떤 효과가 좋을까.

좋겠지? 애서린의 과일인데.


벌써부터 좋은 소식을 들은 마냥 정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정인에게 아버지 이장진은 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야."

"네? 왜요?"

"그렇게 갑자기 들이대서 어쩌자는 거냐."

"아, 생각해 보니 부담될 수 있겠네요."

"이 사원, 좋은 인재야. 만약 그만 둔다 어쩐다 하면 가만 안 둔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제가 무릎이라도 꿇어서 사과할게요."

"의욕이 있는 건 좋은데 넘치지 않게 관리해라. 사소한 거 같지만 중요한 거야."

"알겠어요."


***


"받긴 받았는데..."


이민아는 정인이 건네준 주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마셔야 돼, 말아야 돼.

근데 그 사람은 누굴까?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잡념을 털어버리고 다시 주스를 바라봤다.


이민아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병원에 다니는 건 물론이고, 피부에 좋다는 음식과 약, 민간요법까지 총 동원해봤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하지만 알아낸 것도 있었으니.

피부는 음식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

특정 음식을 섭취하면 귀신같이 피부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랬기에 그녀는 새로운 음식을 먹는 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출처가 불분명한 건 더더욱 꺼려졌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았는데. 그랬으면 사장님이 말리셨겠지."


음...

샤인 머스캣을 갈아 넣은 것 같이 예쁜 연두색.

샤인 머스캣 좋아하는데.

음... 음...

맛만 볼까?


결심을 내린 이민아는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향긋함이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와... 이런 향은 처음이야."


뭐라고 해야 하지.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하고, 달콤한 향?


추상적이었지만 이 외에 딱히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껏 향에 취해있던 그녀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할짝.


"음?"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인공적이지 않은 적당하고 기분 좋은 달콤함, 심심하지 않게 깔려있는 반전 매력 상큼함.

게다가 조금 어른스러운 쌉싸름한 맛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까지.


할짝할짝.

꿀꺽꿀꺽.


고양이처럼 주스를 마시던 그녀는 이내 통 째로 입안에 들이부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병은 비워져 있었다.


"내, 내가 미쳤지!"


한 끼를 먹어도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며 먹었는데.

출처도, 재료도 불분명한 주스를 원샷하다니.


"근데 이 맛을 어떻게 참아..."


이민아는 병을 뒤집어 남은 주스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다음날.


오늘도 출근을 위해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이민아.

잠결에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멍하니 양치를 하며 거울을 바라봤다.


그런데.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게 뭘까.

매일 보는 얼굴인데 뭔가 달라졌다.


양치질을 하던 손까지 멈추며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길 몇 초.


어? 잠깐만!


위화감의 원인을 찾아낸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


없어졌다!

평생 자신을 지겹도록 괴롭혔던 붉은 피부가!


"꾸, 꿈인가?"


만약 꿈이라면 이런 악몽도 없었다.

하지만 볼을 당기고 찰싹찰싹 때리자 느껴지는 고통은 현실이라 말해주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자고 일어났더니 피부병이 나았다.

딱히 다른 치료를 한 건 없었는데.


"아! 맞다! 주스!"


무선이어폰을 챙기려 다시 들렸던 회사에서 받았던 주스.

너무 맛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원샷 해버린 주스 말고는 딱히 집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분명히 주면서..."


-몸에 좋은 거예요.


으레 하는 말 일줄 알았는데.

이렇게 뛰어난 효과가 있을 줄이야!


"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주스를 더 얻어야해!


이민아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쏜살같이 회사로 향했다.


***


"굿모닝-"

"장 대리, 요즘 좋은 일 있어? 얼굴이 많이 폈네."

"하하, 이게 다 사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거사를 치르고 장 대리의 아내는 고대하고 고대했던 임신을 했다.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도 임신이 안 됐는데.

사장님이 주신 과일을 먹고 거짓말처럼 아이가 생겼으니.

어찌 사장님 덕이 아닐 수 있겠는가.


"사장님이 왜? 따로 보너스라도 챙겨줬어?"

"보너스요? 어떻게 생각하면 보너스죠. 세상에 둘도 없는."


임신 소식을 알리고 싶었으나 아직 초기라 입을 조심했다.

하지만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까지는 제어할 수 없었다.


싱글벙글.


로또라도 맞았나?


고 과장은 쓸데없는 잡념을 뒤로 하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지시했던 일이 떠올랐다.


"장 대리, 어제 부탁한 서류는 준비됐어?"

"아, 그거 이민아 사원이 정리했다고 하는데... 아직 출근 안했네요."


출근 시간 10분 전.

아직 지각이 아니라 문제되는 건 없었지만 항상 20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이 사원이었다.


착실하고 일처리 깔끔한 직원.

피부에 콤플렉스가 있어 움츠려드는 기색이 있었지만 실력이나 인성에 있어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상하네. 오늘은 차가 막히나 본데요."

"뭐가 이상해. 늦은 것도 아닌데. 오면 바로 서류..."


그때.


철컥.


사무실 문이 열리며 여성이 들어왔다.

고운 피부에 긴 생머리, 맑은 눈과 매혹적인 입술.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인 여성의 등장에 직원들이 시선이 쏠렸다.


누구지?

회사에 저런 사람은 없는데.

거래처 직원도 아니고.

그나저나 엄청 미인이네.


남성 직원들은 홀린 듯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갑자기 쏠린 시선에 그녀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

"네? 저 이민아에요. 얼마 전에 입사한."

"응? 이, 이민아 사원이라고?"


상상도 못한 정체!

저 사람이 이민아 사원이라고?

항상 두꺼운 뿔테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는데.


그것보다.

피부가... 곱다.

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항상 붉거나 어두웠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목이 훤히 보이는 티를 입고 왔구나.

장갑도 없고.


"아니, 이 사원. 이게 무슨 일이야?"

"사실은 저도 잘... 분명한 건 주스를 마시고 이렇게 됐어요."

"주스?"

"네, 어제 사장님이랑 같이 계시던 분이 주셨는데 이름은 몰라요."


장 대리도 사장님.

이 사원도 사장님.


사장님.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사장 이장진이 나타나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이민아 사원은 이장진에게 바람같이 달려가 애원했다.


"사장님! 어제 그 분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


-효과 좋더라.


"그러니까 뭐가 좋냐고요."


아버지는 항상 앞뒤 자르고 문자를 보내시니.

문자만 받았다하면 수수께끼 시작이다.


"전화라도 드려볼..."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문자가 왔음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민아 사원이라고 해요!


"응? 이민아 사원이 누구지?"


혹시 어제 그 여성분인가.


-어제 주신 주스덕분에 피부병이 나았어요!


맞구만.

다행이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몰랐는데.


그럼 아버지가 말한 효과가 이민아 사원을 말한 거였군.


-너무 감사합니다! 제 평생의 숙원인 피부병이 나은 건 정인 씨 덕분이에요.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주스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파는 겁니다."


아직 팔고 있지 않지만.

이제 팔면 되지.


히죽.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네.

근데 이걸 어떻게 참아.

벌써부터 대박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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