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3,836
추천수 :
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7.03.08 07:15
조회
1,145
추천
2
글자
10쪽

나는 걸어갑니다 9화 (1)

DUMMY

9화 : Spot Buried.


“이제 내려갈까.”

“예.”


복토를 끝내고 나는 내려갈 준비를 했다. 삽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나는 결국 한잔 술을 나누리라 계획했던 것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알았다. 술병과 잔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로.


“가자.”


나의 마음과는 달리 산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발걸음의 뒤로는 하나 둘 서로의 모습을 겹쳐가며 숨어가는 나무만이 있었다. 그리고 나무는 무심하게 나의 시선을 가려가며 풍경에 아쉬운 커튼을 쳤다.


“조심하십시오.”


자꾸만 뒤돌아보며 걷는 나를 향해 정빈이가 주의를 주었다. 길이라고는 해도 자칫 잘못하면 쓰러질 지형. 나도 내 불안함을 알고 있었기에 거칠게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갈 즈음, 의식 저 멀리서 빨간 등이 켜졌다.


“?!”

“현하님?!”


정빈이도 느낀 건가. 난 내가 의외로 방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이렇게나 많이 몰려오다니.


“열 기... 이상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어붙은 땅과 나무, 그리고 눈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고 여러 군데서.


“!!”


떨어지는 조각들을 막기 위해 올린 팔 사이로 눈을 가늘게 떴다. 겨울의 바람은 신속히 일어난 먼지들을 제거하고 있었고, 찬바람에 쓸려 깨끗해진 시야 너머에는 다수의 탐파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동계 위장인지 전신에 하얀 칠을 한 그들은 신속하게 우리를 중심으로 포위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미리 땅에 파묻어놓았다는 건가. 용의주도한 걸.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도망가야지. 탐파우 어디에 숨겼다고 했지?”

“대학에 박혀있는 모함 내부입니다.”

“너무 먼데...”


내 생각대로 대학까지 가서 정빈이의 탐파우를 가져온다는 건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저번처럼 맨몸으로 상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 두기도 아니고 열이 넘으니까.


‘제길...’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난감하군. 전에 그것만 있었으면... 잠깐, 잠깐.


나는 뭔가 방법을 찾다가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히 이곳에서 멀지 않으렷다... 먼 옛날의 기억이 확신으로 변하면서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또 잊을 뻔 했군. 아까 내가 여기 뭔가가 있다고 했지?”

“네.”

“아까는 사실 어사무사해서 말 못한 거야. 그런데 놈들이 땅에서 나오는 걸 보니까 기억이 확실해졌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단 달려!!”


순식간에 능력을 모아 주변부 땅을 대전(帶電)시켰다. 그리고 다량의 전기를 머금은 땅에서 백색의 스파크들이 신기루처럼 올라오자, 나는 그 땅을 폭파시켜 조각들을 하늘로 날려버렸다.


“!!”


얼어붙은 껍질들이 산산조각 나며 내 주변부를 가득 메웠다. 이걸로 2초 정도는 센서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폭발에 깜짝 놀라는 정빈이의 손을 잡고 탐파우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혀, 현하님-!”


꽉 잡은 그녀의 손과 뒤에 적을 두고 도망치는 상황. 너무 오래되었건만 낯설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손을 타고 흐르는 온기는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다가와 내 심장의 박동수를 늘린다. 이런 변화는 흡사 긴장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건 오히려 기쁨이다.


함께할 지도 모른다는 기쁨.

잠시나마 손으로만 전해 받는 기쁨에 전율이 인다.


“피하십시오!”


다수의 레이저가 주변을 스치는 상황에서 정빈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확 앞으로 쏠리면서 자리에서 멈췄고, 왜 그녀가 나를 멈추게 했는지 깨달았다.


“......”


아마 조금만 앞으로 더 나갔다면 빔에 맞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 행동을 멈추게 만든 고출력의 레이저는 땅을 녹이며 연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쫒아왔단 말인가. 의심에 돌아본 뒤쪽에는 총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백색 탐파우가 한 대 있었다.


‘분명히 명중시킬 수 있었을 텐데...’


움직임만 멈춘 걸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

1/1000초 단위로 흐르던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흐르고, 주변의 탐파우들은 속속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어쩐다.’


목표 지점까지의 거리는 앞으로 100미터 남짓. 다시 뭔가 생각하지 않으면... 방금 전 눈속임과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정면의 탐파우에서 하늘을 울리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손정빈 소령님. 돌아가셔야지요.

“?!”


갑자기 나온 그녀의 이름에 놀라며 정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목소리를 듣더니 더 어두워졌다.


“차우진 소령...”

“누군데?”

“스카이피아 대지상작전사령부(Counter-Ground Operation Command : CGOC) 소속의 [아론다이트 여단Ahrondite Brigade]의 중대장 중 한명입니다.”

“정규 전투부대가 아니라는 말이군.”

“네. 일단 제가 시간을 벌 테니 원하시는 곳으로 가십시오. 남은 거리는 얼마 정도입니까?”

“한 100미터 정도.”

“알겠습니다...”


그녀의 표정에는 결의가 차 있었다. 헌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날 도와줄 이유가 있는가? 정빈이는 탈영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될 텐데. 자칫 날 도왔다가는 하늘을 적으로 만드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은 ‘폭풍의 현자’입니까?


역시 목표는 내가 목표인 모양이다. 그런데 별칭이 나오다니, 나는 말없이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령님. 이곳까지 이끌어주신 공적이 있으니 지금 가셔도 충분히 참작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어서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나머지에 대한 처리는 저희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저 말을 듣고 정빈이에게 약간의 의심이 든 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니까. 그녀가 뒤쪽에 병력을 데리고 올 생각이 있든 없든, 따라올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니. 그렇기에 그녀가 순순히 날 넘겨도 절망할 일은 아니었다. 외려 내가 정빈이의 상황이었다면 저 차우진의 말 대로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앞으로 나왔다. 양팔을 쫙 피고 나를 지키는 모습으로.


“전 돌아가지도, 현하님을 넘기지도 않겠습니다.”

“!!”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하늘에서 살아왔던 그녀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면 무슨 생각인 걸까. 땅에는 그녀가 있을 만한 아무런 연고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데.


‘하늘로 돌아가지 않겠다면 우리 집에 계속 있겠다는 말 아냐?’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장난 칠 때는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목숨을 내놓고 이곳에 남으려고 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나와 비슷하게 상대방도 놀람을 드러내며 크게 소리 질렀다.


-하늘을 배반한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 답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전에는 절대 하늘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침내 답을 찾으면, 여러분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나는 ‘데리러’라는 단어에서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완전히 깨달았다. 하지만, 제기랄, 너무 어려운 길 아냐?! 내가 그녀의 의도가 관철되기까지 있어야 할 과정을 떠올리는 동안, 정빈이가 날 향해 돌아보았다.


“빨리 가십시오.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너...”


지금까지의 의심이 미안함으로 바뀌면서 내 표정도 살짝 풀렸다. 그녀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면서 작게 웃은 다음,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빨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빈이 주변의 공기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난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적들의 반대편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탐파우들도 즉각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유기체와 같이 잘 훈련된 조직력을 과시하며 정빈이와 나를 향해서 다량의 빔을 발사했다.


“큿!”


빔은 압축-변형된 공간과 중력-관성 제어에 걸려 크게 휘어졌다. 목적지로 향하던 나는 힐끔 뒤를 돌아 그녀를 보았다. 저 많은 집중포화를 굴절시킬 정도라니,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사바소 실드의 능력자라고 해도 10대가 넘는 탐파우가 발사하는 빔을 계속해서 커트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다 만약 한 발이라도 몸에 맞는다면...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녀가 벌어주는 귀한 시간에 한 치라도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마구잡이로 휘어지는 빔들은 주변 나무들을 수수깡 자르듯 베어내며 땅 혹은 하늘로 향했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나는 정빈이를 믿고 최대한 앞으로 나갔다. 차츰 빔의 굴절률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며 명중탄이 올 거라는 예상이 들 즈음, 나는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됐어!!”




-------------------------------------------------------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8)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걸어갑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나는 걸어갑니다 17화 (2) +6 07.03.28 885 3 14쪽
53 나는 걸어갑니다 17화 (1) +8 07.03.26 976 2 13쪽
52 나는 걸어갑니다 16화 (2) +7 07.03.25 978 2 12쪽
51 나는 걸어갑니다 16화 (1) +6 07.03.24 1,007 2 21쪽
50 나는 걸어갑니다 15화 (5) +5 07.03.19 957 2 11쪽
49 나는 걸어갑니다 15화 (4) +6 07.03.18 963 2 10쪽
48 나는 걸어갑니다 15화 (3) +5 07.03.17 950 3 12쪽
47 나는 걸어갑니다 15화 (2) +5 07.03.15 998 3 11쪽
46 나는 걸어갑니다 15화 (1) +3 07.03.15 925 3 9쪽
45 나는 걸어갑니다 14화 (2) +3 07.03.15 979 3 14쪽
44 나는 걸어갑니다 14화 (1) +6 07.03.14 1,012 3 12쪽
43 나는 걸어갑니다 13화 (5) +3 07.03.14 935 2 20쪽
42 나는 걸어갑니다 13화 (4) +3 07.03.14 858 3 15쪽
41 나는 걸어갑니다 13화 (3) +6 07.03.13 985 2 9쪽
40 나는 걸어갑니다 13화 (2) +3 07.03.13 972 3 7쪽
39 나는 걸어갑니다 13화 (1) +5 07.03.13 1,011 3 14쪽
38 나는 걸어갑니다 12화 (2) +6 07.03.12 1,084 4 11쪽
37 나는 걸어갑니다 12화 (1) +4 07.03.12 1,006 3 13쪽
36 나는 걸어갑니다 11화 (3) +2 07.03.11 1,005 4 21쪽
35 나는 걸어갑니다 11화 (2) +2 07.03.11 1,144 3 21쪽
34 나는 걸어갑니다 11화 (1) +3 07.03.10 1,148 3 14쪽
33 나는 걸어갑니다 10화 (5) +2 07.03.10 1,198 2 13쪽
32 나는 걸어갑니다 10화 (4) +4 07.03.09 1,150 2 10쪽
31 나는 걸어갑니다 10화 (3) +4 07.03.09 1,119 2 14쪽
30 나는 걸어갑니다 10화 (2) +4 07.03.09 1,044 2 16쪽
29 나는 걸어갑니다 10화 (1) +3 07.03.08 1,086 2 16쪽
28 나는 걸어갑니다 9화 (2) +3 07.03.08 1,104 3 8쪽
» 나는 걸어갑니다 9화 (1) +3 07.03.08 1,146 2 10쪽
26 나는 걸어갑니다 8화 (2) +3 07.03.07 1,134 2 15쪽
25 나는 걸어갑니다 8화 (1) +2 07.03.07 1,136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