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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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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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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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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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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구조자 (1)

DUMMY



*



폭풍처럼 지나간 아비규환의 순간.

충격의 영향인지 순간적으로 필름이 끊겼던 것인가?

온전하게 정신을 붙잡았을 때는 이미 기억의 저장고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순간적으로 받으면 뇌가 방어를 위해 기억과 인지를 마비시킨다고 했던가.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어니스트의 목소리.

플레먼은 자신이 친구의 어깨 위에 팔을 얹은 채 부축된 상태임을 발견했다.


“어니스트, 다친 데는 없는 거 맞지?”


“······아직까지는요.”


“나는······, 사지 멀쩡한 상태인가?”


“그런 말씀은 마세요. 잘못하면 말이 씨가 된다고 하니까요. 저희는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서 나갈 거예요.”


“그래, 그래야지.”


사방을 둘러보니 유사 지옥도가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의 대략적인 윤곽은 어느 정도 유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부터 단단한 벽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균열이 가득했다.

연기 같은 무언가가 자욱하게 뻗어나가며 공기를 더럽히고 있었다.

불길도 스멀스멀 도시 군데군데를 태우는 중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불길은 자연적인 화염과는 다른 모양으로 혀를 낼름거리며 독특한 패턴으로 자라났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런 곳인가? 이게 책으로만 전해들었던 헬게이트의 권역······.”


그와중에 호기심과 학구열 가득한 본성은 속이지 못했다.


“이런 식의 형태로도 발현될 수 있는 거였군.”


플레먼은 사방을 면밀하게 살피며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평생 몰랐으면 했는데, 과욕이었군.’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파괴 과정에서 작은 파편 같은 것이 머리에 튀긴 듯했다.

다행히도 출혈량은 많지 않았고 정신을 잃거나 할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


“이런 일 겪는 건 난생 처음이겠지, 어니스트?”


“그거야 물론이죠.”


“우리는 행운아였군. 축복받은 줄도 모르고 감사한 줄 모른 채 살았어.”


30년 내내 호주에서는 헬게이트 발생 빈도가 높지 않았다.

근 10년 들어서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 재난의 실상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해볼 기회가 적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화재를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화재의 끔찍함 자체가 감해지는 것은 아닌 법.

평생을 책과 신문을 통해서만 헬게이트에 대해서 배워왔던 플레먼은 오늘 이 시간 재난과 면대면으로 마주하며 자신의 인생 성찰을 요구받게 되었다.


“분명 태양을 가렸어, 저 검은 구체.”


플레먼이 고개를 돌리자 어니스트의 눈도 같이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들의 시선이 수렴하는 위치에는 재난의 중심, 태풍의 핵이 있었다.

현재 반경 1km 이내를 잠식하여 ‘헬게이트 권역’ 곧 ‘던전’ 혹은 ‘구덩이’라고도 불리는 필드로 바꿔버린 주체는 바로 저 핵이었다.


“저것이 바로 헬게이트의 본체. 이계로 통하는 블랙홀 같은 것이겠지.”


검은 핵의 크기는 매우 작았다.

기껏해야 볼링공 만한 크기.

그러나 분명 저것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며 태양을 가렸다.

물리적인 원근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치.

즉, 저 존재는 단순한 물리적 실체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이리라.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자체를 왜곡해서 자신에게로 끌어당겼겠지.’


빛마저도 휠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블랙홀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만한 규모의 중력은 현재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빛의 휘어짐은 공간왜곡이나 중력으로 인함이 아닌, 별도의 현상이다.

이 원리를 대체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어서요. 벗어납시다, 도련님.”


“그래야지.”


두 사람은 서로를 부축하며 권역 밖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어니스트도, 플레먼도 적잖은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다리를 삐어 빠르게 달아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설령 저 끝에 닿는다고 해도 이 권역을 빠져나갈 수 있긴 한걸까?


곧 그들은 절망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중력과는 또다른, 그러나 더 기괴하고 징그러운 어떤 인력(引力)의 존재였다.

물리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초상 현상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부질없이 역주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물리적으로 땅이 움직인 것은 아니거늘, 이상하게도 축지법과 정반대인 기술이 그들의 발 위에 가미된 듯했다.

던전의 끝자락으로 나가려는 그들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좌절되었다.


‘좁혀지지가 않는다?’


분명 1km보다 훨씬 더 멀리 걸어왔는데.

이상하게도 경계선과의 간격은 좁아지지 않았다.

아니, 경계선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제논의 역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 비유.

혹은 이런 착각도 들었다.

이 권역의 한쪽 경계와 다른쪽 경계가 웜홀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어느 쪽인지는 관측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었다.


“바라건대 부디 어비씨언들만 나타나지 않기를.”


불길한 직감에 사로잡힌 플레먼은 나직이 독백으로 중얼거렸다.


모든 헬게이트가 어비씨언을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중형 이상의 게이트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

물론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경향성이 그렇다는 뜻이다.


어떠한 형태와 속성을 띤 헬게이트건 그 자체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어비씨언의 개입은 단순한 차원의 위협이 아니다.

지금껏 헌터가 아니고서야 어비씨언을 마주하고 살아돌아온 인간은 없었다.



-키야아아아아악!


불행한 예감은 언제나 어긋남이 없는 법.

소스라칠 듯 끔찍한 괴악한 울부짖음이 그들의 고막을 찢었다.


“위험해, 어니스트.”


무언가를 감지한 플레먼이 친구의 몸을 재빨리 반대편으로 밀었다.

바로 그 찰나에 두 사람 사이로 매우 신속하게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어니스트의 팔과 플레먼의 옆구리에서 작은 생채기가 나며 피가 흘렀다.


-끼아아아아악!


둘은 보고 싶지 않았던 그 굉음의 근원지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적에 대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생존 본능의 부르짖음이 두려움을 눌렀다.

괴물의 실체를 직면한 두 사람의 얼굴은 곧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건 무슨.”


“저것들이 설마.”


동물도 식물도 아닌 무언가.

시커먼 타르 덩어리를 대충 빚어서 만들어낸 것 같은, 움직이는 조형체.

그것들에게서 두드러진 부위라고는 ‘입’ 하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 해부학적 구조물을 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입 하나’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그것들은 개체 하나하나가 여러 개의 입을 소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입 속에도 입이 있었고, 하나의 입 속에 여러 개의 입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동물의 입과는 달랐다.

무한대의 탄성력을 지닌 듯 한없이 넓게 벌려졌다.

그리고 그 이빨들은 칠흑처럼 검었고 사포보다 거칠어보였으며 금강석보다도 단단해보였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이빨들 표면에는 촛농 같은 액체가 흘렀다.

얼핏 냄새 맡기에도 독의 향기가 생생히 전달되었다.


곧 두 사람은 이곳에 갇힌 사람들에게 어떤 재난이 펼쳐졌는지를 목도했다.

사방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시신과 잔해와 몸뚱아리들.

그저 던전 속의 맹독이나 흑 파동에 중독되어 쓰러진 시체들이 아니었다.

갈기갈기 나뉘어져 있었다.

짐승에게 뜯겼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는 무절제하게 작동하는 공장 속 기계더미에 내던져진 상태 같았다.

절단기들과 전기톱들이 난도질한 상태 같달까.


어니스트와 플레먼은 자신들이 그 순간 이성을 유지하고 있음에 놀랐다.

만약 여기서 운 좋게 나간다고 하더라도 지금 보고 들은 것들의 트라우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이런 고민부터가 사치인가?’


두 사람은 황급히 같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부상이 이미 심해진 상태였고 헬게이트의 영향인지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 누적되었다.

힘껏 속도를 낼 수도 없으며 출구 찾기도 이미 실패했으며 사방은 수천 마리의 괴이생명체들로 둘러싸인 상황.


모든 정황이 절망을 가리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 걸 그랬나?”


후회의 작은 탄식이 플레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안해, 어니스트. 내 고집 때문에 네가······.”


“쓸데없는 소리는 꺼낼 생각도 하지 마요.”


회한의 고백을 미리 냅다 잘라버리는 어니스트.


“피해요!”


그는 지친 상태의 도련님을 안고는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다시금 가까스로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회피한 두 사람.

불행 중 다행으로 이곳의 어비씨언들은 스피드는 느린 편이었다.

시각적으로 좌절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숫자가 많아.”


“하지만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모양이에요. 저희 쪽으로 집중적으로 몰리지는 않는 것 같네요.”


“그들을 구해낼 수 있으려나?”


“안타깝지만 저희로서는 저희 목숨도 챙기기 어렵겠죠.”


플레먼은 문득 무력감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생에 대한 미련을 이미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경각심과 아드레날린보다 감상적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이 특이하다고 평했는데 그 말이 맞긴 한 모양이다.


-크르르르르르!

-키아아아악!


다시금 수십 개의 입을 지닌 2m 크기의 흑색 진흙 괴이체들이 냄새를 맡았다.

각양 형태를 소유한 수십 기의 괴물들의 군집.

조금 전처럼 한 마리씩 묻지마 살인 식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의도를 갖고 군집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으로 보였다.


‘기도밖에 남은 할 일이 없게 된 건가.’


인간으로써 완전한 불가항력과 마주하여 모든 수단이 꺾였을 때.

비로소 그때 인간은 역설적인 자유로움과 만나게 된다.

생존이라는 최소한의 아집을 내려놓는 과정, 곧 자아와의 절단.

그때 인간은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그 본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누구에게라도 예외가 없는 과정.

혹자는 그 체험을 주마등이라고 칭하겠지.



-키아아아악!


어비씨언 수십 기의 돌진.

그리고 그들에게서 뻗어나오는 거대한 입들과 이빨들.

플레먼과 어니스트는 생존의 법칙도 잊고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피슈우우웅.


잘못 들은 소리였을까?

무언가가 대기를 찢으며 공간을 양단하는 듯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파지지지징.


헬게이트가 만들어낸 권역의 표피부.

그 경계가 번개처럼 강하하는 어떤 빛의 창살에 의해 파열하였다.

균열은 그대로 공간을 잠식하며 1km 크기 권역의 심장부로 파고들었다.


빛이란 빛은 극히 일부만 빼고 흡수되어 암실과 거의 같았던 던전.

그 내부가 벼락처럼 내려온 한 줄기의 섬광의 직선에 의해 찰나 점화되었다.


콰직.


둔탁한 물체가 관통당하는 소리가 던전 전체에 울렸다.

광란의 춤을 추던 악귀들은 일순간 정지하였다.

눈이 없는 그것들의 시선이 일제히 던전의 중심부를 향했다.


그곳에서는 선명한 빛이 계속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어니스트와 플레먼은 헬게이트의 본체인 검은 구체가 푸른 빛의 창살에 관통당하여 마치 작살에 찔린 상어처럼 펄떡이는 광경을 보았다.


“창?”


동시에 전류 같은 강줄기가 그 창에서 흘러나왔다.

그 푸른 전류의 힘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실들을 타고 유유이 흘렀다.

실들은 하나 같이 어비씨언들의 몸체와 이어져 있었다.

실을 타고 흐르는 동안에는 미약했던 전류가 어비씨언들과 닿자마자 급격히 증폭되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천 기가 넘는 어비씨언들이 일제히 녹아내렸다.

전류 자체가 강력하다기보다는 그 안에 어떤 힘이 있어 어비씨언들의 관절과 분자 배열들을 흐트러뜨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검은 하늘이 부서지더니 금 간 공간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어떤 물체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것이 진격하는 와중에 숨 막히는 필드 내부에 뻥 뚫린 경로가 생성되었다.


플레먼 일행과 헬게이트 본체 사이 지점.

그 탁 트인 공터 쪽에 착륙한 그 물체.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신문에서나 보았던 전투용 코트를 착용한 차림.

헬게이트 에너지 해독용 기계 마스크와 고글을 입고 있었다.

전투용 슈트 아머를 팔다리에 에워두른 그는 둔하기보다는 매우 날렵해보였다.

맨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체격은 언뜻 보기에도 대단히 건장하고 장엄했다.

순수한 금강석으로만 빚어진 존재처럼 느껴졌다.


“생존자가 있었군.”


그 사람의 입에서 차디찬 목소리의 독백이 나왔다.

낯선 조우에 말문이 막혀버린 플레먼과 어니스트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우두커니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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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지하 던전 2층 (2) 24.06.05 11 0 15쪽
22 지하 던전 2층 (1) 24.06.04 11 0 12쪽
21 지하 던전 1층 24.06.03 11 0 14쪽
20 SSS 랭크 던전 24.05.31 15 0 12쪽
19 고난이도 미션 24.05.30 11 0 12쪽
18 카타콤 암호 체계 24.05.29 14 0 12쪽
17 안전 교육 24.05.27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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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티폰 학살자 24.05.22 31 0 13쪽
13 민간인 친구 24.05.21 29 0 14쪽
12 최강의 헌터 24.05.20 32 0 12쪽
11 정결의식 24.05.18 43 0 14쪽
10 오염 24.05.18 45 1 12쪽
9 라이텔바흐 24.05.17 58 1 16쪽
8 구조자 (3) 24.05.15 78 1 8쪽
7 구조자 (2) 24.05.14 90 1 10쪽
» 구조자 (1) 24.05.13 114 1 13쪽
5 지옥의 편린 24.05.11 126 1 14쪽
4 플레먼 에이비슨 24.05.10 140 2 13쪽
3 헌터 24.05.09 1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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