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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얼굴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의 결혼식

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현대판타지

완결

창백한얼굴
작품등록일 :
2023.02.19 13:50
최근연재일 :
2023.03.31 14:20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22,285
추천수 :
407
글자수 :
345,920

작성
23.03.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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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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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제59화 대통령의 결혼식은 이루어질 것인가

DUMMY

제59화 대통령의 결혼식은 이루어질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한테 보고할 필요도 없어. 알아서 해.”


안동필이 물러가자 노갈희가 냉큼 옆으로 와서 보고했다.


“금방 나온 여론조사인데요. 후보님이 5.3% 포인트 앞서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갈희는 준비한 태블릿 PC를 홍사은의 눈앞에 가져갔다. 그 화면에는 여론조사 결과가 떠 있었다. 나이가 많은 홍사은을 위해 그녀는 화면이 큰 최신형으로 구입해두고 있었다.


“내가 40.0%고 이사금이 34.7%라. 드디어 40%대 고지를 밟았구만.”


“네. 곧 안정권으로 접어들 거라고 봐요.”


“그래야겠지. 여론조사 결과를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해서 내 약점을 보완하도록 해.”


홍사은은 지시를 마치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대선이었으나 이제 서서히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승부에서는 어쨌든 이겨야 했다. 승자에게는 영광이 빛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패자에게는 상처와 굴욕만 남기는 게 선거였다.


‘청와대로 되돌아갑니다. 청와대로 갑니다. 청와대로 원상복귀합니다. 어느 게 더 멋있을까?’


그는 속으로 당선 첫 일성으로 할 지시사항을 거듭해서 연습했다.


* * *


이사금 캠프에서는 패배 분위기가 팽배했다.


지지율이 줄곧 앞서다가 떨어진데다가 자칭 보수 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가짜 허위 보도로 고소 고발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캠프 인사의 상당수는 손을 놓고 거의 방관만 하는 듯이 보였다. 이사금 후보와 그 소수의 측근들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긴 애초에 이사금 후보의 개인적인 인기에 의지한 지지율이었다. 그 이사금이 자칭 보수 언론의 집중 타격을 받으면서 허물어지자 지지율이 속절없이 빠져버렸다. 그동안 탈당을 못하고 주저앉았던 개참들이 준동할 기미조차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으나 당에서는 아무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보님, 오늘도 거리로 나가실 계획이세요?”

대변인 송다설은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후보님의 얼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가야지요. 제가 믿을 데는 우리 민주 시민들밖에 없으니까요. 가서 숨어든 분들을 불러내야지요.”


이사금은 거리로 나섰다. 따르는 수행원은 고작 셋이었다. 송다설과 김성주 의원, 이자룡 의원이 다였다.


이사금은 행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으나 다들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피하지 않는 게 고마웠다. 그는 뒤를 따르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진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었다.


‘가짜는 가라.’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가짜들에게 굴복할 수는 없었다. 국민에게 그의 진심을 알려야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큰절을 했다.


이후부터 세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절을 했다.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눕혀 두 팔꿈치를 땅에 대고 마지막으로 이마를 땅에 붙였다.


이른바 세 걸음에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였다. 한 걸음에 가짜를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두 걸음에 그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세 걸음에 깨어있는 국민에게 동참을 간절히 호소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가 삼보일배를 하며 걷자 뒤를 따르던 셋도 함께했다. 잠시 뒤에는 양두식이 옆에 와서 같이 하고 있었다.


아재비와 조카를 필두로 다섯 사람은 무릎과 팔꿈치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이마가 퍼렇게 멍이 들도록 삼보일배를 계속했다.


행인들은 못 본 척 스쳐 지나갔으나 가끔 몇몇은 걸음을 멈추고 이사금의 삼보일배를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 * *


권순덕은 꼬박 하루를 걸려 기사를 마무리했다. 날짜로는 이틀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사 작성에만 몰두했더니 몰골이 형편이 없었다.


눈이 퀭하니 들어가고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러나 마음은 뿌듯했다. 그는 편집장에게 보고했다.


“이게 우리 권 기자의 제3탄인가?”


“취재한 그대로 진실입니다.”


“첫 꼭지는 박사금 양, 아니 이젠 이사금 양이지 출생 전후 이야기고, 둘째 꼭지는 뭐지? ‘대통령의 결혼식은 현실화될 것인가?’라. 기사라기보다는 무슨 소설 제목 같지 않나?”


“예. 좀 길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기사라고 봤어요. 편집장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같은 지방지는 중앙지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구요. 허락해 주십시오. 뒷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진실보도라며? 그러면 왜 혼자 책임져. 나나 사장님이나 다 같이 책임져야지. 권 기자, 나 그렇게 얍삽한 남자 아니야. 적어도 부하를 아낄 줄은 안다고.”


“진작 알고 있어요.”


“그래? 알면 내색을 좀 해.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뭐 존경의 표시라든가, 돈 안 드는 거 많잖아? 지금 마음이 한시가 급하지? 그럼 우선 인터넷 기사로 올려. 종이로는 내일 자로 내보내고.”


“편집장님, 백골난망입니다.”


권순덕은 크게 허리를 접었다. 백골난망(白骨難忘)은 죽어서 백골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다는 뜻으로,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감사의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었다.


“핫핫핫. 알아 알아. 그렇게 백골난망이면 나중에 결초보은해.”


편집장은 너털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카피일보 인터넷판에 기사를 올리자마자 반응이 왔다. 이사금의 지지자들은 말은 않고 있었으나 다들 권순덕의 기사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 드디어 권순덕 기자의 기사가 떴어요. 일착으로 퍼갑니다.


- 권순덕 기자의 제3탄, 드디어 나왔음. 카피일보 URL은 여기에.


- 기사 꼭지가 모두 두 개입니다. 퍼가실 때는 두 개 모두 퍼가야 됩니다. 특히 두 번째 꼭지 ‘대통령의 결혼식은 현실화될 것인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물 밑에서 조용히 생겨난 움직임이 소리소문없이 널리 퍼져 나갔다. 숨죽이고 가라앉아있던 이사금의 지지자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권순덕의 소개로 서금지는 생전 처음으로 너튜브 개인 방송에 출연했다.


마이크 앞에 앉는 것이 낯설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면에는 열이 올라왔으나 의욕만은 넘쳤다. 이사금을 위해 드디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얼굴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떤 식이든 방송 출연은 처음이시죠?”


개인 방송진행자는 안면에 털투성이였다. 구레나룻에서 시작된 수염이 입 주변과 턱을 가득히 덮고 있었다. 그래서 털보 아저씨로 불렸다. 털 개수만큼 정기 구독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네. 얼굴을 내미는 게 좀 떨리기는 해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드릴 기회를 가지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해요.”


“큰 결심을 하셨어요. 다른 것도 아닌 대선에 얽혀든 때문에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텐데요. 지지자들이 있으면 그 반대자들도 그만큼 있거든요. 그들이 오늘 출연 이후 어떤 식으로 괴롭히게 될지 모르는데 각오는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네 각오하고 있어요. 그러나 제가 그동안 그렇게 부끄럽게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떨리기는 하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서금지는 마음속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이후에는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아니 두렵더라도 직면해야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 진심이 시청자분들에게 그대로 잘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부터 말씀을 해주실지요? 오늘 방송에서 저는 진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선입견도 주지 않기 위해서 그저 말씀하시는 걸 지켜보기만 하겠습니다. 시작하시지요.”


“이사금 후보님을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하겠어요.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어요. 점점 그쳐가는 비라 우산을 쓰지는 않았었어요. 예식장 예약을 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구두 굽이 하수구 덮개에 빠져버렸어요. 혼자서 씨름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남자가 구두 굽을 빼내 줬어요. 굽이 잘 안 빠져서 빗물고인 길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겨우··· 너무 고마워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분을 따라가서 명함을 받았어요. 그게 첫 만남이었어요···”


서금지는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무엇을 숨기고 보태고 할 것도 없었다.


1년 동안 쫓아다닌 박사인과 사귀게 된 것부터 결혼식 날을 받은 것까지도 꾸밈없이 털어놓았다. 큰딸 이사금을 임신해서 낳고 기른 과정도, 아이가 커가면서 어쩌면 아빠가 이사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까지 숨김없이 말했다.


아무런 연출도 카메라 워킹도 없이 생방송 독백으로 진행되는 데도 동시 접속자수는 점점 불어났다. 처음 시작할 때 몇만 명 수준이었던 숫자가 30분이 지날 무렵에는 50만 명을 넘어갔고, 1시간이 지날 때쯤에는 100만 명을 넘어서 있었다.


“TV 뉴스를 보고 이녁이 당나귀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을 알았어요. 20년 만에 처음으로 소식을 들은 거였어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사실은 진작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립고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몰라 만날 방법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대선이 시작되면서 노새당에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파헤치면서 제 과거가 드러나게 되었어요. 남편은, 이젠 박사인씨라고 해야겠지요, 떠벌리기는 좋아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정치판에 휩쓸리더니 나 몰래 큰딸의 DNA 검사를 한 모양이었어요. 다 아시는 대로 기자회견을 해서 친딸이 아니라고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그이가 우리 사금이의 친부라는 걸 확실히 알았어요.”


서금지는 잠시 말을 끊고 눈물을 닦아냈다. 자신도 모르는 새 고였던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큰딸이 그이를 찾아간 모양이었어요. 그 사람은 보자마자 친딸이라고 바로 인정을 했대요. 정말 바보 같았죠. 하긴 본래 그런 남자였어요. 그분은 딸이 있는지조차 몰랐거든요. 그런데도 순전히 절 위해서 그런 거였어요.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제가 다른 제삼의 남자와 불륜을 저질러 딸을 낳은 것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서금지는 어느덧 이사금을 ‘이녁’이나 ‘그이’ 또는 ‘그분’으로 칭하고 있었지만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말하는 도중에도 그녀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눈물은 닦아내도 닦아내도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저는 정치는 몰라요. 그렇지만 그이가 아무것도 아닌 저 같은 여자 때문에 비난받고 욕을 먹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 사람의 잘못이라면 그저 저 같은 보잘것없는 여자를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그분을 도와주세요. 그이는 여러분들이 지지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분이세요. 그 사람을 지지한다는 걸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하나도 없어요. 저 역시 우리의 사랑이 부끄러운 거였다고는 생각 안 해요.”


서금지의 얘기가 끝이 났을 때는 거의 90분이 흐른 뒤였다. 동시 접속자수는 거의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사금 후보님을 사랑하십니까? 제가 듣기로는 후보님은 여전히 여사님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로 듣고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동안 입도 벙긋하지 않고 지켜만 보던 털보가 물었다. 그는 서금지를 여사님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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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에필로그 +4 23.03.31 281 6 5쪽
65 제65화 기다림의 시간(완결) +4 23.03.31 290 8 6쪽
64 제64화 대선 전날 밤 23.03.30 240 6 11쪽
63 제63화 말리꽃이 떨어지다 +1 23.03.29 247 7 12쪽
62 제62화 대단한 서금지 +1 23.03.28 246 6 12쪽
61 제61화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23.03.27 262 5 12쪽
60 제60화 서금지의 활약 +1 23.03.26 262 6 12쪽
» 제59화 대통령의 결혼식은 이루어질 것인가 23.03.25 275 7 12쪽
58 제58화 반전의 시작 23.03.24 261 6 12쪽
57 제57화 서금지, 활동을 시작하다 23.03.23 240 5 12쪽
56 제56화 서금지와 심단심 23.03.22 244 4 12쪽
55 제55화 이사금과 아버지의 대화 23.03.21 245 5 12쪽
54 제54화 이사금이 마음을 달래는 법 23.03.20 248 5 12쪽
53 제53화 K국형 미투 23.03.19 263 6 11쪽
52 제52화 테세우스의 배 23.03.18 244 5 11쪽
51 제51화 10년 전 손금을 봐준 죄 23.03.17 258 5 12쪽
50 제50화 가짜 언론의 좀비 23.03.16 278 5 12쪽
49 제49화 박사금, 이사금을 만나다 23.03.15 286 5 12쪽
48 제48화 한 맺힌 5급 행정사무관 23.03.14 278 5 12쪽
47 제47화 개참, 다시 준동하다 23.03.13 272 5 12쪽
46 제46화 기자(記者)는 놈 자(者)자를 쓴다 23.03.12 296 6 12쪽
45 제45화 서금지를 만나야 한다 23.03.11 287 6 12쪽
44 제44화 DNA 유전자 분석 결과 23.03.10 297 6 11쪽
43 제43화 이사금의 생일 잔치 23.03.09 245 5 11쪽
42 제42화 황룡과 구렁이 23.03.08 260 6 12쪽
41 제41화 반전의 타이밍 23.03.07 293 5 12쪽
40 제40화 개 기자 킬러 권순덕 기자 23.03.06 272 7 12쪽
39 제39화 서금지는 B형 23.03.05 287 6 12쪽
38 제38화 서금지, 집을 나오다 23.03.04 28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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