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8화.[Waterfall](8)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들쳐 업힌 채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으윽... 실험체.. 괴물은?"
"이미 잡았슴다. 부상이 심하니까 움직이시면 안됨다."
캐서린의 목소리. 아아, 그럼 아까 전의 그 불은...
"기계실...은.."
"..펌프랑 레버 할것 없이 싹 다 고장나 있었슴다. 애초부터... 막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던 검다."
뭐야...그럼 난 도대체 뭣 때문에 여기까지...
"찾았소? 아니, 그대! 어, 어찌 이런 무참한 꼴이..!"
부단장이 쿠나타를 받아 업으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내 상태를 살폈다.
아, 머리 울려...여튼 부단장도 합류했으니, 이제 나갈 일만 남은 건가.
나는 고개를 돌려 부단장에게 눈을 감은 채 부단장에게 들쳐업힌 쿠나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당신 마을을 지켜 주지 못해서.
그렇게 잠깐이 지나 입구 근처에서 조금 맑은 바람을 쐬었더니, 이내 조금이나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치직...
[ㅇ...훈...]
뭐지? 아아... 무전기인가.
나는 고장난 채 지직거리는 무전기를 하네스를 끌러 해제해 버렸다.
으윽... 그나저나 움직이면서 심하게 흔들리는 탓인가, 엄청 어지럽네.
"나, 나 좀... 내려 줘..."
나는 캐서린이 사다리를 다 오르자 그녀에게 내려줄 것을 부탁했고, 그녀는 만류했지만 나는 억지로 내려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후우..."
나는 벽을 짚고 서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두어번 심호흡을 했다. 깊은 숨이 폐로 들어가니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망가진 내 몸 상태가 돌아온 것은 전혀 아니었다.
"...우웁!"
촤아악!
바닥에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여보게!"
"중대장님!"
그녀들이 나를 향해 급히 달려왔지만, 나는 손을 한번 들어 보이고는 다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무리하냐고?
더 이상 걱정시키기는 싫으니까.
먼지가 부옇게 뒤덮인 상태라도 송장처럼 업혀가는 것보단, 내 발로 직접 걸어 나가는 편이 모두의 걱정을 그나마 덜어 줄 것이다.
ー뻐엉!
-탕! 타당!
-드르르르르르륵!
...빌어먹을, 기어이 놈들이 도착한 건가.
나는 밖으로 나와 오만상 인상을 찌푸려가며 내 전차를 찾으려 했지만, 흐릿한 시야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읏차, 전차로 가려는 거죠? 도련님♡."
우왓, 갑자기 누군가 나를 들쳐안았다 했더니, 릴리였구나.
"여왕님은요?"
"유능한 메이드는 저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자기 입으로 유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럼 실력을 보여줘요. 난 이 이상의 직접 전투는... 도저히 무리니까."
"네에~♡."
그녀는 나를 어딘가에 앉혀 주고는 곧바로 사라지다시피 자리를 떠났다.
"...늘 걱정만 시키는군요, 당신이란 사람은."
어라? 케이트의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허공에다 손을 더듬었다.
"이제 눈도 안 보이시는 정도인가요..? ...여기랍니다."
아아, 이쪽이군. 손끝에 그녀의 얼굴이 느껴진다.
"미안해요. 지금은 그냥... 좀 어지러워서 그래요. 그나저나 여기 어디에요? 나, 나... 지휘하러 가야..."
나는 휘청이며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그런 나를 다시 붙잡아 앉히고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못 가요. 지금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나 하나요? 왜, 늘상 자기만 희생하려고 하죠? 저희가 그렇게 미덥지 못하신가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다. 그녀는 오해를 하고 있어.
난 그녀들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고 싶을 뿐이다.
나도 왜 이런지는... 모르겠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선에 늘 나서고 싶다.
전쟁광, 광전사라던가 그런 건 전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과 함께하면 그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내 존재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누이들이 없을 때 늘 느끼곤 했던 공허함이 이곳엔 없다.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에 나는 이제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무력감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 천천히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에린이 지휘를 잡고 있어요. 리스도, 마틸다도, 그 누구 하나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이 함께 어떤 위기를 넘겨왔는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녀는 내 머리에 자기 머리를 맞대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부디 저희를 믿어주세요."
ー콰앙!
전차포가 불을 뿜는 소리가 들려오고, 총탄 튀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아냐... 그래도 난 받아들일 수 없다.
저기가 내가 있을 자리인데, 그런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다시금 부정하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미 둘도 없는 우리 가족이잖아요."
가족? 가족..?
누이들이 아닌...내 가족?
"당신이 우릴 보듬어주듯, 우리도 당신을 보듬어줄 수 있답니다. 그게 가족이니까요."
그녀는 잠시 나를 두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더니, 2분도 채 되지 않아서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나로서는 그저 흐릿한 실루엣만 보여 그게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그녀가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자, 그제서야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아. 여기 1소대장. 영훈, 들리나?]
수화기 너머로 적 포탄이 빗발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늘 공주 언저리라며 놀리곤 했던 우리 1소대장, 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들리는 모양이군. 그러니까...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이런 말을 하려니 좀... 부끄럽구나. 허나 케이트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보고 겸 해서 일러주도록 하마. ]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큰 목소리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1소대 보고! 현재 대대급의 적 전차부대가 숲을 통해 이쪽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만, 기동로가 제한되는 탓에 우리 측 전력에게 각개 격파 당하고 있습니다! 정찰소대는 철갑탄을 끼고 숲을 누비며 기동전을 펼치고 있고, 아직까지 사상자는 전무합니다, 이상 보고 끝!]
그녀는 훗 하고 웃어보이더니,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걱정 말거라. 네 부관들은 삯바느질까지 해가며 망해가는 국가를 먹여살린 여자들이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는 않아.]
그녀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마지막 한 마디를 했다.
[쉬고 있거라. 한숨 자고 있으면, 본녀가 눈앞의 적을 모조리 쓸어버린 뒤 금방 데리러 가마. 케이트, 그를 잘 부탁하네.]
[아, 뭐야. 반푼이 중대장이야? 헛짓거리 하지 말고 케이트 옆에 꼭 붙어있기나 해. 누나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주인, 아니...중대장님! 이제서야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어요! 벌써 저, 6대나 격파했다구요? 나중에 칭찬해 주셔요!]
[헤이, 커맨더! 이 누님이 벌써 화려한 기동전으로 3대나 넘게 잡았다구? 세상에, 이런 유능한 공주님이 어딨어? 이런 부관을 둔 그대는 행운아라네~. 답례는 담배 한 트럭이면 돼♡.]
마지막으로 케이트는 내가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은 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젠 명령이라 해도 절대로, 더 이상 놓지 않겠어요. 당신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어딜 가든 제가 늘 함께 하며 당신을 지켜드릴게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평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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